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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봉 주변 눈꽃
도전은 언제나 한 걸음 성장하게 만든다.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혹시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게 될지도 모르니까.
――― 파블로 피카소
▶ 산행일시 : 2015년 12월 26일(토), 오전에는 흐리고 눈, 안개, 오후에 갬
▶ 산행인원 : 13명(버들, 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온내, 상고대, 신가이버, 해피,
승연, 가은, 무불, 메아리)
▶ 산행시간 : 8시간 48분
▶ 산행거리 : 도상 14.8㎞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랐음)
06 : 32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22 - 인제군 상남면 상남리 봉남1교, 산행시작
08 : 56 - 708.3m봉
09 : 01 - 762.8m봉
09 : 30 - △792.8m봉, 군사작전도로
10 : 50 - 1,080.2m봉
11 : 17 - 가마봉(可馬峰, △1,189.6m)
11 : 50 ~ 12 : 30 - 가마봉 아래 Y자 갈림길, 점심
12 : 38 - 1,137.3m봉, ┫자 갈림길, 영춘기맥 진입
12 : 50 - 안부, 임도, 도로 공사 중
13 : 05 - ┫자 능선 분기봉(1,064m), 직진은 영춘기맥, 우리는 왼쪽으로 감
13 : 24 - 954m봉
13 : 34 - 안부, 임도, 도로 공사 중
13 : 55 - 908.7m봉
14 : 41 - 안부, 임도, 도로 공사 중
15 : 10 - △871.3m봉(영진지도에는 △844.0m)
16 : 00 - 758.1m봉
16 : 50 - 동홍천, 양양 간 고속도로 공사 중인 고가도로 아래
17 : 10 - 인제군 상남면 상남리 엄달골 고적교, 산행종료
18 : 02 - 홍천, 사우나, 저녁
21 : 2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가마봉 정상에서, 눈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앞에 앉은 이는 무불 님과 온내 님(오른쪽)
2. 가마봉 가는 길, 내내 안개 속이었다
▶ 1,080.2m봉
상남천 지천 봉남1교 건너기 전에 멈춘다. 그 지천 거슬러 봉남대, 솔봉 마을 가는 비포장도
로는 입구에 바리케이드 쳐서 막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과훈단(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 군부대 위수지역이었다. 우리는 곧장 오른쪽 산비탈로 접근하여 생사면
을 치고 오른다. 첫발자국부터 되게 가파르다. 낙엽 수북하여 헛발질이 잦다.
사면 트래버스 하는 인적인가? 살금살금 따랐더니 골로 가는 수적(獸跡)이다. 여기저기 널
려 있는 간벌한 나뭇가지와 잡목 헤치며 기어오른다. 긴 한 피치 수직사면을 볼더링 하여 오
르면 참호가 나오고 오래 된 군인의 길인 듯 흐릿한 인적이 보인다. 우리가 산속으로 사라지
고 나서 두메 님은 바빴다.
오늘 산행은 가마봉을 반환점으로 한 원점회귀를 계획했기에(산행 중에 일당이 빠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좀 더 길게 진행했다) 두메 님은 이 근처에서 하루 종일 차 대놓고 우리를 기
다리고 있을 터인데, 우리 산행 중에 순찰 도는 장교를 만나고, 여기는 군사작전지역이니 머
뭇거려서는 안 된다, 우리 일행이 여기로 하산하니 기다려야 한다는 등 언쟁하다가 상남면으
로 물러나야 했다.
날씨가 잔뜩 흐리다. 희끗희끗 눈발이 날린다. 좌우 여러 지능선 소로 모아 등로는 더욱 튼튼
하다. 708.3m봉 넘은 안부는 산간고개가 지난다. 762.8m봉 넘고 삐삐선과 함께 간다.
△792.8m봉(영진지도에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의 예전 표고인 △803.4m이다)에는 철조
망을 엄중히 두른 군부대의 대형 송신탑이 있다. 이 근처에서 괜히 얼쩡거리지 마시라고 반
복하여 방송한다. 그래서도 쉬지 않고 간다.
능선 마루금에 군사도로가 났다. 대오 맞춰 걷는다. 도로 옆 울창한 낙엽송 숲이 볼만한다.
열주 오래도록 사열한다. 군사도로는 오른쪽 산허리로 돌아가고 우리는 직등한다. 기상예보
와는 다르게(?) 엄청 추운 날이다. 손이 시리다 못해 감각이 무뎌지더니 등로 주변에는 일목
일초마다 눈꽃이 움트기 시작한다. 고도 높여 안개 속에 든다.
저 봉우리 너머에는 어떠한 광경이 펼쳐질까? 가쁜 숨 돌릴 겨를 없이 넘고 또 넘는다. 온통
새하얀 산상화원이다. 상상하지 못한 대관이고 장관이다. 887.4m봉 약간 내린 안부에서 이
가경을 안주 삼아 입산주 탁주 연거푸 들이킨다. 등로는 원로(園路)다. 너나없이 설경 구경
하느라 그리고 카메라 파인더 들여다보느라 발걸음이 더디다.
