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전(茶母傳)-송지양
김조시는 한성부의 다모*다.
임진년(1832)에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에 대기근이 들었다. 한성부에서는 민간에서 술 담그는 일을 일절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죄의 경중에 따라 유배형이나 벌금형에 처했다. 술 담근 죄를 일부러 숨겨 주어 붙잡지 않은 관리가 있을 경우에도 죄를 물어 결코 용서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자 관리들은 빨리 붙잡지 않고 있다가 자신에게 죄가 돌아올까 염려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잘못을 고발하게 하고, 고발한 사람에게는 벌금에서 2할을 떼어 포상금으로 주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고발하는 자는 날로 늘어났고 관리들은 귀신처럼 죄를 적발해 냈다.
어느 날 한성부의 아전 하나가 남산 아래 어느 거리의 외진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전은 다모를 가까이 부르더니 시내 위로 놓인 다리 끝에서 몇 번째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긴 양반집이라 내가 마음대로 들어가 볼 수가 없거든. 그러니 여자인 네가 먼저 안채로 들어가 쓰레기를 뒤져 보고 술지게미가 있거든 고함을 치거라. 그러면 내가 당장 들어가마.”
다모는 그 말대로 살금살금 까치걸음으로 들어가 집 안을 수색했다. 과연 석 되들이쯤 되는 항아리에 새로 늦가을에 담근 술이 들어 있었다.
다모가 항아리를 안고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땅에 엎어졌다. 눈이 빛을 잃고 입가에 침을 흘리며 사지가 마비되고 얼굴이 파래졌다. 기절한 것이었다. 다모는 항아리를 내려놓고는 할머니를 끌어안고 뜨거운 물을 급히 가져다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잠시 후에 할머니가 정신을 차리자 다모가 질책했다.
“나라에서 내린 명령이 어떠한데 양반 신분인 분이 이처럼 법을 어긴단 말입니까?”
할머니는 사죄하며 말했다.
“우리 집 양반이 지병을 앓고 있는데, 술을 못 마시게 된 이후로 음식을 삼키지 못해 병이 더욱 고질이 됐네. 가을부터 겨울까지 며칠씩 밥도 못 짓고 살다가 며칠 전에 마침 쌀 몇 되를 어디서 얻어 왔어. 노인의 병을 구완할 생각으로 감히 법을 어겨 술을 빚고 말았지만, 어찌 잡힐 줄 생각이나 했겠나. 선한 마음을 가진 보살께서 제발 우리 사정을 보아 주시기 바랄 뿐이네. 이 은혜는 죽어서라도 꼭 갚겠네.”
다모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항아리를 안고 가서 잿더미에 술을 쏟아 버렸다. 그러고는 사발을 하나 손에 들고 문밖으로 나왔다. 아전은 다모를 보고 물었다.
“어찌 됐느냐?” / 다모는 웃으며 말했다.
“술 담근 걸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송장이 나오게 생겼소.”
다모는 곧장 죽 파는 가게로 가서 죽 한 그릇을 산 뒤 다시 양반 댁으로 가서 할머니에게 죽을 건네주었다.
“할머니가 음식도 못 해 잡수신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 드리는 겁니다.”
다모는 그렇게 말한 뒤 여기서 몰래 술 담근 걸 누가 또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할머니에게 시동생인 젊은 생원이 술 담근 걸 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온 다모는 아전에게 양반 집에 술이 없었다고 거짓말한다. 한성부 앞에서 할머니를 고자질한 시동생을 만난 다모는 생원의 따귀를 때린다.
“네가 양반이냐? 양반이란 자가 형수가 몰래 술을 담갔다고 고자질하고는 포상금을 받아먹으려 했단 말이냐?”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들 주변을 빙 둘러서서 구경을 했다. 아전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집 주인 할멈의 사주를 받아 나를 속이고 술 빚은 걸 숨겨 주고는 도리어 고발한 사람을 꾸짖어?”
아전은 다모를 붙잡아 주부* 앞에 가서 다모의 죄를 고해 바쳤다. 주부가 심문하자 다모는 사실대로 모두 자백했다. 주부는 성이 난 척하며 말했다.
“술 담근 일을 숨겨 준 죄는 용서하기 어렵다. 곤장 20대를 쳐라!”
