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타나는 역사 이해
우리는 역사의 바다에서 일엽편주를 타고 노 저으며 때로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채 표류한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으로 시작되는 유럽의 전쟁 시대를 체험하며 1805년 러시아의 군의 원정, 스몰렌스크 함락, 보로디노 전투, 모스크바 포기, 파르티잔 전투와 나폴레옹 퇴각에 이르는 전쟁을 그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 담았다.
그는 소설이 전개되는 중간 중간에 그는 역사와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그대로 설파하기도 하였다. 그는 나폴레옹으로 시작된 전쟁의 파괴와 살상에 대하여 한없이 분노하였고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전쟁과 역사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전쟁과 평화⌟에 쏟아 부었다.
원하지 않는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78억의 인류!
인류는 전쟁 없는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누구나 다 열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쟁이 일상화 되고 스포츠처럼 게임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살고 있다. 누가 우리를 이 비참한 전쟁에서 구워할 것인가?
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의 내전, 예멘의 내전, 시리아의 내전에서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 전쟁의 바람이 일어날 것처럼 느껴지는 한반도를 누가 평화의 길로 이끌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전쟁과 평화⌟를 읽으며 밑줄을 쳤던 일부의 글들을 시름없이 발췌해 본다.
"역사라는 바다의 표면은 움직이지 않는 듯 보였으나 인류는 시간이 움직이는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들의 결합인 다양한 집단이 만들어지고 해체되었다. 국가 형성과 붕괴의 동기들, 민족 인동의 원인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역사라는 바다는 예전과 달리 한 해안에서 다른 해안으로 격류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심해에서 들끓고 있었다. 역사 속에서 인물들은 예전처럼 한 ㅐ안에서 다른 해안으로 파도에 실려 옮겨가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한 장소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군 수뇌호서 전쟁과 원정, 전투를 지시함으로써 대중의 움직임을 반영하던 역사 속의 인물들이 이제는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견해, 법률, 조약으로 격렬하게 들끓는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었다. ……
역사 속 인물들의 이런 활동을 역사가들은 반동이라고 부른다.
역사가들은 역사 속 인물들의 활동을 자신들이 이른바 반동이라는 것의 원인으로 기술하면서 그들을 엄격히 비판한다. 알렉산드르와 나폴레옹부터 마담 스탈, 포티우스. 셸링, 피히테, 샤토브리앙 등에 이르기까지 당시 모든 유명 인물들은 역사가들의 엄격한 판정 앞에서 진보에 협력했는가 또는 반동에 협력했는가에 따라 무죄나 유죄를 선고 받는다.
역사가들이 기술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도 이 시기에 반동이 일어났는데 그 주범은 알렉산드르 1세, 즉 역사가들의 기술에 의하면 자유주의적으로 통치를 시작하고 러시아를 구원한 그 알렉산드르1세였다." ⌜전쟁과 평화⌟하, 615, 616쪽
"역사가들이 인류의 행복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토대로 알렉산드르1세에게 가나한 모든 비난을 열거하기 위해선 아마 종이 열 쪽을 가득 채워야 할 것이다.
이 비난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가들이 찬성하는 알렉산드르1세의 행동, 예컨대 자유주의적 통치의 시작, 나폴레옹과의 전쟁, 1812년의 전쟁에서 보여 준 단호함, 1813년의 원정은 알렉산드르1세의 인격을 형성한 형통, 교육, 생활 등의 조건들과 동일한 근원에서 나온 게 아닐까?
도대체 이 비난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알렉산드르1세처럼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권력의 최정상에 서있던, 모든 역사적 광선이 집중되어 눈을 멀게 할 정동의 빛의 초점에 있는 듯한 그런 역사젂 인물, 권력과 뗄 수 없는 음모와 기만과 아첨과 자기 망상의 영향을 세상에서 가장 강하게 받은 인물,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유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느낀 인물,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습관들과 욕망들, 선과 아름다움과 진리에 대한 갈망을 지닌 살아 있는 인물, 이런 인물이 50년 전에는 고상한 덕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역사가들도 이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종사한 교수, 즉 자신이 한 강의와 자신이 읽은 책을 공책 한 권에 베끼는 오늘날의 교수가 지닌 것과 같은 인류의 행복에 대한 시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
⌜전쟁과 평화⌟하, 616쪽
"어떤 힘이 민족들을 움직이는가?
