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전문가칼럼
[김별아의 문화산책] '출산 전도사'의 辯
부모 사랑조차 의심했던 나
아이 낳아 기르며 완전히 바뀌어
'가정의 달' 끝머리 소심한 고백
부디 당신도 이 행복 누리기를
김별아 소설가
입력 2024.05.24. 23:55
내가 ‘사랑’을 믿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은 후부터였다.
효성스럽지 않았던 나는 부모의 사랑조차 의심하며 불퉁댔다.
감정과 욕망이 빚어내는 순간의 신기루, 연인과의 사랑에 회의했다.
그런 시큰둥이가 일말의 의심과 회의 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된 것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부터였다.
아이 볼래 밭맬래 물으면 호미 들고 나선다더니, 이것은 다른 차원의 중노동이었다.
온몸의 마디마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잠은 늘 부족했다.
사회 활동은 제한받고 기존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생존을 건 전투와도 같은 육아에서 전우애를 쌓지 못한 배우자와는 불화했다.
출산 전과 이후의 삶 사이에는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크레바스만큼 깊고 가파른 틈이 생긴 듯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삶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단 한순간도 자력으로 살아내지 못 하는 핏덩이를 살리기 위해 가진 에너지 전부를 짜내어야 했다.
나는 있는 힘껏 사랑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간난고초도 견딜 수 있을 듯했고 사랑에 목숨을 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종족 보존의 본능일지 모른다. 자식을 분신(分身)으로 비유하는 바와 같이 자기애의 발현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아이를 기르며 느낀 완전한 충만과 일체감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 ‘사랑’의 내용이 익히 알려진 내리사랑과 모성애 따위가 전부는 아니었다.
희생은 보상 없는 일방통행이다. 돌려받기를 바라지 않고 바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랑의 퍼즐은 일방이 아니라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을 더해야 완성된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 과정에서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부모에 대한 아이의 압도적인 사랑이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를 열렬히 사랑한다.
물론 그 또한 감정이나 생각이라기보다는 생존 본능에 가까울 것이다.
동물과 인간의 어린 생명들이 보호와 돌봄을 받기 위해 귀여운 신체적 특징으로 무장한다는
‘베이비 스키마(Baby schema)’ 이론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의심 없는 사랑은 치유다.
어떤 이는 예순이 다 되어서야 자기 삶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이 어릴 적의 미해결 욕구들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스스로 알을 깨고 세계로 나아가는 데 물질적·정서적 결핍이 차꼬가 되어 발목을 잡은 게다.
어려서부터 까닭을 알 수 없는 허무와 타나토스의 충동을 강하게 느껴왔던 나는,
아이를 기르며 비로소 애정 결핍을 해소하고 삶이라는 지상 명령에 복종했다.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사랑의 절대성을 믿게 되었다.
부족한 인간이기에 완벽하게 좋은 엄마는 될 수 없었고, 평범한 욕심으로 아이에게 실망하고 때로 사납게 으르렁대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하나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행여 놓칠세라 내 손을 홈켜잡았던 고사리손의 사랑을 끝내 의심치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한 칼럼에서 얼결에 ‘출산 전도사’로 불린 뒤로 내내 부끄러웠다.
건강과 여건이 허락지 않은 탓이지만 서넛도 아닌 달랑 하나를 낳아 기른 주제에 그런 이름은 가당찮았다.
백약이 무효인 저출생 시대에 불임과 멸절을 택한 젊은 세대에게 감히 전하여 인도할 진리 같은 것도 없다.
다만 ‘가족의 달’인 5월이 저무는 마당에,
내 삶에서 아이를 낳아 기른 것만큼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은 없었다고 조심히 고백하고 싶다.
아이는 내가 30년 동안 쓴 어떤 작품보다도 소중한 작품이며, 나는 그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새롭게 거듭났다.
‘출산 전도사’로 불린 김에 주제넘게 한마디만 더 하자면,
나는 애국이나 사회적 책무 같은 거창한 말을 하지 않으련다.
다만 이토록 누추하고 시시한 ‘행복’을 당신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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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11
밥좀도
2024.05.25 05:32:07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일은 신성하면서도 고귀한 사랑의 실천이다.
남녀 사랑이든 부모 자식 사랑이든 스승 제자 사랑이든 사랑을 해보지 못한 인간이라면 인생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답글2
동물농장지키는개민주
2024.05.26 19:44:18
잘못된 사랑도 많이 있으이.
