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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종
이 해 조
천지간 만물 중에 동물 되기 희한하고, 천만 가지 동물 중에 사람 되기 극난(極難; 지극히 어려움)하다. 그같이 희한하고 그같이 극난한 동물 중 사람이 되어 자유를 잃는다면 하늘이 주신 직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거늘, 하물며 사람 중에도 여자가 되어 남자의 압제를 받아 자유를 빼앗기면 어찌 사람의 권리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여러분, 나는 옛날 태평 시대에 숙부인(淑夫人; 조선조 정3품 당상 문무관의 아내)까지 바쳤더니 지금은 가련한 민족 중의 한 몸이 된 신설헌입니다. 오늘 이매경 씨 생신에 초대받아 왔는데, 마침 흥국란 씨와 강금운 씨와 그 외 여러 귀중하신 부인들이 만좌하셨으니 두어 말씀 하겠습니다.
이전 같으면 오늘 같은 잔치에 취하고 배부르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시대가 어떠한 시대며 우리 민족은 어떠한 민족이오? 우리 규중 여자도 결코 모를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일본도 삼십 년 전 형편이 우리나라보다 걱정스러워 혹 천하대세라 혹 자국전도라 말하는 자는 미친 자라 지목하고 사람으로 치지 않았습니다. 연설회가 점점 크게 열리는데 거리거리 떠드는 것이 국가 형편이요, 부르는 것이 민족사세였습니다. 이삼인 뭇 거지들이 모이더라도 술잔을 대하기 전에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말하고 마시니, 전국 남녀들이 십여 년을 한담도 끊고 잡담도 끊고 말을 할 때마다 반드시 국가니 민족이니 하더니, 지금 동양에 제일 제이 되는 일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는 얼마나 비참한 지경이오? 세월은 물같이 흘러가고 풍조는 날로 닥치는데, 우리 비록 아홉 폭 치마는 둘렀으나 오늘만도 더 못한 지경을 또 당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되는 일. 세상이 재앙을 당한 모습처럼 변해 버림)가 잠깐이면 될 것입니다. 하늘을 부르면 대답이 있나, 부모를 부르면 능력이 있나, 가장을 부르면 무슨 방책이 있나. 고대광실에 들 사람은 누가 있으며 금의옥식(錦衣玉食; 비단 옷과 흰 쌀밥 호화스런 생활을 이르는 말)은 내 것입니까? 이 지경 이 이마에 당도했소. 우리 삼사 인이 모이든지 오륙 인이 모이든지 어찌 심상한 말로 좋은 음식을 먹겠습니까? 나라가 태평할 때에도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것은 법으로 금하였는데, 이 시대에 두 눈과 두 귀가 남과 같이 총명한 사람이 어찌 국가 의식만 축내리까? 우리 재미있게 학리상으로 토론하여 이날을 보냅시다.
“지당한 말씀이오. 지금이 어떠한 시대요? 이 같은 비참하고 통곡할 시대에 나 같은 여자의 생일잔치가 왜 있겠소마는, 변변치 못한 술잔으로 여러분을 청하기는 심히 부끄럽고 죄송하나 첫째는 여러분 만나뵈옵기를 위한 것이고, 둘째는 좋은 말씀을 듣고자 함이올시다.
남자들은 자주 만나 지식을 교환하지만 우리 여자는 한 번 만나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예기(禮記)’에 여자는 안에 있어 밖의 일을 말하지 말라 하였고, ‘시전(詩傳)’에 오직 술과 밥을 마땅히 할 뿐이라 하였으니, 층암절벽 같은 네 기둥 안에서 나고 자라고 늙었으되 보고 듣는 것이 있어야 아는 것이 있지요.
이러므로 신체 연약하고 지각이 몽매하여 쌀이 무슨 나무에 열리는 지, 도미를 어느 산에서 잡는지도 모르고, 오직 가장의 비위만 맞춰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니, 이는 밥 먹는 안석(案席; 앉아서 몸을 기대는 뒷등 방석)이요 옷 입은 퇴침(서랍이 있는 목침)이지 어디 사람이라 칭하리까? 그러나 그런 이는 차라리 현철한 부인이라고나 하지요. 성품이 괴악하고 행실이 불미하여 시앗(남편의 첨을 본처가 이르는 말)에 투기하기, 친척에 이간하기, 무당 불러 굿하기, 절에 가서 불공하기 등 모든 악행은 소위 대삿집 부인이 더합디다. 가도가 무너지고 욕되게 되는 것은 제 한 집안 일인 듯하나, 그 영향이 실로 전국에 미치니 어찌 한심치 않겠습니까?
그런 부인이 자식을 낳는다면 어찌 쓸만한 자식을 낳겠습니까? 태내 교육부 터 가정교육까지 모두 없으니 제가 생지(生知; 生而之知. 배우지 않아도 앎)의 바탕이 아닌 바에야 맹모(孟母)의 삼천(三遷) 하시던 교육이 없다면 무슨 사람이 되겠소? 그러나 재상도 그 자제요 관찰·군수도 그 자제니 국가의 정치가 무엇인지, 법률이 무엇인지 어찌 알겠소? 우리 비록 여자나 무식을 면치 못함을 항상 한탄해 왔는데, 다행히 오늘 여러분 고명하신 부인께서 왕림하여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니 대단히 기꺼운 일이올시다.”
“변변치 못한 구변이나 내 먼저 말하겠습니다. 우리 대한의 정계가 부패한 것은 학문이 없는 까닭이요, 민족의 부패함도 학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여자도 학문이 없어 기천 년 금수 대우를 받았으니, 우리나라에도 제일 급한 것이 학문이요 우리 여자들에게도 제일 급한 것이 학문입니다. 그러니 내 학문 말씀을 먼저 하지요. 우리 이천만 민족 중에 일천만 남자들은 응당 고명한 학교를 졸업하여 정치·법률·군제·농·상·공 등 만 가지 사업이 족하겠지마는, 우리 일천만 여자들은 학문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고 남자만 의지하여 먹고 입으려 하니 국세가 어찌 빈약치 않겠습니까? 옛말에 백짓장도 맞들어야 가볍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일천만 여자도 일천만 남자의 사업을 백짓장과 같이 거들었으면 백 년에 할 일을 오십 년에 했을 것이요, 십 년에 할 일을 다섯 해면 했을 것입니다. 그리 되면 그 이익이 막대하여 나라의 독립도 거기 있고 인민의 자유도 거기 있었겠지요.
세계 문명국 사람들은 남녀의 학문과 기예가 차등이 없고, 여자가 남자보다 해산하는 재주 한 가지가 더 있다 한답니다. 혹 전쟁이 있어 남자가 다 죽어도 겨우 절반만 죽은 것이라 하니, 여자들이 창법 검술까지 능했음을 가히 알겠습디다.
사람마다 대성인 공부자(孔夫子)가 아니거든 어찌 처음 날 때부터 알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불란서 파리대학교에서 토론회가 열렸는데, 가편은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면 금수와 같다 하고, 부편은 사람이 천생 한 성질이니 비록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 노릇을 한다 하여 서로 자기편이 옳다고 경쟁을 벌였답니다. 그러나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하더니, 학생들이 시험을 해보려고 부모 없는 아이들을 깊은 산속 문 하나만 뚫린 집에 데리고 들어가 길렀더랍니다. 그리고 칠팔 년이 된 후에 그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왔지요. 그런데 그 아이들 평생 사람 많은 것을 보지 못하다가 육칠 층 양옥에 사람이 꽉 찬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 하나는 꼭고댁꼭고댁 하고 하나는 끼익끼익 하더랍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제 집에 아무것도 없고 닭과 돼지만 있었는데, 닭이 놀라면 꼭고댁 하고 돼지가 놀라면 끼익끼익 하므로 들은 대로 소리를 낸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닭과 돼지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학생들은 이것을 본 후에 사람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금수와 다름없음을 깨달아 가편이 이겼다 하니, 이로 보건대 우리 여자가 그와 다를 게 무엇이오? 일용범절에 여간 안다는 것이 저 아이의 꼭고댁·끼익보다 얼마나 낫소이까? 우리 여자가 기천 년을 비참한 처지에 있었으니 이렇고서야 자유권이니 자강력이니 하는 것이 세상에 있는 줄이나 알겠소? 일생에 생사고락이 다 남자 압제 아래 있어, 말하는 제웅(짚으로 만든 사람 형상)과 숨쉬는 송장을 면치 못하니 옛 성인의 법제가 어찌 이러하겠소.
