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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 남산 계단 앞
남산 계단에도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나란히 서서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는 가필과 승석.
승석은 심각한 표정이고 그와 반대로 가필은 희죽 대며 좋아한다.
가필: 오늘은 좀 어렵겠는데…….요?
승석이 가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EXT. 63빌딩 앞
승석과 가필이 63빌딩 앞에 서 있다.
질린 표정의 가필
승석: 설명 안 해도 알지?
INT. 63빌딩 로비
비상구 출입문 앞에 서 있는 가필과 승석
승석: 스카이라운지까지 30분 이내에 오면 내가 점심 살게.
승석은 가필을 남겨 놓고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가필에게 V자를 그려보이며 씨익 웃어 보인다.
INT. 63빌딩 비상계단
비상계단을 달리기 시작하는 가필.
30층 정도에 이르자 기진맥진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단을 오르는 가필.
INT. 스카이라운지 로비
비상 출입구가 열리면 온몸에 땀이 흠뻑 젖은 채 가필이 나온다.
숨을 헉헉대며 승석을 찾는다.
승석이 로비 한 쪽에서 어린 여자애 앞에 쭈그리고 앉아 사이좋게 놀고 있다.
지금까지 승석과는 달리 천진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잠시 후,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데려간다.
승석, 뒤늦게 가필을 발견하고 시계를 보면서
승석: (놀라며) 대단한데?
가필, 헉헉대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승석을 바라본다.
승석: 하지만 3분 늦었어.
가필, 실망한다.
승석, 이온 음료 패트를 가필에게 던지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한다.
가필: 밥은 내가 살게…….
INT. 스카이라운지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는 가필과 승석.
승석은 푸짐한 스테이크이고 가필은 야채샐러드다.
스테이크를 먹는 승석을 가만히 보는 가필.
승석: 또 뭐야?
가필: 자넨 좋은 아빠가 될 거 같아.
승석: 왜 갑자기 감상적이 됐어?
가필: 언젠가 자네 아이들을 꼭 보고 싶어.
승석, 피식 코웃음을 짓고 고기를 씹으며
승석: 짱가가 그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가필, 기분이 상해 인상을 쓴다.
승석: 농담이야.
승석,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승석: (혼잣말처럼) 오늘 트레이닝은 좀 어렵겠는데……..?
가필: (좋아서) 그렇지…….?
이 때, 레스토랑 천정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TV모니터에서 '마운틴 듀‘ 광고가 나오고 장면 가운데 개썰매가 눈길 위를 달리는 장면이 보인다.
우연히 함께 그 장면을 보게 되는 두 사람.
두 사람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된다.
EXT. 강변 산책로
아이들이 부르는 징글벨 노래 소리와 함께 커트되면,
카메라, 트래킹 하면서 산타 모자를 쓰고 징글벨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한 명씩 클로즈 업으로 보여준다.
아이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카메라, 빠져 나오면 아이들은 밧줄로 연결된 빨간 고무 대야에 한 명씩 타고 있고, 가필이
앞에서 밧줄을 메고 아이들을 끌고 달린다.
맨 끝 고무대야에는 승석이 타고 있다.
EXT. 거리. 오후
어느 새 눈은 그치고 가필과 승석이 거리를 걷고 있다.
가필은 털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다.
가필의 눈에 다 낡아 헤어진 승석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가필: 가다가 가게 있으면 운동화 하나 사자?
승석: 이건 운동화가 아니라 스니커즈라 하는 거야.
가필: 하여튼 내가 선물할게.
승석: 괜찮아. 내가 사면 돼.
가필: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래.
승석, 잠시 생각하다가
승석: 그럼 다른 아이들 것도 사줘. 아님 말구.
가필: (걱정) 몇 명이더라…….
승석: 내가 아는 할인점이 있어.
가필: 좋아.
EXT. 나이키 상설 할인 매장. 오후
상가 지역이 아니어서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상설 할인 매장 앞에 승석과 가필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승석: 늦네…….
가필: 먼저 들어가 고르고 있어.
승석: 안 추워?
가필: (가슴을 쫙 펴보이며) 시원한데 뭐.
승석, 피식 웃는다.
승석: 추우면 들어와. 품 잡다가 감기 걸리지 말고.
승석이 매장으로 들어가고 가필은 매장 앞에서 국민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이 때, 고등학생 몇 명이 매장 쪽으로 걸어오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 가운데 수빈의 모습도 보인다.
수빈은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가필을 알아보지 못한다.
학생1: 야, 넌 얼마 꼴았냐?
학생2: 2만원. 넌?
학생1: 난 4만원……. 그 영감 졸라 끈질기네.
학생2: 계속 할 거야?
수빈: (부추기며) 끝장을 봐야지.
수빈과 아이들은 매장 앞에 서서 이야기를 계속 나눈다.
