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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파리 뤼드박 성당 ‘기적의 메달’
(Notre-Dame de Paris/Médaille Miraculeuse)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님 시신 기적의 메달 뤼드박 성당
1830년 7월 18일, 프랑스 파리 자비의 수녀원 ‘사랑의 딸’회 소속의 카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e, 1806-1876) 수녀님에게 성모께서 발현하였는데 수녀원 소속의 뤼드박(Rue du Bac) 성당이었다.
수녀님이 뵌 성모님은 상아빛 부인복 위에 푸른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는 흰 베일을 쓴 모습이었다고 한다. 성모님께서는 지구 모양의 작은 구(球)를 딛고 계셨으며 양손을 내려뜨리고 계셨는데 귀한 보석으로 꾸며진 그 손에서 나온 빛줄기가 딛고 계신 그 구(球)를 향해 뻗혀 흐르고 있었다.
성모님께서 설명하시기를 ‘이 구(球)는 전 세계 특히 프랑스와 각 개인의 영혼을 나타내는 것’이며, 눈부신 빛줄기는 ‘나에게 구하는 이들에게 부어줄 은총을 상징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1830년 11월 27일 토요일 저녁 5시 30분 무렵, 두 번째로 발현하셨는데 발현 중에 타원형과 같은 후광이 복되신 성모님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그 위부분에는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성모님은 수녀님에게 열심히 기도를 할 것과 위의 글이 씌어있는 메달을 만들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메달을 몸에 지니거나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은총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949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 살던 한 소년은 썰매를 타다가 나무에 부딪혀 뇌를 크게 다쳤는데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소년은 의식불명인 상태로 10일이나 있어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다급해진 소년의 어머니는 다니던 성당에 찾아가 신부님으로부터 메달을 하나 받아 누워있는 소년의 목에 걸어주었다. 성모마리아상이 새겨져있는 그 메달을 목에 걸어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이 의식을 되찾았다. 의사들이 놀라 소년의 뇌를 조사했더니 뇌 속의 손상부위가 깨끗이 사라져버린 것을 확인하고 이것은 ‘기적’이라고 놀라워했다고 한다. 소년은 3일 후 퇴원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메달이 바로 뤼드박 카타리나 수녀님의 ‘기적의 메달’이었다.
70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카타리나 수녀님의 시신은 성당 안 유리관에 모셔져 있는데 수녀님의 시신은 전혀 부패되지 않고 가장 먼저 변하는(부패하는) 눈동자가 푸른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2> 프랑스 라 살레트 ‘눈물의 성모님’(Our Lady of La Salette)
라 살레트 성모대성당 목동들에 발현하신 성모님 눈물의 성모님
1846년 9월, 프랑스 라 살레트의 시골마을에서 양떼를 돌보는 목동이던 11세의 막시망 지로(Maximin Giraud)와 15세의 멜라니 칼바(Mélanie Calvat)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신다.
눈부신 광채 속에 성모님은 장미로 둘러싸인 신발을 신었으며 순백색 드레스에 발끝까지 닿은 황금색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넓고 반듯한 소맷자락은 손끝까지 드리워졌고 어깨위에는 장미술이 달린 망토를 입고 있었다. 가느다란 목걸이엔 십자가가 달렸고 하얀 면사포를 쓴 머리위에는 가지각색의 장미로 꾸며진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여인은 우물가의 돌 위에 앉아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서 이렇게 알려주어라.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쳐서 하느님과 화해하라 내말을 들으면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말을 듣지 않으면 곧 재앙이 닥칠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버티면 앞으로 7년 동안 큰 흉년이 들어 엄청난 기근이 올 것이다. 밀과 포도는 썩어 없어지고 가축들도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하고 역병이 창궐하고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아이들이 성모님을 만난 이야기는 라 살레트 성당의 주교님에게 전해졌지만 주교는 물론 어느 누구도 이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성모님의 말씀대로 흉년이 들고 1870년 보불(프러시아-프랑스)전쟁까지 터지자 그때서야 사람들은 라 살레트의 메시지를 기억하고 회개의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성모님이 앉아 눈물을 흘렸던 우물은 원래 물이 바싹 말라 있었는데 성모님 발현이후 물이 다시 솟아나왔고 그 물을 마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쳤다. 라 살레트의 성모 발현은 1848년 교황 비오 9세(Pio Ⅸ)에 의하여 공식 인정되었다.
