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11
조상신이 내려 주신 물 곰짓내
<공지천, 곰짓내>
공지천은 춘천의 지리적 상징이다. 춘천을 떠올리면 곧바로 공지천이 상상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시냇물 공지천은 무슨 뜻일까.
공지천은 춘천의 지명유래에 보면, 그 어원이 곰짓내라 했다. 그러면 곰짓내는 무슨 뜻일까. 곰짓내는 곰+짓+내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곰은 신(神)을 뜻하는 고어(古語)이고, 짓은 ‘짓다’의 축약어이고, 내는 냇물(川)의 준말이다. 그러니 공지천은 곰(神)+짓(作)+내(川)에서 나왔다. 그럼 왜 곰짓내가 나왔을까. 춘천 사람들 대부분은 ‘곰실’이란 말을 들어보았다. 여기서 곰실은 ‘곰+실’의 합성어이다. 곰은 신(神)을 뜻하는 말이고, 실(室)은 사당으로 제사를 지내는 당집이다. 옛날 고은리[웅곡(熊谷)] 일대에는 신을 모시는 당집이 있었다. 그래서 고은리는 옛 곰실에서 나온 지명이다. 그럼 곰실에서 모시던 신은 누구였을까. 곰실 위에는 현재 대룡산인 여매압산(汝每押山)이 있었고, 여매압산에는 산신이 있었다. 여매압산은 ‘여(크다)+매(미르, 용)+압(누르다)+산(뫼)’으로 대룡산(大龍山)의 이두식 차자표기이다. 대룡산 아래 사람들은 산신이 된 조상신이 물을 내려 주어 고맙게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이 내려준 물이라는 뜻으로 곰짓내가 되었다. ‘곰(신)’께 예를 드리는 말이 ‘고맙습니다.’이니, 그 뜻 알만하다.
<태백당과 뱀산으로 본 조상신>
그럼 곰짓내 물을 내려 주는 조상신은 어떤 조상이었을까. 이 이야기는 참 오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춘천의 대룡산 아래에는 태백당(太白堂)이 있었다. 고은리 옆 사암리 일대이다. 추측하건대, 이 태백당에는 우리 민족의 조상인 삼신(三神)을 모셨을 것이다. 곧 환인과 환웅과 단군이다. 태백당은 현재 태백이라는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 우리의 소슬뫼를 찾아서에서는 공지천의 뱀산을 ‘밝산’으로 보고 있는데, 이 또한 추측이지만 태백(太白)의 이두식 차자표기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공지천의 어원인 곰짓내는 그 뜻이 참 성스럽다.
<몸짓언어와 상상언어 예술로 탄생>
그러면 왜 곰짓내가 공지천으로 변했을까. 곰실[웅곡]에서 지내던 제사가 어느 날 사라졌다. 제사를 지내면 경건(敬虔)함을 이어갔을 것인데, 제사가 사라지면서 경건함은 신이성(神異性)으로 그 성격이 변하게 된다. 곧 신성(神聖)의 대상 신이 신출귀몰(神出鬼沒)의 신비한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많은 이야기를 창출하게 된다. <공지천과 이퇴계>, <공지천의 공지어>, <공지천의 물고기> 등으로 설화가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공자의 이름과 퇴계의 명성을 딴 공지어 설화, 도통수련자의 대결로 생긴 공지어 설화, 퇴계와 용왕의 아들과 용왕의 선물로 생긴 공지어 등이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곰짓내는 공지천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신이성과 신비성이 가미되자 설화의 상상력은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된다. 설화의 상상력은 문학작품으로 탄생한다. 이외수의 <황금비늘>은 공지천의 공지어에서 비롯했다. 또 춘천 최고의 예술 축제인 마임도 도깨비난장으로 공지어 전설을 가미한다. 공지천의 갖가지 물고기조형물을 보듯 조각 예술로도 탄생했다. 최근에 사암리 농악과 한바탕 노는 대보름 우물굿도 공지천과 공지어에서 비롯했다. 또 얼마나 많은 예술로 탄생하고, 춘천의 ‘밝음’ 정체성으로 작용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