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이바노프(Alexander Ivanov), 〈술 맡은 자와 빵 굽는 자〉, 1827, 캔버스에 유채, 178.5×213,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박물관
형들이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졌다(창 37:23-24). 형들은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이십을 받고 요셉을 팔았다(창 37:28). 미디안 사람들은 요셉을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다(창 37:36). 보디발은 요셉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창 39:20).
요셉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기에게 닥친 운명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 던져지고 팔리고 갇혔다. 요셉이 옥에 갇혀 있는데, 이상하다. 감옥에 갇힌 요셉의 얼굴에 불안한 빛이 없다. 초췌하지도 않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 감옥에 갇혀 있으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감옥에 있는 요셉의 범사가 ‘형통’하다.
알렉산더 이바노프(Alexander Ivanov, 1806-1858)는 감옥에서도 형통한 요셉의 형형한 얼굴을 그렸다. 이집트의 고관들이 죄수로 갇혀 있는 요셉에게 파라오의 인사 행정과 사법 판결에 관해 묻는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파라오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견한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면서, 자기에게 말하라고 한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창 40:8). 하나님과 함께 있는 까닭에 요셉은 갇혀 있지 않다. 캄캄하고 두터운 감옥의 벽 너머 파라오의 밀실에서 이루어졌을 인사 행정과 사법 판결까지 훤히 들여다본다.
우측 상단에 처형 장면이 그려진 벽화가 보인다. 이 벽화를 보며 지내는 수형 생활은 공포가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이었겠다. 마침내 판결이 내려졌고 ‘술 맡은 자’는 복직 판정을 받은 듯 얼굴에 평안이 깃들었다. 차꼬를 찬 채 주저앉아 정면을 보는 ‘떡 굽는 자’는 방금 사형을 언도받은 듯 얼굴에 공포가 가득하다. 그런데 평안이 깃든 ‘술 맡은 자’의 얼굴과 공포 가득한 ‘떡 굽는 자’의 얼굴이 같은 사람의 얼굴이다. 이바노프는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를 그리며 같은 사람을 모델로 삼았다. 한 사람의 얼굴로 전혀 다른 운명을 앞둔 두 명을 그린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평안이 깃든 얼굴과 공포 가득한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똑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한 사람이지만 복직을 기다리는 사람과 사형을 앞둔 사람은 전혀 다르다. 어떤 이는 ‘얼이 들어 앉은 굴’을 얼굴이라 하고, 어떤 이는 ‘얼의 꼴’이 얼굴이라고 한다. 한 꺼풀도 되지 않은 이목구비의 생김이 얼굴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요셉의 얼굴과 복직이 확정되어 평안이 깃든 관리의 얼굴엔 빛나는 얼이 보이지만, 사형 언도를 받고 공포에 찬 관리의 얼굴에는 얼이 보이지 않는다. 얼빠졌다.
눈을 감고 거울을 본다. 캄캄한 감옥 같다. 거울에 내 얼굴은 어떻게 비춰질까. 벽에 갇힌 요셉과 함께하신 임마누엘, 나와 함께하소서.
첫댓글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