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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녹정산의 비밀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해라. 사실 그 이치는 매우 쉽다. 나는 오배에게 물었지. 그 대청시헌력을 언제 만든 것이냐고. 그는 모른다고 하더군. 그는 물 러가서 알아보더니 다시 돌아와서 순치 십 년에 만든 것인데 그 당시 황제께서는 성지를 내려 칭찬을 하시고 그에게 통현교사(通玄敎師)라는 작위를 내렸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내가 육, 칠 세 때 이 미 서재에서 대청시헌력을 보았소. 이 역서는 만든 지 이미 십 년이 지 났는데 어쩨서 그 당시에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었소? 이제 그와 다 투어 이길 수 없으니까 해묵은 일을 들추어내자는 것이 아니오? 그것은 공평하지 못한 일이오.' 오배는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지라 그를 죽이지 않고 뇌옥 속에 가두어 두었다. 나는 그 일을 깜박 잊고 있었는데 최근 남회인이 들먹이는 바람에 생각이 나서 성지를 내려 그 를 석방한 것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소신이 그에게 가서 한 권의 대청만년력(大淸萬年曆)을 만들어 내라고 하겠습니다.] 강희는 껄껄 웃더니 정색하고 말했다. [나는 명나라의 역사책들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 는 임금은 반드시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하게 될 것이고 백성을 못살게 구는 임금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지. 자고로 사람들은 황제를 만세(萬 歲)라고 불렀는데 만세는커녕 일백 세의 수명을 누린 황제도 없었지. 뭐가 만수무강이야? 모두 거짓말이지. 그래서 부황께서는 여러 번 나에 게 영원히 세금을 올리지 말라는 유시를 내린 것이 아니겠느냐? 내 곰 곰이 생각해 보니 그 한 가지만 잘 지킨다면 대청의 강산은 무쇠로 만 들어진 것처럼 튼튼할 게야. 서양인의 대포나 오삼계의 명마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 위소보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잘 모르므로 연신 대답만 했다. 그는 오삼계에게서 훔쳐 온 한 권의 정남기 사십이장경을 꺼내 두 손으로 바 치며 말했다. [황상, 이 경서는 오삼계 그 늙은 녀석이 가로챘더군요. 소신이 그의 서재에서 찾아내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드리는 바입니다.] 강희는 크게 기뻐했다. [매우 좋아, 매우 좋아! 태후께서는 언제나 이 일을 걱정하셨다. 내가 그 어르신께 바치고 그 어르신께서 다시 태묘(太廟)로 가지고 가 불살 라 버린다면 그 안에 어떤 비밀이 있든간에 다시는 아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일세.]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태우는 게 가장 좋지. 이것이야말로 시체를 없애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내가 그 경서 속에서 찾아낸 양피지의 비밀 온 영원히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처소로 돌아왔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문에 빗장을 걸고 그 한 봉지의 양피지 조각들을 꺼낸 후 쌍아를 불렀다. [한 가지 수고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내 대신 이걸 해줘야겠소.] 그는 그녀에게 수천 조각이나 되는 것들을 원래대로 맞추어 보라고 했 다. 쌍아는 탁자 위에 엎드려 가위질한 흔적을 따라 천천히 조각들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조각 한조각 맞추어 나갔다. 그러나 수천 조각이나 되는 양피지 조각들이 마구 뒤섞여 있어 원래의 모습대로 맞 추는 것은 걸코 수월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처음에는 탁자 옆에 앉아 서 동쪽에 한 조각 붙여 보고 서쪽에서 한 조각 떼어내는 등 맞추는 것 을 도왔다. 그러나 한참을 애써 보았지만 서로 맞닿는 두 조각도 찾아 낼 수 없었다. 그는 맥이 빠져 잠을 자러 갔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바깥 방에 여전히 촛불이 켜져 있었다. 쌍아는 한 조각의 양피지 를 손에 들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위소보는 그녀의 등 뒤로 다 가가서는 왕, 하니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쌍아는 깜짝 놀라 펄쩍 뛰 어 일어나더니 웃으며 말했다. [잘 주무셨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 일은 참을성을 요하는 일이오. 