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 통신 215호
동남아한센봉사회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이제는 새벽 별을 셀 수 있습니다.
뇌종양 수술을 마치고 퇴원했습니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저에게 가까이 다가온 다음 선교 일정을 여러분께서 깊이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뜻에서 현재 저의 건강 상태를 조금만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1월부터 양쪽 눈 동공 출혈이 심하게 되어 심각한 시력 저하 증상이 일어나 지난 4월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두 번 안과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동공 주변에 있는 시신경을 강하게 누르고 있는 뇌종양이 발견되어 신경외과 의사는 9월에 감마나이프로 수술하겠다는 결정을 했었습니다. 시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속히 종양을 제거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시신경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수술 방법은 감마나이프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열고 의사의 손으로 하는 수술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감마나이프 시술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마취도 하지 않고, 통증도 없는 최첨단 수술이라고 했습니다. 환자에 따라 입원도 하지 않고 1회 수술로 끝나는 뇌종양 수술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입원해서 5회로 분할하여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9월 19일 수술하는 날, 새벽 6시에 MRI 촬영이 있었습니다. 수술은 오전 11시에 있었습니다. 담당 의사가 10시 30분에 왔습니다. “오늘 새벽에 찍은 MRI 결과에서 예상치 않게 뇌종양이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술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잘 견디면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를 감마나이프 담당자들에게 넘기고 떠났습니다. 수술실 안에서 수술에 대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에 없는 내용들만 꺼내놓았습니다. 제 가슴이 서서히 짓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실의 안내는 이러했습니다.
감마나이프의 오차 범위가 0.2mm이기 때문에 실수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가장 안전한 수술입니다. 환자의 경우는 시신경 주변에 있는 뇌종양 제거 수술이기 때문에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하게 됩니다. 마스크는 환자분의 얼굴에 100% 밀착되도록 특수 제작이 됩니다.
그 설명을 마치고 저를 수술대 위에 눕혔습니다. 담당자 중에 한 사람이 젤로 된 마스크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 마스크를 선생님 얼굴 위에 얹겠습니다. 조금 따뜻합니다.” 이마에서 턱 밑까지 그리고 양쪽 볼까지 얼굴 전체를 덮는 크기였습니다. 눈구멍도 없고, 입구멍도 없고, 콧구멍만 있었습니다. 축축한 젤이 제 얼굴에 덮이는 순간 숨이 헉하고 막혔습니다. 마치 물수건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젤은 수갑처럼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제 얼굴 전체를 점령하며 흘러내려갔습니다. 잠시 후에 눈꺼풀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입술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얼굴 전체가 본드 접착제에 붙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10분 후에 이 젤은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굳어집니다. 그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정말 10분 후에 얼굴 전체가 딱딱한 플라스틱 가면과 100% 밀착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얼굴에 붙은 마스크가 움직이지 않도록 그 위에 다른 플라스틱 코르셋을 얹고 채웠습니다. “딸깍, 딸깍, 딸깍” 여섯 개의 잠금장치가 거친 금속성 소리를 내면서 잠겼습니다. 호흡이 점점 빨라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담당자들은 마스크의 완전 밀착을 확인하고 제 몸을 들어서 수술대 위 정 위치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수술대 위에 부착된 다른 추가 장치에 제 머리에 붙이고 다시 다른 고정핀으로 제 머리를 수술대에 꽂아서 잠갔습니다. 이제 제 의지로는 단 1mm도 제 머리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수술대에서 1mm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어 놓고 다음 지시 사항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준비가 다 되셨습니다. 마지막 주의 사항을 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감마나이프는 오차 범위가 0.2mm입니다. 그래서 환자분께서 시술 중에 머리를 움직여 0.2mm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감마나이프는 매우 민감한 의료기기라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수술 시간은 그만큼 지연된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시술 중에 침을 꿀꺽 삼키게 되면 머리가 0.2mm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침도 참는 것이 좋습니다. 1시간 10분 동안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수술대 위에 놓고 마스크를 제작하고, 채우고, 추가 잠금장치를 위해서 20분 이상을 소비했는데, 마취도 하지 않고, 맨정신으로 1시간 10분 동안 0.2mm도 움직이지 말고 있으라는 말은 너무도 잔혹한 고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 고통스러운 말아 이어졌습니다. “다른 환자들에게는 베개를 드리는데, 환자분의 경우는 시신경 주변에 있는 뇌종양 위치가 매우 깊어서 베개를 드릴 수 없습니다. 감마선과의 각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불편하시겠지만 딱딱한 수술대 위에 머리만을 올려놓고, 턱을 조금 든 상태로 진행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딱딱한 수술대로부터 올라오는 통증이 뒤통수를 아프게 조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통수 통증과 함께 1시간 이상을 0.2mm도 움직이지 않고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의 압박 통증이 배로 증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말이 떨어졌습니다. “시술 중에 참을 수 없으시면 오른손에 있는 비상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시술 중에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벨을 눌러주시면 모든 기기를 정지하고 저희가 들어오겠습니다. 폐소공포증은 없으시지요? 그러면 시작하겠습니까?”
