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여백이 있는 곳] 우리 집 주님
우리 집에는 두 분의 ‘주’가 계신다. 내가 마음으로 섬기는 주(主)와 내 남편이 평생을 곁에 둔 초록 병 속의 주(酒)다.
우리는 한 이불을 덮고 47년을 살았지만, 모시는 ‘주님’만큼은 철저히 달랐다. 나는 남편이 내가 믿는 주님께 무릎끓고 기도하길 바랐고 남편은 내가, 본인이 모시는 주님의 향기를 이해해 주길 바랐다. 남편은 종교적인 주님이라면 손사래를 치며 싫어했지만, 신기하게도 주(酒)님 앞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순한 양이자 다정한 로맨티스트가 되곤 한다.
사실 나의 결혼 전 로망은 조금 유별났다. 술을 마시면 세상 좋은 사람이 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나중에 꼭 술 마시는 남자와 결혼해야지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일 년이 되지 않아 깨져 버렸다. 지독히 주(酒)를 사랑하는 남편을 보며, 저렇게 쉬지 않고 마시다가 큰 병이라도 걸리는 것이 아닐까 하며 걱정하고 산 세월이 어느덧 47년이다.
47년을 지켜보니 남편에겐 어떤 적정선이 있었다. 일흔셋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밖에서는 누구보다 유능한 그이지만, 술 한 병을 마시면 평소엔 하지 않는 사랑한다는 너스레도 떨고 집안 쓰레기도 도맡아 치우는 다정한 남자가 된다. 하지만 한 병 반이 넘어서면 이른바 ‘꼴구장’이라도 부리듯 삐딱선이 되어 목소리가 커진다. 심지어 밤이 늦은 줄 모르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나를 당혹하게 하고 이웃 보기 민망하기 일쑤였다. 나의 기도가 천장을 향할 때도, 남편의 술잔은 식탁 위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비워졌다. 생각해 보니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제발 술 좀 그만 마셔”였다.
평생 떠나지 않을 것 같던 남편의 주(酒)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건 지독한 기침감기 때문이었다. 열흘 넘게 이어지는 강제 금주 기간이 내 기도가 완벽한 응답을 받은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술기운 없는 남편과 사는 시간은 반전이 있었다. 금주 기간이 길어지자 남편의 입에서는 뾰족한 잔소리가 튀어나왔다.
“반찬이 왜 이렇게 싱겁냐, 이건 또 왜 제 자리에 안 있냐?”라고 말도 안 되는 투정과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 시비를 거는 맨정신의 남편을 보며 나는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잔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막혀서 한마디 했다. “아유, 세상에. 술, 주님이 계실 때가 차라리 평화로웠네”
술도 건강이 허락되어야 마실 수 있는 ‘특권’이었음을, 그 독한 술이 때로는 남편의 모난 성격을 둥글게 다듬어주는 완충재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믿는 주님은 나에게 인내를 가르치셨고, 남편이 마시는 주님은 남편에게 고된 삶을 버틸 여유와 아내를 향한 쑥스러운 고백을 허락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술 주님이 떠난 자리에 남은 남편의 모습은, 꼭 지실 든 강아지처럼 기운 없고 안쓰러워 보였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평생 그 술 좀 끊으라고 기도를 올렸건만, 막상 술잔을 내려놓은 남편은 항상 활기차고 재미있던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무얼 해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창밖만 내다보는 모습이 마치 세상 다 산 뒷방 노인처럼 보여 내 마음이 다 헛헛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웅다웅하며 보낸 47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가 마신 건 술이 아니라, 고단한 현역의 삶을 버티게 해준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까칠한 잔소리조차 힘이 없는 걸 보니, 차라리 쩌렁쩌렁하게 술잔 부딪히던 그 기운찬 남편이 그립다. 몸이 안 좋으면 마시라고 해도 못 마시는 게 술이라더니, 지나고 보니 남편이 술을 마시지 않은 시간은 그가 몹시 아픈 때였다. 폐암 수술 후, 늑막염이 걸렸을 때 심지어 고관절 수술할 때 그는 술을 마시지 못했다. 술도 건강이 허락되어야 마실 수 있는 특권이라는 걸, 몸이 안 좋으면 마시라고 떠밀어도 못 마신다는 걸 새삼 느낀다. 평생을 미워하며 밀어냈던 그 주(酒)를, 이제는 내가 먼저 남편에게 권해야 하나 고민하는 날이 올 줄이야.
오늘 아침에는 나도 모르게 “주(主)님, 저 지실 든 강아지 같은 남자가 어서 기운 차리게 해주세요. 그래서 다시 기분 좋게 술 한잔 걸치고, 나 같은 남편 없지?’하며 그 기분 좋은 너스레를 떨게 해주세요.“라는 어처구니없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시나브로 남편의 주에 물들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무래도 내 주님(主)보다 그의 주(酒)가 더 힘이 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