우리나라 남자들이 아무리 정치가 밝다 하나 여자에게는 대단히 악한 짓을 많이 하였고, 법률이 밝다 하나 여자에게는 대단히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우리는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말할 것도 없지만, 후생이나 교육을 잘 하여야 할 터인데 권리 있는 남자들은 꿈도 깨지 못하니 답답하오. 남자들 마음에는 아들만 귀하고 딸은 귀치 아니한지 한 치라도 귀한 생각이 있으면 사지오관 멀쩡한 자식을 어찌 차마 금수와 같이 길러 이 같은 고해에 빠지게 하는 것이오? 그 아들 가르치는 법도 별수는 없습니다. ‘사략통감(史略通鑑)’ 을 일등 교과서로 삼으니 자국 정신은 간 데 없고 중국 혼만 길러서, 좌전(左傳)이니 강목(綱目)이니 하여 남의 나라 기천 년 흥망성쇠만 의논하고 내 나라 빈부강약은 꿈도 꾸지 않다가 오늘 이 지경을 당하였소.
이태리국 역바다산에 올차학이라는 구멍이 있어 바닷물과 통하였는데, 홀연 산이 무너져 구멍 어구가 막히니 그 속이 캄캄하여 본래 있던 고기들이 나오지 못하고 수백 년을 생장하여 눈이 있으나 쓸 곳이 없었더랍니다. 어구의 막혔던 흙이 해마다 바닷물에 패어 도로 열리자, 밖의 고기가 들어와 수없이 잡아먹는데도 그 안에 있던 고기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도 저 해하려는 것을 전연 몰랐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밀려 어구 밖을 나왔으나 못 보던 눈이 졸지에 태양 빛을 보니 현기가 나며 정신이 어릿어릿하였다 합니다. 그와 같이 대문·중문 꽉꽉 닫고 밖에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살던 우리나라 교육은 올차학 교육이라 할 만하니, 그 교육을 받은 남자들이 무슨 정신으로 우리 정치를 생각하겠소? 우리 여자의 말이 쓸데없는 듯하나 자국의 정신으로 하는 말이니, 오히려 만국공사의 헛담판보다 낫습니다. 여러분 부인들은 대한 여자 교육계의 별방침을 연구하시오.”
“여보, 설헌 씨는 학문 설명을 자세히 하셨으나 그 성질과 형편이 그래도 미진한 곳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소위 무슨 변에 무슨 자, 무슨 아래 무슨 자라는, 옛날 상전으로 알던 중국 글을 폐지할 필요가 있소. 글이라 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정신을 담은 것인데, 우리나라의 소위 한문은 다만 중국의 정신만 실었으니 우리나라 사람이야 평생을 끌고 당긴들 무슨 이익이 있겠소?
그 글은 졸업 기한이 없고 일평생을 읽어도 이태백은 못 되며, 혹 아주 총명한 자가 십 년 이십 년을 읽어서 실재(實才; 글재주가 있는 사람)라, 거벽 (巨擘; 학문 등 전문적인 분야에서 남달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게 되면 눈앞에 영웅이 없소. 그 사람더러 정치를 물으면 모른다, 법률을 물으면 모른다, 철학 화학 이화학을 물으면 모르노라, 농학 상학 공학을 물으면 모르노라 할 뿐이오. 그러면 우리 대종교 공부자 도학의 성질은 어떠하냐 묻게 되면, 그 신성하신 진리는 모르고 다만 아는 것이 공자님은 꿇어 앉으셨지, 공자님은 광수의(廣袖衣)를 입으셨지 하며 가장 도통한 듯 여기니, 광수의만 입고 꿇어만 앉았으면 사람마다 천만 년 종교 부자가 되겠습니까?
공자님은 춤도 추시고, 노래도 하시고, 풍류도 하시고, 선배도 되시고, 문장도 되시고, 장수 천자도 가히 되실 신성하신 분인데, 어찌하여 속은 컴컴하고 외양만 번주그레한 위인들이 광수의만 입고 꿇어만 앉아 공자님 도학이 이뿐이라 하여 고담준론(高談峻論; 뜻이 높고 바르며 엄숙하고 날카로운 말)을 하는 것인지요. 또 이렇게 하여야 집을 보존하고 임금을 섬긴다 하여 자기 자손뿐 아니라 남의 자제까지 골생원님이 되게 하니, 그런 자들은 종교에 난적(亂賊)이요 교육에 공적(公敵)이라 공자님께서 대단히 욕보셨소. 설사 공자님이 생존하셨을지라도 오히려 북을 올려 그자들을 벌하셨을 것입니다.
대체 글을 무엇에 쓰자고 읽소? 사리를 통하려고 읽는 것인데 내 나라 지리와 역사를 모르고서 제갈량전과 비사맥전을 천만 번이나 읽은 들 비참한 지경을 면하겠소? 일본 학교 교과서를 보시오. 소학교 교과는 것은 아예 대한이라 청국이라는 말도 없이 다만 자국 인물이 어떠하며 자국 지리가 어떠하다 하여 자국 정신이 굳은 후에 비로소 만국 역사와 만국 지리를 가르치니, 남녀 할 것 없이 자국의 보통 지식 없는 자가 없어 오늘날 저러한 큰 세력을 얻어 나라의 영광을 내었소.
우리나라 남자들은 거룩하고 고명한 학문이 있는 듯하나, 우리 여자사회에야 그 썩고 냄새나는 글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오? 남자들도 응당 귀도 있고 눈도 있을 것이니 타국 남자와 같이 학문에 힘쓸 것이려니와, 우리 여자도 타국 여자와 같이 지식이 있어야 우리 대한 삼천리 강토도 보전하고 누백 년 금수도 면할 것이오. 지식을 넓히려면 어렵고 어러워 십 년 이십 년을 배워도 천치를 면치 못할 학문은 쓸데가 없소. 불가불 자국 교과에 힘써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니오, 우리나라가 가뜩이나 무식한데 그나마 한문도 없어지면 수모 세계를 만들려는 것이오? 수모란 것은 눈이 없이 새우를 따라다니면서 새우 눈을 제 눈같이 아니, 수모 세계가 되면 새우는 어디 있겠소? 아니 될 말이오. 졸지에 한문을 없애고 국문만 힘쓰면 무슨 별지식이 나리까? 나도 한문을 좋다 하는 것은 아니나, 요순 이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나라를 잘 다스리고 온 나라를 편안케 함)하는 법과 수신제가(修身齊家; 몸과 마음을 닦고 집안을 다스림)하는 천사만사가 모두 한문에 있으니 졸지에 학문을 없애고 국문만 쓰면 비유컨대 유리창을 떼어 버리고 흙벽 치는 셈이오. 국문은 우리나라 세종대왕께서 만드실 때 그 공로가 대단하셨소. 사신을 여러 번 중국에 보내어 그 성음 이치를 알아다가 자모음을 만드시니, 반절 (反切)이 그것이오.
우리 세종대왕 성덕은 다 말씀할 수 없거니와, 반절 몇 줄에 나라 돈도 많이 들었소. 그렇건마는 백성들은 죽도록 한문자만 숭상하고 국문은 버려두어서, 암글이라 하여 부인이나 천인이 배우되 반만 깨치면 다시 읽을 것이 없으니 보는 것은 다만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뿐이오. 춘향전을 보면 정치를 알겠소? 심청전을 보고 법률을 알겠소? 홍길동전을 보아 도덕을 알겠소? 말하건대 춘향전은 음탕 교과서요, 심청전은 처량 교과서요, 홍길동전은 허황 교과서요. 국민을 음탕 교과로 가르치면 어찌 풍속이 아름다우며, 처량 교과로 가르치면 무슨 발전과 희망이 있으며, 허황 고과서로 가르치면 어찌 정대한 기상이 있겠소? 우리나라 난봉 남자와 음탕한 여자의 제반 악징(惡徵; 흉조)이다 이에서나니 그 영향이 어떠하오?
춘향전을 누가 가르쳤나, 심청전을 누가 배우랬나, 홍길동전을 누가 읽으랬나, 다 제게 달렸지 할 터이나, 이것이 가르친 것보다 더하지요. 휘문의숙 같은 수층 양옥과 보성학교 같은 너른 교정에 칠판 괘종 책상 걸상을 벌여 놓고 고명한 교사를 월급 주어 가르치는 것보다 더 심하오. 그것은 구역과 시간이나 있겠지만 이것은 구역도 없고 시간도 없이 전국 남녀들이 자유로 틈틈이 보고 곳곳이 읽으니, 그 좋은 몇 백만 청년을 음탕하고 처량하고 허황한 구멍에 쓸어 묻는단 말이오.
그나 그뿐이오? 혹 기도하면 아이를 낳는다, 혹 산신이 강림하역 복을 준다, 혹 면례를 잘하여 부귀를 얻는다, 혹 불공하여 재액을 막았다, 혹 돌구멍에서 용마가 났다, 혹 신선이 학을 타고 논다, 혹 최판관이 붓을 들고 앉았다 하는 괴괴망측한 말을 다 국문으로 기록하여 출판한 책도 많고 세를 받고 빌려 주는 책도 많아 각처에 없는 집이 없으니 평생을 보아도 다 못 볼 것이오.