내가 빨리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 데 그대는 어째서 한잠도 자지 않았소? 빨리 가 주무시오.] 쌍아는 말했다. [우선 치우고요.] 위소보는 탁자 위의 커다란 백지 위에 이미 수놓는 침으로 십여 조각을 꿰어맞춰 놓은 것을 보고 기뻐서 말했다. [그대는 이미 몇 조각을 찾았구려.] 쌍아는 말했다. [처음엔 아주 어려웠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이치를 알게 되었어요. 이 제부터는 좀더 빨리 맞출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조각들과 그 커다란 하얀 베를 함께 상자 안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 조각들은 매우 중요하니 절대 남에게 도둑맞으면 안 되오.] [저는 하루 종일 이곳에서 반 걸음도 떠나지 않겠어요. 다만 잠잘 때 사고가 날까봐 두렵군요.] [걱정하지 마시오. 효기영 군사들을 몇 명 데리고 와 집 밖에서 그대를 보호하도록 하겠소.] 쌍아는 웃었다. [그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예요.] 위소보는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을 보고 어젯밤 그녀 가 무척 고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말했다. [빨리 가서 자요. 내가 그대를 안아서 침대 위에 눕혀 드리지.] 쌍아는 부끄러워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연신 손을 내저었다. [싫어요.싫어요.] [뮈가 싫다는 것이오? 그대가 나를 돕기 위해 밤새워 고생했는데 내가 그대를 안아 침대에 눕힌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소?] 위소보는 손을 뻗쳐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 쌍아는 킥, 하고 웃으며 그 의 팔 아래로 빠져나갔다. 위소보는 몇 번이나 쌍아를 안으려고 했으나 매번 허공을 껴안고 말았다. 그는 자기의 경신법이 그녀보다 훨씬 못한 것을 알고 의기소침해서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았다. 쌍아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상공께서 세수하고 아침식사하는 것을 시중든 후에 가서 자겠어요.] 위소보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지 않았다. 쌍아는 그가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자 불안해져서 나직이 말했다. [상공, 그대는....화가 나셨나요?] [화를 내는 것이 아니고 나의 경신법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러는 것이 오. 사부님은 나에게 많은 요령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는 제대로 배우 지 못했으니 한심스럽소. 그대와 같은 작은 아가씨도 잡지 못하니 무슨 쓸모가 있겠소?] 쌍아는 미소지었다. [상공께서 저를 껴안으려고 하니까 제가 죽어라 도망치는 것이 아니겠 어요?] 위소보는 갑자기 몸을 솟구치며 말했다. [반드시 그대를 잡겠다!] 두 손을 활짝 벌리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쌍아는 깔깔 웃으면서 몸을 옆으로 돌려 피했다. 위소보는 일부러 왼쪽으로 덮쳐 들었다. 그녀가 오른쪽으로 도망을 치자 냅다 손을 뻗쳐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쌍아 는 아, 하고 놀라 부르짖었다. 그러나 옷자락이 찢어질까봐 감히 힘주 어 뿌리치지는 못했다. 위소보는 두 팔로 그녀를 껴안았다. 쌍아는 간지러워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위소보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무릎 뒤를 받치고 그녀를 안아 자 기 침대 위에 눕혔다. 쌍아는 얼굴이 빨개져서 불렀다. [상공,그대는....그대는....] 위소보는 웃었다. [내가 어떻다는 것이오?] 그는 이불을 당겨 그녀의 몸을 덮어 주고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 을 했다. [빨리 눈을 감고 자요.] 그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서서 문을 닫아 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계집애는 내가 화를 낼까봐 일부러 나에게 잡혀 준 것이다.) 그는 대청으로 가서 친위명에게 명령을 내려 일대의 효기영 군사들로 하여금 자기 방을 지키도록 했다. 며칠 동안 그는 운남에서 가지고 온 금은과 예물을 나누어 궁중의 비빈 들과 왕공대신, 시위, 태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만약 오삼계가 선물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늙은 녀석 에게 빚을 진 셈이다. 