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 박선애
비행기 타는 것이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해외여행을 싫어하는 남편이 웬일로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히 달갑지 않았다. 처음 겪는 1월 졸업으로 방학 때 차분히 해 오던 생활기록부 마무리, 문집 제작, 졸업 준비 등을 마치느라 지쳐 있었다. 나는 편하게 여행사 상품 골라서 가자고 했더니 끌려다니는 것 같아 싫다고 한다. 전부터, 자기 선배가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가 앙코르와트라고 하더라는 말을 하며 우리도 한번 가자고 했었다. 선교사님도 만나고 좋지 않겠냐고 한다. 걱정이 앞섰다. 스스로 비행기표를 끊어서 우리끼리 가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누군가 나서서 준비하면 따라만 다녔다. 알아서 해 본 경험이 없는 데다 남편에게 맡겨 놓기에는 미덥지 않았다. 남편은 꼼꼼하게 계획해서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움직일 때가 많아서 나랑 안 맞는다.
말이 나온 김에 서둘렀다. 비행기표는 값이 올라서 아깝기는 해도 쉽게 구했다. 문제는 인천까지 가는 버스표가 남아 있지 않았다. 차선으로 광주를 거쳐 가는 방법을 찾았다. 여기도 딱 맞는 시간에는 없으니 미리 가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광주에서 여덟 시 15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맞추려면 목포에서는 여섯 시 30분 차를 타야 한다. 그걸로 예매했다. 다음날 남편은 버스는 지루하다고 기차를 검색한다. 짐 때문에 어려울 거라고 해도 자신이 다 들겠다고 한다. 원하는 대로 하라고 놔두는 것이 편하다. 내 의견을 고집했다가는 원망 듣기 쉽다. 기차는 아홉 시 6분에 목포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있어서 적당하다. 용산역에 내려 서울역으로 가서 공항 열차를 타야 한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경로지만 해 보기로 했다. 기차표와 공항 직통 열차를 예매했다. 세 시간 가까이 늦게 나서도 되니 여유 있고 좋은 점도 있겠다.
짐을 꾸릴 차례다. 몇 년 전 교회에서 탄자니아 선교지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알아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짐을 쌌다. 스무 명쯤 갔는데 모두 개인 짐은 기내에 들어갈 만큼만 간편하게 챙기라고 했다. 허용된 화물은 다 선교지에 쓸 공동 짐으로 채웠다. 그래서 가방은 가벼우면서도 짐을 빼고 나면 작게 접을 수 있는 천으로 된 것을 썼는데 좋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마침 있다. 이름은 보따리 다용도 가방이다. 많이 가져갈 욕심에 특대형으로 주문했다. 너무 크다. 가로가 89㎝라니 짐을 담으면 들 수도 없을 것 같다. 중형으로 바꿨더니 적당했다. 거기에 차곡차곡 담았다. 다행히 무거운 물건이 없어서 허용된 무게를 넘지 않았다. 나머지는 집에 있는 여행용 가방을 늘려서 담았다. 이렇게 화물로 부칠 짐은 선교사님께 드릴 것으로 채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낭에 챙겨 기내로 가져갈 것이다.
1월 15일 아침, 전날 꾸려서 현관 앞에 놓아둔 짐을 챙겼다. 각자 등에 배낭을 메고 남편은 보따리 가방을 들고, 나는 여행 가방 위에 작은 가방 하나 얹어서 끌었다.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가는 것까지는 편안했다. 목포역에서 기차를 타러 가는 길부터 고생은 시작되었다. 바퀴 없는 남편 짐은 보기에도 부담스러웠다. 걱정하는 내게 남편은 이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큰소리친다.