“네” 소리와 함께 수술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긴 폐쇄된 통 안으로 제 몸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죽은 사람을 코만 남겨놓고 얼굴을 수의로 단단히 채워서 관 속에 넣고 무덤 안으로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당장 모든 장치를 풀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수차례 MRI 촬영을 했었지만, 그처럼 얼굴에 수갑 마스크를 채우고, 2중, 3중 잠금장치를 하고, 캄캄한 통 안으로 들어가는 MRI는 없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그런 안내는 단 한 자도 없었기에 마음의 준비 없이 그런 갑작스런 상황과 맞닥트리게 되자 점점 커지는 두려움과 공포를 털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캡슐(통) 속에서의 10분은 1시간보다 더 길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새벽에 찍은 MRI에서 수집된 뇌종양 최종 데이터가 감마나이프 기기로 모두 전송이 되면, 감마나이프는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서 자체적으로 수술 프로그램을 짜고, 총 수술 시간을 산출한 후에 그 시간을 5회로 정확히 분할해서 수술하기 때문에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수술 시간은 단 1초도 틀리지 않는 매회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고 했습니다. 매일 살이 빠지기 때문에 얼굴선에 변형이 와서 매일 축축한 젤 마스크로 새 마스크를 제작해서 100% 다시 밀착시킨 후, 5일 동안 매일 약 1시간 40분 동안의 그런 잔혹한 폐쇄 공포 속에서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수술하는 동안 인터넷 안내처럼 통증은 없었지만, 캡슐 안 폐소공포증으로부터 밀려오는 정신적 고통은 감당하기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두개골을 열고 수술하는 것이 위험해도 차라리 마취하고 의사의 손으로 하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네 번째 날이었습니다. 수술 하루 전날 9월 18일에 병원에 입원해서 감마나이프 부작용 예방을 위해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하루에 3대씩 맞았습니다. 수술한 부위에서 염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염증제 역할을 하는 것이 스테로이드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3일째부터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일어나 10초마다 딸국질이 나왔습니다. 딸국질을 멈추게 하는 약을 4시간마다 별도로 복용했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수술 10분 전부터 다시 딸국질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환자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 딸국질 때문에 제가 밀리게 되면 큰 차질이 오게 되어 간호사들이 응급처치를 시작했습니다. 입을 크게 열게 하고 의술용 긴 수저를 제 목젖 안으로 깊이 넣고 힘차게 눌러서 자극을 강하게 주었습니다. 저는 헛구역질을 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 방법 외에는 응급처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눈알이 시뻘겋게 되도록 수차례 헛구역질을 하고 딸꾹질이 멈추자 수술대 위로 옮겨졌습니다. 다시 따뜻한 마스크가 씌워지고 플라스틱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네 번째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 중에 다시 딸국질이 시작되어 수술은 중단되었고, 얼굴에 붙인 잠금장치를 풀지 않은 상태로 10분 휴식을 하고 다시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10분을 남겨놓고 다시 딸국질이 시작되어 다시 중단하는 일이 일어나 결국 수술은 2시간을 초과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지쳐서 한 발자국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힘든 감마나이프 수술이 오후 4시에 끝났는데, 그 날은 안과 검진이 곧바로 오후 4시에 잡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감마나이프 수술이 순조롭게 될 줄 알고, 안과 진료 시간을 그렇게 가까이 잡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부지런히 달려서 15분 늦게 안과에 도착했습니다. 간호사가 곧바로 제 동공에 산동제를 주입했습니다. “10분 후부터 동공이 크게 열리기 때문에 약 5-6시간 동안 사물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게 됩니다. 혼자 걷는 일은 위험합니다.” 안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지난 4월에 한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동공 출혈은 보이지 않습니다. 6개월에 한 번씩 오셔서 정기 검진만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순간에 감마로 지친 몸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병실로 돌아갔습니다.
병실로 돌아와서 기도할 때 제게는 감사할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6인실 병실에 있었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대부분 저보다 상태가 위중했습니다. 목젖을 절개해서 말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었고, 스스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환자도 있었고, 통증 때문에 밤새 신음하고 토하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저는 혼자 걸을 수 있었고, 제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성경을 읽을 수도 있었고,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서 감사했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담당 의사가 와서 말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 개의 종양을 성공적으로 제거했습니다.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한 달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퇴원이 아니라 캄캄한 지하 무덤에서 나오는 기분이었습니다.
9월 25일 주일, 새벽 4시 30분. 새벽기도회를 위해서 교회로 향했습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이었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수많은 새벽 별들이 선명하게 그리고 초롱초롱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만 개, 수억 개라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저는 달도 선명하게 보지 못했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봐도 나뭇잎이 모두 뭉쳐서 보였고, 돋보기를 써도 설교 원고지가 보이지 않아 거의 암기해서 설교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침침했던 시력이 하루아침에 100% 돌아와 있었던 것입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30분을 걸어야만 합니다. 교회까지 가면서 30분 내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늘을 우러러 새벽 별을 보고 울고, 너무 너무 감사해서 또 울고. 뇌종양을 제거해 주시고, 시력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부족한 종을 위해서 그동안 기도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시 건강한 시력과 새 생명을 주셨으니 더 열심히 허락하신 선교의 사역들을 위해서 더 충성되이 섬기겠습니다.
이 메일은 오늘 9월 25일, 새벽에 다시 새벽 별을 보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쓰는 편지입니다.
이제는 새벽 별을 셀 수 있습니다.
양한갑 선교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