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폭염입니다.
잠깐 숨을 쉬고 있으니 찜질방에서 땀뺴는 방에 들어온 기분입니다. 습한 공기가 입안으로 가득 찹니다. 어르신들이 나오시기 괜찮을지, 혹여나 길가에서 오래 기다리고 계시는건 아니실지 걱정되는 마음에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겨봤습니다.
이번주에는 새롭게 사회복지실습을 하는 실습생 두명이 내일까지 동행하여 이동장터를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9시 15분,
오늘은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저 멀리서 어르신 손짓이 보입니다. 늘 어르신께서 말씀해주셨던 곳이었습니다.
"항시 지나갈 때 울 집 한 번 보랑께"
집 앞마당에서 손짓하고 계시는 어르신 향해 바로 가니, 윗집 어르신과 함께 나와계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지난번 설탕 살 때도 내가 줄려고 했더만, 웃집이 해줬더만~" 하십니다.
어르신은 차가 앞마당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덕분에 물건 산다고 하십니다.
9시 30분,
집안에 계셨던 어르신이 소리 듣고 걸어나오십니다. 우리 선생님들 바로 찾아뵙고 이야기나눕니다.
이번엔 사이다를 사시지만, 안따줘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 힘이 생기셨나봅니다. 다행입니다.
어르신께 물건넘겨드리고 윗집으로 갑니다. 떠나기 전 한 번 더 여쭤봅니다.
"두부는 안필요하세요?"
"두부 두모 놓고 가~"
9시 45분,
오늘도 불가리스 사주시는 어르신. 집안에서 늘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난번 물건 잘 받으셨는지 확인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본인이 없으면 돈을 못줄까 싶어 집안에 미리 약속한 장소에 돈을 두고 가십니다.
어르신 덕분에 오늘도 물건 잘 납품하고 갑니다.
10시,
어제 어르신께서 미리 말씀해주신 계란과 양조간장을 집에 두고 옵니다.
어르신들은 언제 살 수 있을지 모르다보니, 장사꾼 있을 때 미리미리 이야기하십니다.
"나 없어도, 울 집에 간장 맛난 놈 하나랑, 계란 하나 두고 가~"
이동편의가 불편하고, 전화가 또 쉽지 않으니 볼 때마다 이야기하십니다.
10시 20분,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깨를 손질하고 계십니다. 한쪽은 시뻘건 고추가 한 가득입니다.
폭염이 심해질 수록 고추농사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폭염속에 워낙 힘든 노동이다보니 너무 어려운 농사가 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농민들에게 직격타입니다.
우리 농산물을 만들어내는 우리 농민들에 대한 존경을 가져봅니다.
어르신은 너무 더우셨는지 카스 한 박스 주문하십니다. 짜투리 돈은 포인트로 빼드립니다.
더위 조심하라는 말씀을 못드립니다. 해야 할 일이기에. 의미 없는 말뿐이 전달되겠다 싶습니다.
10시 50분,
어르신께서 집 마당에서 점빵차가 있는 곳까지 오십니다.
어르신 마당은 위로 기울기가 있어 올라오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올라온다해도 내려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잘못 힘을 주면 넘어지기 일상입니다. 어르신께 조심스럽게 함께 옆에서 부착하며 물건 갖다드립니다.
어르신이 힘들다고해서 마당에 계시고 말씀만 해달라고해도,
"내눈으로 보고 내가 골라야지, 어디 가보게." 라고 하십니다.
직접 보고 직접 물건을 사는일, 어르신들에겐 중요한 일입니다. 힘들고 위험하다고 섣불리 대신 하려하면 안됩니다.
11시 30분,
어르신 댁에 올라가봅니다. 어르신 집 앞에 배롱나무가 골목을 환하게 비춰줍니다.
지난번 한 어르신 말씀으로 시정 윗집 어르신댁이 마을에 사랑방이라는 이야기에 노크해보니, 어르신들 계셨습니다.
우리 실습생들 함께가니,
"꽃분이들 데리고다니네~ 꽃분이들하고 같이 가니 장사가 좀 되겠구만~" 하십니다.
에어컨도 안켜시고 계셨는데, 저희가가니 에어컨도 틀어주십니다. 커피도 내어주시는 어르신들.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고 가면 얼마나 좋아~" 하십니다.
어르신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어르신들께 잘먹었다고 인사드리며 어르신집 공병을 수거 하고, 다음집으로 나서봅니다.
11시 35분,
마을 나서는 순간 어머님께서 차를 붙잡으십니다.
"아효 차 있는거보고 얼마나 내가 빨리 걸었는데~"
"쪼 앞에서 내려주면되는데 기사님이 절대 안된다고.. 그래서 저 위에 정류장서부터 걸어왔잔아~" 하십니다.
이 뜨거운 날, 아스팔트 위를 걷는 일은 엄청나게 힘든 일입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열이 상당하지요.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점빵차 이용하실려고 부랴부랴 오셨다는 말씀에 감사함과 동시에 죄송함이 함께 드네요.
11시 50분,
여기 어르신도 새로운 사람들이 왔다고 좋아라하십니다.
어르신들은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것이 늘 호기심과 관심을 많이 주시곤 합니다.
