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인가?
-철학자가 본 「검수완박법 문제」의 본질-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관련하여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생겼다.
그러나 이 표현은 잘못되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법이란 정의를 세우기 위한 것”이며, 정의란 ‘올바르고 의로운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면 정의란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공정하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가 억울하게 사형 판결을 받고도, 항의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인 것은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실천과 ‘세상의 것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나 『국가론』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악법도 법이니, 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악법”이라는 말 그 자체가 사실상 성립하지 않는 용어, 자기모순적인 용어이다.
“악법”이란 “정의를 세우는 악, 즉 악을 없애는 악”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악법’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것은 법같이 보이지만 ‘법이 아닌 것’ 즉, ‘법의 목적에 반대되는 법’ ‘무효의 법’을 의미한다.
정의란 그리스 용어에 따르면 ‘의사를 의사답게’ ‘교사를 교사답게’ ‘공무원을 공무원답게’ ‘법관을 법관답게’ ‘검사를 검사답게’ ‘군인을 군인답게’ 심지어 ‘왕을 왕답게’ 세우는 것을 의미하며, 법이 바로 이 같은 정의를 실천하게 하는 규칙이다.
최근 ‘검수완박법’이란 것이 세간에 논란이 되고 있다.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법’이라는 법이다.
이 용어는 그 자체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
법이란 정의를 세우는 것인데, ‘정의를 박탈하겠다는 법’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엔 두 가지 모순점이 발생한다.
첫째, 언어의 모순이다. 정의를 세우는 것이 법이 의미하는 것인데, 정의를 파괴하는 법이라는 것이기에
모순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잠을 오지 않게 하는 수면유도제'와 같이 모순된 말이다.
둘째, 원인과 결과의 불일치의 모순이다. 「검수완박법」을 달리 말하면, 그동안 검사들이 문제가 있었으니,
수사권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것이며, 이는 곧 검사제도를 없애버리자는 것과 같고, 검사를 없애자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검사란 곧 수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의의 이유로 법이 있는데, 결과는 정의의 부재이니 모순이다.
교육의 모든 권리를 교사에게서 박탈한다는 것,
창작의 모든 권리를 시인에게서 박탈한다는 것,
연주하는 모든 권리를 음악가에게 박탈한다는 것,
아이를 양육할 모든 권리를 아버지에게서 박탈한다는 것 ...
이것은 결국 교사를 없애고, 시인을 없애고, 음악가를 없애고, 아버지를 없애고자 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어린아이가 몇 가지 결함을 가지고 있으면, 올바른 교육을 통해 어린아이의 결함을 고쳐주어야지, “결함이 있는 아이니까 어린아이의 권리를 완전히 박탈해버리자”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다면 이는 아동학대나 인권침해가 아닐까? 누가 아동학대나 인권침해를 합법적으로 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주장하면 그 자체 모순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검사가 결함이 있으면, 그 결함을 해결할 몇 가지 법을 정하면 될 것이지,
그렇다고 검사를 없애버리자 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검사가 없어지고 그 권한이 모두 경찰로 넘어가면 경찰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꾸어 줄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그 이유는 법률가들에게 자문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앞으로 계속해서 억울한 국민들, 비-정의로운 일들, 힘 있는 사람들의 거대한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경찰이 나빠서가 아니라, 경찰들의 전문성이나 능력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는 경찰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우는 것과 같다.
악법이 있다면 그것은 정의를 파괴하는 법뿐일 것이다. 이 이상한 법에 여야가 합의를 한 것에는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안에 대한 합의라고 하지만 거의 동일한 법이다. 이는 한 두개의 유튜브를 시청하면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연이란 것이 오직 몇 몇 고위공직자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정당화 될 수 있으며, 합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전국의 검사장들이 사표를 내고 하는 항의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만약 국회의원의 권한을 완전히 박탈하는 법이라는 <국권완박법>이란 것을 검사들이 주장했다면
국회의원들이 가만히 있을까?
몇 몇 힘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국민이 고통당하고, 검사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경철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이러한 법을 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무 막가파식으로 서로 대립하기보다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억울한 서민들의 가슴에 사무치는 일들이 자꾸 발생하거나
피 같은 국민세금들이 권력자들의 푼돈으로 탕진하지 않토록,
이 자기모순적인 이상한 법 대신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할 실마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이를 방관하고 있는 지식인이나 국민들도
사실은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대의정치의 나라'이기 때문이며,
하늘도 스스로 돕지 않는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첫댓글 항상 민감한 문제들에도 목소리를 내시는 철학자의 모습은 당연하면서도 어쩌면 용기있는 일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합니다.
물푸레님 뎃글 고맙습니다. 용기라고 하기엔 좀 그러네요! 이정도 자기 견해도 말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가 뭐가 될까 싶은데요! 그리고 이 곳에는 별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곳이 아니라 크게 문제될 것은없다고 보는데...
쓰신 글 중에 첨언하고 싶은 것은, 현재도 96%의 수사가 경찰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찰의 전문성이나 능력의 한계라는 부분은 반론하고 싶네요. 그리고 사실상 수직관계에 있는 검찰 권력은 누가 중재할 수 있나요? 공수처법은 아직 힘이 미약합니다. 검찰의 모든 권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견재 수단의 필요성이 가장 큰 것일테지요. 수사권이 경찰에게 가더라도 검찰에 의해 개시되는 수사도 예외적으로 있습니다.
글쎄요, 몇 %가 검사가 수사하고 몇 %가 경찰이 수사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양이나 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겠지요. 거대한 금융사기 등은 한 건이 좀 도둑 천 명 잡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고, 또 정교하게 법을 이용한 지능범죄 등은 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수사가 가능한 것도 있겠지요? 중재를 한다고 했는데, 이 문제의 본질이 중재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검사가 없어야만 될 정도로 그 동안 검사들이 문제가 많았는가! 하는 것이 겠지요! 물론 제가 생각하는 것이 진리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한 철학자가 볼 때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