관청 일이 끝나자 주부는 조용히 다모를 따로 불러 엽전 열 꿰미를 주며 말했다.
“네가 숨겨 준 일을 내가 용서해서는 법이 서지 않기에 곤장을 치게 했다만, 너는 의인(義人)이로구나. 참 갸륵하다 여겨 상을 내리는 것이다.”
다모는 돈을 가지고 밤에 남산의 그 양반 댁으로 가서 주인 할머니에게 건넸다.
제가 관청에 거짓 보고를 했으니 곤장 맞는 거야 당연한 일입니다만, 할머니가 술을 담그지 않으셨더라면 이 상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그러니 이 상은 할머니께 돌려 드릴게요. 제가 보니 할머니는 겨우내 춥게 지내시는 모양인데, 이 1천 전(錢) 돈으로 반은 땔나무를 사시고 반은 쌀을 사시면 추위와 굶주림 없이 겨울을 나시기에 충분할 거예요. 다만 앞으로는 절대 술을 담그지 마셔야 합니다.”
주인 할머니는 한편으로는 부끄러워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 돈을 사양했다.
“다모가 우리 사정을 봐준 덕택에 벌금을 면하게 된 것만도 고마운데, 내가 무슨 낯으로 이 돈을 받는단 말인가?”
할머니가 굳이 사양하며 한참 동안이나 받지 않자 다모는 할머니 앞에 돈을 밀어 두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다모(茶母): 조선 시대에 일반 관아에서 차와 술대접 등의 잡일을 맡아 하던 여자 종. 관비(官婢).
*주부(主簿): 한성부 등에 두었던 종6품 벼슬.
조선 후기 송지양이 지은 작품으로 관아에서 일하는 여인 ‘다모’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당시 상층 여성이 지은 범죄는 남성들이 맡아서 처리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한성부나 포도청에서는 똑똑한 다모를 뽑아 여성 수사관의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다모 김조시’도 위법한 행위를 적발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으나, 죄를 지은 할머니의 가난한 형편과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이를 눈감아 주려고 한다. 그리고 이익에 눈이 멀어 할머니를 고발한 생원(할머니의 시동생)의 파렴치함에 분노를 표출한다. 이러한 다모의 행동은 법령이나 규정을 벗어나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행동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다모전」은 주인공 ‘김조시’를 통해 본받을 만한 인간 유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소설이다.
주제 ㅣ 불쌍한 할머니의 잘못을 눈감아 준 다모의 인품과 덕성
전체 줄거리 ㅣ 한성부의 다모 김조시는 어느 날 아전을 따라 나갔다가 남산골의 양반집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양반집에서 술 항아리를 발견한 다모가 그것을 가지고 나오려 하자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깜짝 놀라 기절을 한다.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다모는 이를 일단 숨겨 주기로 한다. 할머니를 고자질한 시동생(젊은 생원)을 만난 다모는 생원의 따귀를 때리며 그 행동을 나무라고, 이를 본 아전은 다모가 저지른 잘못을 관아에 신고한다. 주부는 법에 따라 곤장 20대의 벌을 내리지만, 나중에 따로 불러 다모의 착 한 마음을 칭찬하고 상금을 내린다. 다모는 자신이 받은 상금을 모두 할머니에게 드리며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 것을 당부 한다.
내용 구조도 ㅣ다모전 속 인물들의 행동과 관계
젊은 생원 | 할머니의 시동생으로 포상금을 받기 위해 할머니를 아 전에게 고자질했다. |
할머니 | 가난한 양반가의 사람으로 남편의 병을 구완하기 위해 술을 빚었다가 다모에게 발각된다. 후에 다모의 도움을 받는다. |
다모 | 할머니의 딱한 사연을 듣고 그것을 숨겨 주려고 한다. 주부로부터 상금을 받게 되자, 그것을 흔쾌히 할머니에게 준다. |
아전 | 다모에게 할머니를 조사하도록 지시한다. 다모가 젊은 생원을 때리는 것을 보고 할머니의 잘못을 숨겨 준 죄로 다모를 관청에 고발한다. |
주부 | 법에 따라 죄를 지은 다모를 처벌하지만, 다모의 착한 마음을 알고 따로 불러 상금을 준다. |
* 해설 작가인 송지양의 이름은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가 남긴 한문
<다모전>은 소설사적으로는 물론 사회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