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사
2026년 05월 01일(금요일)
북한산 북문 아래,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한 아담하고 평온한 사찰입니다.
조선 시대 북한산성 축성 당시 방어를 위해 지어졌던 다른 사찰들과 달리, 대동사는 근대에 중건되거나 새로 지어진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펴낸 '북한산 조사연구 자료집'에 따르면 대동사는 1970년 창건됐다고 합니다.
영취봉 대동사(靈鷲峰大東寺)라고 하는 염초봉(廉峭峰)의 또 다른 이름이 영취봉입니다.
북한산은 고려시대 ~ 조선후기 까지도... "영취봉(靈鷲峰)"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산성 축성 이후
'날카롭고 가파르다' 라는 '염초봉(廉峭峰)'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대동사(大東寺)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2.5km, 백운대 1.6km
바위에 대동사(大東寺),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대동사 뒤로 만경대와 노적봉이 보입니다.
대웅전
대웅전(大雄殿) 편액
지장보살
종각
칠성각
칠성각(七星閣) 편액
칠성여래
칠성탱
용왕탱
상운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입니다.
1722년(경종 2) 승병장 회수(懷秀)가 옛 절터에 130여 칸의 절을 중창하고 노적사(露積寺)라 하였고, 1813년 승병장 지청(智聽)이 중건하였습니다.
1864년 긍홍(亘弘)이 극락전을 중건하였고, 1898년 한암(漢庵)이 큰 방을 중건하였으며, 1942년 주지 법연(法延)과 화주 덕산(德山)이 법당을 중수하였습니다.
사세가 미약하여 퇴락하였다가 최근 법당을 중건하고 요사채를 다시 세워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산신각 · 요사채 등이 있다. 특기할 만한 문화유산은 없으나 조선 중기 이후 북한치영(北漢緇營)의 승려들이 머물렀던 사찰로 추정됩니다.
순조 13년(1813)에 중창되었으며, 고종 원년에 극락전등을 중건하였습니다.
명성황후가 국가의 안녕을 위해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6.25전쟁 때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다시 중건되었습니다. 경내에 오래된 향나무가 있습니다.
천불전
천불전(千佛殿) 편액
불음각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범종각 대신 불음각이라 칭하는 사찰도 있습니다.
불음각(佛音閣) 편액
상운사에서 보면 좌측 원효봉, 우측 의상봉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1983년에 중건되었습니다.
대웅전은 전면의 각 칸에 사분합의 문을 달았으며, 외벽에는 십우도를 그려 장엄합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중앙 석가여래와 좌우협시로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석가여래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신중탱화
신중탱화
부처님의 세계, 불법의 세계를 보호하는 신들, 대예적금강신(大穢蹟金剛神)을 주축으로, 화면 하단 동진 보살을 중심으로 신장, 금강역사, 천녀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장탱화
대웅전 옆에 있는 이 향나무는 수령이 400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아이를 못 낳은 여인들이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는다고 합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대웅전과 약사굴 사이에 서 있는 이 탑은 고려 시대 석탑부재를 모아 1999년 복원한 것입니다.
높이는 455cm이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개와 보주 등이 남아 있어 대체로 완전하지만,
탑신부는 면석이 훼손되고, 옥개석은 파괴되어 있습니다.
약사굴(藥師窟)
약사전(藥師殿)이 아닌 약사굴(藥師窟)로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굴 안에는 석조약사여래와 산신과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약사굴은 대구 팔공산 갓바위, 경주 백률사와 함께 우리나라 약사여래불의 성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사굴(藥師窟) 편액
석조약사여래좌상(石造藥師如來坐像)은
조선전기 작품(1497, 연산군3년)으로 밝혀져 있으며 석불의 높이는 109cm입니다.
약사굴의 주불인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앙련과 복련의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습니다.
산신탱, 독성탱 불화들은 1988년에 조성된 것입니다.
약사여래좌상
앙련과 복련이 대칭인 연화좌 위에 계십니다.
소발에 육계가 낮습니다.
장방형의 상호이며 턱이 길고, 목에는 삼도가 있고, 법의는 통견이며 주름은 직선형이며 군의의 띠 자락이 배 앞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오른손은 촉지인을 취하고 왼손은 선정인을 취하며 그 위에 약합을 들고 있습니다.
일견 근대불 느낌도 들지만 조성기문에 의하면 홍치 10년(1497, 연산군 3년)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은 턱이 길고 입의 인중이 짧고 이목구비가 가운데로 쏠려있으나 전반적으로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목에는 삼도의 표현이 있고, 가슴이 넓게 열린 대의를 걸치고 있다. 대의의 주름은 직선적이고 간략화되어 있으며, 가슴 부근에는 군의의 띠 자락이 가늘게 배 앞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오른손은 오른 무릎 위에 살짝 내려 촉지인을 취하고, 왼손 손가락은 보수된 것 같으며 배 앞에서 선정인을 취하고, 그 위에 약합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 불상은 하부에 조상기문을 남기고 있는데, 약사굴에 봉안할 당시 절에서 찍어 놓은 사진에 의하면 홍치(弘治) 10년, 즉 1497년(연산군 3)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불화들은 1988년에 조성된 것입니다.
이 석불은 조선 초기 불교 조각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석조약사여래좌상
산신탱
독성탱
상운사 약사굴에서 바라본 좌측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북문
원효봉에서 바라본 좌측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원효암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합니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좌선하면서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조선 숙종 때 승병장 성능(聖能)이 원효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고 원효암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정설로 보고 있습니다.
그 뒤 북한산성을 지키는 승병이 머무르는 사찰로 전승되었으며, 1734년(영조 10) 2월에 실화(失火)로 불타버린 뒤 곧바로 중건에 착수하였고, 1938년에 주지 영운(泳雲)과 그의 제자들이 법당을 중건하였습니다. 6·25 때 다시 불탄 뒤 비구니 월해(月海)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 요사채 등이 있으며, 특기할 만한 국가유산은 없습니다. 산신각 근처의 바위에서는 석간수(石澗水)가 나오는데 뒷바위가 코끼리상을 하고 있고, 이 물은 그 앞가슴의 젖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절에서 10분 가량 오르면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원효대가 있습니다.
원효암(元曉庵)
원효암(元曉庵) 편액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석가모니불상 양옆으로 보현, 문수 양대 보살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불
신중탱
화강암으로 만든 큰 부처님 두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산신각
산신각(山神閣) 편액
산신각 내부에는 바위가 있는데 원효대사가 앉아 수행하던 바위라고 합니다.
그 바위 벽에 산신 그리고 대숲의 호랑이와 소나무를 그렸습니다. 산신각에는 보통 할아버지 산신을 모시고 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할머니 산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사천왕상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여장
서암문
원효봉능선(元曉峰稜線)의 시작점으로 보이는 구릉의 정상부에 다다르니 튼실하게 생긴 서암문(西暗門)이 모습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