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
-정숙자
책상 모서리 가만히 들여다 보다
맑은 이름들 떠올려보다
나 또한 더할 수 없이 맑아지는 순간이 오면
눈물 중에서도 가장 맑은 눈물이 돈다
슬픈 눈물
억울한 눈물
육체가 시킨 눈물이 아닌
깨끗하고 조용한 먼 곳의 눈물
생애에 그런 눈물 몇 번이나 닿을 수 있나
그토록 맑은 눈물 언제 다시 닦을 수 있나
이슬…눈, 새벽에 맺히는 이우 알 것도 같다. 어두운 골짜기
돌아보다가, 드높고 푸른 절벽 지켜보다가 하늘도 그만 깊이
깊이 맑아지고 말았던 거지. 제 안쪽 빗장도 모르는 사이 그
환한 이슬…들 주르륵 쏟고 말았던 거지.
매일매일 매일 밤, 그리도 자주 맑아지는 바탕이라 하늘이었나? 어쩌다
한 번 잠잠한 저잣거리 이곳이 아닌… 삼십삼천 사뿐히 질러온 바람.
…나는 아마도 먼-먼-어느 산 너머에서 그의 딸이었거나 누이였을지
몰라.
그의 투강 전야에
그의 마지막 입을 옷깃에
‘중취독성衆醉獨醒’ 담담히 수놓던 기억
돌덩이도 묵묵히 입 맞춰 보냈던 기억
몇 겁을 다시 태어나고 돌아와도 그 피는 그 피!
이천 년이 이만 년을 포갠다 한들
그 뜻, 그 그늘이면 한 목숨 아낄 리 없지
<해설> 김영자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비극 시인 굴원은 정치가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어부사’는 정계에서 쫓겨난 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어부
사에서 자신을 중취독성이라 칭하여 진나라에 패한 초나라의 현실을 한탄
했다. 이러한 배경을 떠올리며 ‘눈물 중에서도 가장 맑은 눈물’을 생각한
다. 시의 화자가 책상 모서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맑은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에 시의 길이 열린다. 이천 년이 이만 년을 포갠다 한들 몇 겁을 돌아
다시 태어나도 조용한 먼 곳의 눈물은 가장 깨끗하고 맑은 시인의 눈물이
다. 그러기에 시의 화자는 그의 딸이었거나 누이 였을지도 모른다. 깨끗하
고 조용한, 그 맑은 눈물은 어쩌면 투강 전야, 그의 깨끗한 목숨이었을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