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한 마을에선 암벽에 철심을 박아 관을 올려놓는 장례법이 있다 고인은 두 다리를 뻗고 허공의 난간에 몸을 맡긴다 이까짓 두려움쯤이야 살아 있을 당시 이미 겪어 낸 일이므로 무서워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암벽을 오르던 바람이 관 뚜껑을 발로 차거나 철심을 휘어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그저 웃는다 평온한 경직, 아버지는 정년 퇴직 후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웠다 생은 난간에 기대어 서는 일 허공과 공허 사이 무수한 추락 앞에 내성이 생기는 일이라고 당신은 통유리 너머에서 그저 웃는다 암벽 같은 등으로 봄이 아슬아슬 이울고 있을 때 붉은 시클라멘이 피었다 막다른 향기가 서녘의 난간을 오래 붙잡고 서 있었다 발아래 아득한 소실점 더 이상 천적으로부터 훼손당하는 일은 없겠다 하얀 유골 한 구가 바람의 멍든 발을 매만져 준다 해 저무는 발코니, 세상이 한눈에 보인다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입니다. 삶에 대한 날카로운 관조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작품입니다. 자, 한 문장씩 살펴 볼까요?
필리핀의 한 마을에선 암벽에 철심을 박아 관을 올려놓는 장례법이 있다
동남아 어느 마을에서는 석청(꿀)을 채취하기 위해서 4,000미터 기암절벽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지요. 저도 티브이를 통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사람들이 살기위해서 죽음을 무릎쓰는 모양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암벽에 철심을 박아 관을 올려놓는 장례법이 있다니 참 신기합니다.
고인은 두 다리를 뻗고 허공의 난간에 몸을 맡긴다 이까짓 두려움쯤이야 살아 있을 당시 이미 겪어 낸 일이므로 무서워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 부분은 시인의 상상력입니다. 살아 있을 동안 허공의 난간에 몸을 맡긴채 무수한 노동을 했을테지요. 그러니 죽은 후에야 이런 일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됩니다. '무서워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시인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구절입니다. 암벽을 오르던 바람이 관 뚜껑을 발로 차거나 철심을 휘어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그저 웃는다 평온한 경직,
죽은 영혼은 말이 없습니다. 오랜 노동에서 벗어난 평온함이 보입니다. 웃는 것도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웃지요, 세상의 간섭을 벗어나니 평화가 찾아 옵니다.
아버지는 정년 퇴직 후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웠다 생은 난간에 기대어 서는 일 허공과 공허 사이 무수한 추락 앞에 내성이 생기는 일이라고 당신은 통유리 너머에서 그저 웃는다
시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필리핀의 허공에 매달린 관과 정년 퇴직 후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우는 아버지. 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지만 시인은 '허공'을 매개로 해서 절벽에 매달리던 노동자와 생업에 매달렸던, 지금은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우는, 아버지를 동일시 합니다. 발코니가 절벽이 되고 허공이 되고 세상과는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 됩니다.
암벽 같은 등으로 봄이 아슬아슬 이울고 있을 때 붉은 시클라멘이 피었다 막다른 향기가 서녘의 난간을 오래 붙잡고 서 있었다
과연 또 다른 세상은 있을려나요. 거기엔 붉은 시클라멘, 별명이 '성모의 심장'이라는군요. 꽃말은 수줍음, 지나간 사랑, 질투, 의심이랍니다. 아마 꽃말과는 관계없이 실제로 아버지가 시클라멘을 키우셨던것 같습니다. '막다른 향기', '서녘의 난간', 향기가 난간을 붙잡는다는 표현은 오랜 습작의 시기를 거쳤다는게 느껴집니다. 발아래 아득한 소실점 더 이상 천적으로부터 훼손당하는 일은 없겠다 하얀 유골 한 구가 바람의 멍든 발을 매만져 준다 해 저무는 발코니, 세상이 한눈에 보인다
발아래 아득한 소실점, 소실점은 무한 원점입니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하나의 점이죠.
힘든 삶을 살았으니 필리핀의 촌로나 아버지나 더 이상의 고통은 없습니다. 오히려 바람을 만져주죠. 세상을 위로하는 겁니다. 세상을 관조하는 아버지가 보입니다.
이 글은 '절벽'과 '발코니'를 동일한 장소로 봅니다. 이 부분이 아마도 심사위원의 눈에 쏙 들었을겁니다. 좋은 시란 사유와 서사가 들어가며 그 안에 몇 가지의 이미지가 시를 완성시키는거죠. (이건 제 생각입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라고 해서 무작정 어렵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쉽게 해석이 되죠. 그런데 이렇게 쉽게 해석되는 시를 이렇게 편안하게 쓰는 게 어려운거지요. 끊임없이 읽고 느끼고 적어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