차라리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는 오삼계의 수십만 냥이나 되는 금은을 흠차대신 효기영 도통 위소 보가 주는 예물로 만들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그러 므로 자연 위소보를 칭찬하는 말이 자자하게 퍼졌다. 궁중이나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이 젊은 도통이 똑똑하고 마음이 넓다고 칭찬했다. 이 며칠 동안 쌍아는 매일같이 그 조각난 양피지들을 맞추었다. 꼭 맞 아떨어지는 조각들을 찾아 수바늘로 꽂아 놓곤 했다. 위소보는 매일 밤 들여다보곤 했는데 짜맞추는 지도가 점점 커지자 그림에 그려져 있는 산천의 지세와 구불구불한 글자를 볼 수 있었다. 쌍아는 말했다. [이 글자들은 모두 외국 글자들이라 저는 알아볼 수가 없어요.] 위소보는 그것이 만주 글자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역시 한 자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글자에 대해서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십팔 일째 되는 날 밤, 위소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쌍아 는 얼굴에 기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아래턱을 어루 만지며 물었다. [무슨 일로 기분이 좋아졌지?] 쌍아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상공, 어디 한번 맞쳐 보세요.] 어젯밤 잠을 청하면서 위소보는 이 양피지 조각들을 맞추기가 점점 쉬 워진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맞추는 일은 한쪽을 맞추면 나머지가 한 조각 적어지는 만큼 점점 더 쉬워지는 것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어 려워서 한 시진 동안에 한 조각도 맞추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신속 해졌다. 그는 쌍아가 이미 모든 지도를 짜맞추었기 때문에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모르는 척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짐작해 볼까? 음, 그대는 반드시 몇 개의 호주(湖州) 종자( =米+ 宗,子)를 만들어서 나에게 주려는 것이겠지?] 쌍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렇다면 방바닥에서 보배를 주웠나?] [아니에요.] [그대의 오륙기 오라비가 광동에서 좋은 물건을 가져와 그대에게 선물 을 했나?] [아니에요. 길이 그토록 먼데 벌써 왔겠어요?] [그럼 장씨 집안의 셋째 작은 마님께서 편지라도 보내 온 것인가?] 쌍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나직이 말했다. [아니에요. 정말 장씨 집의 셋째 작은 마님께서는 잘 계신지 모르겠네 요. 저는 종종 생각이 나요.]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아! 이제야 알았소. 오늘이 그대의 생일이군.] [아니에요. 저의 생일은 오늘이 아니에요.] [그럼 언제야?] [구월 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잊어버렸어요.] [거짓말. 자기 생일을 어떻게 잊는단 말이오. 맞았소. 맞았소. 그대가 소림사에 있을 때 그 노화상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하러 그대를 찾아간 적이 있었지.] 쌍아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공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럽군요. 저에게 무슨 소림사 의 늙은 화상 친구가 있겠어요? 그대에게나 있겠죠.] 위소보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섕각해 보는 척하고 말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니, 정말 짐작하기 어렵군. 그렇다면 그 대가 양피지 조각을 다 짜맞춘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젯밤에 보니 삼 백 조각이나 남아 있더구먼. 아무리 빠르다 해도 대엿새는 더 지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쌍아는 두 눈에 기쁜 빛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만약에 오늘 모두 짜맞추었다면요?]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짓말, 나는 믿을 수가 없는걸?] [상공, 이것 보세요. 이게 뭐죠?] 위소보는 그녀를 따라 탁자 곁으로 갔다. 탁자 위의 커다란 흰 베 위에 수천 개나 되는 수놓은 바늘이 꽂혀 있었고 수천 조각이나 되는 양피지 들이 짜맞추어져 한 폭의 완전무결한 지도를 이루고 있었다. 위소보는 크게 소리치며 쌍아를 덥석 안고는 외쳤다. [대성공이다! 대성공. 뽀뽀나 한번 하자!]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려고 하자 쌍아는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돌렸다. 