밥좀도
2024.05.26 08:16:49
사랑은 인류 최고의 가치이자 정신 자산.
나도 한마디
2024.05.25 08:57:46
내자신이 우주에 존제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건 바로 자식뿐이다..
나의혼을 자식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들의 기억에 남지못하면 그져 지나가는 바람일뿐이다..
자식은 내것이 아니다..
나를 기억해줄 고마운 은인이다..
그런자식이 없다면 너무도 슬픈일이다..
바로 그런 은인이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nonobody
2024.05.25 13:21:51
나는 70대, 요즘 세상이 돈과 물질에 휩쓸려 사랑이 실종된 것 같다고 느낀다.
세계적인 어느 독신 작가가 말년에 한탄했다고 한다.
내 무릎에서 뛰노는 자식 한 명만 있으면 내가 쓴 모든 책을 불살라도 좋다고...
눈 마주치고 까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에 모든 수고와 피곤이 녹아내리는 사랑의 기쁨을 아는 젊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생의 허무와 고통을 이겨내는데 자식만한 게 있을까?
많은 부와 명예를 쌓았다해도 자식이 없다면 말년에 어두운 심연이 더욱 크게 다가올거다.
오병이어
2024.05.25 16:48:02
세 아이를 출산하여 양육을 할 때에 몸 마음 정신이 가장 고단했었다.
돌아보니 그때가 가장 치열했고 행복했었다.
양육하느라 많은것을 포기하였었는데 이제 내 꿈을 실현하는 중이다.
lkk5406
2024.05.25 08:23:24
난 40년 후 이 나라 모습을 볼 수 없겠지만 상상하면 끔찍하다.
인구 3천만명, 그 중 2천만명이 60세 이상 늙은이 ...
전 세계에서 구호식량 싣고 오는 배가 부산항과 인천항에 붐비겠지 ...
그 땐 아이사랑, 부모사랑 이런 단어는 없어졌을테고 ...
답글1
김기헌
2024.05.25 08:47:43
며느리한테 손자가 어떠하더라고 이러쿵저러쿵 애기 한 거 반성합니다.
김성훈Creator
2024.05.25 19:51:05
김별아 선생님의 소설 <미실>보다, 이 글이 주는 감동과 여운이 더 깊습니다.
참, 저도 애 넷 아빠입니다~
先進韓國
2024.05.25 13:55:42
아이를 직접 낳아보지 못한 남자로서 댓글 달 자격은 부족하다.
하지만 아버지도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있었기에 나는 살 힘이 났다.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의 50% 이하의 가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아이들을 낳고 기른 게 절반 이상의 가치가 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걸 보면서 웃고 기쁘고 슬프고 힘들었던 게 다른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서 값진 경험이었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다 커서 자기들 살기 바쁘다. 특별히 효도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나는 힘을 얻는다.
어떤 부모들은 자식들이 외국 가서 살아서 한번 만나려면 힘들다고 한다.
나는 언제든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다는 게 든든하고 좋다.
특히 손주가 태어난 뒤로는 ??을 적 자식을 기르던 즐거움이 이제 손주에게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
오히려 자식 기를 때보다 낫다.
그땐 먹고 살기 바빠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여유 있어 더 좋다.
fivetwoten
2024.05.26 18:22:53
필자 본인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부모자식 관계가 필자와 같은 건 아닙니다.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함부로 하는 것 아닐까요.
또한 아이가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필자는 아이를 낳은 게 자신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그건 인간을 하나의 동물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발언입니다.
아이 낳는 것을 국가적 의무라고 압박하는 것도 나쁘지만 아이 못 낳은 사람을 불쌍한 사람 취급하는 것도 나쁩니다.
남의 삶이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고 평가질하는 문화가 저출산 현상을 비롯한 경쟁사회를 가져온 근본 원인입니다.
개개인이 살기 좋은 사회, 삶이 더 나아진다는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보수우파 개딸
2024.05.26 17:12:13
세상에 태어나서 자식 하나 안 남기고 가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immortalis
2024.05.26 11:17:37
자식에 대한 사랑을 행복으로 여기는 작가의 넘치는 표현에 감동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불퉁대며 의심했던 부모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부모 역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그렇다
메디안
2024.05.26 00:54:40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서울로의 과도한 집중인데 조선일보는 날마다 헛소리만 하고 있구나.
분산을 하지 않는 한 출산율은 바닥을 뚫고 계속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