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인 앎과 비-인격적인 앎
“목동이 양때들을 세는 순간 암묵적으로 양들이 동일하다는 가정이 전제된다. 실제로 목동은 양때들을 하나 하나 구분할 수 있고, 그들의 특성이나 성격 등을 모두 구분할 수 있지만, 숫자로 세는 그 순간에는 이 모든 개별적인 차이들이 무시된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대상들을 수와 량으로, 즉 계량적으로 고려하는 순간 우리는 이 대상들의 ‘개별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공통적인 기능’만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게 되는 앎이 곧 ‘비-인격적인 앎’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생활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개별적이고 내밀한 관계성 속에 가진 개별적인 앎들, 즉 ‘인격적인 앎들’을 포기하고, 공통되고 평등화된 계량적인 ‘비-인격적인 앎’으로 대상들을 인지하는 것에 습관화되어 있다.” -앙리 베르그송-
베르그송은 인간의 앎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인격적인 앎이요 다른 하나는 비-인격적인 앎이다. 인격적인 앎이란 한 마디로 ‘직접 체험을 통해서’ 알게되는 앎으로 개별적이고, 내밀하며, 역동적인 것이어서 언어로 정형화하거나, 수치로 분석할 수 없는 ‘생생한 앎’ ‘생동감 있는 앎’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격적인 앎은 직접 경험 혹은 체험이라는 형식으로 인간의 직관의 능력을 통한 ‘교감’ ‘공감’ ‘내적 일치’ 등에서 주어지는 앎이다. 반면 비-인격적인 알이란 본질적으로 체험이나 경험과 무관하게 주어져 있는 데이터나 정보를 통한 ‘분석’ ‘분류’ ‘수치화’ ‘계량화’ 등으로 환원된 앎이다. 주로 인문학적인 앎은 ‘인격적인 앎’에 보다 가까이 있고, 자연 과학적인 앎은 ‘비-인격적인 앎’에 가까이 있다. 이 둘 사이에 사회학적인 앎이 놓여 있는데, 사회학적인 앎 역시도 직접적인 체험이나 경험 보다는 ‘데이터’ ‘자료’ 등에 기반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비-인격적인 앎’에 가깝다.
오늘날 사회적 현상에서 학자들은 직접 체험이나 교감 혹은 공감이 없이, 주어진 정보자 자료를 가지고 분석하고, 개념화하고, 유형화 하면서 어떤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부정선거 척결’을 외치면서 폭염 아래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올공의 시민들’에 대해서 4가지 유형으로 분석해주는 한 논객이 있었다. 그는 올공에는 ‘순수하게 부정선거 척결을 외치는 이’ ‘음모론을 외치는 극우’ ‘올공 이슈로 유튜브 영상을 찍어 수입을 올리려는 사람들’ ‘그곳에서 무언가 자기 입지를 다지려 기웃거리는 정치인’ 등으로 구분하면서, 마치 올공이 늘상 있어온 혼탁한 정치적인 다툼의 한 현상처럼 논평했다. 이러한 앎은 전형적인 ‘비-인격적인 앎’이다. 만일 그가 올공에 대해 진정한 앎을 가지고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려고 했다면, 그는 먼저 올림픽 공원으로 달려갔어야 했다. 거기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진정성은 어떤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이 무더위에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지, 그들이 외치는 ‘부정선거 척결’이라는 그 말이 얼마나 절박히고 심학한 사건인지... 이 모든 것을 몸소 체험하고 느껴 보아야 했다. 그래야만 그것이 ‘인격적인 앎’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는 그 논객이 틀렸고 올공 시민들이 옳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올공의 시민들은 인격적인 앎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 논객은 비-인격적인 앎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예를 들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직접적인 체험이나 경험이 없이, 떠도는 정보를 모아 마치 잘 알고 있는 듯, 썰을 푸는 모든 앎은 사실상 ‘비-인격적인 앎’이다. 한국의 평균 강수량이 얼마인지, 현재 금값이나 주식의 시세는 얼마인지 등에 대한 앎이야 정보나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사람들과 사람사이의 절박한 문제들, 우리들의 실제 삶의 문제와 밀접한 문제들, 특히나 정의나 공정, 윤리 도덕과 같은 문제들은 직접체험하고 경험해본 것을 바탕한 ‘인격적인 앎’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인격적인 앎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삶의 문제는 해박하거나 박식함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의 문제이고, 진실의 문제이며, 마음 속 깊이 느껴지는 ‘인격적인 앎’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