그 책을 나도 여간 보았지만 좋은 종이에 주옥같은 글씨로 혹 이삼 권 혹 수십여 권 되는 것이 많고 백 권 내외 되는 것도 있으니, 그 자본은 적으며 그 세월은 얼마나 허비하였겠소 백해무익한 그 책을 값을 주고 사며 세를 주고 얻어 보니 그 돈은 헛돈이 아니오? 국문 폐단은 그러하지만 지금 금운 씨의 말과 같이 한문을 전폐하고 국문만 쓴다면 괴악망측한 소설이 제자백가(諸子百家; 춘추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가 되겠소? 나도 항상 말하기를 자국정신을 보존하려면 국문을 써야 되겠다 하지마는 그 방법은 졸지에 계획할 수 없습니다.
가령 남의 큰 집에 들었다가 그 집이 본래 남의 집이라 믿음성이 없다 하고 며나 내 집을 지으려면, 한편으로 차차 재목을 준비하고 목수 석수를 불러 시 역(始役; 토목이나 건축 따위의 공사를 시작함)할 때 먼저 배산임수 좋은 곳에 터를 닦아 모월 모일 모시에 입주하고, 일대 문장에게 상량문(上樑文; 상량식을 할 때에 축복하는 글)을 받아 수십 척 들보를 높이 얹고 정당 몇 간, 침실 몇 간, 행랑 몇 간을 예산대로 세워 방 다락 조밀하고 도배장판도 꼼꼼히 해야 하오. 그런데 우리나라 효자 열녀의 좋은 말씀을 명필로 기록하여 여기저기 붙이고, 나도 내 집 사랑한다는 대자 현판을 정당에 높이 단 연후 세간을 옮겨다가 쌓을 데 쌓고 놓을 데 놓아 부지깽이 한 개라도 빠짐이 없어야 이사한 해가 없는 것이니, 만일 옛집을 남의 집 이라 하여 졸지에 몸만 나오든지 세간을 한데 내어놓든지 하면 어디로 가자는 말이오?
우리나라 국문은 좋은 글이나 손보지 않은 재목과 같으니, 만일 한문을 버리고 국문만 쓰려면 한문에 있는 천만사와 천만법을 국문으로 번역하여 빠지거나 실수한 것이 없은 연후에 서서히 해야 하오. 그렇게 한문을 폐하여 중국 사람을 돌려주든지 우리가 휴지로 쓰든지 하면 그제야 국문을 가히 글이라 할 것이니, 이 일을 예산한즉 오십 년 가량은 지나야 성공하겠소.
만일 졸지에 한문을 없앤다면 남의 집이라고 몸만 나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남의 집은 주인이 있어 혹 내어놓으라고 독촉도 하려니와 한문이야 누가 내어놓으라는 말이 있소? 서서히 형편을 보아 폐지함이 좋을 것이오. 국문만 쓴다 해도 옛날 보던 춘향전이니 길동전이니 심청 전이니 그 외에 여러 가지 음담패설을 다 엄금하여야 국문에 영향이 정대하고 광명하지, 그렇지 못하면 수천 년 숭상하던 한문만 잃어버릴 것이오. 이렇게 내 말대로 한다면 정대한 국문만 쓴다 해도 누가 편리치 않다 하겠소?
가령 한문의 부자군신이 국문의 부자군신과 경중이 있소? 국문의 백냥 천 냥이 한문의 백 냥 천 냥과 다소가 있소? 국문으로 패독산(敗毒散; 감기와 몸살을 다스리는 약) 방문을 내어도 매일반이요, 국문으로 삼해주(三亥酒) 방법을 빙 거(憑據; 대어서 사실을 증명할 만한 증거)하여도 취하기는 한 모양이오. 국문으로 욕설하면 시비를 않겠소? 한문으로 칭찬하면 더 좋아하겠소? 국문의 호랑이도 무섭고, 국문의 원앙새도 어여쁠 것이오.
문부 관리들 참 딱한 것이, 국문은 쓰든지 안 쓰든지 그 잡담 소설이나 금하였으면 좋겠소. 그것 발매하는 자들은 투전 장사나 다름없으니, 투전은 재물이나 상하겠지만 음담 소설은 정신조차 버리오. 문부관리들 참으로 답답하오. 청년 남녀의 정신 잃는 것을 어찌 차마 앉아 보기만 한다는 것이오. 학무국은 무슨 일들을 하며, 편집국은 무슨 일들 하는지, 저러한 관리를 믿다가는 배꼽에 노송나무가 나겠소. 우리 여자 사회가 단체하여 문부 관리에게 질문 한번 하여 봅시다.
여보, 사회단체가 그리 용이하오? 우리나라 백 년 이하 각항 단체를 내 대강 말하오리다. 관인 사회는 말할 것이 없거니와 종교 사회로 말하더라도 물론 어느 나라라고 종교 없이 살겠소? 야만 부락의 코끼리에게 절하는 것과, 태양에게 비는 것과, 불과 물을 위하는 것을 웃기는 웃거니와, 그 진리를 연구하면 그렇다 해도 괴이할 것은 없소. 만일 다수한 국민이 겁내는 것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고 존칭할 것도 없으면 어찌 국민의 질서가 있겠소? 약육강식하는 금수 세계만도 못할 것이오.
그런고로 태서(泰西) 정치가에서 남의 나라의 강약허실을 살피려면 먼저 그 나라 종교 성질을 본다 하니 그 말이 유리하오. 만일 종교에 의지할 바 없으면 비록 인물이 번성하고 토지가 강대한 나라로 군부에 대포가 가득하고 탁치에 금전이 가득하고 공부에 기재가 가득할지라도 수백 년 전 남미 인종과 다름없을 것이오.
동서양 종교 수효와 범위를 말씀하건대 회교 희랍교 토숙탄교 천주교 기독교 석가교와 그 외에 여러 교가 각각 범위를 넓혀 세계에 세력이 대포 확장하고 있소. 그리하여 저 교는 그루다, 이 교는 옳다 하여 경쟁하는 세력이 대포 장창보다 맹렬하니, 그 중에 망하는 나라도 많고 흥하는 사람 많소.
우리 동양 제일 종교는 세계의 유일무이하고 대성 지성하신 공부자 아니시오? 그 말씀에 정대한 부자 군신 부부 형제 붕우에 일용 상행하는 일을 의론하사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 되는 도리를 가르치시지요. 하여 그 성덕이 거룩하시고 융성하시며 향념하시는 마음이 일광과 같아 귀천남녀 없이 다 비추이건마는, 우리나라는 범위를 좁혀서 남자만 종교를 알지 여자는 모르고, 귀인만 종교를 알지 천인은 모르오. 대성전(大成殿)에 제관 싸움이나 하고 시골 향교에 재임 (齋任; 성균관이나 향겨에서 먹고 자고 하던 유생으로서 그 안의 일을 맡아 보던 사람)이나 팔아먹고 상사람들은 향교 추렴이나 물으니 공자님 의도하는 것이 무엇이오?
도포나 입고 상투나 틀고 꿇어앉아서 마음이 어떠한 것이라, 성품이 어떠한 것이라 하며 진리는 모르고 주워들은 풍월을 지껄이면서 이만하면 수신제가도 자족하지, 치국평천하도 자족하지, 세상이 한심하여 나 같은 도학군자를 쓰지를 않지, 백 가지로 개탄만 하오. 혹 세도 재상에게 소개하여 좨주(조선 때 성균관의 한 벼슬) 찬선으로 초선(抄選; 의정태신과 이조 당상이 모여서 경연관이나 특정 벼슬의 적임자를 뽑던 일)이나 되면 공자님이 당시의 자기인 줄 알고 천하대세도 모르고 척양(斥洋)합시다, 척외(斥外)합시다, 눈치를 보아 가며 한두 번 명예를 얻어 시골 선배의 칭찬이나 듣는 것이 대욕소관(大慾所關; 큰 욕심과 관계되는 바가 있음)이지요.
옛적 정자산의 외교 수단을 공자님도 칭찬하셨으니 공자님은 척화를 모르시오. 척화도 형편대로 하는 것이지 붓끝으로만 척화 척화 하면 척화가 되오? 또 고상하다 자칭하는 자는 당초 사직으로 장기를 삼아 나라가 내게 무슨 상관있나? 백성이 내게 무슨 이득이 있나? 독선기신(獨善其身; 남을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 한 몸의 처신만을 온전하게 함)이 제일이지, 하는 것이오. 혹 총명한 사람이 각국 문명을 흠모하여 정치가 어떠하다, 법률이 어떠하다; 교육이 어떠하다, 말을 하게 되면 자세히 듣지는 아니하고 고담준론으로 아무 집 자식도 버렸다, 그 조상도 불쌍하다 하며 아무개와 상종을 말라, 그 말을 들으려면 내 눈앞에 보이지 말라 하니, 우리 이천만 인이 다 그 사람의 제자 되면 나라꼴은 잘되겠지요.