<3> 보스니아 메주고리예(Međugorje) ‘치유의 성모님’
치유의 기적 메주고리예 성모님 메주고리예 성당
1981년, 동유럽 아드리아해 연안 발칸반도의 보스니아(Bosnia)에 살던 6명의 어린이들이 바위산 꼭대기에서 성모 마리아를 만난다.
맨 처음, 『미르야나 드래지세빅』(16세)과 『이빈가 이반코빅』이 포드브르산에서 전방 2,3백 야드쯤 되는 지점에 밝게 빛나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으나 그들은 자기들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실 리가 만무하다는 농담을 하며 마을로 내려왔다. 하지만 다음날 『이빈가』 『미르야나』 『마리야 파블로빅』 『비카 이반코빅』 『이반 드래지세빅』과 『야코브콜로』 등 6명의 청소년들이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메주고리예의 여섯 어린이들은 그들이 목격하기 시작한 발현이 15년이 넘도록 지속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발현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또 매일 이루어져 횟수로도 벌써 5000회가 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순례객들의 방문은 허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매년 수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성모발현성지이다.
이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메시지는 인류가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하느님의 징벌을 피하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인류가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성모님은 아이들에게 수차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나의 아들 예수님께 대한 믿음, 즉 너희들의 그 믿음을 널리 전파하도록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성령의 비추임을 받는 나의 사도인 아이들아, 그 믿음에 대하여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너희의 믿음을 전하여라.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사랑의 은총을 받기 위하여 아주 많이 기도해야 한다. 즉 사랑은 믿음의 표시이기 때문이란다. 그리하면 너희들은 나의 사랑의 사도가 될 것이다..... ”
<이하 생략>
성당 앞에 세워져 있는 십자고상은 치유의 기적을 보이는데 청동으로 만든 예수상의 무릎 근처에서 물방울이 생기는데 이것을 휴지로 닦아(묻혀) 아픈 부위에 바르면 치유가 되는 기적을 낳는다고 한다.
<4> 프랑스 퐁멩(Pontmain) ‘우리들 희망’ 성모님
유젠(남 12세), 요셉(남 10세), 잔 마리(여 9세), 프랑크와즈(여 11세) 요셉신부 퐁멩성모님
1871년 1월 추운 겨울저녁, 10살의 요셉 바르바데트(Joseph Barbadette)와 12살의 유젠(Eùgene Barbadette)은 창고에서 아버지의 일은 돕고 있었는데 유젠은 밖을 내다보려고 창가로 갔다.
별들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웃 지붕 위 하늘 한 곳에는 실제로 별들이 보이지 않았으며 갑자기 아름다운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부인은 황금빛 별들로 뒤덮인 파란 색 가운을 입었고 머리에는 황금왕관과 검은 색 베일을 쓰고 있었다.
어른들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마침 그때 그 곳 학교의 선생이었던 비탈렌(Vitaline) 수녀가 오게 되었는데 그 수녀 역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데리고 온 3명의 학생들 중 9살 된 잔느-마리 르부세(Jeanne-Marie LeBosse)와 11살 된 프랑크와즈 리셔(Francoise Richer) 두 소녀는 도착하자마자 요셉과 유젠이 설명한 것과 똑같이 성모발현을 목격하고 기쁨을 나타냈지만, 가장 나이 어린 학생 한 명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유진이 아버지와 동생 요셉을 불렀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반면 요셉은 ‘오! 아름다운 부인!’ 하고 외치며 부인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 부인은 황금 빛 별이 박힌 긴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검은색 면사포를 쓰고 그 위에 붉은색 줄무늬가 있는 금관을 쓰고 있었으며 발에는 황금색 리본이 달린 푸른색 신발을 신고 있다. 기적의 메달에 있는 것처럼 팔을 아래로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 역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수녀님들을 불러 사실 확인을 부탁하였지만 그녀들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전체에 퍼져 마을 주민 거의 모두가 바르베데트네 광문 앞에 모여들었다. 본당 신부도 와있었다. 거기 모인 이들 가운데 유진, 요셉, 그리고 그들 또래인 9세의 잔느 마리, 11세의 프랑수아즈 네 명 만이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당 신부의 권고로 모든 이가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을 때 성모님의 모습은 더 크게 되었으며 별의 수도 늘어나 성모님의 옷과 주위를 장식했다. 묵주기도 끝에 마니피캇(Magnificat)을 노래할 때는 약 1미터 넓이의 크고 평평한 흰색 띠가 성모님 발아래 펼쳐졌다. (마니피캇:성모찬가)
그러고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쓰는 듯 황금빛 글자가 그 띠 위에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 명의 어린이들은 띠에 나타나는 글자를 한 자씩 읽었다. ‘얘들아, 끊임없이 기도하여라.’ 발현 장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을 통해 전해 듣고 있던 사람들이 성모 호칭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는 ‘하느님께서 곧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라는 글자가 나타났다고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읽었다.
