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어찌할거나 / 최종호
내 몸무게는 대학생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죽 그랬던 것은 아니다. 40대 중반에 살이 꽤 찐 적도 있다. 얼굴에 살이 붙으니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체조를 하려고 몸통을 좌우로 돌리면 둔하게 느껴진다. 운동장에서 교직원과 배구를 하려니 점프가 어렵고 움직임도 둔했다. 중위에서 수비와 공격을 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운동하는 재미가 별로였다. 뱃살 때문에 허리띠 구멍을 두 개나 늘려야 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저녁마다 동네 체육공원에서 열심히 운동했다. 먹는 양도 조절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몸무게가 제자리로 돌아오니 몸도 한결 가볍고 자신감이 생겼다.
50대 중반이 되자 살집이 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후하게 보일 것 같고, 잔주름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더 젊어 보일 것 같아서다. 그러려고 평소보다 밥을 더 먹고 간식도 즐겼다. 몸무게가 조금씩 늘어가는 것을 확인하자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건강 검진 결과가 나오자 갈등이 생겼다. 고혈압 전단계인 데다, 당화 혈색 수치도 요주의였다. 게다가 술도 가까이하지도 않는데 간 수치도 이례적으로 높았다. 췌장은 초음파 결과 다발성 작은 혹이 있어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적혀 있었다.
평소에 음식을 가려 먹는 데다 나름대로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인데 의외였다. 할 수 없이 몸무게를 줄여 가기로 마음먹었다. 채식 위주로 먹는 데다 스쿼트와 매달리기 등의 근력운동과 걷기를 병행했더니 금방 예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지인들은 살이 너무 빠졌다며 어디 아픈 곳이 없냐고 묻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넘기기는 하지만 고민스럽다. ‘얼굴에만 살이 찌는 방법은 없나?’하고 상상해 본다.
작은아들은 나보다 몸이 더 호리호리하다. 신체검사에서 체중 미달로 상근예비역이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군에 먼저 간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부러웠는지 자원입대해서 복무를 마쳤다. 제대하고 한동안 몸집을 키우겠다고 먹는 양을 늘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더니 지금은 식사량을 조절한다. 몸도 둔하고 배가 볼록 나와서 그렇단다. 최근에는 하버드의대 교수의 『노화의 종말』을 읽더니 걱정할 정도로 적게 먹는다. 소식과 간헐적 단식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 수명을 늘려 준다는 것을 알았다며 내게도 읽어 보라고 권한다.
작은아들과는 다르게 큰아들은 살이 찌는 체질이다. 지난해부터 가족 사진을 찍자고 얘기했는데 얼굴이 좀 갸름해지면 하자고 우기다 지난 7월에야 겨우 사진관에 갔을 정도로 살 빼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동안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단백질 다이어트를 성공적으로 한 결과라면서 먹는 것도 별로 없는 데 살이 찐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식습관으로 비롯된 문제라고 본다. 첫째는 고기를 너무 좋아한다. 혼자 사는 집 냉장고에는 닭가슴살이 가득하다. 근육을 늘리기 위해서란다. 주중에 혼자 살다가 주말에는 집에 오는데 밥상을 보고는 “절간에 수도하러 온 것 같다.”라며 볼멘소리한다. 나도 젊어서는 육식을 좋아했다. 하지만 몸 건강과 동물 복지, 지구 환경을 위해 채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가려 먹는다.
녀석의 두 번째 식습관 문제는 밥 먹는 중간에 꼭 물을 마신다는 점이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밥을 먹일 때마다 물도 함께 마시게 했던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위액이 희석되어 소화 장애가 생기기 쉽다는 것은 상식인데도 개의치 않는다. 최근에 읽었던 이의철의 『조금씩 천천히, 자연 식물식』을 보면, 식사 중에 국 같은 액체를 섭취하면 십이지장으로 빠져나간 당분이 소장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혈당이 급상승하고 인슐린도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체중이 늘어나고 복부 비만이 생기며, 고지혈증 위험이 증가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 두 시간 후에 소화가 되면 물을 마시라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한다.
