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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239차 미사
2015.04.27.월.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생명의 문
김인한 신부(부산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장)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 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 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지난주에 감기몸살을 앓았습니다. 정신없이 앓는데 장동훈 신부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강론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알겠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저지른 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족한 성찰들과 저의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솔직히 저는 자동차 노동자의 아들입니다. 자동차 노동자들 덕분에 컸고 신부가 되었습니다. 신학생 시절엔 방학 때 하청에서 컨베어 타면서 일을 해보며,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울산에서 자동차 노동자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70년대 이제 공장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고향 강원도 춘천을 떠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울산이라는 곳에 와서 먹고 살기 위해 공장에 취업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어머니께서 자동자의 작은 부속을 넣는 일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부서는 소형조립부였습니다. 쌍차 동지들 회사에도 이런 부서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장 지대에서 자라 저는 그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은 이상하게 여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이곳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건 회사 잠바를 입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 때도 회사잠바를 입고 가고, 누구 장례가 나도 빈소에 회사잠바를 입고 갑니다. 성당에 주일미사에 갈 때도 이 회사 잠바를 입고 갑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회사 잠바떼기 하나 입고 오는 것이 불만인 사람들도, 그리고 성당 신부님 수녀님들도 있었습니다. 입을게 그렇게도 없느냐, 아니면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잠바 차림으로 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이 회사잠바가 의미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해고자들에게 그들에게 회사 잠바를 빼앗아 간다는 것의 무게를 알지 못합니다. 회사잠바를 빼앗고 투쟁조끼를 입고 서 있는 그들의 절망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시절에도 파업 중에도, 해고의 날이 서슬 퍼렇게 있고 그렇게 폭력으로 진압하고, 힘들게 했던 회사였건만 그 잠바를 벗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회사잠바를 빼앗아 갔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직장하나 잃은 차원이 아닙니다. 해고라는 것은 그저 생계를 잃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한 노동자들의 삶은 그렇게 가볍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오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거대한 우주가 나와 충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굴뚝에 거대한 우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그리고 제가 사는 부산에도 시청 전광판 위에 생탁 노동자와 택시 노동자가 올라가 있습니다. 아래에서 다른 노동자들이 천막도 없어 지난주 매서운 비바람에 비닐하나 둘러쓰고 그렇게 있습니다.
처음 이 문장을 들은 순간 제 가슴을 파고든 단어가 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의 무게를 봅니다. 누구에게 보이기에는 그저 그런 일이라고 볼테지만 그런 삶이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해 연결되어진 고리들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는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도둑처럼 온전히 빼앗고 죽이고, 먹어치우는 것이 결국 자기를 죽게 만들 것입니다. 자기만 살기 위한 것이 결국 자기를 죽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누구를 살리는 삶은 결국 남을 살리는 일인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이 생명, 살라고 명령하는 그 생명의 길에 서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결국 구원이란, 생명이란 내 것에만 머물지 않는 받아들임을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한계, 내가 생각하는 갈라놓음은 결국 자신의 것으로 끝나게 될 것임을 말입니다. 생명이란 희망이란 그것을 넘어설 때 말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나는 생명을 이야기 하면서 생명을 증언하는지, 되물어 봅니다. 과연 나를 통해서는 무엇이 드러나는지를 말입니다.
몇 년간의 통계청의 조사를 보면 가톨릭 신자들의 비율은 계속 증가해 왔습니다. 사제의 수도 수도자들의 수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늘어갈수록 세상은 더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것과 가까이 가야 하는데 그렇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의 증가율과 지금 세상의 모습과는 다르게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작년의 OECD 보고서를 보니 이 땅의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쳤던 더불어 사는 것의 기쁨과는 거리가 먼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어두워져가는 것만 같습니다. 행복지도수, 게다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는 아동, 청소년, 중년, 노인들의 자신의 생명을 놓는 비율도 가장 높았습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생명의 문이다. 예수는 생명의 문이 되었습니다. 그 생명의 문을 통해 부활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문이 버티고 있지만 생명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리고자 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우리는 절망하고 있지만, 눈물 나게 생명을 다시금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생명의 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음식을 잘 못하십니다. 형님 신부님과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바로 ‘어머니 손맛’이라는 단어입니다. 여튼 공장을 다니시던 어머니는 몇 년 있다가 자동차 공장 앞에서 돼지국밥집을 하셨습니다. 허름한 집입니다. 메뉴라 해봐야 국밥과 곱창이 전부인, 어머니의 집에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가게에는 외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기 파업 때 돈이 없는 이들도 월급날이 가까워 돈이 없어도 어머니 가게를 찾았습니다. 물론 돈이 생기면 어머니 집을 가지 않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가죠. 하지만 섭섭해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때문에 우리도 살 수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돈이 없어도 국밥한술 뜨고 소주한잔 기울일 수 있는 어머니의 가게는 힘들던 노동자들의 기대던 힘이었습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이 미사가 어찌 보면 어머니의 국밥가게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돼지국밥집 같은 곳이 이 땅에 있길 바래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문이 되고자 합니다. 내가 있다는 이유는 나로 인해 그분의 희망이 그분의 생명이 그분의 부활이 있다는 고백의 의미로 남고자 하는 바람이 우리들의 생명에는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숨 쉬는 것도 미안한 4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깊은 숨을 내 쉬려고 합니다. 끝날 줄 알았는데 끝난 게 아니었고, 잊혀질 줄 알았는데 잊혀진 게 아니었고, 사라질 줄 알았는데 사라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활은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매섭게 비바람이 쳐도 땅은 생명을 토해 냅니다. 거대한 벽 앞에서 서럽게 울었는데, 그 눈물 안에 부활은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들처럼 나도 함께 그저 파괴하지 않고 살리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하는 곳에 부활이 있고, 생명이 있고, 다시 희망이 있습니다.
