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 (2010. 7. 5. 일본기원) ●이세돌 9단(한국) vs ○콩지에 9단(중국) ●치우쥔 8단(중국) vs ○박문요 5단(중국)
한-중 1위 간의 정면 대결, 세계 넘버원을 향한 진검 승부, 스물세 번째 후지쯔배 우승 항아리를 놓고 싸우는 최후의 일전은 오후대국으로 이어지면서 활화산이 되어 가고 있다.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잠깐 네 귀를 교대로 차지하더니 포석도 없이 백병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맞부딪친 기세는 어느 한 쪽이 부러질 것만 같은 접전으로 치닫고 있다. 수읽기의 힘싸움이다.
오전대국까지의 진행수수는 50수. 소비시간은 이세돌 1시간 12분, 콩지에 1시간 18분을 썼다. 이세돌 9단은 흑9의 수에 한동안 생각했으며, 콩지에 9단은 상대가 밭전자의 급소를 알려왔을 때 깊은 장고에 빠졌다.
점심은 언제나 그렇듯 한 방에 모여서 주최측이 준비한 도시락을 들었다. 이세돌 9단은 대부분을 남겼으며 콩지에 9단은 언제나 그랬듯 깨끗이 비웠다. 오후대국장엔 콩지에가 10분 전, 이세돌이 8분 전에 입실, 일찌감치 전투 모드로 들어섰다. 반상의 돌뿐 아니라 두 대국자의 몸도 밀착되고 있다.
▲ 점심은 장어덮밥. 이세돌은 먹음직스러운 이 도시락을 거의 들지 않았다. 콩지에는 말끔히.
한편에선 치우쥔과 박문요가 3위 자리를 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다. 관전객의 입장에선 김 빠진 승부로 보여질 수 있으나 3위와 4위의 느낌은 또 다르다. 아직은 톱랭커 반열이 못 되는 그들이고 보면 그 바로 밑의 3위는 무척 탐나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3위를 차지하면 다음 대회 출전권이 보장되고 상금도 300만엔(약 4000만원)이나 된다(4위는 150만엔).
▲ 오전대국까지의 소비시간과 반상의 모습. 흑이 이세돌 9단이다.
▲ 먼저 입실한 콩지에 9단.
▲ 눈빛에 불꽃이 이는 듯하다.
▲ 치우쥔 8단(왼쪽)-박문요 5단의 차기 시드가 걸려 있는 3위결정전.
14:40 - 난전이야말로 '이세돌 스타일' 우상에서 발발한 전투가 전 국면으로 번져가고 있다. 시작은 이세돌 9단이 먼저한 것인데 국면이 꼭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난전이야말로 이세돌 9단의 스타일. 조금의 불리는 감수하는 그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상대들이 허우적댔는가. 콩지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형세에 대한 판정은 이 공방전이 끝나봐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 14시 30분부터 시작된 공개해설회의 모습. 해설자는 왕밍완 9단.
15:10 - 이세돌, 역습을 가하다 난전이 이어지고 있다. 콩지에가 공격하고 이세돌이 수습하는 입장. 칼은 콩지에의 손에 들려 있지만 타개를 잘 한다면 우세를 확보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이세돌 9단의 반격이 나온다. 오히려 상대를 잡으러 가겠다는 승부 호흡. 단명국이 예상된다.
15:30 - 한 쪽은 부러진다 기세의 충돌에서 공격과 타개, 거기서 반격에 이은 수싸움 양상으로 진화하며 국면은 점입가경이다. 암만 해도 어느 한 쪽은 부러질 것만 같다. 난해한 수싸움!
▲ 이세돌 9단이 승리할 시 4번째 우승으로 대회 최다 기록을 세운다.
▲ 콩지에 9단이 승리할 시 대회 첫 우승과 더불어 세계 4관왕에 오른다.