무더운날 함께 따라다니느라 고생한다며, 응원과 지지를 해주시는 어르신들,
새로운 사람 왔다며 물건 더 사주시는 어르신 감사했습니다.
13시 45분,
어르신 댁에 들려봅니다. 집 안에서 앉아 계시던 어르신. 어르신께서도 새로운 사람 오니 환대해주십니다.
집안에서 식사 홀로하시다 일어나시곤 식초, 콜라, 불가리스를 사십니다.
콜라를 사셔도 작은거만 사시는 어르신.
"울 손지 줘야하는데, 큰거 하나 주면 다먹어서 안되~~" 하십니다.
"숨겨놔도 어찌 다 찾아마시는지, 작은거만 사야해~"
13시 50분,
회관에 사람들이 모여계셨습니다. 들어가서 인사하니
"어!? 이젠 심부름꾼도 델꾸 다녀?!" 하십니다.
실습온거 말씀드리며 인사드리니 반가워해주십니다.
손님왔다며 참외도 깍아주시고, 삶은 옥수수도 내어주십니다.
물건은 팔지 못하고 얻어먹고 다닙니다. 점빵이 그렇습니다. 어르신들이 내어주신 정으로 힘내서 달립니다.
14시 10분,
오늘은 어르신들께서 시정에 모두 나와계셨습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집에서만 계시기도 어려워하셨던듯 싶습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삼촌, 어르신들을 위한 커피도 큰거 하나 사십니다.
한창 장사하고 있으니 윗집 어르신도 오셔서 락스 식용유 사십니다. 새로운 사람들와서 함께 하니 어르신들도 좋아라하십니다.
삼촌께서 필요한 홈키파(향)는 차에 있지 않아서, 스프레이용 드리고, 향은 따로 갖다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4시 40분,
오늘은 어르신께서 혼자 계셨습니다.
윗마을 시정에 모두 모여있는데 왜 안가셨는지 여쭤보니, 별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어르신께서는 평소대로 두유와 요플레를 사시곤 고맙다고 인사해주시며 들어가셨습니다.
15시 10분,
요양보호사님과 함께 계시는 어르신. 오늘도 반겨 주십니다.
지난번엔 에어컨 안틀고 계셨는데, 오늘은 바로 문닫고 틀라고 하십니다. 지난번 더운 티를 너무 많이 냈나봅니다.
어르신께 인사드리며 실습생들도 인사드립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어르신 벽에 걸려있는 젊은 시절 사진보니, 어르신께선,
"한 30년 됬지~" 하십니다.
그 때 당시에 어르신께선 나이트클럽도 많이 다니셨다며, 할아버지 몰래 다녔다고 합니다.
한창 춤추고 마을에 몰래 들러왔다는 어르신.
"그 때야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하지.." 하시며 아쉬운 말씀을 건네 주십니다.
하시며 어르신께서는 눈을 훔치셨습니다. 눈을 자세히보니 눈꼽이 자꾸 나오셨습니다. 요양보호사님께선
"어르신 눈이 한 쪽이 거의 안보여요~" 하십니다.
백내장 수술을 해야하는데, 나이가 너무 고령화되어서 수술도 어렵다고 합니다. 어르신께선,
"내가 죽을복 받고 해야하는데 말이지~ 해달라고 하면 안되~?" 하십니다.
신체 기능이 하나, 두개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어르신들은 불편함을 감내하고 익숙해져가시면서 살아가십니다.
삶을 마무리하는 그런 시간이 다가온다는건 어떤 삶일까요...
15시 20분,
오늘도 시정 앞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
묘량면 제일의 명당이라고 우리 선생님들에게 소개시켜드렸습니다.
어르신들도 "꽃분이들오니 좋네~" 하십니다.
이야기하던 찰나, 아랫마을에서 안오냐고 전화가와서 오늘은 짧은 인사만하고 바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한 어르신은
"나 저쪽에 있을랑께, 이따 오쇼~" 하십니다.
집에 술 한궤짝 갖다 놓으시려고 하셨나봅니다. 계란과 다른 것들 구입하시곤 함께 이동합니다.
15시 40분,
회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계십니다. 다들 더우셔서 그런지 회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선 이불덮고 한쪽에서 주무십니다.
총무님은 회관 물건 구매를 해주시고, 우리 끝에집 어르신은 서울에도 보낸다고 찹쌀 주문하십니다.
자녀들도 사먹으면 되는데, 꼭 보내주시는 우리 어르신들. 직접 챙겨야 맘이 편하신가봅니다. 회관 인사드리고 끝에집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
집에 계시는 우리 어르신들. 그리고 아랫집 어르신 올라오셔서
"왜 손 흔드는데 안멈춰요?" 하십니다.
너무 좁은 골목 올라오느라 못봤던듯 싶습니다.
그러곤 삼양 라면 두봉지 사갖고 가시며 제가 다음번엔 더 잘보겠습니다 말씀드리니, 웃으며 내려가십니다.
우리 윗집 어르신도 찬거리 사시곤
"날 더운데 조심혀~" 라고 해주십니다. 어르신을 마지막으로 오늘 장터의 모든 장사가 끝났습니다.
엄청난 폭염속에 이동장터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기다려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오늘도 잘 마치고 왔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