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역사 이래 최상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오늘의 한국, 그런데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질(質) 만족도는 조사 대상 145개국 중 117위(갤럽 조사 '2014 세계 웰빙 지수'), 내전 중인 이라크나 남수단보다도 낮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그 이유나 원인에는, 첫째 사람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에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사람 사는 환경 즉 오늘날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구조에 그 원인이 있겠는데, 툭하면 세계 최초.최고.최상을 자랑.자부하는 그 나라의 세계적인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왜 선진국 진입을 못하고 그 문턱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한국의 부끄러운 민낯" 몇 가지를 세계 유수 연구.조사 기관 통계를 바탕으로 한 번 들추어 보기로 한다.
1) 정부.국가 신뢰 지수 23%
한국 사람들은 정부나 국가가 하는 일(공권력)을 얼마나 신뢰할까? 유감스럽게도 4명 중 1명만이 정부를 신뢰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4년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정부 신뢰도 평가에서 한국의 경우 시민 23%만이 정부를 신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29위로 OECD 평균치 39%보다 16%나 낮았다. 이는 36개 조사 대상국 중 사실상 꼴찌에 속하며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다. OECD는 이에 "정부에 대한 신뢰는 사회통합과 (시민의) 복지.안녕(Well-being)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사람들이 국가를 가장 신뢰하는 나라는 스위스로 77%의 신뢰율을 기록했고, 룩셈부르크가 74%로 2위, 노르웨이가 66%로 3위를 차지했다.
한편 2015년 8월 9일 OECD의 '한 눈에 보는 정부 2015 (Government at a Glance 2015)'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34%로 조사 대상 41개국 가운데 중.하위 권인 26위에 머물렀다. 한국보다 정부 신뢰도가 낮은 국가는 주로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로 불리는 재정 위기 국가들이다. 이탈리아 (31%)를 비롯해 포르투갈(23%), 스페인(21%), 그리스(19%) 등이 하위권이다.
한국의 정부 신뢰도는 또 다른 국가별 정부 신뢰도 조사에서도 중하위권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홍보기업 '에델만'의 '2015 에델만 신뢰 바로미터'에 따르면, 중앙 정부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신뢰도는 39%로 조사 대상국 27개국 가운데 17위였다. 아랍에미리트(89%)와 중국(85%), 인도(85%), 인도네시아(73%), 싱가포르(68%), 네덜란드(67%) 등이 높은 정부 신뢰도를 보였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측면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인 인도(2위)나 인도네시아 (5위), 러시아 (6위), 터키 (9위) 등의 나라보다 낮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체코가 한국과 같은 26위였고, 한국의 바로 아래 순위는 멕시코(29위)다. 이탈리아(31위), 포르투갈(37위), 스페인(39위), 그리스(40위) 등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이 하위권이었다.
2) 사법(제도) 신뢰 지수 27%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횡행하는 나라, 시민들은 한국 사법부를 얼마나 신뢰할까? 한국 사람들의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OECD 조사 대상국 가운데 거의 밑바닥 수준으로 조사됐다.
2013년 기준, 사법 신뢰도는 27%로 OECD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39위(뒤에서 네 번째)였다. 한국보다 밑에는 콜롬비아(26%, 2014), 칠레(19%, 2013), 우크라이나(12%, 2014 ) 등 3개국뿐이다. 한국보다 한 계단 아래인 콜롬비아는 아직 좌익 반군과 마약 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나라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인도(7위), 인도네시아(21위), 브라질(28위), 멕시코(29위), 러시아(31위) 등은 한국보다 순위가 높았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사법 제도 신뢰도는 54%다.
3) 국가 청렴도 지수 37위
한때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지녔던 한국, 요즘은 부정부패가 얼마나 나아졌을까? 한국의 국가 청렴도는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세계에서 37위를 기록, 7년 연속 정체된 모습이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한국본부인 한국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년 국가별 부패 인식 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집계 결과, 100점 만점(점수가 높을수록 청렴)에 한국이 56점을 받아 지난해보다 1점 상승했다고 밝혔다. 순위는 168개 조사 대상국 중 37위를 차지해 2014년 43위에서 6계단 올랐다.