가필, 등을 돌린 채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학생2: 난 짱가랑 태욱이랑 붙는 날 올인 할거야.
태욱이란 말에 깜짝 놀라는 가필.
학생1: 넌 몇 분에 걸거야?
학생2: 5분. 그 이상 버티면 기적이다.
학생1: 이긴다에 건 놈도 있냐?
수빈: 당근 빠따……. 없지.
수빈과 아이들 킥킥대고 웃는다.
학생2: (수빈에게) 넌 몇 분에 걸거냐?
수빈: 3분.
학생2, 수빈의 머리를 툭 치며
학생2: 하여간 이 새끼 잔대가리 하난 끝내줘. 얼마 벌었냐?
이 때, 개중이가 모습을 나타낸다.
개중: 하이루! 많이 기다렸냐?
가필이 분노에 찬 얼굴로 천천히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수빈, 뒤늦게 가필을 알아보고 당황하며
수빈: 아저씨…….
학생1: 이 영감이 짱가냐?
가필,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개중과 수빈를 천천히 바라본다.
가필: 너희들……. 나 괴롭히면서 재밌었냐?
수빈: 아저씨, 그게…….
가필: 내가 당구칠 때 걸고 하는 짜장면이냐? 쓰레기 같은 새끼들…….!
이 때, 매장에서 승석이 나온다.
가필, 승석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가필: 너도 알고 있었지?
승석, 아이들을 둘러보고 상황을 파악한 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가필: 나쁜 자식…….!
승석: 우리가 뭘 하든 그게 아저씨랑 무슨 상관이야?
가필: 니들은 내 마음을 짓밟았어!!
승석: 우린 중요한 겨울 방학을 아저씨한테 투자하고 있는 거야.
아저씬 그냥 따라오기만 하면 돼.
가필: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
승석: 시끄러워.
가필: 뭐야? 이 자식…….! 어른한텐 존댓말 하는 거야!!
가필이 승석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승석은 가필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면서 가필의 얼굴에 한방 먹인다.
쓰러지는 가필.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는 개중.
개중: 이건 뭐야?
수빈: (담담) 특훈!
가필, 분노에 떨며 다시 일어난다.
가필: 난……. 난……. 승진까지 포기했어!!
다시 승석에게 덤벼드는 가필. 역시 승석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가필.
가필: (울먹이며) 은행 대출도……. 7년이나 남았단 말이야!!!
다시 승석에게 덤벼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가필: 어쩌면 회사에서 짤릴지도 몰라!
또 다시 승석에게 덤벼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이번엔 타격이 컸는지 가필이 일어나지 못한다.
승석: 그만 두고 싶으면 아무 때나 그만 둬.
가필: (울먹이며) 난……. 난 여지껏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냔 말이야!!
승석, 가필에게 다가간다.
승석: 아저씨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지?
반경 일 미터 안에 일만 생각하다 편안하게 살다 죽으면 행복할 텐데. 그치?
가필, 다시 승석을 노려본다.
승석: 어리광 부리지 마……. 딸이 울고 있어…….!
승석이 뒤돌아서 걸어간다.
개중이 가필에게 가려하자 수빈이 말린다.
놀란 학생1,2와 수빈과 개중도 가필 혼자 남기고 승석을 따라간다.
눈 길 위에 쓰러져 흐느끼는 가필.
다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EXT. 버스 정류장. 저녁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필이 힘없이 걸어온다.
버스를 기다리던 샐러리맨들이 가필을 힐끔 바라보다가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한다.
가필, 정류장에서 15m정도 떨어진 곳에서 잠시 서 있다가 샐러리맨 줄 맨 뒤로가 줄을 선다.
샐러리맨들, 이상하다는 듯 가필을 바라본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다.
문이 열리고 샐러리맨들이 버스에 올라탄다.
운전사, 맨 뒤에 서 있는 가필을 보고 놀란다.
가필이 타야할 순서가 되었다.
운전사와 가필의 시선이 마주친다.
잠시 망설이다 버스에 첫발을 올리는 순간, 버스운전사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다.
가필이 올라타고 버스문이 거칠게 닫힌다.
힘없이 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바라본다.
/ Fade Out
EXT. 어느 공터
승석과 수빈 그리고 개중이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벽에 기대어 나란히 앉아 있다.
개중: 안 춥냐?
수빈: 마음이 춥다…….
개중: (수빈을 보며) 3분은 좀 심했다.
수빈: 사돈 남말 하시네요. 3분이나, 4분이나…….
내(번개): (해식을 보자 놀라
인근 군부대의 사격 연습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다.
김중사는 기다렸던 것이 만족스럽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절름발이 사내(전도사)가 해철의 유골함이 들어있는 가방을 안고 서 있다.