그만도 못한 시골고라리(어리석은 시골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말) 사회는 더구나 장관이지요. 공자님 성씨가 누구신지, 휘자(諱字; 돌아가신 높은 어른의 생존했을 때의 이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인류들이 향교와 서원은 자기들의 밥자리로 알고 있소. 사돈 여보게 출표하러 가세, 생질(甥姪; 누이의 아들) 너도 술 먹으러 오너라, 돼지나 잡았는지 개장국도 꽤 먹겠네, 수복아 추렴통문 놓아라, 고직아 별하기 닦아라, 저마다 야단이오. 아무가 문필은 똑똑하지마는 지체가 나빠 봉향가음 못 되지, 아무는 무식하지마는 세력을 생각하면 대축(大祝)이야 갈 데 있나, 명륜당(明I侖堂)이 견고하여 술주정 좀 하여도 무너질 바 없지, 교궁(校宮; 각 지방에 있는 문묘)은 이렇게 위하여야 종교를 밝히지, 말들도 많소. 아무 골 향교에는 학교를 설시(設施; 시설)하였다 하고, 아무 골 향교 전답을 학교에 붙였다하니, 그 골에는 사람의 새끼 같은 것이 하나 없어 그러한 변이 어디 또 있나? 아무 골 향족이 명윤당에 앉았다니 그 마룻장은 대패질을 하여라, 아무 집 일명이 색장을 붙었다니 그 재판을 수세미질이나 하여라, 하여 종교라는 종 자는 무슨 종 자며 교 자는 무슨 교 자인지 착착 접어 먼지 속에 파묻고, 싸우나니 양반이요 다투나니 재물이오. 이것이 우리 신성하신 대종교라 하오. 한심하고 통곡할 만도 하오. 종교가 이렇듯 부패하니 국세가 어찌 강성 하겠소?
학교와 서원 성질을 말하리다. 서원은 소학교 자격이요, 향교는 중학교 자격이요, 태학은 대학교 자격이라. 서원은 선현 화상을 봉안하여 소학동자로 하여금 자국 인물을 기넘케 함이요, 향교에는 대성인 위패를 봉안하여 중학 학생으로 하여금 종교를 경앙(敬仰; 존경하여 우러러 봄)케 함이요, 태학에는 예악 문물을 더 융성히 하여 태학 학생으로 하여금 종교 사상이 더욱 견고케 함이니, 어찌 다만 제사말 소중하다 하여 사당집과 일반으로 돌려보내리오? 교육을 주장하는 고로 향교와 서원을 당초에 설시하였고, 종교를 귀중히 하는 고로 대성인과 명현을 뫼셨고, 성현을 뫼신 고로 제례를 행하는 것이오. 그리하여 교육과 종교는 주체가 되고 제사는 객체가 되거늘, 근래는 주체는 없어지고 객체만 승상하니 어찌 열성조(列聖朝)의 설시하신 본의라 하리요?
제사만 위한다 할진대 태모(太廟; 종묘)도 한 곳뿐이거늘, 아무리 성인을 존봉(尊奉; 존경하여 높이 받듬)할지라도 어찌 삼백육십 여 군의 골골마다 향화(香火; 향불, 제사)를 받들리까? 저 무식한 자들이 교육과 종교는 버리고 제사만 중히 여긴다 한들 성현의 마음이 어찌 편안하시리까?
종교에야 어찌 귀천과 남녀가 다르겠소? 지금이라도 종교를 위하려면 성경현전(聖經賢傳; 성현들이 지은 여러 가지 책)을 알아보기 쉽도록 국문으로 번역하여 거리거리 연설하고, 성묘와 서원에 무애희 농용하며, 가령 제사로 말할지라도 귀인은 귀인 예복으로 참사하고, 천인은 천인의관으로 참사하고, 여자는 여자 의복으로 참사하여, 너도 공자님 제자, 나도 공자님 제자 되기 일반이라 하면 종교 범위도 넓고 사회단체도 굳으리다. 또 사회의 폐습을 말하자면 확실한 단체는 못 보겠습디다. 상업 사회는 에누리 사회요, 공장 사회는 날림 사회요, 농업 사회는 야매 사회라, 하나도 진실하고 기묘하여 외국 문명을 당할 것은 없으니 무슨 단체가 되겠소? 근래 신교육 사회는 구교육 사회보다는 낫다 하나 다 거기서 거기요.
관공립은 화욕학교라 실상은 없고 문구뿐이요, 각처 사립은 단명학교라 기본이 없어! 돌아가며 폐지할 뿐이오. 아무 학교든지 그 중에 열심히 한다는 교장이니 찬성장이니 하는 임원더러 묻되, 이 학교에 제갈량과 이순신과 비사맥과 격란사돈 같은 인재를 교육하여 일후의 국가 대사를 경륜하려오 하면 열에 한둘도 없소. 또 묻기를 이 학교에 인재 성취는 이 다음 일이고 교육 사회에 명예나 취하려하오 하면 열에 칠팔이 더 되니, 그 성의가 그러하고야 어찌 장구히 유지하겠소? 교원 강사도 한가하고 느긋하게 학교 출입을 아니 하고 시간을 지키어 왕래 한다니 그 열심은 거룩하오만, 그것이 공익을 위함인지, 명예를 위함인지, 월급을 위함인지 의심스립소. 명예도 아니요, 월급도 아니요, 실로 공익만 위한다 하는 자는 몇이나 되겠소?
공사관립하고 여러 학생들에게 묻되, 학문을 힘써 일후에 벼슬살이나 일신쾌락을 희망하느냐 국가에 몸을 바치는 정신 얻기를 주의하느냐 하면 대중소하고 학교 몇 만 명 학도 중에 국가정신이라고 대답하는 자 몇몇이나 되겠소? 또 여자교육회니 여학교니 하는 것도 권리 없고 자본 없는 부인에게만 맡겨 두니 어찌 흥왕하리요? 아무 사회나 이익만 위하고, 좀 낫다는 자는 명예만 위하니, 진실한 성심으로 나라를 위하여 이것을 한다든가 백성을 위하여 이것을 한다는 자 역시 몇이나 되겠소?
이렇게 교육 교육 할지라도 십 년 이십 년에 영향을 알리니 그 중에도 몇 사람이야 열심 있고 성의 있어 시사를 통곡할 자가 있겠지만 단체 효력을 오히려 못 보거든, 하물며 우리 여자에 무슨 단체가 조직 되겠소? 아직 가정 여러 자녀를 잘 가르치고 정분 있는 여자들에게 서로 권고하여 십 인이 모이고 이십 인이 모여 차차 단정히 설립하여야 사회든지 교육이든지 하여 보지, 졸지에 몇 백 명 몇 천 명을 모아도 실효가 없어 일상 남자 사회만 못하리다.”
“그러하오만 세상 일이 어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리까? 여보, 우리 여자 몇몇이 지껄이는 것이 풀벌레 같을지라도 몇 사람이 주창하고 몇 사람이 권고하면 아니 될 일이 어디 있소? 석 달 장마에 한 점 볕이 갤 장본(張本; 어떤 일이 크게 되는 근원)이요, 몇 달 가물에 한 조각구름이 비 올 장본이니, 우리 몇 사람의 말로 천만 인 사회가 될지 누가 알겠소?
청국 명사 양계초(梁啓超) 씨가 말씀하였으되, 사람이 일을 하려면 이기려다가 패함도 있거니와 패할까 염려하여 애당초 하지 않으면 이는 처음부터 패한 사람이라 하니, 오늘 시작하여 내일 성공할 일이 우리 팔자에 왜 있겠소? 그러나 우리가 우쭐거려야 우리 자식 손자들이나 행복을 누리지요. 우리나라 사람을 부패하다, 무식하다 조롱만 한다고 똑똑하고 눈치 빠른 남의 나라 사람이 우리에게 소용 있겠소?
우리나라 삼백 년 이전이야 어떠한 정치며 어떠한 문물이오? 일본이 지금 아무리 문명하다 하여도 범백제도를 우리나라에서 많이 배워갔소. 그 나라 국문도 우리나라 왕인(王仁) 씨가 지은 것이니, 근일 우리 나라가 부패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단군 기자 이후로 수천 년 이래에 어떠한 민족이오?
