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장흥 / 백현
고향이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고향에서의 추억이나 고향 친구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를 만나면 묘한 상실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광주가 고향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랬다. 고향이 없다고 얼버무리거나 굳이 얘기해야 할 때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이 장흥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부모님은 장흥 출신으로 발넓은 누군가의 중매로 맺어지긴 했지만, 두 분의 고향은 제법 거리가 있다. 외가는 광주에서 가자면 장흥읍을 가기 전에 있는 장동면에, 친가는 장흥읍에서 남쪽으로 더 가야 하는 용산면에 있다.
결혼 후 경기도에서 경찰이 되었던 아빠는 내가 다섯 살이 되어서야 장흥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기 전에 고흥으로 전출을 가셔서 우리는 곧 이사했다. 장흥읍에서 삼 년 남짓 살았을 뿐이고, 어렸을 적이라 기억도 희미해서 고향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 뒤 5년 6개월을 고흥에서 살고, 광주로 와 정착했다.
지금은 장흥이 고향이라고 말한다.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된 그립고 정든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외가와 친가 식구들이 터를 잡고 오래 살아왔으니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유년 시절의 추억은 모두 외할머니 집에 있다. 두 살 터울로 남동생을 낳고, 그 아래 여동생을 임신한 어머니가 몸이 힘들어지자, 여섯 살이 된 나를 외할머니께 보냈단다. 칭얼거리지도 않고 제법 잘 지냈다고 한다. 셋째를 낳고서는 나와 둘째를 같이 외갓집에 보내곤 했다. 둘째는 엄마가 데리러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해서, 나만 할머니 집에 오래 있곤 했다. 울 엄마는 넷째까지 낳았으니 할머니 집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모르겠다.
외갓집 뒤란에는 동백나무가 있었다. 붉은 동백꽃이 바닥에 예쁘게 떨어져 있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당 한쪽에는 펌프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펌프로 물을 퍼 올려 등물을 해 주던 여름날, 장독대 옆에 핀 봉숭아꽃과 잎을 따서 찧어서 물을 들이곤 했다. 마당 저쪽에는 외양간이 있었고, 사랑채에서는 저녁이면 소죽을 썼는데, 그 재에 고구마를 묻어서 구워 주곤 했다.
할머니 집 옆에는 둘째 이모 집이 있었다. 이모는 아들 하나와 딸 넷을 두고 있었다. 오빠는 잘 볼 수 없었지만 나보다 두 살 위인 영미 언니와 나보다 한 살 아래인 현미와 어울렸다. 같이 쑥을 캐러 다니기도 하고, 고둥을 잡으러 가기도 했다. 여름이면 근처에 있는 개울에 가서 멱을 감기도 했다. 동백꽃 뒤쪽을 빨면 단물이 나온다고 가르쳐 준 것도 이 자매다.
친가에도 자주 갔다. 가정적인 아빠는 육아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배려 해서, 나와 동생을 데리고 가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고향인 용산면 상금리는 백씨들이 사는 집성촌으로, 일가친척들이 가득해서 더 끈끈했다. 친척들의 대소사가 마을에서 치러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여러 어르신으로 떠들썩했다. 어른들에게 큰절을 올려야 할 때가 많아서 어색하고 부끄러웠는데, 익숙해지니 우리가 핏줄이라는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번 고향이라고 인정하고 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근거가 떠오른다. 용산에는 집안의 선산이 있고, 그곳에 아버지의 산소가 있다. 그리고 상금리에는 아버지와 친형제처럼 지내셨던 당숙과 당숙모, 6촌 형제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이렇게 확실한데, 왜 고향이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나이를 더 먹어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첫댓글 장흥이 고향 비슷한 고향이 되었네요. 그곳에서 6년이나 근무해서
곳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해물 많이 먹었습니다. 특히 낙지를 요.
잘 읽었습니다.
'울엄마는 넷째까지~'라는 문장을 읽으며 빵 터졌어요. 씩씩하게 추억을 쌓았을 어린 소녀가 눈에 선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장흥에서 6년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아침이면 창문을 열어 하늘 빛을 보는 습관이 생겼었습니다. 오늘의 일출은 어떤 모습일까 하구요,
제가 근무하는 고흥에서도 오래 사셨군요.
장흥떡이라는 걸 새롭게 압니다. 하하!
유년시절 3년 산 곳이지만 고향이 맞네요. 고흥에서도 초등시절을 사셨으니 제 2의 고향이겠네요. 저도 이십년 넘게 고흥에 다닙니다. 금방 추석이니 또 시댁으로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