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 한번 가봐야겠는데요“
드라마에서 볼 법한 대사를 내 앞에 앉아있는 의사 선생님이 했다. 네 달 동안 내 배와 그 속에 있는 아가들을 봐온 사람이 너무나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왜냐고 물으니 쌍둥이 중 작은 아이 복튼이의 척추 모양이 이상하단다. 자세한 건 대학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해 보고, 괜찮을지 안 괜찮을지는 키우면서 지켜봐야 한다는 무책임한 말을 덧붙일 뿐이었다.
뭐든 빨리빨리 하던 병원이 유난히 늑장을 부린 날이었다. 초음파를 보는 선생님이 신입이라 꼼꼼히 보나보다 생각했다. 심장은 괜찮고요, 방광도 잘 있고 자세가 이상해 이따 다시 볼게요. 세네 번 다시 복튼이를 들여다보더니 검사는 마쳤고 기록할 게 있어 나가서 대기하라고 했다. 대기실에서도 남편과 “코가 오빠 닮아 어떡하니 우리 딸” 이라며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놀려대곤 했다.
대기실에서 사진을 받고 진료실에 내려갔다. 진료실은 텅 비었고 대기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오늘은 빨리 끝나겠다. 뭐 먹고 들어갈지 메뉴를 고르고 골라도 날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에 사람도 없을 텐데. 왜 이렇게 늑장이야 투덜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곤 들어버렸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12주와 16주에 하는 기형아 검사만 마치면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없었다. 초음파 선생님이 초보라 잘 모르는 거 아니야? 의사 선생님은 자기가 보지도 않고 냅다 대학병원부터 가보라니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 간호사는 왜 나를 전염병 환자 내쫓듯 쫓아낸 거야? 등등 나와 남편, 아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아프면, 안 아픈 아이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아 섭섭해할 거고, 아픈 아이는 왜 난 아프게 태어났냐며 원망해할 거다. 허리가 조금만 아파도 괴로운데 평생을 이렇게 살게 하는 것보단 지우는 게 낫지 않을까. 커서 교통사고라도 나면 수술할 일이 생길 텐데, 그때 가서 버릴 건 아니면서 왜 지금은 지울 생각부터 드는지. 태동이 없어 모성애도 없는 건가 싶었다. 난생처음 본 진단명들을 찾아보고, 척추질환 카페에 가입해 수십 년 전 글을 읽어보며 지울 생각에 울고, 키울 생각에 다시 강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입덧이 괴롭다며 영양제를 안 챙겨 먹어서 아기한테 영양분이 덜 간 걸까, 허리 아프다고 살찌는 거 자제하겠다며 다이어트 음식을 먹어댄 결과일가, 아니면 양감 없는 인생이라며 툴툴댄 철없던 나에 대한 하늘의 복수일까.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말없이 조용히 있지만 머릿속은 시끄러운 tv를 하루종일 틀어놓은 듯 소란스럽다.
잘 키울 수 있다는 다짐은 유튜브 속 타인의 아픈 아이 영상을 보면 무너져 내린다. 아픈 아이는 지우고 건강한 아이 하나라도 잘 키우자라는 독한 결심은 유난히 날 닮은 초음파 사진 속 동그란 이마를 보면 무너져 내린다. 대한민국에서 다태아를 가장 많이 받아봤다는 유명한 의사 선생님의 진료도 예약해 놨고, 쌍둥이 중에 한 명만 심정지 시술을 잘한다는 의사 선생님 진료도 예약해 놨다.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어떤 정답을 찾을진 모르겠지만 감당할만하니 내게 주어진 일이겠지.
첫댓글 복복님...
아침에 이글을 읽고 있는데 마음이 무너져 내리네요. 얼마나 힘이 들지 가늠이 안됩니다.
기운내시길 바라고 저는 성당을 다니는데 제가 매일 아침마다 집을 나서며 기도를 하는데 작지만 기도 드릴께요. 힘내시고 몸도 마음도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