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호 지음 _ 피천득 문학 세계
1. 시의 세계
나는 열다섯 무렵부터 일본 시인의 시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된 영국과 유럽의 시들을 읽고 시에 심취했습니다. 좀 세월이 흘러서는 김소월, 이육사, 정지용 등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애송했습니다. 말하자면 시에 대한 사랑이 내 문학 인생의 출발이었던 셈입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실은 영국 시인들의 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나 자신도 시인이 되고 싶었고, 직접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내가 쓴 수필과 산문을 많이 사랑하게 되면서 내가 쓴 시들이 그것에 가려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 피천득 <시와 함께 한 나의 문학인생>(2005)
'시인' 피천득의 새로운 평가를 위하여
피천득은 '시(詩)‘로 문학인생을 시작했다. 시는 금아문학의 뿌리이다. 1920년대 중반인 10대 중반에 경성고보 재학 때부터 시 창작에 관심을 가지고 당시 양정고보를 다니던 2년 연상의 수필가 윤오영과 <첫 걸음>이란 등사판 동인지를 내기도 했다. 이때 쓴 습작 시는 남아있지 않다.
이렇듯 금아는 무엇보다도 소년시절부터 시를 사랑했고 읽기를 즐겼다. 그리고 자연히 시 창작을 위한 습작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피천득이 남긴 100여 편의 시 중에서 주옥같은 명편들이 여러 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으로서 피천득의 가치와 위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