철학가 말에, 편안한 것이 위태한 근본이라 하니, 우리나라 사람이 기백 년 편안하였으니 한 번 위태한 일이 어찌 없겠소? 또 말하였으되, 무식은 유식의 근원이라 하였으니 우리나라 사람이 오래 무식하였으니 한 번 유식하지 아니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가령 남의 집에 가보고 그 집 사람들은 음식도 잘하더라, 의복도 잘 하더라, 내 집에서는 의복 음식 솜씨가 저러하지 못하니 무엇에 쓸꼬 하면서 가속을 박대하면 남의 좋은 의복 음식이 내게 무슨 상관 있겠소? 차라리 저 음식은 어며하니 좋지 아니하다, 이 의복은 어떠하니 좋지 아니하다 하여 제도를 자세히 가르쳐서 남의 것과 같이하는 것만 못하니, 부질없이 내 집 안사람만 불만스러워하면 기도가 바로잡힐 리가 있으리까?
소학에 가로되, 좋은 사람이 없다 함은 덕 있는 말이 아니라 하였으니, 내 나라 사람을 무식하다고 능멸하여 권고 한마디 없으면 유식하신 매경 씨만 홀로 살으시려오? 열심을 잃지 말고 어서어서 잡지도 발간하고 교과서도 지어서 우리 일천만 여자 동포에게 돌립시다.
우리 여자의 마음이 이러하면 남자도 응당 귀가 있겠지. 십 년 이십 년을 멀다 마오. 산림(山林; 벼슬하지 않은 숨은 선비) 어른이 연설꾼 아니 될 지 누가 알며, 향교 재임이 체조 교사 아니 될지 누가 알겠소?
지금은 범백 권리가 다 남자에게 있다 하나 영원한 권리는 우리 여자가 차지합시다. 매경 씨 말씀에, 자녀를 교육하자 함이 진리를 아시는 일이오. 우리 여자만 합심하고 자녀를 잘 교육하면 제 이세의 문명은 우리 사업이라 할 수 있소.
자식 기르는 방법을 대강 말하오리다. 자식을 낳은 후에 가르칠 뿐 아니라 탯속에서부터 가르친다 하였소. ‘예기’ 에 태육법을 자세히 말하였으되, 부인이 잉태하면 돗자리가 바르지 않거든 앉지 아니하며, 벤 것이 바르지 않거든 먹지 말라 하였소. 이는 그 앉는 돗, 먹는 음식이 탯덩이에 무슨 상관이 있겠소마는 바른 도리로만 행하여 마음에 잊지 말라 하는 것이오. 의원의 말에도 자식 밴 부인에게 잡것을 먹지 말라 하고, 음식의 차고 더운 것을 평균케 하고, 배를 항상 덥게 하고, 해산달이 되거든 약간 노동하여야 순산한다 하였소.
뱃속에서도 이렇게 조심하거든 나온 후에야 어찌 범연히 양육하오리까? 제가 비록 지각이 없을 때라도 어찌 그 앞에서 터럭만치 그른 일을 행하겠소? 밥 먹는 법, 잠자는 법, 말하는 법, 걸음 걷는 법 일동 일정을 가르치되, 속이지 아니함을 가르쳐 정 대한 성품을 양육한다면 대인 군자가 어찌하여 되지 못하리까?
맹자님 모친께서 맹자님 기르실 때에, 마침 동편 이웃집에서 돼지를 잡는 것을 보고 맹자께서 물으셨소. 저 돼지는 어찌하여 잡습니까? 맹모가 장난으로 ‘너를 먹이려고 잡는다’ 하셨는데, 즉시 후회하시고는 어린아이에게 속이는 법을 가르쳤다며 곧 그 고기를 사다가 먹이신 일이 있지요. 또 산 밑에서 사실 때 맹자가 점점 장난이 심해져 상두꾼(상여꾼) 흉내를 내시니, 맹모가 ‘이곳이 아이 기를 곳이 못 된다’ 하시고 저자 근처로 이사를 하였지요. 그런데 맹자께서 또 물건 매매하는 흉내를 내시니 맹모가 또 집을 떠나 학궁(學宮) 곁에 거하셨소. 그제야 맹자는 예절 있는 흉내를 내시는지라 맹모가 ‘이는 참 자식 기를 곳이라’ 하시고는 맹자를 가르쳐 만세 아성이 되도록 하셨소. 한 아들을 가
르쳐 억조창생에게 무궁한 도학이 있게 하시니 교육이란 것이 어떠하오? 만일 맹자께서 상두나 메시고 물건이나 팔러 다니셨다면 오늘날 맹자님을 누가 알겠소?
‘비유요지’ 라 하는 책에서 말한 것도 있소. 서양에 한 부인이 그 아들을 잘 교육하여 장성하게 한 후, 아들이 나가게 되었지요. 그 부인이 아들에게 부탁하되, ‘너는 어디 가든지 남을 속이지 아니하기로 공부하라.’ 하였소. 그 아들이 대답하고 지화 몇 백 원을 옷깃 속에 넣고 가다가 중로(中路; 오가는 길의 중간)에서 도적을 만났는데, 그 도적 이 ‘너는 무슨 업을 하며 무슨 물건을 몸에 지녔느냐’ 묻는 것이었소. 그 아들이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니 지화 몇 백 원이 옷깃 속에 있노라’ 대답하길래, 도적이 그 정직함을 괴히 여겨 뒤져 보니 과연 그 돈이 있는 것이오. 도적이 당초에 깊이 감추고 숨기지 않은 이유를 물으니 아들이 대답하였지요. ‘내 모친이 남을 속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어찌 재물을 위하여 친교를 어기리요.’ 이 말에 도적들이 탄복하여 ‘너는 효성 있는 사람이라. 우리 같은 자는 어찌 인류라 하리요.’ 하였다 하오. 그러고는 그 지화를 다시 옷깃에 넣어 주고 그 후로는 다시 도적질도 아니 하였다 하였소.
그 부인이 자기 아들을 잘 교육하여 남의 자식까지 도적의 행위를 끊게 하니, 교육이라는 것이 어떠하오?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씨도 과부의 아들로 자랄 때 집이 심히 가난하여 서책과 필묵이 없었지만, 그 모친이 갈대로 땅을 그어 글을 가르쳐 만고문장이 되었소. 우리나라 퇴계 이선생도 어릴 때 그 모친이 말씀하되 ‘내 일찍 과부 되어 너희 형제만 있으니 공부를 잘하라. 세상 사람이 과부의 자식은 사귀지 아니한다니 너희는 그 근심을 면하게 하라.’ 하였고, 평상시에 무슨 물건을 보면 이치를 가르치며 아무 일이든 당하면 사리를 분석하여 순순히 교훈하여 동방공자가 되셨으니, 교육이라는 것이 어떠하오?
예로부터 교육은 어머니께 받는 일이 많으니 우리도 자식을 그런 성력(誡力; 정성과 힘)과 그런 방법으로 교육하였으면 그 영향이 어떠하겠소? 우리 여자 사회에 큰 사업이 이에서 더한 일이 있겠소? 여러분 여자들, 지금 남자와 지금 여자를 조롱 말고 이 다음 남자와 이 다음 여자나 교육 좀 잘 하여 봅시다.”
“그 말씀 대단히 좋소. 자식 기르는 법과 가르치는 보람을 많이 말씀하셨으나, 자식 사랑하는 이유가 미진하므로 여러분에게 그 진리를 말씀하오리다.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사랑한다 하나 실상은 자기 일신을 사랑함이오. 자식을 낳고 좋아하는 마음을 보면 필경은 ‘저 자식이 있으니 내 몸이 의탁할 곳이 있으며, 내 자식이 자라니 내 몸 봉양할 자가 있도다’ 하는 것이오. 또 자식이 병이 들면 근심하고 불행해지는 것을 설워하는 마음을 궁구하면 필경은 ‘내 자식이 병들었으니 누가 나를 봉양하며, 내 자식이 없으니 내가 누구를 의탁하리요’ 하는 것이오. 그 마음이 하나도 자식을 위하는 자가 없고 국가를 위하는 자가 없으니 사람마다 자식 자식 하여도 진리는 실상 모릅디다.
자식의 효도를 받는 것이 어찌 내 몸만 잘 봉양하면 효도라 하겠소? 증자 말씀에 ‘인군을 잘못 섬겨도 효가 아니요, 전장에 용맹이 없어도 효가 아니라.’ 하셨으니, 이 말씀을 생각하면 자식이라는 것이 내 몸만 위하여 난 것이 아니요, 실로 나라를 위하여 생긴 것이니 자식을 공물이라 하여도 합당하오.
혹 모르는 사람은 이 말을 들으면 필경 크게 놀라 말하되, ‘실로 그러할진대 누가 자식 있다고 좋아하며 자식 없다고 설워하리오?’ 할지도 모르오. 청국 강남해 말에 ‘대동 세계에는 자식 못 낳은 여자는 벌이 있다.’ 하더니, 과연 벌하기 전에야 생산하려는 자가 있겠소? 혹 생산하더라도 내 몸은 봉양하여 주지 않고 국가만 위하여 교육을 받으라 하겠소? 이러한 말이 널리 들리면 윤리상에 대단히 불행하겠다 하여 중언부언할 터이지마만, 지금 내 말이 윤리상의 불행함이 아니라 매우 다행하오이다.
