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afe.naver.com/godnjf12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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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문화재 포은 정몽주 유허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272호
소 재 지 : 경북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044-5
유허비(遺墟碑)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로, 이 비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선생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정몽주(鄭夢周) 선생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삼은(三隱)의 한사람이다.
공민왕 5년(1355) 부친상을 당하여 묘 곁에서 3년상을 치르고, 그후 공민왕 14년(1365) 모친상까지 당하여 역시 3년상을 지내였다.
이토록 지극하였던 그의 효성이 조정에 보고 되자, 출생지(出生地)인 이곳 우항리(愚巷里) 마을에 비를 세워두도록 하였다.
영천군수(永川郡守) 정유(鄭宥) 선생에 의해 세워졌다.
비는 반듯하고 널찍한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앞면에는 효행을 행한 마을이라는 뜻의 ‘효자리(孝子里)’라는 글귀를 세로로 큼직하게 새겼다.
공양왕(恭讓王) 원년(元年, 1389)에 세운 것으로, 그후 잃어버렸던 것을 조선 성종(成宗) 18년(1487) 경상감사(慶尙監司) 손순효(孫舜孝) 선생의 현몽(現夢)에 의하여 잃었던 비를 땅속에서 찾아내어 다시 세우고 비각(碑閣)도 함께 건립하였다.
그후 선조 40년(1607) 군수 황여일(黃汝一) 선생이 비각을 중수하였다.
비의 정면 중앙에는 큰 글씨로 ‘효자리(孝子里)’라 썼고, 그 우측에는 "공신찬성사대제학 정몽주 경오봉 익양군 충의군(功臣贊成事大提學 鄭夢周 庚午封 益陽郡 忠義君)" 좌측에는 "홍무기사삼월 영천군수정유입비(洪武己巳三月 永川郡守鄭宥立碑)"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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