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세이는 봄비 내리고 바람 불던 어린이날에 오동나무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보시고 아버님(장인 어른)께서 해 주신 옛날 이야기입니다. 아버님의 올해 연세는 아흔한 살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픈 시대상이 배어 있는 이야기 이길레 필자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글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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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면 오동梧桐나무 꽃이 곱다. 연보라색 빛깔을 띤 그윽한 꽃송이가 뚝뚝 떨어질 때면 유년시절 잃어버린 작은 가인佳人의 모습이 오동나무 꽃잎 속에서 선연히 떠오른다.
광복 이듬해 나는 대구 봉산동에 있는 덕산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우리집 삽지껄 골목길에 살았던 공혜순이는 한학년 아래인 4학년이었다. 혜순이네 집은 커다란 오동나무의 잎사구들이 파란 우산처럼 씌워져 있는 작은 기와집이었다. 오동나무는 골목길 하늘 위로 가지를 갈래갈래 뻗어서인지 풍성한 몸태가 더욱 웅장해 보였다. 튼실한 잎사귀 속에는 거렁지와 햇살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어서 사계절 내내 새들이 앉아서 재잘거렸고 큰 가지에는 새끼줄을 꼬아서 걸어 놓은 아담한 그네가 매어져 있었다.
오동나무 꽃이 활짝 핀 골목 길가에 수채화처럼 자리한 조그마한 회백색 기와집에서 소녀가 새첩스럽게 걸어나올 때면 마치 작은 요정같이 보였다. 아이들은 어느 계절 할 것 없이 오동나무 밑에 뒤엉켜 모여서 그네를 번갈아 타며 싱그럽고도 밝게 놀았다. 혜순이는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나는 한 번도 혜순이의 부모님을 본 적은 없었다. 혜순이는 언제나 할머니와 둘이서만 있었다. 여리면서도 소담스러운 소녀를 둘러싼 다소 쓸쓸한 풍경들은 애수를 자아내어 이따금씩 연민의 정을 불러오기도 했다.
단오날이 되면 혜순이는 하얀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입고 그네를 청아하게도 잘도 탔다. 창공을 힘차게 가르는 소녀의 자태가 앙증맞으면서도 곱단했다. 어느 날은 "그네 줄에 흔들려서 오동나무의 널따란 이파리들이 그녀의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성춘향이 그네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던 이도령의 얼굴을 적이 떠올리곤 했다. 한번은 혜순이가 혼자서 그네를 타고 있길래 놀라게 해 주려고 짓궂게 그네 뒤에 서 있다가 그녀의 등이 내 가슴에 꽝~ 하고 부딪히는 바람에 그만 샐그러지고 뾰로통 해져서 집으로 가 버린 적도 있었다.
언제인가 혜순이네 집에 전도를 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 갔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혜순이는 왼쪽 눈 밑에 작은 먹점이 있었다. 그 먹점 마저도 내 마음에는 어여쁘게 여겨졌다. 그저 그녀가 하는 일상의 모양새들이 마카다 단화하게만 와닿았다. 안방에서 엄마는 할머니에게 전도를 하고 나는 엄마 옆에서 한 발치 앞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두근거렸다. 소녀도 어른들 곁에서 잠자코 얘기를 듣는 가운데 서로의 눈길이 마주 치곤 했다.
1949년 깊은 가을녘에 빛바랜 여윈 오동잎이 뚝뚝 떨어지던 날 혜순이네 가족은 멀리 서울로 이사를 갔다. 나는 오동나무에 매어 놓은 그네를 마구 타며 서글피 울었다. 파스텔 색깔의 마른 오동나무 잎들이
"그네 줄에 흔들려서 널따란 이파리들이 그녀의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던 그날 처럼" 우수수 머리 위로 날리더니 골목길에 이내 수북이 쌓였다. 이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대륜고 1학년 때였다. 마실 친구들은 군대에 가고 나는 늑막염에 걸려서 병치레를 하는 와중에 휴전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전쟁통에 대구로 이전해 와 있던 고려대에 입학을 했다. 전쟁이 끝나자 지방에 있던 대학들이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나도 상경했다. 그 당시 안암동의 고려대 교정은 군인들이 쓰고 있었기에 학생들은 계동에 있는 중앙고 교사에서 공부를 했다.
1954년 오뉴월 어느 한여름 날이었다. 인천에 있는 큰누님 댁에 갔다가 서울 계동에 있는 이모님 댁을 방문하기 위하여 경인선을 타고 노량진역에서 내렸다. 한강철교와 인도교가 폭파되어서 다리 아래 놓은 가교를 건너 용산역과 서울역을 지나서 안국동으로 갈려고 중앙청 앞길을 걷고 있었다. 당시 건물들과 도로가 폭격을 맞아서 사그리 부서진 탓에 성한 집이 하나도 없었다. 중앙청 앞을 털레털레 걸으며 길가에 부서져 있는 건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파괴된 어느 가옥의 부엌에서 머리에 수건을 동인 채 어정거리고 있는 낯익은 남루한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도 의도치 않게 뒷쪽으로 돌아보다가 동시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야이야~ 니 수곤이 아이가?"
"네~ 네~ 맞심더~ 맞심더~"
"할매요~ 전쟁통에 우예 지낸능겨?"
할머니는 대답 대신에
"우리 혜순이가 인민군한테 잡혀 갔단다~"
전쟁통에 손녀를 잃어버린 할머니의 비탄스런 어조가 마치 단말마처럼 들려왔다.
"ㆍㆍㆍㆍㆍㆍㆍㆍㆍ"
가슴 한 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소녀와의 지난날의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시나브로 봄날이 깊어 간다. 내가 사는 수락산 삽지껄 계곡 길가에 무성하게 핀 연보라색 오동나무 꽃이 가인의 자태처럼 청미하다. 혜순이는 오동나무 꽃같이 수수하고 티 없고 맑고 아리따운 소녀였다. 해마다 오늘처럼 봄비에 오동나무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날이면 그녀가 생각이 난다.
"기도를 해야 하나~ 명복을 빌어야 하나~"
봄비에 오동나무 꽃은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데 이내 발길은 흩어져 있는 오동나무 꽃잎에서 쉬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사진 종합 설명(caption) : 봄날이 깊어 간다. 필자가 사는 수락산 삽지껄 계곡 길가에 무성하게 핀 연보라색 오동나무 꽃이 가인의 자태처럼 곱다.
사진은 수락산 삽지껄에 있는 오동나무꽃과 계곡 입구를 촬영한 전경이다. 위 <그림>은 11번째 사진인 "수락산 계곡 입구"를 이동섭 화가가 현장에서 그린 풍경화이다(수락산ㆍ2019.9.3). "수락산 할매집" 식당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올해로 아흔한 살이신 아버님(장인 어른) 앞에서 아버님이 타고 다니시는 휠체어에 앉아서 재롱을 떨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다행스럽게도 즐겁게 지켜보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모레면 어버이날이다. 우리들의 모든 부모님들께서 강건하시길 기원한다.
첫댓글 연셰가 아흔한살 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하셔 보이네...
연세 가득 하신 부모님들의 황혼기를 지켜보는 자식들의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기 이를 데 없다. 그저 좀 덜 아프시길 기도 하는 수밖에 없어 안타깝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