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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지 집성촌 종가 스크랩 닭실마을
이장희 추천 0 조회 44 14.12.02 19: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토요일, 어느 모임에서 가지는 문화탐방단에 합류해서 인근 문화재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닭실마을의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본 후, 축서사를 거쳐 부석사 저녁 예불 법고 소리를 듣는 여정이었다.

 

  닭실 마을 청암정 전경, 2005년 5월 사진

 

  안동에 온 후 닭실마을을 몇 차례 돌아보았고 2년 전에는 ‘청암정에서 통하였느냐http://blog.daum.net/cordblood/1498193)’란 제목으로 답사기를 쓴 일도 있다. 2년 정도 지났으니 이제 수정을 좀 할 때도 되었다 싶어 이번 답사에서 얻은 자료를 합해 다시 올리기로 한다.

 

  안동에서 닭실마을로 가는 길은 간단하다. 안동-영주간 국도를 따라가다 안동-영주 경계 근처에서(2차선에서 4차선으로 바뀐 직후) 오른쪽 옛길로 접어들어 봉화 방면으로 계속 가면 된다. 봉화에 도착해서도 춘양 방면으로 계속 직진해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된다. 내리막길 끝의 철로 아래 지하도를 지나면 바로 마을로 좌회전하게 되어 있는데 커브 길이라 반대편에서 직진하는 차를 보지 못할 수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 안동에서 천천히 가도 한 시간이면 되는 길이다. 이번엔 어느 선생님의 차에 편승해서 가니 아주 편하게 갔다.

 

  2년전 봉화읍에서 어느 할머니에게 길을 물었을 때 ‘달실마을’이라고 발음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우리나라 말에서 받침의 ㄹㄱ 발음은 표준어에서는 ㄱ 발음을 대표음으로 하지만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ㄹ 발음을 대표음으로 한다. '책을 읽다.', '날씨가 맑다' 발음을 경상도 사람들은 '책을 일따.' '날씨가 말따.'라고 발음한다(대구 인근의 사람들은 '날시가 말따'라고 발음한다). 닭'의 경우는 일찍 표준화가 되어서 내가 어릴 때부터 ‘닥’이라고 발음했다. 물론 그 때도 시골의 어른들은 ‘달’이라고 발음했다. 그 할머니 '달실마을'이라고 발음한 것도 상당히 표준화 된 것이다. 완전한 경상도 사투리가 되려면 ‘달실마실’이라고 해야 되는데 외지인 앞이라고 표준스럽게 하느라 '달실마을' 한 것일 게다.

 

  닭실마을의 이름은 그 마을의 지세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그래서 이 마을의 가로등 꼭대기에는 닭의 조형이 올려져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주의 양동마을(월성손씨 - 현재 주민은 여강 이씨가 더 많다고 한다), 안동의 내앞마을(의성김씨), 풍산의 하회마을(풍산류씨)과 함께 봉화 닭실마을(안동권씨)을 ‘삼남의 4대 길지’로 꼽았다.

 

  2년전 답사기에 마을을 아무리 봐도 닭이 알을 품는 모양이 연상되지 않는다고 쓴 일이 있다. 이번 답사에 해설을 맡은 어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나의 무지가 드러난다. 지금은 춘양으로 가는 도로를 통해 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가지만 옛날에는 물야쪽에서 계곡으로 난 길을 통해 도보로 접근하게 되는데 그 길을 통해 들어가면 마을이 앉은 모양에서 닭이 알을 품는 형상이 연상된다고 한다. 이번에 석천정을 보고 그 길을 통해 올 때 보니 그런 형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이 길지라고 하는 또 다른 이유도 이해가 된다. 계곡을 따라 오다 보면 어느 순간 제법 넓은 분지가 확 트이면서 산 아래 마을이 편안하게 자리잡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처럼 봉화읍에서 춘양가는 도로를 따라 접근해서는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다. 하회를 제대로 보려면 부용대에서 봐야 하고, 닭실을 제대로 느끼려면 계곡 길을 걸어서 접근해야 한다.

 

  계곡에서 마을 쪽으로 오면서 차 안에서 찍은 사진

  - 어떻게 보면 닭이 알을 품은 것 같기도 하다. - 

 