자식을 공물루 인정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까닭이 있으니, 가령 우마를 공물(公物; 국가 기관이나 공공 단체에 속하는 물건)이라 하면 농업 가와 상업가에서 우마를 부리지 아니하리까? ‘저 집에 우마가 있으면 내 집에 없어도 관계가 없다’ 고 사람마다 마음이 그러하면 우마가 이미 절종되었을 터이나, 비록 공물이라도 우마가 있어야 농업과 상업에 낭패가 없으니 자식이 공물이더라도 어찌 귀히 여기지 아니하리요? 기왕 자식이 있는 이상에는 공물이라고 교육을 하지 않다가는 참말 윤리에 불행한 일이오.
가령 어부가 동무와 함께 고기를 잡되 남의 그물에 걸린 것이 내 그물에 걸린 것만 못하다 하니, 국가 대사업을 바라는 마음은 같으나 어찌 남의 자식 성취한 것이 내 자식 성취한 것만 하오리까? 그러한즉 불가불 자식을 교육할 것이요, 자식이 나서 나라의 사업을 성취하고 국민에 이익을 끼치면 그 부모는 어찌 영광이 없으리까?
옛날 사파달이라는 땅에 한 노파가 여덟 아들을 낳아서 교육을 잘 시켰는데, 여덟이 다 전장에 나갔다가 죽었다는 것이오. 노파가 살아 돌아오는 사람더러 ‘이번 전장에 승부가 어떠한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전쟁은 이기었으나 노인의 여러 아들은 다 불행하였나이다.’ 대답하는 것이었소. 그런데 노파는 즉시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소. ‘사파달아, 사파달아, 내 너를 위하여 아들 여덟을 낳았도다.’ 하고는 슬퍼하는 빛이 없으니, 그 노파가 참 자식을 공물로 인정하는 사람이라, 생산도 잘하고 교육도 잘하고 영광도 대단하였던 것이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식의 진리를 몇이나 알겠소? 제일 가관인 것은, 본처에 자식이 없으면 첩의 소생이 비록 문장은 이태백이요, 풍채는 두목지요, 사업은 비사맥이라도 서자(庶子)라 하여 버려두고, 정도 없고 눈에도 서투른 남의 자식을 양자로 데려다 아들이라 하는 것이 무슨 일이오?
성인의 법제가 어찌 그같이 인정 없고 각박할 이유가 있으리까? 적서(嫡庶)라는 말씀은 있으나 그래, 적서와는 대단히 다르오. 혼처의 소생이라도 장자 다음에는 다 서자라 하거늘, 우리나라는 남의 본처 소생을 서자라 하면 대단히 뛰겠소. 양자법으로 말할지라도 적서에 자녀가 하나도 없어야 양자를 하거늘, 서자라 바리고 남의 자식을 데려다 아들이라 키우니 하나도 성인의 법제는 아니오. 자식을 부모가 이같이 대우하니 어찌 세상에서 대우를 받겠소?
그 서자이니 얼자이니 하는 사람들 가운데 영웅이 몇몇이며, 문장이 몇몇 이며, 도덕군자가 몇 몇 인지 누가 알겠소? 그 사람도 원통하거니와 나랏일이야 더구나 말할 것이 있소? 남의 나라 사람도 고문이니 보좌니 쓰는 법도 있거든 우리나라 사람에 무엇을 그리 많이 고르는지 모르겠소. 이성호(李星湖)는 적서 등분을 혁파하자, 서북 사람을 통용하자 하여 열심히 의논하였고, 조은당의 부인 김씨는 자제를 경계하되 ‘너희가 서모를 경대(敬待)하지 아니하니 어찌 인사라 하리요?’ 하였고. 아비의 계집은 다 어머니라 하셨나니 이 두 말씀이 몇 백 년 전에 주창하였으니 그 아니 고명하오?
또 남의 후취로 들어가서 전취 소생에게 험히 구는 자 있으니 그것은 무슨 지각이오? 아무리 나의 소생은 아니나 남편의 자식은 분명하니 양자보다야 매우 절실하오. 사람의 전조모와 후조모라 하여 자손의 마음에 후박(두텁게 구는 일과 박하게 구는 일) 이 있으리까? 그렇건마는 몰지각한 후취 부인들은 내 속으로 낳지 않으면 내 자식이 아니라 하여 동네 아이만도 못하고 종의 자식만도 못하게 대우하니 어찌 그리 박정하고 무식하오? 아무리 원수 같은 자식이라도 내 몸이 늙어지면 소생 자식 열보다 나으며, 그 손자로 말할지라도 큰자식의 손자가 소생 손자 열보다 낫지 아니하오?
원수같이 알고 도척같이 알던 그 자식 그 손자가 일후에 만반진수(滿盤珍羞; 상 위에 가득히 차린 귀하고 맛있는 음식)를 차려 놓고, 유세차 효자모 효손모는 감소고우 현비 현조비 모봉 모씨라 하면 아마 혼령이라도 무안하겠지요. 또 자식을 기왕 공물로 인정한다면 내 소생만 공물이요, 전취 소생은 공물이 아니겠소? 아무리 전취 자식이라도 잘 교육하여 국가의 대사업을 성취하면 그 영광이 아마 못생긴 소생 자식보다 얼마 쯤 더 될 것이니, 이 말씀을 우리 여자 사회에 공포하여 그 소위 서자이니 전취 자식이니 하는 악습을 다 개량하여 윤리상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합시다.”
“자식의 진리를 자세히 말씀하셨으나 그 범위는 대단히 넓다고는 못하겠소. 기왕 자식을 공물이라 말씀하셨으면 공물이 많아야 좋겠소, 공물이 적어야 좋겠소? 공물이 많아야 좋다고 한다면 어찌 서자이니 전취 소생이니 그것만 공물이라 하겠소.
비록 종의 자식이나 거지의 자식이라도 우리나라 공물임은 마찬가지거늘, 소위 양반이니 중인이니 상놈이니 서울이니 시골이니 하여 서로 보기를 타국 사람같이 하니 단체가 성립할 날이 어찌 있겠소? 또 서북으로 말할지라도 몇 백 년을 나라 땅에 생장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 사람 중에 재상이 있겠소, 도학군자가 있겠소? 천향(賤鄕; 풍속이 비천한 시골)이라 하여도 그러하니, 그 사람들 중에 진개(眞箇) 재상 재목과 도학 군자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재상의 교육과 군자의 학문이 없음이오. 그런데 몇 백 년 좋은 공물을 다 버리고 쓰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나라가 왕성 하오리까?
이성호 말씀에, ‘반상을 타파하자, 서북을 통용하자.’ 하여 수천 마디 말을 반복 의논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 어찌 한심치 아니하겠소? 평안도의 심의도사 오세양 씨는 그 학문이 우리 동방에 드문 군자라 그 학설과 이설이 대단히 발표하였건마는 서원도 없고 문집도 없이 초목과 같이 썩어진 일이 그 아니 원통하오.
그 정책은 다름 아니라 서북은 인재가 배출하니 기호(畿湖; 경기도와 충청도)와 같이 교육하면 사환(벼슬아치) 권리를 다 빼앗긴다 하니 그러한 좁은 말이 어디 있겠소? 사환이라는 것은 백성을 대표한 자인즉 백성의 지식이 고등한 자라야 참여하나니, 아무쪼록 내 지식을 넓혀서 할 것이지 남의 지식을 막고 나만 못하도록 하면 어찌 천도가 무심하오리까?
철학박사의 말에, ‘차라리 대대로 제 나라 민족의 노예가 될지언정 타국 정부의 보호는 받지 않는다.’ 하였으니, 그 말을 생각하면 이왕의 일이 대단히 잘못되었소.
또 반상으로 말할지라도 그렇게 심한 일이 어디 있겠소? 어찌하다가 한번 상놈이라 패호(牌號; 남들이 붙여 부르는 좋지 못한 별명)가 붙으면 비록 영웅 열사가 있을지라도 자자손손이 상놈이라 하대하니 그 같은 악한 풍속이 어디 있으리까? 그러나 한 번 상사람 된 자는 도저히 인재 나기가 어려우니, 가령 서울 사람이라 해도 그 실상은 태반이나 내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시골 풍속으로 잠깐 말하리다. 그 부모 된 자들이 자식의 나이 칠팔 세만 되면 나무를 하여라, 꼴을 베어라 하여, 초등 교과가 꼬부랑 호미와 낫이요, 중등 교과가 가래와 쇠스랑이요, 대학 교과가 밭 갈기 논 갈기요, 외교 수단이 소 장사 등짐꾼이니, 비록 금옥 같은 바탕이 있을지라도 어찌 저절로 영웅이 되겠소? 결단코 그 중에 주정꾼과 노름꾼의 무수한 협잡배들이 당초에 교육을 받았으면 영웅도 되고 호걸도 되었으리라 생각하오.
