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씨족통보》와 《용연보감(龍淵寶鑑)》 등에 따르면, 시조 윤신달(尹莘達, 893?(진성여왕 7년) ~ 973년(광종 24년))은 파주 파평산(坡平山) 서쪽 기슭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옥함(玉函)이 물위에 떠오르면서 그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신달 이전의 세계(世系)는 알 수 없다. 윤신달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건국의 공으로 벽상삼한익찬공신 2등 삼중대광 태사에 이르렀다. 943년고려 태조가 승하하고 고려 혜종이 즉위한 후 신라 수도였던 동경(경주) 대도독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30년간 재임하다 81세에 임지에서 서거하였다. 묘는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구봉산 아래 있다.
윤신달의 5세손인 윤관(尹瓘)이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선종 때 합문지후(閤門祗候)와 좌사낭중(左司郎中)을 지냈다. 1107년(예종 2) 여진 정벌에 원수가 되어 17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면으로 출전하여 함주(咸州), 영주(英州) 등에 9성을 쌓아 여진을 평정하였다. 이 공으로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에 책록되었고, 영평현(鈴平縣) 개국백(開國伯)에 봉해졌다. 영평은 파평(坡平)의 별호이므로 후손들이 파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윤관은 후에 벼슬이 수태보문하시중판병부사상주국감수국사(守太保門下侍中判兵部事上柱國監修國史)에 이르러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