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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을은 제원보다 더 소형이고 무장도 빈약한 포함이었다.
원래는 목탄을 때는 보일러로 움직이는 배였고 선체 중앙에는 돛대까지 있었다. 그리고 본디 북양함대 소속도 아니었다. 광을(廣乙)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광동(廣東) 함대 소속이었다. 광갑, 광을, 광병, 광정 등은 모두 광동함대 소속의 군함인데 북양함대에 연수차 파견된 것들이다.
일본 순양함들이 공격을 해오자 광을의 함교에서는 제원의 마스트를 바라보며 지휘나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나 터무니없게도 제원의 마스트에 올라간 것은 백기였다.
광을은 제원이 항복하려는 것으로 판단했다.
당연히 광을을 지휘해 주어야 할 방백겸으로부터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제원을 따라 넓은 바다로 도망쳐 나간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일본 순양함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가망성은 없었다.
광을은 제원과 갈라졌다. 육지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서해안은 간만의 차이가 심하여 대부분 넓은 개펄이 펼쳐져 있고 수심이 완만하고 깊지가 않았다. 광을은 태안반도의 개펄에 올라앉고 말았다.
일본은 요시노와 나니와 2척이 제원을 쫓고, 맨 후미의 아키쓰시마가 광을을 잡으러 왔다. 그러나 육지에 너무 가까이 가다가는 아키쓰시마도 개펄에 올라앉을 수가 있었다. 뻘밭을 타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 광을을 향해 아키쓰시마가 포격을 계속했다.
드디어 광을의 탄약고가 대 폭발을 일으킨 것이 오전 7시 40분 경이었다.
물론 이때는 광을의 간부사관과 수병들 대부분이 배에서 개펄로 뛰어내려 허리까지 차는 바닷물을 휘저으며 육지로 도망친 다음이었다.
아키쓰시마는 광을의 폭발을 지켜본 후 함수를 돌려 제원을 잡으러 간 요시노와 나니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전함 요시노의 제1유격대 사령관 쓰보이 고조 소장은 언제부터인가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물론 눈앞에서 도망치고 있는 제원 때문이었다.
아직도 제원의 마스트에는 항복하겠다는 백기가 펄럭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제원은 전속력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게다가 후미 갑판에서는 몇 명의 용감한 수병들이 쫓아가는 요시노를 향해 계속 포를 쏘아댔다.
요시노는 일본 함대에서 가장 속력이 빨라서 22.5노트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영국의 엘직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1년 전인 1893년 10월 5일 영국에서 출발하여 금년 3월 6일에 구레 군항에 도착했으니까 일본 해군이 인수한지 몇 개월도 안 되는 최신형 함이었다.
후에는 2등 순양함으로 분류되었지만 청일전쟁 때만 해도 순양함이나 해방함 같은 함종 명칭은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그냥 중형함이라고 불렀다.
배수량은 4,160톤에 무장으로는 15센티 속사포를 4문, 12센티 속사포 8문을 장비하고 있었다. 반면에 도주하고 있는 청국의 제원은 2천 톤이 조금 넘는 체구에 18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고, 포는 독일의 크룹사제 27센티 포를 앞뒤에 각 1문씩, 15센티 포와 12센티 포를 각 1문씩 갖고 있었다.
주포의 구경은 제원이 요시노보다 컸지만 요시노의 15센티 포는 당시에 막 출현한 최신식 속사포였다.
제원의 27센티 포를 1발 쏘는 동안 8발을 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주하고 있는 제원은 용케도 잘 맞지 않았다.
3천에서 4천 톤 급의 군함은 바다에서 보면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이 정도 크기의 군함이 20노트 가까운 속도로 달리면 피칭이 대단히 심해서 함수가 바다 속에 처박혔다가 다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파도가 심한 날에는 앞머리를 숙이면 뒤의 스크류가 물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제원은 포야 맞던 말던 상관없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무조건 최고 속력으로 내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잡으러 가는 요시노 입장에서는 포를 쏘아서 맞추어야 했는데. 이게 달리고 있는 중에는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속력을 더 내자니 포의 조준이 어렵고 속력을 늦추자니 놓칠 판이었다.
제원은 몇 발의 명중탄을 맞고도 아직 살아있다고 자랑을 하는 듯이 꽁무니에서 간간히 27센티 포탄이 날아왔다. 물론 터무니없이 빗나가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제원의 후미 갑판에서 포를 쏘는 연기가 확 일어나면 요시노의 함교에서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