전기(傳記)를 다루는 일부 역사가들과 각 민족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이 힘을 영웅과 군주만이 가진 권력으로 이해한다. 그들의 기술에 따르면, 사건은 오직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같은 사람들 혹은 그들이 다루는 인물들의 의지로 생긴다. 사건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런 부류의 역사가들이 내놓는 대답은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한 명의 역사가가 단 하나의 사건을 연구하는 경우에만 그렇다. 다양한 국적과 견해를 가진 역사가들이 동일한 사건을 기술하는 순간, 그들이 내놓는 대답은 그 즉시 모든 의미를 상실하는데 왜냐하면 그 힘에 대한 역사가들의 이해가 다양할 뿐 아니라 때로는 전혀 상반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하 ㄴ역사가는 나폴레옹의 권력에 의해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어떤 역사가는 알렉산드르의 권력에 의해 사건이 기인했다고 주장하며, 또 다른 역사가는 어떤 제삼자의 권력에 의해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런 부류의 역사가들은 동일 인물의 권력의 토대가 되는 힘을 설명할 때조차 서로 모순되게 주장을 펼친다. 나폴레옹 옹호자인 티에르는 나폴레옹 권력의 토대가 미덕과 천재성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자 랑프레에 따르면, 그 힘의 토대는 국민을 상대로 한 나폴레옹의 사기와 기만이다. 이처럼 이런 부류의 역사가들은 상대방의 명제를 파괴하는 동시에 사건을 일으키는 힘에 대한 개념을 깨뜨리므로 역사의 본질적 의문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는다.
모든 민족을 다루는 일반역사가들은 사건을 발생시키는 힘에 대한 개별 역사가의 관점이 옳지 않음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들은 이 힘을 영웅과 군주의 고유 권력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뻗은 많은 힘들의 결과로 인정한다. 일반 역사가는 전쟁이나 국민의 정복을 기술할 때 한 인물의 권력이 아니라 사건과 결부된 많은 인물들의 상호 작용에서 사건의 우너일을 찾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역사 속 인물들의 권력은 많은 힘들의 산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미 그 자체로는 사건을 일으키는 힘으로서 고찰될 수 없을 듯싶다. 그런데 일반 역사가들은 대부분 권력의 개념을 자체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거나 사건의 원인이 되는 힘으로 파악한다. 그들의 기술에 따르면, 역사 속 인물은 시대의 산물이고 그 권력은 다양한 힘들의 산물일 뿐이다. 또 그의 권력은 사건을 일으키는 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게르비누스와 슐로서를 비롯한 여러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과 1789년 이념들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다가, 1812년의 원정ㄱ허 그밖에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 사건들은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나폴레옹의 의지의 산물이며, 1789의 이념들은 나폴레옹의 전횡 때문에 중단되었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혁명의 이념과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폴레옹의 권력을 산출했다. 그리고 바로 그 나폴레옹의 권력이 혁명의 이념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억압했다.
이런 기이한 모순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단계에서 발견도리 뿐 아니라 일반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들 역시 모순의 연속이다. 이 모순은 일반 역사가들이 분석의 토대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도중에 멈추기 때문에 생긴다.
합력 또는 합력을 구성하는 분력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분력의 총합이 합력과 같아야 한다. 일반 역사가들은 이 조건을 결코 준수하지 않았고, 따라서 합력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불충분한 분력들 외에도 합력에 따라 작용하는 해명되지 않은 힘의 전재를 가정할 수밖에 없다."
⌜전쟁과 평화⌟하, 615, 616쪽
우리는 과거 역사의 영향 속에 살며 현대라는 역사를 지어간다.
우리가 지어 가고 있는 역사, 살고 있는 사회, 우리가 만든 시대가 후손들에게 평화의 시대, 평화의 기초를 놓은 과거의 역사로 전해지길 간절히 바란다.
2023. 3.17.금요일 아침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