위소보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았다. 순간 쌍아는 전 신이 시큰하고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놀라 부르짖었다. [싫어요, 싫어요!] 위소보는 웃으며 그녀를 놓아주고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아 어깨를 나란 히 하고 지도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칭찬의 말을 던졌다. [쌍아, 만약 그대가 이 일을 해주지 않고 나 혼자서 이 일을 했다면 삼 년하고도 육 개월을 두고 짜맞추어도 불가능했을 거야.] 쌍아는 말했다. [그대는 큰일을 많이 처리해야 될 몸인데 어느 겨를에 이런 미련한 일 을 하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이것이 미련한 일인가? 이것은 천하에서 가장 총명한 일이야.] 쌍아는 위소보의 말에 무척 흐뭇해 했다. 위소보는 지도를 보며 말했 다. [이것은 높은 산이고 이것은 큰 강물이군.] 그는 손가락으로 커다란 강물이 구비 도는 곳에 네 가지의 빛깔이 나는 둥근 원이 여덟 개 모여 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한 폭의 지도는 모두 검은 먹물로 그린 것이지만 이 여덟 개의 조 그만 원은 붉고, 희고, 노랗고, 파랗고, 어떤 것은 노란 원에 붉은 가 장자리를 하고 있군. 아, 그렇지. 이것은 만주인들의 팔기야. 이 여덟 개의 조그만 원이 표시된 곳에는 반드시 이상한 점이 있을 것 같다. 그 런데 이 산이 무슨 산이고 이 냇물이 무슨 냇물인지 모르겠군.] 쌍아는 한 응큼의 엷은 면지(棉紙)를 꺼냈다. 모두 삼십여 장이나 되었 다. 그런데 장마다 구불구불한 만주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것 을 위소보에게 내주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게 뭐지? 누가 쓴 것이지?] [제가 쓴 거예요.] 위소보는 놀라고 기뻐서 말했다. [그대는 만주 글자를 알고 있었군. 그런데 며칠 전에는 나에게 거짓말 을 했었군.] 그는 두 팔을 벌려 안으려고 했다. 쌍아는 급히 물러서며 웃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저는 만주 글자를 몰라요. 이것은 엷은 종이를 위 에 놓고 한획 한획 베껴쓴 거예요.]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정말 잘되있군. 정말 잘되었어! 나는 만주 사야(師爺)보고 가르쳐 달 라고 해야지. 중국말로 번역을 해 놓으면 그림 속에 쓰여진 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겠군. 좋아. 쌍아. 보배 같은 쌍아, 그대는 정말 섬세 하군. 이 지도가 중대한 것을 알고 만주 글자를 수십 장에 나누어 쓰다 니. 내가 여러 사람에게 묻는다면 이 기밀은 누설 되지 않겠지.] 쌍아는 미소지었다. [정말 흘륭하시고 총명하신 상공이네요. 그대는 한 번 보고 저의 뜻을 알아차리셨네요.] 위소보는 웃었다. [대성공을 했으니 입이나 한번 맞추자구.] 쌍아는 그 말을 듣고 몸을 날려 밖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위소보 는 대청으로 와서 친위병을 시켜 효기영의 만주 필첩식(筆帖式)을 불렀 다. 그는 한 장의 편지를 건네주며 그에게 이 몇 개의 만주 글자가 무 슨 뜻인지 물었다. 그 필첩식은 말했다. [도통대인께 말씀드립니다. 이 액이고납하(額爾古納河), 정기리강(精奇 里江), 호마이와집산이라는 곳은 모두 만주땅의 큰 강과 높은 산입니 다.] [제기랄! 무슨 놈의 발음이 그토록 괴상하지? 어디에 있는 지역이오?] [도통대인, 그곳은 관의에서도 북쪽 끝에 있는 땅이랍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기뻐했다. (과연 만주인들이 보물을 숨겨 놓은 곳이로구나. 그들은 금은보화를 관 외로 가져가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겨 놓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 다.) [그대는 그 지역의 이름을 모두 한자로 써주시오.] 필첩식은 그 말에 따라 써주었다. 위소보는 다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더니 물었다. [이것은 무슨 강과 무슨 산이오?] 필첩식은 말했다. [도통대인, 이것은 서리목적하(西里木的河), 아목이산(阿穆爾山), 아목 이하(阿木爾河)입니다.] [제에미!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야릇하군.] 필첩식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주 말로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습니다요.] [좋소. 그대는 한자로 옮겨서 적어 주시오. 나중에 그대가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겠소.] 필첩식은 말했다. [예, 예. 비직이 하늘만큼 담이 크다해도 도통대인에게 터무니없는 소 리를 감히 지껄이겠습니까?] [허! 하늘만큼 큰 담을 지녔다구?] [아닙니다, 아닙니다. 