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전생에 무슨 빚이라도 졌나?”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고, 사사건건 부딪히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완전히 떠날 수도 없고,
어떤 이유에서든 여전히 그 사람이 필요하다면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생이 이 악연을 끝내는 마지막
기회라면?’
빚을 생각해 보십시오.
빌린 돈이 남아 있으면
도망간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자가 붙습니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갚아 나가
마지막 원금까지 모두 갚고 나면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채권자에게
끌려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 사이의 원망도 비슷합니다.
상대가 미워서 똑같이 상처를 돌려주면
관계의 빚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으며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가시를 던지고,
다른 사람이 다시 가시를 던지면
두 사람 사이에는 결국
가시덤불만 남게 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해보는 겁니다.
상대를 이기려고 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잘해 주는 것입니다.
한 번 더 이해하고, 한 번 더 양보하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헤아려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상대가 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미움으로 미움을
갚지 않기 시작하면 둘 사이를 이어 주던
악연의 사슬도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옛말에 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수를 쓰러뜨리면 원수가 한 명 쓰러진 것
뿐이지만, 원수를 친구로 만들면 세상에서
원수 한 명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물론 폭력이나 학대까지 참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미움 때문에 또 다른 미움을 만들지는
마십시오.
혹시 지금 내 곁의 지독한 인연이 이번 생에서
마지막으로 청산해야 할 빚이라면, 가장 현명한
방법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쪽에서 먼저 그 빚을 끝내 버리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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