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에서 철야기도를 하면서 어느 거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거사님이 들려주신 진솔한 인생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 이번 글은 거사님의 시점으로 쓰기로 했다.
희망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던 젊은 시절
젊은 시절 대한 청소년 신문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였다. 그때는 집에 물려받은 땅과 재산도 있었고 경호원으로서 크게 이름을 알린 아버지의 사업도 잘 되어 돈 걱정을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사업도 재산도 모두 사라지고 한 순간 빚만 잔뜩 남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빚은 그대로 나의 몫이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인생은 순탄함과 거리가 멀었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방탕함이 찾아왔다. 나는 툭하면 약한 의지를 탓하며 자포 자기한 사람처럼 살았다. 예의며 도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후회만 남을 짓들을 기꺼이 저지르며 돌이킬 수 없는 나쁜 짓을 하곤 했다. 몸은 이미 나쁜 훈습에 젖어들었고 마음과 정신도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부르고 또 부른 관세음보살
그래도 어머님은 늘 내게 바른 길을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평생 보살처럼 살았던 어머님은 나에게는 보살과도 같은 분이시다. 그때 어머님은 힘이 들 때마다 관세음보살님을 찾아 마음으로 입으로 부르라고 가르침을 주셨다. 관세음보살, 이 다섯 자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염불이 되었다. 1980년 쯤 사우디아라비아로 근무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때 어머님은 나를 데리고 절을 찾아 가셨다. 어머님과 함께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부처님이 나를 보고 웃어주셨다. 그 미소를 잊을 수가 없었다. 막연함과 불안함을 안고 도착한 사우디아라비아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열악하고 힘이 들었다. 참고 또 참았지만 너무나 힘겨웠다. 그때 처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관세음보살, 이 다섯 글자를 마음으로 외우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부르기도 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같이 일하던 동료가 나에게 도대체 무슨 같은 소리를 그렇게 반복해서 부르냐고 물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며칠 뒤 동료가 나무를 깎아 부처님을 만들어 주었다.
머나먼 사우디아라비아에 와서 처음으로 얻은 그 나무부처님이 너무나 의지가 되었다. 나는 동료가 만들어준 나무부처님을 옷장에 모셔두고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대화를 하고 약속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부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자 그토록 고된 나날이 조금은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나는 스스로의 변한 모습에 놀랐다. 그렇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기적적으로 부처님을 만나 마음을 많이 정리한 후 귀국을 하게 되었다.
다시 시작된 방황과 꿈 속의 괴한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다시 성실하지 못하게 지내왔던 과거의 나쁜 습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방탕한 생활을 향한 욕망이 꿈틀거릴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시커멓고 덩치가 아주 큰 남자가 자꾸 나를 어디론가 끌고 다녔다. 꿈이었지만 정말 무서워 자는 것조차 싫어졌다. 같은 꿈을 다시 꾸는 것이 두려워 창피함을 무릎 쓰고 친구에게 내가 잠이 들거든 어디 가지 못하게 너랑 묶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친구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으나 결과는 헛수고였다. 꿈속에서 시커멓고 무서운 남자는 다시 나타났고 공포가 몰려왔다. 꿈을 꾸기 시작한 지 7일 째 되던 날 나는 꿈속에서 다시 남자에게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곳에는 흐린 빛과 아주 밝은 빛 두 줄기가 있었다. 흐린 빛을 향해 보고 있는 내 앞에 갑자기 짐승의 형상을 한 산적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후 문득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을 때 동료가 만들어준 나무부처님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깊은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다시 찾을 길이 없었다.
모든 돈을 잃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
그렇게 7일 동안 같은 꿈을 꾼 후 정신을 차리고 역무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원서를 넣었다. 3일 동안 소식을 기다렸으나 아무 기별이 없었다. 직접 찾아보니 벌써 서류 심사를 끝내고 합격한 사람들에게 연수원 서류를 나눠주고 있었다. 담당자는 나를 보더니 다음 해에 다시 응시해보라고 했다. 순간 나는 갑자기 무슨 용기가 솟았는지 역무원에서 가장 높은 아무개랑 아는 사이라고 둘러댔다. 그러자 다시 내가 응시한 서류를 찬찬히 보더니 교육이 끝나면 다시 보자고 했다. 그렇게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 5개월은 성실하게 다녔으나 첫 휴가를 다녀오면서 그만 술을 마시고 인생을 망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일주일 만에 귀신에 홀린 것처럼 모든 돈을 잃고 거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입사 7개월째부터 빚 독촉에 시달리며 견디기 힘든 고통이 시작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월급이 차압되면서 독촉은 조금 줄어들었다. 역무원 일을 하며 하루는 종일 일하고, 다음날은 쉬는 날이었지만 빚을 갚기 위해 다른 일을 하나 더 하였다. 그러나 몸이 견뎌내질 못했고, 점차 매표 입력조차 힘이 들었다. 도저히 머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회사였다면 몇 번이라도 해고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무원이라 해고는 당하지 않았다.
