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골목마다 구성진 "아이스케~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사각 통 메고 다니며 나무 꼬챙이 꽃힌 얼음과자를 팔았다.
코 묻은 돈 내밀면 드라이아이스 김 자욱한 통에서 '케키'를 꺼내줬다.
분말 주스를 물에 타 얼렸을 뿐이어도 달고 시원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0여년 어른.아이 모두가 즐기던 여름 주전부리였다.
60년대 중반 비닐로 포장한 빙과회사 '하드'가 나오면서 아이스케키는 차츰 거리에서 사라졌다.
노점들은 달걀같이 생긴 얼음과자를 마술처럼 빚어냈다.
단물을 달걀 모양 주석 틀어 붓고 나무통에 넣어 굴리면 딱딱하게 얼었다.
통 안에 버무린 얼음과 소금이 영하 십 몇 도까지 떨어뜨린 덕분이다.
빙수도 여름호사였다.
재봉틀 비슷한 기계가 얼음 물리고 옆 바퀴를 손으로 돌렸다.
얼음이 돌아가면서 아래 대팻날에 깎여 눈처럼 그릇에 쌓였다.
고명은 미숫가루와 식용 색소 같지 않은 빨강,노랑 시럽이 다여도 부러울 게 없었다.
팥빙수는 더 큰 뒤에야 제과점에서 맛봤다.
달콤한 팥 고소한 우유, 차진 인절미가 기막히게 어울렸다.
작년 여름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그 맛을 만났다.
'책엄팥'을 판다는 학문서점 안 찻집에 들어갔다.
'책방 엄마가 직접 팥 삶아 만든 빙수'란다.
조리대에 반가운 물건이 놓여 있다.
파란 칠까지 똑같은 옛무쇠 삭빙기(削氷機)다.
바퀴 돌려 갈아 낸 빙수는 입자가 거칠다.
3000원짜리 팥빙수를 아끼듯 비벼 먹으며 고향을 떠올렸다.
3년 전 제주도 카페 '키친애월'에서 맛본 팥빙수도 잊히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서울 삶을 정리하고 온 이가 카페를 차렸다.
주인은 "둘이서 먹기엔 6000원 하는 '소짜'가 알맞다"고 했다.
큰 사발에 담긴 얼음이 안 보이도록 땅콩.건포도.옥수수 칩을 얹고 아이스크림을 고봉으로 세웠다.
뒤적여 보니 키위.바나나.파인에플도 수북하다.
팥과 우유는 따로 넉넉하게 차려준다.
아름다운 애월 바다를 보며 입술이 얼얼하도록 한참을 먹었다.
요즘 팥빙수 값은 월급쟁이 점심 한 끼보다 비싸다.
중국산 통조림 팥을 쓰는 곳이 많으면서 보통 1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특급 호텔 빙수는 3만원을 넘어 7만5000원에 이른다.
오늘이 말복에 가까워진다.
펌프 물로 등목하고 평상에서 뒹굴며 나던 어릴 적 여름을 생각한다.
빙자 깃발 매단 가게에서 얼음 한 덩어리 사 와 바늘로 쪼개 띄워 먹던 수박화채,
거리의 아이스케키와 보리 냉차와 달걀 얼음과자와 빙수...
특급 호텔 팥빙수가 그 맛을 다를까.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혀 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