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제품의 탄생 과정은 신비에 쌓여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제품이라 할 수 있는 '전형적' 제품은 더욱 그렇다. 아마 그런 점 때문에 전통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전형성의 결정에 도달한 제품은 두 번 다시 재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분과 그 제품을 가능하게 해주는 혼합 과정이 분명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고급 와인식초)도 인근 치벨로의 쿨라텔로(소시지)와 마찬가지로 전통 제품 중의 하나다.
그러나 환경과 기후, 문화적인 면에서 볼 때 발사믹 식초가 생산되는 특정 지역과 주변 지역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도 발견할 수 없다. 피아첸차에서 볼로냐에 이르는, 그리고 저지대의 포 계곡에 이르는 에밀리아 평원을 통틀어 자연적, 인간적 환경은 어느 정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쿨라텔로와 발사믹 식초는 파르마와 모데나 지방에서만 생산되며 항구도시 레조에서 소규모로 만어질 뿐이다. 사실 이런 '다소간'의 거리 차이가 좋은 식초와 뛰어난 조미료의 차이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발사믹 식초는 과일을 원료로 하여 매우 복잡한 기술과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하지만 발사믹 식초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생산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이나 과학적으로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주는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단순한 비교 분석 이외에 뽀족한 방법이 있을 수 없지만, 그 정도 분석으로는 이렇게 세련되고 특별한 '식초문화'가 왜 북부 이탈리아 에밀리아 지방의 다른 곳이 아니고 유독 모데나에서 생겨나고 발전했는지를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잔니 살바테라가 식초제조협회의 의뢰로 편찬하여 칼데리니에서 출판한 <모데나의 전통 발사믹 식초>는 이 분야의 권위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 책에서 그 발사믹 식초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발사믹 식초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오래되어서 어떤 경우도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일정량의 포도즙을 통에 담근 후 한참 잊고 있다가 후에 열어본 결과 식초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이탈리아의 다른 지방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모데나를 제외한 어디에도 식초로 발전된 곳은 없었다. 그러니 우연의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베네딕트 교단의 수사 도니초네가 지은 <비타 마틸디스>에는 마틸데의 아버지 보니파치오가 1046년 카노사 성에서 훌륭한 식초를 만들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발사믹'이란 말이 식초와 연관되어 나타난 것은 1747년 모데나 공의 '사설 지하 저장소를 위한 포도 수확과 와인 판매 등록'이 처음이었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