  닭실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이 마을의 입향조를 충재(?齋) 권벌(權?, 1478~1548)이라고들 한다. 실제 안동 권씨 중에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이는 권벌이 아니라 그의 5대조였지만 권벌 이후로 마을이 번성했기 때문에 그가 입향조로 알려져 있다. 권벌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져 오는데 중종 때 어전회의가 끝나고 나니 바닥에 근사록(近思錄)이라는 책이 떨어져 있었는데 중종은 이 책이 권벌의 책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평소 그가 책을 많이 읽고 몸에 책을 지니고 다니면서(이런 책을 수진본이라고 한다) 가까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재 종택에는 다섯 가지 보물이 전해오는데 특이하게도 그 다섯 가지가 모두 책이나 문서들이다. 앞의 일화에 나오는 그 근사록 책이 보물 제262호, 충재일기 7책이 보물 261호, 중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책들이 보물896호, 호적단자 등의 문서류가 보물 901호, 서첩과 글씨가 보물 902호. 책을 좋아한 선비의 종택다운 보물들이다. 권벌은 이현보, 손중돈, 이언적, 이황 등과 교유하였다고 한다. 좋은 땅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통하는 모양이다. 청량산 근처에 있는 농암 이현보의 종택도 그 아름다움이 빼어나고 손중돈, 이언적은 모두 경주 양동마을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다. 교유하던 이들 중 퇴계 이황은 아름다운 종택을 남기지 못했는데 학문에만 정진하다보니 멋있는 자신의 집을 지을 틈이 없었나보다.

 

  충재 종가 마당에서 본 안채 - 내당으로 가는 통로를 엿보면서 찍었다.

 

  2년전 답사 때 충재 권벌의 종택을 들어가려다가가 견공의 견제로 들어가지 못한 일이 있다. 이번에 보니 견공들은 모두 감옥에 감금된 상태로 있었고 별로 짖지도 않았다. 종택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아지니 견공들의 신세가 서럽게 되어버렸다.

 

  닭실마을 찾는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곳은 아무래도 청암정이 될 것 같다. 청암정은 종택에 딸린 정자로 연못 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丁자 모양으로 지어졌다. 정자 주위로 물길이 만들어져 있고 연못 주위로는 다양한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청암정을 보고 “정자는 연못 가운데 큰 돌 위에 있어 섬과 같으며, 사방은 냇물이 고리처럼 둘러 제법 아늑한 경치가 있다”고 하였다고 한다. 6칸의 마루바닥에 2칸의 마루방을 만들었다. 정자에 오르려면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몇 년 전 ‘조선상열지사 스캔들’이라는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미숙이 자신의 집에 후실로 들어온 어린 소녀에게 옆집 총각과 '통해도 좋다'는 암시를 주면서 작전을 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소가 청암정이다. (일본의 욘사마 팬들이 경북 북부에 오면 하회의 옥연정사와 더불어 꼭 안내를 해줘야 할 곳이다.)

 

  2년 전 5월 신록의 계절에 찍은 청암정 사진

 

  청암정이 자리잡은 바위는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청암정의 안쪽 방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처음 이 정자를 지을 때 그 방에 온돌을 넣었다. 어느 날 고승이 지나다가 그 곳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여기는 연기가 나면 안 된다. 거북이 등에다 불을 때면 되겠느냐?”고 충고를 해서 온돌을 없앴다고 한다.

 

  사진의 질은 좀 떨어지지만 거북을 연상시키는 사진, 역시 2년 전 사진이다.  

 

 

문을 들어올리도록 되어 있어 더운 여름날 사방에 막힘이 없이 바람이 통할 수 있다.

위의 현판 글씨는 미수 허목의 글씨다. 

   

  2년전 답사 때는 정자 주위 연못에 물이 담겨 있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번 답사에는 물이 없었다. 안내하는 선생님 설명으로는 최근 보수 공사를 마쳤는데 아직 준공검사가 나지 않아 물을 넣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 글을 쓰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보수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팔작지붕인 지붕의 처마 끝을 직선으로 처리한 모양이다. 종손이 팔작지붕은 당연히 곡선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직선으로 처리하느냐고 항의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혹 그 문제로 준공 검사가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준공이 늦어지더라도 지붕은 원래의 모습을 갖춰야지. 청암정 뒤는 원래 논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유물전시관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같이 간 선생님들 모두 정자 뒤가 논이었을 때가 제대로 된 모습이었다고 아쉬워한다.

 

  청암정과 본채 사이에 있는 3칸짜리 작은 건물이 충재(충齋)로 공부하는 장소다. 2년 전 답사 때는 충재 현판이 있었는데 이번 답사에서는 볼 수 없었다. 도난의 우려 때문에 부착할 수 없다면 모사품이라도 그 자리에 붙여두면 좋겠다. 현판이 없는 청암정, 현판이 없는 충재는 뭔가 모자란 느낌이다.

 

  2년 전 찍은 충재의 현판, 여기서 공부하다 쉬고 싶으면 청암정으로 갔을게다.  

 

  청암정을 나와 주차장 근처에서 왼쪽 농로를 따라 한참 가면 계곡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이 과거 이 마을 통행로다. 그 계곡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권벌의 큰 아들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가 부친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석천정사가 나온다.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정사(精舍)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모두 34칸의 건물이라고 하는데 계곡 건너편에서 보면 좀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석천정사는 그 자체가 아름답다기보다 석천정사에서 바라보는 계곡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더운 여름날 이 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세상 근심을 잊을 것 같기도 하다.

 

  계곡 건너편에서 본 석천정사

 

  석천정사 앞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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