그러나 OECD 가입 34개국 중에서는 체코공화국과 함께 공동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OECD 가입국 중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헝가리.터키.멕시코 등 6개국이었다.
한국투명성기구는 한국이 지난해보다 순위가 올랐지만, 이는 조사 대상국이 175개국에서 168개국으로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수도 1점 상승했으나 2008년 5.6점(10점 만점)을 받은 이후 7년 연속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는 덴마크(91점).핀란드(90점).스웨덴(89점).뉴질랜드(88점)가 최상위권을 차지했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85점).홍콩(75점).일본(75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CPI는 공공부문 및 정치부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부패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TI에서 1995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있다.
〈계속>
얼마 전 법원에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일부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엄청난 비난과 공격이 있었다. 담당 법관이 라면 훔친 서민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조 전 장관은 석방한 것이 그 남편과 사법연수원 동기였기 때문이라는 인신공격성 비난까지 있었지만 허위였다. 이 법관은 라면 도둑 사건을 맡은 적이 없었고, 조 전 장관의 남편보다 법조 경력이 10년이나 후배인 사실이 확인되었다. 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결심 공판 과정에서 태극기부대 방청객 수십 명이 박영수 특검에게 폭언을 하고 물통을 던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날로 증가하는 압력과 열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은 우리 헌법질서의 핵심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이 흔들리면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의 인권이 위협받게 된다. 법원의 위상이 강한 미국에서도 사법부는 ‘가장 상처받기 쉬운 부(府)’라고 한다. 그만큼 사법권의 독립이 공격과 위협에 취약하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분쟁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판결에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재판관은 법률의 문구를 발음하는 입’이라고 했다. 법률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재판관은 그대로 선언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재판관도 인간인 이상 오판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는 판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능과 실수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고, 시류에 편승하거나 압박에 위축돼 자의가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심제도를 두고 판결에 불만이 있는 쪽이 상소해서 다툴 수 있게 한 것이다.
법률의 미비나 불합리성 때문에 재판 결과가 국민 법감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법관은 직무상의 양심에 따라 심판해야 하고, 개인적 소신이나 세계관에 근거해서 재판할 수는 없다. ‘양심에 반(反)해 설교하는 목사는 경멸해야 하지만, 양심에 반하나 법률에 충실한 재판관은 존경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다수 의견이나 사회적 여론을 거스르는 판결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형사재판의 특성에서 기인한 불만도 있을 수 있다. 형법상 유죄 판결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완벽에 가까운) 증거가 있어야 하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즉 무죄 판결을 해야 한다. 따라서 개별 사건의 입증 정도에 따라 판결이 국민 법감정에 배치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귀한 가치인 인권 보호를 위한 부득이한 헌법적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민주국가에서 법관의 판결도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정치적 논평, 언론 기사, 국민 여론에 의한 비판은 필요하고 또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폭력이나 협박, 강압적 요소로서 사법의 독립을 침해하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권은 진행 중인 재판에 너무 관심을 갖거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재판은 기소된 피고인의 유무죄와 형사책임을 가리는 것이고 정치적 옳고 그름은 판단하지 않는다. 기소한 특검의 주장·입증 및 법관의 판단에 따르면 될 사법절차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삼권분립인데 정치는 정치, 사법은 사법 아닌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사법부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월리엄 크랜치 판사는 ‘무력에 좌우되지 않고 군중의 외침에 흔들리지 않은 채 침착하게 정의의 저울을 다는 것이 사법부의 의무’라고 했다. 독재정권에 맞서 인권을 선언하는 것이 용기이듯, 대중의 압력이나 일시적 여론의 광풍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법률을 적용하는 것도 큰 용기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중요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잇달아 예정되어 있다. 담당 법관들은 전 인생을 걸고 그간의 공판 과정에서 조사된 구체적 증거관계와 법리를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판결이 선고되건 존중되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사법절차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국민이 행복해지고 우리나라가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다. 거울과 깃털을 갖고 모든 진실을 꿰뚫어보며 심판하는 그리스 신화 속 명계(冥界)의 심판관 라다만티스(Rhadamanthys)나 염라대왕을 이 세상에서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East/MainNews/3/all/20170811/85778647/1#csidx0f9e400d2167ca0976b3a501c6efe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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