15:50 - 결승이 먼저 끝나면 곤란하다 이세돌-콩지에의 결승전이 단명국 조짐을 보이면서 취재진에겐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취재진에게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은 결승전이 3위결정전보다 먼저 끝나는 경우. 같은 대국실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대국 방해로 인해 결승전 종국 사진을 못 찍을 수 있다. 더욱이 장고파 치우쥔이 3위결정전을 두고 있다.
▲ 이세돌 9단은 반면을 응시하고, 콩지에 9단은 그런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16:05 - 믿는 건 '역전의 용사' 이세돌 이세돌 9단이 힘들어지고 있다. 애초 난전을 이끌려고 했던 것이 다소 무리했다. 콩지에 9단의 받아치기에 빈틈도 없다. 현재 한게임바둑에서 화상생중계 중인 김성룡 9단, 바둑TV 생방송 해설자 윤현석 9단, 그리고 각 사이트의 해설자 역시 이세돌의 비세를 진단하고 있다. 현지 검토실도 다르지 않다.
믿는 건 '역전의 용사 이세돌'. 슬로우 스타터인 그는 후반에 역전하는 모습을 부단히 보여주어 왔다. 반격이 여의치 않아지자 일단 미생인 흑대마를 살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 동문수학했던 옛 동료 김인 9단과 오다케 히데오 9단이 함께 검토하는 모습이 훈훈하다.
16:25 - 한숨은 돌렸다 당면 과제였던 흑대마는 패를 내며 살았다. 그 대가로 좌상 방면의 흑진이 망가졌지만 대체로 선방했다는 평가. 검토진 사이에선 콩지에 9단이 왜 잡으러 가지 않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김성룡 9단은 콩지에 9단이 안전한 길로 갔다고 해설한다.
▲ 콩지에 9단의 대국 중 표정은 다양하다. 이번엔 휘파람(?)
16:50 - 역전 가능성은 있다 콩지에 9단의 행마가 우세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검토실에선 "닦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닦는다는 것은 유리한 형세를 분란 없이 그대로 골인시키는 행위를 뜻하는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다. 이세돌 9단은 중앙 백을 은근히 위협하면서 좌상 일대에 집을 만들려는 구상을 펴고 있다.몸조심하는 콩지에. 역전 가능성은 있다!
▲ 왕년에 일본바둑계를 이끌었던 린하이펑 9단(왼쪽)과 고바야시 사토루 9단.
17:00 - 잽 한방에 역전? 역전 무드다. 이세돌 9단의 잽 한방에 콩지에 9단이 패착에 가까운 수를 놓았다. 김성룡 해설자는 "안 되는 콩지에는 뭘 해도 안 된다"는 과격한 입담을 늘어놓고 있다.
17:10 - 마지막 승부수 "대마 통째로 잡기" 검토진이 다시 조용해지고 냉정해졌다. 끝난 게 아니었던 것. 역전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일순 정밀한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 같다. 현재는 이세돌 9단이 중원 방면의 거대한 백말을 통째로 겨누고 있다. 바야흐로 마지막 승부수!
17:30 - 이대로 지는가 노렸던 백대마는 전부 살았다. 하중앙 백도 눈치 빠른 콩지에 9단이 잽싸게 가일수를 했다. 이제 불안정한 백은 없는 국면. 이세돌 9단, 불리한 형세 속에 끝내기를 진행하고 있다.
17:50 - 이세돌 패배 ㅡ 269수 백12집반승 이세돌의 마지막 대마사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백이 흑진을 다 깨고 살아갔기 때문에 집차이는 반면으로도 부족하다. 화상중계하고 있는 김성룡 9단은 "이세돌 9단이 던져야 할 상황이다. 백이 살아가는 순간 반면으로도 10집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세돌은 최선을 다해 계가까지 갔으나 12집반의 대패였다. 김성룡 9단은 "자신이 가장 장기로 여기는 난전에서 졌다는 것이 아쉬웠다"고 마무리 지었다. 한편 동시에 열렸던 3,4위전에서는 치우쥔 8단이 박문요 5단을 불계로 꺾고 3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