모든 이들이 감격에 젖어 성가를 부르고 있는 동안 ‘내 아들은 너희의 기도를 기꺼이 들을 것이다.’라는 글자가 또 나타났다.
처음 성모발현이 있은 후 두 달이 지난 1871년 3월 성모발현에 대한 조사가 정식으로 시작되었으며, 같은 해 5월 라발교구 주교 디오세스(Diocese)와 위카르(Wicart)는 어린이들의 증언을 문제 삼았지만, 신학자들은 세세한 부분의 검증을 통해 더 많은 조사가 계속되었는데 신뢰 할 만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러한 조사결과에 만족한 디오세스 주교는 성모님 발현 첫 돌을 축성했고, 1872년 2월 어린이들에 발현한 분이 성모 마리아가 틀림없다고 선언했다.
성모발현 당시 10살이었던 요셉 바르바데트는
‘원죄없이 잉태하신 마리아수사회(修士會)’(Congregation of the Oblates of Mary Immaculate)의 사제가 되었으며 당시 12살이었던 유젠은 퐁펭교구의 사제가 되었다. 유젠 사제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했던 당시 11살이었던 프랑크와즈 리셔(Francoise Richer)를 가정부로 택하여 성모발현 증명에 도움을 받았으며 당시 9살이었으며 나중에 수녀가 된 잔느-마리 레보세(Jeanne-Marie Lebossé)도 증인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5> 아일랜드 노크(Knock) ‘치유의 성모님’
노크 마리아 성당 성모발현 모습 노크의 성모님
1879년 8월 21일 아일랜드의 녹크(Knock)에서 열다섯 살 난 마거릿 번, 메리 맥룰린이 성모의 발현을 목격했다. 저녁 7시 30분경, 노크 마리아 성당 남쪽 박공벽(牔栱壁)에서 발현하셨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초저녁이었으나 발현하신 분들의 모습은 전혀 비에 젖지 않으신 채로 나타나셨다. 목격자들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박공벽: 세모난 지붕의 측면
하늘에서 빛나는 이상한 광채를 보게 되었는데 그 광채 속에는 마리아와 성 요셉 그리고 주교복장의 한 인물이 있었다. 복되신 동정녀는 흰 옷을 입고 계셨고, 크고 찬란한 화관을 목에 두르셨다. 그녀의 손은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들어 올려져 있었고,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 오른편에는 마리아를 향하여 머리를 기댄 성 요셉이 있었고, 왼편에는 복음사가 성 요한이 서 있었는데, 그는 주교복장을 하고서 왼손에는 책을 잡고 오른손은 마치 설교할 때처럼 치켜들고 있었다. 성 요한 왼편에 제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십자가 하나와 8주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양 한 마리가 있었다. 제대 뒷편이 되는 박공벽은 온통 빛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두 시간 동안 계속된 발현동안 14명의 동네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했고 비가 오는데도 발현한 인물들의 모습과 이웃사람들이 서 있는 자리는 젖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다른 곳과 달리 이곳 노크의 성모님은 아무런 메시지도 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정밀히 검사하는 보건국도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은 놀라운 영적 치유에 대한 경험이라고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9월 30일에 이 성지를 방문하여 성모발현 백주년을 기념하셨다.
“1879년 8월 21일, 그 은총의 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몸과 마음이 부자유스런 수많은 환자들과 고난 받는 사람들이 천주의 모친께서 우리를 천주 성자께 인도해 주시리라는 신뢰 때문에 치유되었고, 믿음으로 큰 위로와 위안을 받았습니다.”
<6> 벨기에 보랭(Beauraing) ‘황금심장의 성모님’
보랭 수녀원 보랭의 성모님 성모알현 아이들
벨기에 보랭에서 서른세 번에 걸쳐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1932년 11월에서부터 1933년 1월까지 9~15세의 어린이 다섯 명에게 발현하였다. 그들은 자매인 앙드레 드쟝브르(Andre Degeimbre 14세)와 질베르트 드쟝브르(Gilberte Degeimbre 9세), 그리고 또 다른 3남매인 페르난드 브와쟝(Fernande Voisin 15세), 질베르트 브와쟝(Gilberte Voisin 13세), 알베르 브와쟝(Albert Voisin, 11세)이다.
