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공은 걸림 없고 평등하다
어느 때 부처님은 왕사성 기사굴산에 계시면서, 수보리에게 말씀 하셨다.
"수보리야, 너는 공상 가운데에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있다고 보는가?"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공상 가운데에는 본래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더러운 것에도 집착할 것 없고 깨끗한 것에도 집착할 것 없습니다."
"수보리야, 네 말과 같이 더러운 것에도 집착할 것 없고 또 깨끗한 것에도 집착할 것이 없다. 왜 그런가? 다음과 같은 까닭으로 본래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 중생은 나와 내 것에 집착해 있기 때문에 더러운 것도 있고 깨끗한 것도 있다. 그러므로 현실상을 보는 사람에게도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고 여실상을 보는 사람에게도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
"부처니이시여, 여실상을 보는 사람에게도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고, 여실상 아닌 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 일체의 법은 자성이 없어 공한 까닭인 줄로 압니다. 그렇게 유 가운데도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고, 무 가운데도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면, 어떨게 여실상을 여실하게 말한 자에게도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하고, 여실상을 여실하지 않게 말한 자에게도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모든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내가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법은 여여해서, 다르지도 않고 속임도 없이, 법상ㆍ 법성ㆍ법주ㆍ법위ㆍ그대로 있는 실제이다. 부처가 있거나 부처가 없거나 법성은 항상 있다. 이것을 깨끗함이라고 한다. 세상 도리에서 말하는 그 언설은 제일의는 아니다. 제일의는 일체의 말과 이론과 소리를 초월하고 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일체 법이 공해서, 꿈과 메아리와 불꽃과 그림자와 허깨비와 같아서, 변화무쌍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면, 법에는 근본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어, 육바라밀을 구족하고, 장차 사선ㆍ사무량심ㆍ사무색정ㆍ팔해탈ㆍ부처의 십력ㆍ나아가 십팔불공법을 구죽하며, 또 삼십이상ㆍ팔십수형호를 구족하며, 모든 다라니문 모든 삼매문을 구족하여 시방을 두루 비춰 중생을 알고 그 중생심에 알맞게 설하겠습니까?"
"수보리야, 그러면 너는 모든 법이 꿈과 메아리와 불꽃과 그림자와 허깨비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일체 법이 꿈 따위와 같이 허황하다면, 보살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겠습니까? 이 꿈 따위와 같이 허황하다는 것은 허망하여 여실한 법이 아닙니다. 이 여실한 법이 아닌 허망한 법은 육바라밀과 십팔 불공법 따위를 구족할 수 없습니다."
"수보리야, 그렇다. 진실 아닌 허망한 법은 육바라밀과 십팔 불공법 따위를 구족할 수 없다. 이 진실 아닌 허망한 법을 행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 수보리야, 이 일체 법은 다 추억 회상하는 법이요, 생각하는 법이며, 만든 법이다. 이 추억ㆍ회상ㆍ사유ㆍ작법으로서는 일체 법의 진리를 아는 일체 종지를 얻을 수 없다. 수보리야, 이 일체의 법이 도를 돕기는 할 수 있으나 불과를 얻는데는 이익이 될 수 없다. 이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일정한 모양도 없다. 보살이 처음 발심한 뒤에 지은 바 착한 일인 육바라밀과, 일체 종지가 꿈같고, 변화하는 모든 법은 보시바라밀과 일체 종지 따위를 구족할 수 없고, 또 중생이 불국토를 깨끗이 하고 아뇩다리삼먁삼보리를 얻는 일은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그것은 보살 마하살이 지은 바 선업인 보시바라밀과 일체 종지는, 모든 법이 꿈같고 변화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체 중생도 꿈 가운데 행하는 것 같고, 변화하는 가운데 행하는 것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이 이 변화하는 유법이라는 것은 취하지 않는다. 이 유법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일체 종지를 얻어 모든 법은 꿈같아서 취할 바 없고, 모든 법은 변화해서 취할 바 일정한 형상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반야바라밀은 육바라밀과 십팔 불공법 따위가 다 꼭 집어서 어떠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 불가취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이 불가취상임을 알고 이미 발심해서 아뇩다나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이다. 일체 법이 불가취상이라면, 그것은 꿈같고 허황해서 근본의 일정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불가취상의 법을 가지고서는 불가취상 법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중생은 이러한 모든 법상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므로,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중생을 위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이다. 이 보살은 처음 발심한 뒤로 행해 가진 바 있는보시도 일체 중생을 위한 것이요, 닦아 가진 바 있는 지혜도 다 일체 중생을 위한 것으로서, 보살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다.
책을 보고 옮겨 적을 때 잘 못 적었을 수 있습니다^^♡♡
첫댓글 부처님의 가피와 관세음보살님의 대원력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