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사망고지(死亡告知)
모친을 모시고 온 장남이 말했다.
“저희 부모님은 남해의 시골에서 사셨는데 아버지가 담도암에 걸려 6개월이나 투병 끝에 1주일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가신 이후 (긴 간병 끝에) 지친 어머니도 노환이 발병하여 요양원에 모셨는데 그곳에서 ‘엄마, 엄마~’ 외치고 망상이 심해져 옆 환자들이 잠을 이룰 수 없어 할 수 없이 이곳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저희 어머니 망상이 심하여 병원에서 또 쫓겨날 수 있으니 신경안정제를 많이 써주시고 잘 좀 부탁합니다. 그리고 혹시 사망이 임박할 때 연명술이나 심폐소생술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어머니가 연명술은 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하셨습니다.”
요즘 사회적 분위기가 노령 환자로 입원하면 연명술이나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겠다는 경향이다. 연명의료의향서를 휴대폰에 저장해 오시는 분도 많다.
박 할머니는 복통을 자주 호소하셨다. 며느리가 와서 하는 말이 “시어머니가 십이지장궤양을 앓으셔서 전번에도 이와 꼭 같은 증상이 생겼을 때 십이지장궤양약을 쓰니 좋아지셨습니다.” 며느리의 말대로 십이지장궤양약을 쓰니 복통이 조금 호전되었다. 하지만 섬망증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추석 연휴 당직 근무 중 박 할머니는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숨을 거두었다. 가까이 사는 장남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모친이 금방 돌아가셨습니다. 얼굴이 편안한 것을 보니 저승에서 아버님과 만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버지가 불러서 가신 것이군요.”
장남이 슬프면서도 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남이 다른 형제들에게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 어머니가 조금 전 아버지에게 가셨다. 가실 때 얼굴이 아주 편안하고 좋아 보이시던데 아버지와 만난 것 같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노인들의 사망 소식을 자녀들에게 알려야 할 일이 자주 생긴다. 대개 전화로도 연락하고 병원에 빨리 오라고 하여 가능하면 임종을 지켜볼 수 있게 한다.
한 분은 임종이 임박하여 연락하니 가족이 열댓 명이나 와서 임종을 지켜보았고 한 사람이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멀리 있는 가족에게도 임종 순간을 함께하는 경우도 보았다.
1980년대 중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이다. 당시는 응급의학과가 생기기 전이라 의사 초년병인 인턴이 의료의 최일선인 응급실에서 일하며 진료하였다.
위중한 환자는 각 과 레지던트를 호출한다. 하루는 택시운전사가 헐레벌떡 어린아이를 안고 들어오고 어머니가 따라 들어왔다. 어린아이는 택시에 치여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심폐소생술을 하였지만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조금 있으니 어린아이의 할머니와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손자 어찌 되었소?” 나는 그때 의사로서의 경험과 연륜이 너무 짧은 나머지 “아이는 이미 죽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그 말을 듣고 기겁하여 뒤로 꽈당 넘어져 뒷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내가 좀 더 할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면 그러한 예방 가능한 부상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반성해본다. 그 사건 이후로는 환자의 사망을 통보할 때 유가족이 느낄 슬픔과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배려를 한다. 이 같은 경우에는 보호자를 일단 소파에 앉게 한 후에 사망 고지를 할 것이다.
요양병원에 모시고 오는 환자들은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치료와 영양을 공급하면 훨씬 오래 사실 수가 있지만 며칠 만에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어 입원할 때 사망을 염두에 두고 보호자와 상담을 한다.
나는 환자와 가족들의 종교도 꼭 물어서 적어둔다. 종교적인 배경을 알면 환자가 사망할 때 유가족에게 말을 훨씬 부드럽게 전할 수 있다.
환자가 천주교 신자이면 가족들에게 “조금 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손녀가 말한다. “엄마, 할머니가 천당 가셨대요”. 개신교 신자에겐 “방금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하고 말하기도 한다. 불교 신자나 종교가 없는 사람에겐 “편안히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망(死亡)을 영어에선 사라지다(pass out)라는 말을 쓰고, 일본인은 사거(死去, 사라져 없어지다)라는 말을 쓰는 데 비해 우리 민족은 ‘돌아가시다’라는 말을 쓴다. 이승에 살다 애초에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니 이는 전혀 슬픈 일이 아니다. ‘돌아가셨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