비직의 담은 쥐새끼처럼 작습니다.] 위소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게 누구 없느냐? 오십 냥의 은자를 담이 쥐새끼처럼 작은 이 친구에게 내리도록 해라. 이것 보오. 그대가 만약 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면 즉시 오십 냥의 은자를 도로 빼앗을 뿐 만 아니라 이자까지 쳐서는 모두 백오십 냥의 은자를 변상하라고 할 테 니까 그리 아시오.] 필첩식은 크게 기뻐했다. 그의 한 달 향은(餉銀:봉급)은 십이 냥의 은 자에 불과한데 도통대인이 대뜸 오십 냥의 은자를 내리니 그는 고맙다 는 인사를 했다. [비직은 결코 함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본전이 오십 냥인데 이자가 일백 냥이라니, 맙소사. 정말 대단한 이자 로구나. 나의 머리를 자를지언정 그 이자는 못 물어내겠다.) 며칠 동안 위소보는 수십 군데의 지명을 알아냈다. 네 가지 색으로 이 루어진 여덟 개의 조그만 원은 흑룡강 이북에 있었으며 바로 아목이하 와 흑룡강이 합류하는 곳이었다. 보물의 소재지인 그곳은 호마이와집산 의 정북쪽이자 아목이산의 서북쪽인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여덟 개의 조 그만 원 사이에 쓰여진 두 개의 황색 만주 글자를 한문으로 옮기고 보 니 바로 녹정산(鹿鼎山)이라는 세 글자였다. 위소보는 지도와 지명을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쌍아에게도 기억하도록 했다. 그는 이 조각들을 남에게 빼앗기면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각들을 화로에 넣어 불태웠다. 불길이 거세게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며 그는 마음속으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몇 봉지로 나누어서 다른 곳에 숨기라고 했다. 그래도 남에게 도적질당할 위험이 있다 이제 내 마음속에 새겨 두었으니 설사 나의 염통을 긁어낸다 하더라도 그 지도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 지만 내 소중한 염통을 누가 긁어내면 안 되지.) 고개를 돌려 보니 불빛에 비친 쌍아의 얼굴이 발그레하여 무척 간드러 지고 예뻐 보여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의 쌍아는 정말 아름답기 이를 데 없구나.) 쌍아는 그의 눈길을 받고 부끄러움을 느낀 듯 고개를 숙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쌍아, 그대와 나는 지도도 짜맞추었고 지명도 알아냈으며, 제기랄 놈 의 희한한 지명도 모조리 외웠으니 그야말로 큰 공을 세운 것이 아니겠 소?] 쌍아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째서 아니란 말이오?] 쌍아는 웃으면서 문을 열고 달려나가며 말했다. [저는 몰라요!] 위소보는 쫓아 가며 말했다. [그대는 몰라도 나는 알고 있지.] 이때 갑자기 한 명의 친위병이 총총히 달려오더니 말했다. [도통대인꼐 알립니다. 황상께서 빨리 듭시라는 전갈이십니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살짝 눈을 흘겨주고 입궐했다. 대궐문 입구에는 신 하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강희의 어가가 궁중에서 나오고 있었다. 위소보 는 의장(儀丈)의 뒤로 돌아가서 길 옆에 꿇어앉아 절을 했다. 강희는 그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 [소계자, 나와 함께 외국인들이 포를 작동하는 것을 보러 가자.]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대포를 정말 빨리 만들었군요.] 일행은 좌안문(左安門) 내에 있는 용담포창(龍潭포=火+包,廠)에 이르렀 다. 남회인과 탕약망은 길가에 끓어엎드려서 어가를 맞았다. 강희는 말 했다.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대포는 어디 있소?] 남회인은 말했다. [황상께 아룁니다. 대포는 바로 성 밖에 있습니다. 삼가 어가를 옮기시 어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좋소.] 강희는 수레에서 걸어나왔다. 전후에서 시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는 좌안문을 나섰다. 그곳에는 삼문(三門)의 대포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 다. 강희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대포는 번쩍번쩍 검푸른 빛이 감돌 고 포신은 굵고 컸으며 포륜(抱輪)과 승축(承軸) 등은 지극히 단단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강희는 흐뭇하여 입을 열었다. [매우 좋소. 시험삼아 몇 번 쏘아 보시오.] 남회인은 친히 대포의 포신 안에 화약을 넣고 쇳조각으로 꾹꾹 누른 후 한 알의 포탄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황상께 아룁니다. 