용산역까지는 금방이다. 기차 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서울역으로 가려면 1호선을 타야 한다는 것은 미리 알아 놨다. 가끔 접하는 지하철은 탈 때마다 방향을 잘 찾아가는지, 개찰구는 잘 통과할지 긴장된다. 나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사람이다. 남편은 발이 먼저 나간다. 길을 확인하고 있으면 남편은 어느새 저만치 가고 있다. 대충 짐작으로 가다가 아니면 돌아온다. 서울역을 거쳐 공항 열차를 타는 곳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한참을 걸어야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자동계단이 있는 곳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남편은 자신의 짐을 올려놓고 다시 와서 내 가방을 들고 갔다. 나도 그만큼의 무게는 감당하고도 남을 만한 힘이 있지만 부피가 커서 어찌 해볼 수가 없었다. 표지판을 보고 갔는데도 잘못 가서 돌아오기도 했다.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예매해 놓은 직통이 아닌 일반 열차 타는 곳이라고 한다.
어렵게 공항 열차를 타고 목적지에 닿으니 남편도 어지간히 지쳤나 보다. 저만치 작은 자동차가 움직이고 있다. 남편이 가서 물어보니 이동을 도와 주는 서비스라고 했다. 이런 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짐을 싣고 우리를 태워 승강기 앞에까지 옮겨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도구를 이용하니 괜찮았다. 이제야 여유가 생긴다. 나는 기차로 오자고 한 남편에게 몇 번이나 짜증을 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미안해할까 봐 오히려 좋은 점을 찾아 위로할 만큼의 배려심이 있는데 남편에게는 그게 안 된다. 출국 절차를 마치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해 보니 슬그머니 미안해진다. 평소의 남편이라면 뭔 짐을 이렇게 많이 가져가냐고 투덜거릴 만도 한데 한 번도 안 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 말을 하니 선교지에 가져가면서 불평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냐고 제법 믿음 좋은 사람처럼 말한다. 갑자기 철이 들었나. 기특하다.
보따리 가방은 바퀴가 없어 들고 다니기 힘들었지만 선교사님께 필요한 물건을 잘 날라 주었다. 제 일을 다 한 가방은 접으니 얇은 책 한 권만큼의 크기로 줄어들어 그후의 여정에서 없는 듯이 있었다. 값도 싸고 물건도 많이 담을 수 있으니 꽤 쓸 만하다.
첫댓글 제 일을 야무지게 해내고도 아무일 안 한듯 조용하게 사라지는 보따리 다용도 가방처럼 살 일입니다. 밀도있는 박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보따리 가방은 할 일을 다했는데 여행은 어찌 만족했는지요?
저희 부부도 선생님네랑 비슷합니다. 그런 남편이 항상 불안한데 그렇다고 일이 잘못되냐,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구멍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면 세상은 공평해요.
선생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건강히 다녀오셨죠?
그래도 사부님은 짐도 들어주시네요. 저희 신랑은 어디 가자고 하면 짐도 안 챙기고 자기만 나가요. 전 애들것까지 챙길 것도 많은데 아직도 준비 덜 됐냐 그러고 옷도 뭐 입어도 똑같으니까 아무거나 입으래요.
짐이 많고 무거워 들고 다니기 고생하셨을 일이 그려집니다. 선교지에 가져가는 것이어서 불평도 안 했다는 지점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목포에서 인천공항은 가다가 지치더라고요. 게다가 짐까지 들었으니 고생도 많이 하셨겠어요. 캄보디아 여행기도 궁금하네요.
하하! 제가 전해듣고 짐작하던 그 분이 아닌데요.
무거운 짐을 들고 여행하는 일은 힘들죠. 고생하셨어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선생님 성품 부럽습니다.
저는 행동하고 생각하거든요. 기질적으로 타고났는지 고치기 어렵네요.
그 많은 짐을 가지고 멀리 가셨네요. 힘들게 끙끙대며 짐을 옮기는 두 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렇게 여행 간 적이 있어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다음에는 캄보디아 여행기도 들려주실 거죠?
두분 짐 옮기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보람은 있었겠네요. 공감하며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