혹 그 부모가 소견이 바늘구멍 만해 자식을 동네 생원님 하꼬방에 보내면 그 선생이 처지를 따라 가르치되, ‘너는 시부표책(詩賦表策)하여 무엇 하느냐, 전등신화나 읽어서 아전(관청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 질이나 하여라.’ 하니, 그런 참혹한 일이 어디 있겠소? 입학하던 날부터 장래 목 이 이뿐이요, 선생의 가르침이 이러하니 제갈량 비사맥 같은 바탕이 몇 백만 명이라도 속절없이 전진할 가망이 없겠소. 이는 소위 양반의 죄뿐 아니라 자기가 공부를 우습게보아서 그 지경에 빠진 것이오. 옛날 유명한 송귀봉과 서거정은 남의 집 종의 아들로 일대 도학가가 되었고, 정금남은 광주 관비의 아들로 크게 사업을 이루었으니, 남의 집 종과 외읍 관비보다 더 천한 상놈이 어디 있겠소마는 이
어른들을 누가 감히 존중치 아니하겠소?
그러나 무식한 자들이야 어찌 그러한 사적을 알겠소? 도무지 선지라 선각이라 하는 양반이 교육 아니 한 죄가 대단하오. 물론 어느 나라나 상 중 하등 사회가 없는 것은 아니나, 국가 질서를 유지하려면 불가불 등급이 있어야 문란한 일이 없는 것이오. 그런데 우리나라 경장대신(更張大臣)들이 양반의 폐만 생각하고 양반의 공효(功效; 공을 들인 보람이나 효과)는 생각지 못하여 졸지에 반상 등급을 벽파(劈破; 쪼개어 깨뜨림)하라 하니 누가 상쾌치 아니하겠소마는, 국가 질서의 문란은 양반보다 더 심한 자 많으니 어찌 정치가의 수단이라고 인정하겠소?
지금 형편으로 보면 양반들은 명분 없는 세상에 무슨 일을 조심하리요? 그 행세가 전일 양반만도 못하고 상인들은 ‘요새 양반이 어디 있어. 비록 문장이 된들 무엇 하며, 도학이 있은들 무엇 하나.’ 하여 혹 목불식정(目不識丁; 丁자를 보고도 고무래임을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주 까막눈임을 비유한 밀)하고 준준무식(蠢蠢無識)한 금수 같은 유들이 제 집에서 제 형을 욕하며 제 부모에게 불효하오. 이를 동네 양반들이 말하면 팔뚝을 뽐내며 하는 말이, ‘시방 무슨 양반이 따로 있나? 내 자유권을 왜 상관이 있나? 내 자유권을 무슨 걱정이야?’ 그러다가는 뺨을 칠라, 복장을 지를라 하면서 무수히 욕설을 하나 누가 감히 옳다 그르다 말하겠소?
갑오년 경장대신의 정책이 웬 까닭이오? 양반은 양반대로 두고, 학교 하는 임원도 양반이며, 학도의 부형도 양반이며, 학도도 양반이라 하고, 학도의 자모도 학부인이라 내부인이라 반포하면 전국이 다 양반이 될 일을, 어찌하여 양반을 없이한다 하니 사천 년 전래하던 습관이 졸지에 잘 변하겠소? 나도 양반으로 말하면 친정이나 시집이나 삼한갑족(三韓甲族; 우리나라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이지만, 그것 이 다 쓸데 있소? 우리도 자식을 공물이라 하면 그 소위 서북이니 반상이니 썩고 썩은 말을 다 그만두고 내 나라 청년이면 아무쪼록 교육하여 우리 어렵고 설운 일을 그 어깨에 맡깁시다.”
“어제는 융희 이년 제일 상원이니, 달도 그전과 같이 밝고, 오곡밥도 그전과 같이 달고, 각색 채소도 그전과 같이 맛나건마는 우리 심사는 왜 이리 불편하오?
어젯밤이 참 유명한 밤이오. 우리나라 풍속에 상원일 밤에 꿈을 잘 꾸면 그 해 일 년에 벼슬하는 이는 벼슬을 잘하고, 농사하는 이는 농사를 잘하고, 장사하는 이는 장사를 잘한다 하니, 꿈이라는 것은 제 욕심대로 꾸어서 혹 일 년, 혹 수십 년이라도 필경은 아니 맞는 이유가 없소. 우리 한 노래로 긴 밤새우지 말고, 대한 융희 이년 상원일에 크나 작으나 꿈꾼 것을 하나도 남김 없이 이야기합시다.”
“그 말씀이 매우 좋소. 나는 어젯밤에 대한제국 자주독립할 꿈을 꾸었소. 활멸사라 하는 사회가 있는데 그 사회 중에 두 당파가 있으니, 하나는 자활당이라 하였소. 그 주의인즉, 교육을 확장하고 상공을 연구하여 신공기를 흡수하며 부패 사상을 타파하여, 대포도 무섭지 않고 장창도 두렵지 않아 국가에 몸을 바치는 사업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었소. 그 말에 외국 의뢰도 쓸데없고, 한두 개 영웅이 혹 국권을 만회하여도 쓸데없고, 오직 전국 남녀 청년이 보통 지식이 있어서 자주권을 회복하여야 확실히 완전하다 하여, 학교도 세우며 신서적도 발간하여 남이 미쳤다 하든지 못생겼다 하든지 자주권 회복하기에 골몰하나, 그 당파의 수효는 전 사회의 십분지 삼이오.
또 하나는 자멸당이라 하니 그 주의인즉, 우리나라가 이왕 이 지경에 빠졌으니 제갈공명이 있으면 어찌하며, 격란 사돈이 있으면 무엇하나? 십승지지(十券之地; 난리가 났을 때 피하기 좋다는 옅 군데의 명승지) 어디 있노, 피란이나 갈까 보다, 필경은 세상이 바로잡히면 그 때에야 한림(조선 때, 예문관(藝文館) 검열의 별칭) 직각(조선 때 규장각의 벼슬)을 나 내놓고 누가 하나? 학교는 무엇이야, 우리 마음에는 십 대 생원님으로 죽는대도 자식을 학교에는 보내고 싶지 않다. 소위 신학문이라는 것은 모두 천주학(天主學; 예전에 가톨릭을 달리 이르던 말) 인데 우리네 자식이야 설마 그것이야 배우겠나?
또 물리학이니 화학이니 정치학이니 법률학이니, 다 무엇에 쓰는 것인가? 그것을 모를 때에는 세상이 태평하였네. 요사이 같은 세상일수록 어디 좋은 명당자리나 얻어서 부모의 백골을 잘 면례(緬禮; 무덤을 옮겨서 장사를 다시 지냄)하였으면 자손이 발음(發蔭; 조상의 묏자리를 잘 써서 그 음덕으로 운수가 열리고 복을 받는 일)이나 내릴는지, 우선 기도나 잘 해야 망하기 전에 집안이나 평안하지, 전곡이 썩어지더라도 학교에 보조는 아니 할 테야. 바로 도적놈을 주면 매나 안 맞지, 아무개는 제 집이 어렵다 하면서 학교에 명예 교사를 다닌다지. 남의 자식 가르치기에 어찌 그리 미쳤을까? 글을 읽어라, 수를 놓아라 하는 소리 참 가소롭데. 유식하면 검정 콩알이 안 들어가나? 운수를 어찌해? 아무것도 할 일 없지. 요대로 앉았다가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것이 제일이라 하오. 그 당파의 수효는 십분지 칠이요, 그 회장은 국참정이라는 사람이니, 아무 학회 회장과 흡사하여 얼굴이 퐁후(豊厚)하고(살쩌서 덕성스럽고) 수염이 많고 성품이 순실하여 이 당파도 좇고 저 당파도 좇아 반박이 없이 가부취결(可否取決; 회칙에 따라 의안(議案)의 가부를 결정함)만 물어서 흥하자 하면 흥하고 망하자 하면 망하여 회원의 다수만 점검하오. 그런데 소수한 자활당이 자멸당을 이기지 못하여 혹 권고도 하며, 혹 욕질도 하며, 혹 통곡도 하면서 분주 왕래하되, 몇 번 통상회의니 특별회의니 번번이 동의하다가 부결을 당한지라, 또 국회장에게 무수 애걸하여 마지막 가부회를 독립관에 개설하고 수만 명이 몰려가더이다. 그러니 소위 자멸당도 목석과 금수는 아니라, 자활당의 정대한 언론과 비창한 형용을 보고 서로 기뻐하며 자활주의로 전수가결(全數可決; 회의에 모인 모든 사람이 찬성하여 결정함)되니, 그 여러 회원들이 독립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소.”