죽음을 생각하던 중 조계사를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열차가 들어오는데 봄바람이 시원하게 내 앞으로 불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직원 한 명이 깜짝 놀라 나를 잡아당긴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후 수 시간 철도 위에 누워도 보았으나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찾은 곳이 조계사였다. 어느 날 스님 옷 비슷하게 입고 전철을 기다리던 보살님 한 분이 내게 조계사를 한 번 가보라고 했다. 그 분의 말을 듣고 찾아가 조계사 일주문 계단을 오르는데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차도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내 앞에 동전이 수북하게 모여 있었다. 수치심을 느낄 사이도 없이 허기가 몰려와 그 동전을 손에 쥐고 가게에 들어가 라면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주인이 김밥 한 줄을 그냥 주었다. 눈물이 났다.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반듯하게 살자 하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조계사에서 천일기도를 하다
87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조계사 법당을 찾았다. 회사에 가는 날에는 퇴근 후에 들러서 절을 했고 쉬는 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법당을 지켰다. 부처님을 뵐 때면 답답했던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노숙자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나는 그때부터 세수도 하고 옷도 깨끗하게 빨아 입으면서 날마다 조계사를 찾았다. 기도하는 법을 배운 적이 따로 없어 처음에는 마냥 절을 하다가 염불 소리가 들리면 염불을 따라하고 염주를 돌려보기도 하고 참선도 하면서 기도를 했다.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법당에서 지내며 배가 고프면 빵과 음료수를 사먹었다. 돈에 시달려 밥 한 끼 제대로 사먹지 못하는 신세였지만 부처님을 만나고 나자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전을 탈탈 털어 그 사람들과 음료수라도 나눠 마시고 나면 이상하게 먹을 것이 생겼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는 동안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졌고, 가장 큰 짐이었던 빚도 다 갚게 되었다.
보살님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기자 또 다시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빚을 갚느라 내 앞가림에 급급하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색하고 어려웠다.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마음을 붙이지 못했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다시 술을 마셨다. 게다가 절에 다니는 것도 처음처럼 신심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참 방황하던 시절 나를 이끌어주셨던 현장스님을 조계사 앞 찻집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신도분들과 차를 마시며 말씀 중이시던 스님은 어떤 보살님을 보더니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43살이나 되도록 장가를 못 갔는데 장가 좀 보내주자고 하셨다. 지나가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살님은 직장까지 찾아와서 한 번 좋은 인연을 잘 찾아보자고, 꼭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보증 빚까지 더해져 1억이 넘는 산더미 같은 빚을 지고 있었던 터라 절대 결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살님은 자기를 믿으라고 했다. 보살님의 주선으로 두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모두 인연이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포기를 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만나 보라며 소개를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소개를 받은 여자가 바로 지금의 아내로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었다면 만나기 어려운, 나에게는 보살님과 같은 존재이다.
부처님께 절을 하는 모습에 첫 눈에 반하여 일주일 만에 결혼 승낙을 받다
처음 만난 날 차를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아내가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물었다. 조계사 법당에 기도를 하러 갈 거라고 대답하자 아내는 같이 가자고 했다. 법당에서 아내가 향을 꽂고 절을 하는데 그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이 여자가 내 여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서로를 알기도 전 마음속에서 이미 아내는 나의 동반자로 정해진 것이었다. 주선해주신 보살님은 첫 만남에서 밥을 먹지 말라고 했지만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저녁을 같이 먹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그날 아내에게 청혼을 했다. 그 후 3일을 연달아 만나고 나흘째 되던 날 아내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가서 결혼 승낙을 받았다. 그날은 아내의 집에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 모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8남매의 막내였던 딸의 결혼선언에 가족들은 놀라면서도 허락을 해 주셨다.
부처님의 가피로 만난 고마운 나의 아내
어머니는 커다란 구렁이가 아버지를 꽁꽁 조이는 꿈을 태몽으로 꾸고 난산 끝에 나를 낳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괴롭혔던 태몽이 생각날 때마다 어머니는 늘 나에 대한 두려움의 마음이 있었다. 어머님의 그런 마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방황을 하곤 했다. 그런데 아내에게 태몽 이야기를 하자 아내는 결혼 전 보문사에서 천일기도를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천일기도를 마치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마애부처님 뒤로 커다란 구렁이가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나의 태몽에 나왔던 구렁이가 자신의 기도에도 나왔으니 내가 인연이었나 보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랜 시간 그토록 나를 괴롭혀왔던 피해의식과 열등감, 분노 등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미움을 받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던 내가 자신의 귀한 인연이라고 말해주는 아내가 관세음보살처럼 보였다. 처갓집에서 허락을 받은 지 3일 만에 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일사천리로 결혼날짜를 정했다. 결혼 날짜는 스님이 정해주셨는데 그때 조계사 주지스님께서 생활 불교를 위해 법당을 결혼식장으로 개방하기로 하셨을 때라 나와 아내가 처음으로 추천을 받아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유난히도 법회와 행사가 많던 결혼식 날 우리는 주지스님의 주례로 가족과 하객 그리고 조계사 신도분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치렀다.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
결혼 후 경제적인 부분은 아내가 도맡아서 살림을 꾸렸다. 여전히 빚으로 인한 차압 때문에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면서 아내는 알뜰하게 돈을 모아 10년 동안 나의 빚을 모두 갚아주었다. 사회복지사와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이 있었던 아내는 나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오직 나를 위해 살았다. 그러면서 아내는 항상 돈보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욱 큰 가피라고 말했다. 아내는 나에게 세상을 사는 방법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기도를 하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항상 봉사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라며 나를 조계사 자원봉사팀에서 활동하도록 했다.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나는 국제포교사 공부를 하였고 네 번이나 떨어진 끝에 다섯 번 만에 합격의 기쁨을 얻었다. 지금 아내는 몸이 아프신 장모님을 돌보고 있다. 이제는 내가 아내에게 받은 사랑을 장모님과 아내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돌려주어야 할 때이다. 이 모든 것은 부처님을 만나서 일어난 변화이기에 늘 감사하다. 매일 저녁 조계사에 들러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지만 돌아서면 보고 싶고 꿈에서도 뵙고 싶을 만큼 늘 그립다.
첫댓글 2014.10.2
감사합니다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뱡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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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부처님 가피글 고맙고 감사합니다
첨엔 신심이 나고 그러다 또 지치고 실망하고
그러면서 또 힘내고 하다보면 어느새
가랑비 젖듯이 신심이 내몸 구석구석 잦아 드나봅니다
부처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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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