밥을 너무 빨리 먹는 것도 문제다. 천천히 씹으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과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도 그렇다. 위장에도 좋을 리 없다. 잘게 씹지 않고 삼키면 위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급하게 음식을 먹으면 음식물과 함께 공기도 들어가게 되는데, 위에 압력이 높아져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식도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최근 건강 검진에서 ‘역류성 식도염’을 진단받았는데, 빨리 먹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식습관을 고치라고 말해도 잔소리라 생각하고 가볍게 흘려들으니 안타깝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코흘리개 아이들이 많았다. 영양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그만큼 못 먹고 살았다. 지금은 영양 과다로 여러 가지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비만은 무릎 관절염뿐만 아니라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많은 질병과 관련이 있다. 식습관은 고치지 않은 채 운동만 열심히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계가 있다니 새겨들을 일이다. 우리 몸은 비상시를 대비하여 남는 에너지는 지방으로 저장해 둔다고 한다. 비상식량을 함부로 내놓을 리 없다. 들어온 만큼 소비를 해야 할 텐데 자꾸 쌓여서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난다.
올해 들어 유독 자연재해 뉴스가 많이 나왔다. 캐나다에서는 섭씨 50도가 넘는 더위, 미국과 터기, 그리스에서는 큰 산불, 독일과 덴마크 등 여러 나라에서는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와 함께 탄소 배출 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 소식도 자주 전해진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높아진 것은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지만 탄소를 흡수하는 숲이 사라지는 것도 큰 이유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숲이 계속 줄어드는 이유는 나무를 베어 내고 초지를 만들어 소를 키우고 사료용 콩을 재배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수입을 많이 하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구의 자정능력은 이미 상실되었다고 한다. 급격하게 나빠진 환경을 그나마 조금 늦출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채식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지만 조바심이 난다. 한국인처럼 먹으면 지구가 두 개 반이나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매일 밥상을 앞에 두고 고민이다. 우리 집도 그렇지만 학교 급식도 채소 위주의 식단이 아니어서다. 밖에 나가도 마땅한 식당을 찾기 어렵다. 이를 어이할거나!
첫댓글 기후 변화가 아닌 기후 위기가 오고 있는데 체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네요. 내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 삶의 다이어트가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문우님 글 잘 쓰시던데 나는 댓글을 소홀히 했네요. 지구가 더 큰 병이 들지 않아야할텐데 후손들이 어찌 살아갈지 큰 일입니다.
다이어트가 기후위기를 지나 환경보호까지 갔군요.
그래도 저는 먹는 즐거움을 포기 못하니 이를 어이할 거나. 하하.
논리비약인 것 같아 걱정이긴 합니다. 각오를 단단히 할게요.
저도 빨리먹는 습관으로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요. 선생님글을 읽으니 도전이 됩니다. 다이어트와 바른 식생활 그리고 독서의욕까지 솟게하는 글입니다.
농사짓기에도 바쁠텐데 내 글을 읽고 댓글까지 달아주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문우님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부끄럽군요. 혹시 기회가 되면 이의철의 『조금씩 천천히, 자연 식물식』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언론에서 소식이 장수 비결이라고 할 정도로 강조되지만 먹는 즐거움은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 것 같아요.
좋은 건 저절로 되는 게 없나 봐요. 매번 자신과 한 약속을 어기고 다시 결심하기를 반복한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원시시대부터 오랜 세월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고 몸부림쳤던 것이 우리의 DNA속에 들어있답니다. 배고품, 추위, 움직임 등. 그래서 간헐적으로 이런 환경에 놓임으로서 장수인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하네요.
『조금씩 천천히, 자연 식물식』 익어봐야겠습니다. 도움 주셔거 감사해요.
읽어보면 현대인에게 왜 이리 질병의 종류가 많은지 또, 의학이 발달하지만 환자 수는 늘어만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답이 제시되어 있구요.
교장선생님 몸이 날씬하다 했더니 노력을 많이 하셨군요. 사는 게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다이어트까지도
저넌 살이 잘 안붙는 체질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방심하면 체중이 늘더라구요.
선생님 글을 읽으니 다이어트가 내 몸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일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도 육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채식 위주로 식습관을 바꿔야겠네요. 깨달음을 주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한에서 발생했다던 바이러스가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 먹고 마시고 숨쉬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더라구요.
교장선생님 글은 항상 울림을 주시니 읽고 또 읽어봅니다. 한 끼의 식단 준비에도 환경을 생각하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내 글이 문우님에게 울림을 준다고 하니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더욱 열심히 쓰라는 의미로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