이 포탄은 일리(里) 반까지 날아갑니다. 과녁은 이 미 저쪽에 세워 두었습니다.] 그가 손가락질하는 곳에는 흙으로 만들어 놓은 열 개의 둔덕이 저 멀리 나란히 서 있었다. 강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쏘시오.] 남회인은 말했다. [황상께서는 십 장 밖으로 옮겨 주십시오. 만전을 기하려는 것입 니다.] 강희는 빙그레 웃고 물러났다. 위소보는 자진해서 용감하게 나서며 말 했다. [첫 번째의 대포를 소신이 쏘도록 해주십시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대포 옆으로 가서 남회인에게 말했 다. [외국에서 오신 노형, 그대가 겨냥하시오. 내가 불을 당기겠소.] 남회인은 이미 포구의 높낮이를 겨냥해 놓았었는데 다시 한 번 맞추어 보았다. 위소보는 횃불을 받아서 포에 있는 화약선에 불을 당긴 후 급 히 뒤로 물러나 횃불을 던져 버리고 두 손으로 귀를 꼭 막았다. 화광이 번쩍 하더니 쾅, 하는 커다란 음향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멀리 흙으로 만들어 놓은 둔덕이 하나 터져 나갔으며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 둔덕에 대량의 유황을 묻어 놓았던 것이다. 그 리하여 포탄이 떨어지자 즉시 타오르게 되어 위세가 놀라웠다. 군사들 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강희를 향해 크게 부르짖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삼 문의 대포는 연달아 포탄을 쏘았는데 모두 열 번을 쏜 결과 일곱 개 의 둔덕을 적중시킬 수 있었다. 다만 세 개의 둔덕은 겨냥이 약간 잘못 돼 적중되지 않았다. 강희는 매우 기뻐서 남회인과 탕약망에게 칭찬의 말을 해주고 즉시 남회인을 흠천감의 감정(監正)으로 벼슬을 올려주었 다. 탕약망은 원래의 벼슬이 태상사경(大常寺卿), 통정사(通政使)였고 작위 가 통현교사였는데 오배에 의해서 파면당했으나 강희는 성지를 내려 그 의 벼슬을 회복시켜 주고 통미교사(通微敎師)의 작위를 내렸다. 강희의 이름이 현엽이어서 현 자를 기피하였던 것이었다. 삼 문의 대포는 이름 을 신무대포(神武大畑)라고 지었다. 궁으로 돌아온 강희는 위소보를 서 재로 불러놓고 싱글벙글 웃었다. [소계자,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몇백 문의 신무대포를 만 들어 한일 자로 늘어 세우고 오삼계 그 늙은 역적을 겨냥하여 쾅, 하고 쏜다면 그가 반란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디 그대가 말해 보아라.] 위소보는 웃었다. [황상은 귀신이 감탄할 만큼 신기묘산이 뛰어나시니 신무대포가 아니라 도 오삼계라는 그 늙은 녀석을 대뜸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 무대포가 있다면 더욱더....용에 날개가 돋친 격이라고 하겠지요.] 그는 호랑이에 날개가 돋친 격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황제를 호랑이에 비유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아서 용이라는 말로 고친 것이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그 한 마디에 무식함이 드러났군. 용은 하늘을 날 수 있는데 날개가 왜 필요하겠느냐?] 위소보는 웃었다. [예, 예. 대포가 없다 해도 황상께서는 오삼계를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 다는 뜻입니다.] 강희는 웃었다. [그대는 언제나 잘 둘러댄단 말이야.] 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군. 오삼계가 몽고, 서장, 나찰국과 결탁하고 신룡교와 손을 잡고 있다며? 그 대역무도한 늙은 갈 보 가짜 태후는 바로 신룡교에서 궁 안을 어지럽히기 위해 파견한 사람 이란 말이지?] [바로 그렇습니다.] [그 반역도를 잡아서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이지 않고는 모후께서 피 살되신 한과 태후께서 감금된 욕됨을 설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이를 갈며 분노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는 나보고 늙은 갈보를 잡으라는 것이구나. 그 늙은 갈보는 키가 작고 뚱뚱한 수두타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그녀를 잡기란 수월한 노릇이 아니다.) 그는 약간 망설이며 감히 자청할 수 없었다. [소계자, 이 일은 기밀에 속하니 그대를 보내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예, 그 늙은 갈보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겠군요. 그녀의 정부, 한 무더기의 살로 빚어진 공 같은 놈은 요술을 쓸 줄 아는 것 같았습니 다.] [늙은 갈보가 황량한 산속에 숨어 버렸다면 그녀를 찾기는 쉽지 않겠 지. 하지만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있다. 