처음에 아이들은 너무 놀라 도망가고 숨었으나 나중에는 성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순백의 옷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왕관을 쓴 아름다운 부인이 구름을 타고 나타나 자신을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라고 밝혔으며 이곳에 많은 사람이 순례를 오도록 성당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부인은 또한 아이들에게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 많이 기도하여라.”라고 말하면서 두 팔을 펼쳤는데 가슴에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심장이 드러나 보였다고 한다.
마지막 발현 때, 성모 마리아는 어린이들 각자에게 따로 말하였다.
앙드레 드쟝브르에게는 “나는 천주의 성모이며 하늘의 모후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잘 있어라.”라고 말하였다. 질베르뜨 브와쟝에게는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겠다. 잘 있어라.”하고 말하였다. 알베르트 브와쟝과 질베르트 드쟝브르에게는 단순히 “잘 있어라.”라고만 말하였다. 페르난드 브와쟝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답을 나누었다. “너는 나의 아들을 사랑하느냐?” “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너는 나를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하라.” 그리고 성모는 작별의 표시로 페르난드에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자신의 성심(심장)을 보여주며 “잘 있어라.”하고 말한 후, 사라졌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벨기에 남부에서 가난하고 작은 마을인 보랭에 모여들었고, 기적적으로 질병이 치유된 사례가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보랭에서의 성모 발현은 1949년 교황청에서 공식으로 인가하였다.
<7> 벨기에 바뇌(banneux) ‘치유의 성모님’
기적의 샘물 바뇌성당 동생을 돌보는 마리에트 바뇌 성모님
‘바뇌(Banneux)의 성모’는 벨기에 동부 리에(Liege)주에 있는 바뇌에 살았던 가난한 집 7남매 중 맏딸인 12세 소녀 마리에트 베코(Mariette Beco)에게 성모마리아께서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1일까지 8번에 걸쳐 나타나셨던 성모발현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리에트는 그녀의 가족과 지도신부님에게 자신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자신을 밝힌 순백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그 부인은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갸우뚱하면서 합장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으며, 마리에트에게 “나는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 나를 믿어라. 나도 너를 믿겠다.”라고 말하였다. 성모님은 마리에트를 작은 샘이 있는 곳까지 안내한 후, 이 샘을 치유의 샘이라고 부르며 “이 샘은 모든 백성들과 병자들을 위해서 보존되어 왔단다.”라고 말하였다.
이 치유의 샘이 있는 곳은 시간이 흘러도 수많은 순례자가 방문하고 있다. 오늘날 작은 샘은 매일 엄청난 양의 물을 산출하고 있으며 수많은 기적적인 치유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마리에트의 환시 사례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벨기에 주교단이 공식적으로 조사하였다. 주교단이 작성한 보고서는 더 심층 높은 조사를 위해 로마에 제출되었다. 1942년 5월 리에주 교구장 케르크호프스 주교는 성모 발현의 신빙성을 처음으로 승인하였다. 1947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성모 발현에 대한 공식 승인이 내려졌다.
성모 발현 이후, 마리에트는 성직자나 수도자가 된 다른 성모 발현 목격자들과는 달리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며 다른 일반인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 밖의 수많은 성모발현>
그 밖에도 수많은 성모님 발현이 일어나서 보고되고 있지만 정식으로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예도 있는데 1985년 6월 30일, 전남 나주의 윤홍선 율리아(1947년생/당시 50세)씨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성모상(聖母像)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가하면 피눈물이나 향유(香油)가 흐를 때도 있고, 석고로 된 성모상이 움직이기도 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또, 율리아 자신의 몸에서 진한 장미향이 날 때도 있는 등 수많은 기적에 대하여 주변사람들의 증언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 뿐더러 세상의 온갖 고통, 특히 낙태의 고통을 대신 보속하는 육신의 고통 등의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이러한 현상 중에 성모님으로부터 수많은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침내 성체의 기적까지 일어났는데 입속에 넣은 성체와 성혈(밀떡과 포도주)가 진짜 살과 피가 되는 기적도 일어난다. 수많은 성당 신부님들이 직접 방문하여 목격한 후 거짓이 아님을 증언하기도 했지만 교황청에서 파견하여 조사하고 한국가톨릭 중앙회에서 정밀 조사한 결과 일부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틀림없지만 하느님의 뜻과는 별개의 특이한 현상일 뿐이라며 성모발현의 기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한 예이지만 세계 곳곳에서도 이런 인정받지 못하는 기적의 사례들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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