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는 이 세상을 유일한 생명의 터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썼던 책이다. 구약성서 저자들은 땅에서 오랫동안 형제자매적 연합을 누리며 사는 삶을 영생이라고 정의했다(시 133:3; 미 4:4). 영생은 이민족의 침략 위협에서부터 자유롭고 지주와 압제적 탐관오리의 수탈로부터 자유로운 하나님의 언약백성(그 핵심이 이스라엘 자유 농민)이 각자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서 평안히 사는 삶이었다(왕상 4:24; 미 4:4). 구약성서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책들은 현세에서 건강하고 평화로우며 후손들을 많이 낳아 번성을 누리는 삶을 영생이라고 보았기에, 늙어가는 것이 죽음 너머에 있는 신약성서적 영생으로 가는 필수여정임을(고전 15:42-44; 고후 4:16-18; 고후 5:2-4) 의식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약해지고 늙어가 마침내 죽는 것은 허무한 일이라고 본다(전 11:9-12:8). 전도서 12장 2-8절은 뼈 빠지게 일하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귀로로서의 죽음을 말하는 창세기 3장 18-19절에 대한 우울하고 슬픈 은유적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많은 시편과 욥기의 여러 구절도(욥 7:21; 10:21-22; 14:14; 시 28:1; 88:5, 10-12; 89:48) 지상에서의 삶이 끝나면 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슬퍼한다. 이처럼 구약은 노쇠와 쇠락의 과정을 생명으로부터 멀어지는 행로라고 본다. 그래서 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시 71:9). 하나님은 이 시편 기자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구약성경에 이 노쇠와 쇠락의 과정을 거치는 노인의 존재가치와 쓰임새를 다양하게 말하는 말씀들을 허락하셨다.
1.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피조물의 허무함을 증언하는 지혜자로서의 노인
노인은 희생과 소진을 통해 소멸해 가는 비장한 나그네, 죽음과 친구가 되는 시점, 집착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비상하는 단계를 대표하는 지혜자이다. 건강 집착적 청춘 예찬 시대인 오늘날, 노인들은 폐기 처분된 기계부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최강동안 미남미녀가 되는 비법, 주름살을 제거하는 의료시술, 그리고 젊게 보이는 화장품 산업이 번성한다. 아마존, 일론 머스크 등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의 최대투자처 중 하나는 장수학이자 영생학이다. 이 모든 시도는 죽음의 허무하고 장엄한 파괴력 앞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성경은 인간의 연약함, 피조물적 쇠패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간의 자리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병들고 연약해짐, 그리고 죽음으로 직진하는 노쇠와 쇠락의 어둔 면만 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빛을 본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인생살이의 허무함을 가르치는 이유는 이 허무를 극복하게 도우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부각하기 위함이다. 시편 103편 17절은 현세의 허무성을 극복하는 단 한 가지 길을 제시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2.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쓰임받을 수 있는 늙은이
성경은 생물학적인 노인일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나라 운동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확언한다. 시편 9장 12-14절은 여호와의 집에 심긴 잣나무와 종려같은 의인의 경우 늙어도 여전히 번성하며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그 얼굴빛이 청청할 수 있음을 노래한다. 심지어 요엘 2장 28절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예언하며 꿈꾸는 늙은이의 예언자적 영성을 노래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꿈꾸는 늙은이는 이상(vision)을 간파할 줄 아는 젊은이와 동역할 수 있다. 임종을 맞은 늙은 부모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후손의 미래를 좌우하는 기도를 할 수 있다(창 49:1, 33; 신 33:1). 젊은 세대는 부모가 남긴 재산을 노리지 말고 임종 때 침상에서 자녀의 머리에 손 앉고 복을 비는 부모의 기도를 상속할 수 있어야 한다. 출애굽기 24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인 세대의 아름다운 세대 통합적 리더십을 증언한다. 모세와 아론(노년), 나답과 아비후(장년), 그리고 이스라엘 청년들이 시내산에 올라가(5, 9-11절) ‘노장청’ 연대를 이루는 모습이다. 그 모습은 하나님의 발 아래서 펼쳐진 청옥을 편 도로같고 청명한 하늘같았다(출 24:10).
3. 성공과 실패의 교훈을 기억하는 빅데이터이자 타임캡슐인 노인
노인은 직업적 성공 지혜의 보고이자 시행착오적 실패학적 성찰 지혜의 보고(寶庫)이다. 노인은 전통적 지혜, 즉 생존 지혜, 국가 및 가정경영 지혜, 성공과 실패의 과정에서 터득한 지혜의 보고이다. 후세대에게 기여할 것이 굉장히 많은 빅데이터이다. 그래서 레위기 19장 32절은 흰 머리 노인에게 공경을 표하라고 권고한다. 심지어 노인은 자신의 쓰라린 청년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청년 세대에 늙을 때를 대비하라고 권고할 수 있다(전 11:9-10). 그래서 경제적으로 강하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성인 자녀들은 늙은 부모를 감정적으로, 재정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공경해야 한다. 그러면 자녀세대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오래 차지할 수 있다(출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