“(깔깔 웃으며) 나는 어젯밤에 대한제국이 개명할 꿈을 꾸었소. 전국 사람들이 모두 병이 들었다는데, 혹 반신불수도 있고 혹 수중다리(병으로 퉁퉁 부은 다리)도 있고 혹 내종병(한방에서 ‘내장에 생긴 종기’ 를 이르는 말)도 들고 혹 정충증(까닭 없이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해지는 증세)도 있고 혹 체증 횟배와 귀먹고 눈멀고 벙어리까지 되어 여러 가지 병으로 집집이 앓는 소리요, 곳곳이 넘어지는 빛이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더이다. 마침 한 명의가 하는 말이, ‘이 병들을 급히 고치지 않으면 우리 삼천리 강산이 빈터만 남을 테니 어찌 통곡할 일이 아니오? 내가 화제(和劑; ‘약화제(藥和劑)’ 의 준말. 한방에서 약을 짓기 위해 약재의 이르미과 그 분량을 적은 종이) 한 장을 낼 것이니 제발 믿으시오.’ 하였소. 그러고는 방문(方文; ‘약방문’ 의 준말. 약의 이름과 분량을 적은 종이)을 써서 돌리니, 그 방문 이름은 청심환 골산이니 성경(誡敬; 정성을 다 하여 공경함)으로 위군(임금을 섬김)하고, 정치 법률 경제 산술 물리 화학 농학 공학 상학 지리 역사 각 등분하여 극히 정묘하게 국문으로 법제하여 병세 쾌차하도록 아무 때나 약을 먹되, 병자의 증세를 보아 임시 가감도 하며 대기(大忌; 매우 꺼림)하기는 주색잡기 경박 퇴보 게으름 등이라.
이 방문을 사람마다 베껴다가 시험할 때, 그 약을 방문대로 잘 먹고나면 병 낫기는 더 할 말이 없고 또 마음이 청상해지며(맑고 상쾌해지며) 환골탈태(換骨奪胎; 얼굴이 전보다 아름다워지고 환하게 되어 딴 사람처럼 됨)가 되는데 매미와 뱀과 같이 목은 허물을 일제히 벗어버립디다.
오륙 세 전 아이들은 당초에 벗을 것이 없으나 팔 세 이상 아이들은 가뭇가뭇한 종잇장 두께만하고, 십오 세 이상 사람들은 검고 푸르러서 장판 두께만하고, 삼십 사십씩 된 사람들은 각색 빚이 얼룩얼룩하여 멍석 두께만하고, 오십 육십 된 사람들은 어룩어룩 두틀두틀하며 또 각색 악취가 코를 찔러 보료(앉는 자리에 늘 깔아 두는 요) 두께 만하여, 노소남녀가 각각 벗을 때 참 대단히 장관입디다. 아이들과 젊은이와, 당초에 무식한 사람들은 벗기가 오히려 쉽고 조금 유식하다는 사람들과 늙은이들은 벗기가 극히 어려워서 혹 남이 붙잡아도 주고 혹 가르쳐도 주되, 반쯤 벗다가 기진한 사람도 있고 안 벗으려고 앙탈하다가 그대로 죽는 사람도 왕왕 있습디다.
필경은 그 허물을 다 벗어 옥골선풍(玉骨仙風; 빛이 썩 희고 고결하여 신선과 같은 풍재)이 된 후에 그 허물을 주체할 데가 없어 공론이 일치하지 않는데, 혹은 이것을 집에 두면 그 냄새에 병이 재발하기 쉽다 하며, 혹은 그 냄새는 고사하고 그것을 집에 두면 철모르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다시 입어 보면 이것이 큰 탈이라 하는 것이오. 또 혹은 이것을 모두 한 곳에 몰아 쌓고 그 근처에 사람 다니는 것을 금하면 다시 물들 염려도 없을 터이나, 그것을 한곳에 모아 쌓은즉 백두산보다도 클 것이니, 이러한 조그마한 나라에 백두산이 둘이면 집은 어디 짓고 농사는 어디서 하냐는 것이오. 그것도 못 될 말이지 하며, 혹은 매미 허물은 선퇴(蟬退; 매미의 허물 두드러기, 얼병, 소아 경련 따위에 씀)라는 것이니 혹 간기증에도 쓰고, 뱀의 허물은 사퇴(蛇退; 뱀의 허물 어린아이의 풍증과 독벌레에 물린 데 쓰임)라는 것이니 혹 인후증에도 쓰는데, 이 허물은 말하자면 인퇴라 하겠으나 백 가지에 한 군데 쓸데가 없으며 그 성질이 육기(肉氣)가 많고 가스 냄새가 많아서 동해바다의 별치 썩은 것과 방불한즉, 우리나라 척박한 천지에 거름으로 썼으면 각각 주체하기도 편하고 농사에도 심히 유익하겠다 하니, 그제야 여러 사람들이 그 말을 시행하여 혹 지게에도 져내고 혹 구루마에 실어 내기를 끊임없이 하는 것을 보았소.”
“나는 어젯밤에 대한제국이 독립할 꿈을 꾸었소. 오뚝이라는 것은 조그마하게 아이를 만들어 집어던지면 드러눕지 않고 오뚝오뚝 일어서므로 이름을 오뚝이라 지은 것이오. 한문으로 쓰려면 나오자, 홀로 독 자, 설 립 자 세 글자를 모아 부르면 오독립이지요. 이는 독립하겠다는 의미가 있고, 또 오뚝이의 사적 (史跡·史蹟; 역사에 남은 자취. 어떤 사람이 이뤄 놓은 실적)을 들으니 옛날 조그마한 동자로 정신이 똘똘하여 일찍 일어선 아이라 하오. 그러므로 후세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서 혹 더디 일어설까 염려하여 오뚝이 모양을 만들어 아이들을 주니, 그 정신이 오뚝이와 같이 오똑오똑 일어서라는 뜻이었소. 우리나라 사람들 중 오뚝이 정신이 있는 이는 하나도 없기에, 아이들뿐 아니라 장정 어른들도 오뚝이 정신을 길러서 오뚝이와 같이 오뚝오뜩 일어서기를 배워야겠다 하여 우리 영감이 한 일이 있소. 우리 영감이 평양 서윤(조선 시대 한성부, 평양부에 소속된 종4품 관직으로 공무원의 근무를 평가하였음)으로 있을 때에 장만한 수백 석 지기 좋은 땅을 방매(放賣)하여(물건을 내놓고 팔아) 오뚝이 상점을 설치하고 각 신문에 영업 광고를 발표하였더니, 과연 오뚝이를 몇 달이 못 되어 다 팔고 큰 이익을 얻어 보았소.”
“나는 어젯밤에 대한제국이 천만 년 영구히 안녕할 꿈을 꾸었소. 석가여래라 하는 양반이 전신이 황금과 같이 융택하고 양미간에 큰 점이 박히고 한 손은 감중련하고(감괘의 가온데 획이 이어져 틈이 막혔다는 뜻으로,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 손에는 석장을 들이 높고 빛나는 옥탁자 위에 앉아 있는 게 아니겠소? 내가 합장배례하고 황공 복지하여 앞으로 바라는 소원을 비는데, 어떤 신수 좋은 부인 한 분이 곁에 섰다가 책망하는 것이었소. ‘적선(積善)한 집에는 경사가 있고, 불선(不善)한 집에는 앙화(殃禍; 어떤 일로 인하여 생기는 재난)가 있음은 소소한 이치거늘, 어찌 구구히 부처에게 비는 것이냐? 그대는 악을 쌓은 일이 없고, 이생에도 부모에 효도하며 형제에 우애하고 투기를 아니 하며, 무당과 소경을 멀리하여 음사 기도를 아니 하며 전곡을 인색히 아니하여 어려운 사람을 잘 구제하고, 학교에나 사회에나 공익상으로 보조를 많이 하였으니, 너는 가위 선녀라 할지니라. 그 행복을 누리려면 너의 일생뿐 아니라 천만 년이라도 자손은 끊기지 아니하고 부귀공명과 충신 효자를 많이 점지하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미루어 본즉 내 자손이 천만 년 부귀를 누릴 지경이면 대한제국도 천만 년을 안녕하심을 점작할 일이 아니겠소?”
여러 부인 중에 한 부인이 일어나서 말하였다.
“나는 지식이 없어 말은 잘 못하지만 사상이야 어찌 다르며 꿈이야 못 꾸었겠소? 나도 어젯밤에 좋은 꿈을 꾸었으나 벌써 닭이 울어 밤이 들었으니 이 다음에 이야기하오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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