전도사: (소리) 얌마! 그깟 총소리가 그렇게 좋으냐?
김중사는 아쉽다는 듯 총소리가 들렸던 산너머를 힐끗 보고는 절름발이 사내(전도사)에게서
해식의 가방을 받아들고는 가방 안의 내용물을 훌훌 털어 버린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해철의 유골함과 약봉지들이 땅에 떨어진다.
중사: (엄청난 양의 약봉지를 보고) 뭐야? 이거
전도사: 이거 어디서 주워 왔어? 자살하려던 사람 거 아냐?
중사: 창회형이 버릴 거라 그래서 가져왔는데, 에라 모르겠다.
해석의 잡동사니와 유골함을 발로 차서 수풀 속으로 밀어 넣는 김중사
가방을 들고 수풀 속으로 간다.
구덩이 속에 기름 종이로 싼 물건들이 비닐 봉지에 담겨 있다.
전도사: (이게 뭐냐는) -
김중사: 내 보물이다!
옛날 수색대 시절에 한 건 올린 거 아니냐- 너 드보크라고 알아?
전도사: 몰라? 그게 뭔데
김중사: 니가 예수 말고 아는 게 뭐가 있냐?
김중사는 콧방귀를 뀌며 기름종이에 싼 물건을 해식의 가방에 쓸어 담는다.
분해 된 시꺼먼 총신과 나무 개머리판이 기름종이 사이로 슬쩍 보인다.
전도사: 너 죽을 라고 환장했어?
김중사: 입닥쳐. 너 입다물지 않으면 주둥이를 도려낸다.
씨발. 내가 강제로 전역 당하면서, 하도 억울해서 꼬불친 거다.
이게 얼마나 하는지 아냐?
48. 할머니 집 방안. (오전)
아랫목 이불 속에 정물처럼 누워 있는 할머니
까맣게 염색을 한 머리에 곱게 쪽진 머리가 반듯하게 베게 위에 올려져 있다.
누워 있는 할머니 곁에 해식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할머니는 눈을 살짝 뜨고 해식을 곁눈질하고는 가늘게 숨을 내쉬며 해식에게 앙상한 손을 내민다.
할머니의 손을 잡는 해식.
순진한 동물의 눈처럼 물길을 잔뜩 머금은 눈으로 해식을 바라다보는 할머니.
할머니 해철이 왔냐?
해식 아니오. 해식이예요.
할머니 해철아. 니형은 잘 있지? 이 할미가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이다.
해식은 할머니가 혼자 중얼거리게 두고 담배를 피워 문다.
콜록거리는 할머니, 힐끔 보고도 계속 피우는 해식
해식: 할머니, 어머니 산소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할머니가 못 알아듣자 큰소리로) 할머니. 내말 못 알아들어요?
할머니에게서 반응이 없자, 방에서 나와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해식
아줌마가 부엌에서 싸구려 티가 나는 찻잔에 커피를 들고 나온다.
그녀는 해식의 모든 행동이 못마땅한 듯 하다.
아줌마: (커피를 해식 옆에 놓으며) 여기 오래 계실거유?
해식: 뭐 봐서 --
아줌마: 생활비를 지난달부터 안 보내셨던데--
(담장 쪽,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에그머니나.
담장 너머로 사람의 머리가 빠꼼하게 나온다. 번개다.
손을 들어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담장 아래로 사라져버리는 번개의 머리.
해식이 일어서서 대문을 열고 나간다.
49. 해변도로 (오전)
해식이 대문을 열고 나오면 푸른 하늘과 검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하얀 백사장이 눈부시다.
백사장 끄트머리 도로에 낡은 겔로퍼가 한 대 서 있고,
워커에 군복바지를 입고 검은 가죽 쟈켓을 걸친 사내가 겔로퍼의 지붕 위에 올라앉아
똥누는 자세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도로에는 양복에 바바리 코트의 사내 창회
그리고 그들 보다 두어 걸음 앞 선 곳에 번개가 고개를 외로 꼬고 해식을 보며
웃고 서 있다가는 해식을 자기 품에 안을 듯 양팔을 번쩍 벌린다.
번개: 해철아
갤로퍼 위에서 똥폼을 잡고 있던 사내가 뛰어내려와 해식에게로 다가온다.
번개: 인사해라. 여기는 그 옛날 이개철이라고 날리던 이해철. 내 친구다.
여기 이 친구는 김혁수인데 퇴역중사야. 인사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퇴역중사 김혁수와 중사를 소개하는 번개를 무시하고 곧바로
창회를 향해 다가가는 해식. 중사는 인상이 구겨지며 손을 거둬들인다.
바바리 차림의 사내 창회가 해식이 앞으로 다가서자,
해식과 자기사장과의 싸움을 본 후라, 아는 체를 해야 하는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번개가 막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