부활은 그저 그저 예수의 사건이 아니라 진실과 진리에 대한 희망을 믿겠다고 나 스스로 일어서는 생명의 몸부림임을 생각해 봅니다. 나 스스로 어떻게 해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끌어 나를 일으켜 세우는 더 거대한 힘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끝끝내 살게 할 것입니다.
교섭에만 목매지 않고...
김득중 쌍용차 해고노동자
최근 다니면 두 가지 질문을 많이 받아요. 굴뚝에서 내려온 두 동지 건강이 어떠냐? 그리고 교섭이 어떠냐? 이 이야기를 참 많이 듣습니다.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기획실장이 내려 온지 한 달이 좀 넘었어요. 저희는 4월 한 달 쉬고 시간을 두고 복귀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기획실장을 만났는데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정욱 사무국장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고향 곡성에 있으면서 광양 한의원을 다니면서 침을 맞고 있습니다. 이창근 실장은 어깨에 이상이 있어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분들 굴뚝 미사 때 우리들 이야기 많이 들어서 아시겠지만, 두 동지가 심리적으로 힘들어 해요. 그래서 두 동지가 무리하게 복귀 하는 것보다 조금 더 치료할 시간과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을 줘야겠다 싶어서 지부는 5월 달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추스르는 게 필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섭이 10차까지 진행되었습니다. 26명의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실태 조사가 합의 되어 있고 이거 외에는 진행된 바가 없습니다. 정상화 문제에 관해 한차례 교섭을 하다가 내일 교섭이 잡혀 있습니다. 회사와 기업노조가 다른 일정이 있다 해서 내일 오후 2시 교섭하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굴뚝농성 해제 이후에 회사의 태도가 변화되었습니다. 조급하게 이 문제를 풀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시간을 더 두고 이 문제를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부장으로서 함께 투쟁하는 간부로서 마음이 급한 것도 사실이지만, 저희도 서둘지 않고 저희가 해왔던 방식으로 준비하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계 때문에 흩어져 있는 조합원 60명이 모였습니다. 다시 모여서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사안들을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교섭에만 목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난 6~7년 동안 해 왔던 방식으로 다시 준비하자 힘을 모으자고 결의를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두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굴뚝농성 해제 이후에 세 명의 동지가 함유했습니다. 6년의 시간동안 생계 나가 있다가 다시 우리와 힘을 보태 투쟁하겠다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세 분 중 두 분이 와있습니다.(인사...박수) 신참들이 들어오니 저희가 더 긴장이 됩니다. 뒤에서 다그치고 있어서 저희가 따로 한눈 팔 시간이 없어요. 세 동지가 어쩌보면 지치고 부대끼고 있는 저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본이 회사가 저희들을 밀어낸다 하더라도 저희는 꿋꿋하게 더 나아갈 것입니다.
5월 1일 메이데이가 지나면 5월 2일부터 6일까지 저 독단으로 지부 전체 휴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지난 6~7년 동안 저희가 5월 가정의 달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싸움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가족들과 좀 더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 할 것 같아서요. 그동안 이일 저일, 모든 아픔이 있는 곳으로 계속 달려갔습니다. 사실은 많이 지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5월초 가족들과 함께 못다 한 이야기 나누고 여행도 다녀와서 다시 마음들 모아 5월 한 달 힘 있게 나갈 계획이구요. 5월 10일은 187명 전원이 모이는 총회를 준비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2009년 총파업을 선언한 그 마음 그 태도로 투쟁을 결의하고, 그 힘으로 한축에선 교섭 한축에선 우리가 해왔던 방식으로 꿋꿋하게 해나갈려고 합니다. 아무튼 신부님들 수녀님들 신자분들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이 자리에서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고 이 힘 받아서 평택 내려가서 더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