사람들을 이끌고 먼저 신롱교라 는 사교(私敎)를 토벌하여 없앤 후 그 사교의 한 패거리를 잡아와 일일 이 고문을 한다면 십중팔구 늙은 갈보의 행적을 알아낼 수 있을 것 이 다.] 그는 위소보가 난처한 빛을 띠는 것을 보고 다시 말했다. [나 또한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대는 능력이 있고 행운이 따르는 복장(福將)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처리하기 매우 어려 운 일도 그대의 손에 넘어가면 단숨에 성공을 하거든. 나는 시일을 두 지 않겠다. 먼저 그대를 관외로 보내 몇 가지 일을 처리하도록 하겠으 니 관외로 나가서 봉천(奉天)에서 인마를 움직여 기회를 보아 신룡도를 쳐부수기 바란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가 나에게 아첨을 하니 응낙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는 말했다. [소신의 복은 모두 황상께서 내리신 것입니다. 황상께서 저에게 특별히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니 저의 복이 따라서 커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황상의 홍복 덕택으로 늙은 갈보를 잡아 올 수 있으면 좋겠습 니다.] 강희는 그가 이 일을 맡으려 하자 무척 기뻐하며 그의 어깨를 다독거렸 다. [원한을 갚는 것은 큰일이나 국가 사직에 비하면 작은 일이다. 늙은 갈 보를 잡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더욱 중요한 일은 역시 신룡도를 쳐부수 는 일이다. 소계자, 관외는 우리 대청나라가 크게 기세를 떨친 발상지 이다. 신룡교가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나찰국의 사람들과 손 을 잡고 관의를 차지하면 대청나라는 근본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대가 신룡도를 쳐부수는 것은 나찰국 사람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위소보는 웃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던 그는 갑자기 언성을 높여서 부르짖었다. [아라오(阿羅烏)! 고로호(古魯呼)!] 그는 오른손을 쳐들고서는 끊임없이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 [나찰국 놈들이 손가락이 잘렸으니 아파서 비명을 지를 것이 아니겠습 니까?] 강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대를 일등 자작으로 올려주었는데 다시 그대에게 파도로(巴圖 魯)라는 작위를 내리도록 하지. 봉천에 주둔시키고 있는 병마를 움직여 신룡도의 반란을 토벌하도록 해라.] 위소보는 털썩 엎드리며 말했다. [소신은 벼슬이 높아질수록 복이 그만큼 더 많아진답니다.] [그러나 이 일을 너무 크게 벌여서 오삼계나 상가희 일당이 미리 알면 안돼. 그들은 불안해서 일찌감치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니 귀 신도 모르게 갑자기 신룡교를 토벌해야 돼. 이렇게 하자. 나는 내일 그 대를 장백산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러 보낸다고 하겠다. 장백산은 우 리 애신각라(愛新覺羅) 집안의 원 조상이 강생(降生)한 성지(聖地)이니 내가 그대를 파견하여 제사를 올리게 한다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황상의 신기묘산에 신룡교주는 수여층제(壽與蟲齊)가 될 것입니다.] [수여 충제가 뭐야?] [신룡교 교주의 수명이 작은 벌레와 같으니 얼마 살지 못할 것이란 말 씀입니다.] 그는 강희 앞에서 그 일을 하겠다고 말했으나 신룡교 홍 교주의 무공이 탁월하고 교에 고수들이 구름처럼 많온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이나 휘두를 줄 알고 활이나 쏠 줄 아는 군사들을 이끌고 신롱도를 공격하다가는 위소보 자신의 생명이 수여충제할 가능성이 컸다. 그는 궁에서 나와 무척 답답해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신룡도엔 결코 가지 않겠다. 소현자가 나에게 잘 대해 주기는 하지만 그를 위해 헛되이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다. 나의 이 벼슬길도 이제 막 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다. 차라리 관외로 가서 기회를 노려 흑룡강 북 쪽에 있는 녹정산으로 가서 보물을 파내 크게 한 밑천 잡자. 그 후 때 를 잡아 운남으로 가서 아가를 마누라로 맞아들이고 숨어 살면서 매일 같이 도박을 하고 연극을 본다면 그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 일인가?) 이와 같이 생각하니 마음속의 번뇌가 말끔히 가셨다. (싸움에 임해서 도망친다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소현자의 무거운 부탁 을 저버리는 일이 될지언정 내 목숨을 버릴 수는 없지. 보물을 파낸 후 만주인의 용맥을 끊어 놓지만 않으면 소현자에게는 미안할 것이 없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