변발한 것처럼 벌목한 능선을 오른다. 살랑살랑 이는 바람이 아주 맵다. 거친 숨으로 내뿜는
입김이 부유하여 안개가 아닐까? 1,080.2m봉. 고도가 일천 미터를 넘자 대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한참 우물거리다 입 밖에 내는 말이 어눌하다. 어느덧 설국이다. 눈길이 안내한다.
키 큰 나무의 가지마다에도 눈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자칫 건드려 우수수 눈꽃보라 맞는다.
3. 봉남1교 앞, 바리케이드는 군부대에서 출입통제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4. △792.8m봉에서 마루금은 당분간 군사작전도로가 간다
5. 군사작전도로는 오른쪽 산허리 돌아가고 우리는 직등한다
6. 군사작전도로 주변의 낙엽송 숲
7. 군사작전도로 주변의 낙엽송 숲, 도로 옆은 가은 님. 오늘의 수훈갑이다.
생사면을 누비느라 가은 님도 나중에는 지쳤다.
8. 낙엽송 숲 등로
9. 저 너머는 산상화원이었다
10. 대물의 현장, 작업 중인 무불 님
11. 등로의 일목일초마다 눈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12. 산상화원
▶ 가마봉(可馬峰, △1,189.6m)
이때만큼은 갈천 임훈(葛川 林薰, 1500∼1584) 선생의「도분옥류(到噴玉流, 분옥류에 이르
러)」가 조금도 부럽지 않다.
자연을 좋아하는 멋이 병이 되어 性癖煙霞趣
이 몸은 산수 속에 떨어져 산다네 身隨山水中
하물며 지금 경이로운 곳 찾음에야 況今探異境
세상사에는 스스로 벙어리가 되었다네 向世自成聾
바위 턱을 돌부리 나무뿌리 움켜쥐고도 바동거려 오르고 가마봉 정상이다. 나무숲 두른 헬기
장이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몇 걸음 더 가면 조망이 시원스레 트이는 절벽이다. 오늘은 만천
만지한 안개로 캄캄하다. 눈까지 내린다. 뒤에 오는 스틸영 님과 가은 님을 기다렸다가 함께
정상등정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그 둘이 빠진 채로 찍고, 대간
거사 님이 기다리겠다고 하여 먼저 내린다.
가마봉을 오를 때처럼 가파르게 내린다. 한 피치 길게 내린 Y자 능선 분기점에서 앞서가던
승연 님이 GPS 들여다보며 서성이고 있다. 다수 일행이 오른쪽으로 확실히 잘못 내려갔다고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쾌재를 부르며 애써 즐거움 감추는 표정관리 하겠지만 오늘은 눈보라
속 강추위이라 그렇지 않다. 목청 높여 부르고, 이러다 진동하여 영화「페세이지(The Passa
ge, 1979)」에서와 같은 눈사태 날라 휴대전화 걸어 뒤돌아오게 한다.
최근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히말라야」가 생각난다. 배우 황정민이 주연이라기에 개봉되
자마자 아내와 함께 보았다. 그런데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망스런 영화였다. 설산의 위용,
침묵과 냉정 등이 어울린 산악영화가 아니라 눈물로 얼룩진 멜로물이었다. 처절한 사투를 보
면서 관객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배우들이 먼저 서
럽게 울었다. 아내는 곤히 자고, 나는 중간에 그만 뛰쳐나오려다 가까스로 참았다.
사실 「히말라야」에서도 그랬지만 산을 왜 오르는가? 라는 물음은 처음부터 진부하다. 흔
히 명언으로 들먹이는 조지 멀로리의 “山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말은 공항에서 기
자들이 하도 붙잡고 묻기에 별 생각없이 내 뱉은 말이었다. 산을 왜 오르는가? 산이 좋아서
그냥 오를 뿐이다. 일주일 중 하루를 사는 방편일 뿐이다. 나에게는 그렇다.
그들을 뒤돌아오기 기다릴 겸 아예 점심밥을 먹기로 한다. 바람 막은 바위벽 아래 눈 다져서
자리 만들고 버들 님이 준비해온(준비 못지않게 이 산중으로 가져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
다. 가은 님이 수송했다) 동태탕과 승연 님의 미소된장국 끓여 동태 되기 직전인 언 몸 녹인
다. 육성이 닿지 않게 알바한 일행이 도착하고 산상오찬은 활기가 넘친다.
13. 887.4m봉 오르는 왼쪽 사면은 변발처럼 벌목하였다
14. 설한풍을 온몸으로 맞서 버티고 있는 한 그루 소나무, 부러질지언정 숙이지 않는다.
15. 저 높은 고지를 향하여
16. 산상화원을 구경하느라 그다지 힘 드는 줄 몰랐다
17. 깊은 협곡 입구의 눈꽃
18. 심산 안개도 정취다
19. 가마봉 정상이 가까워지고 눈꽃은 점점 화려하다
20. 가마봉 정상이 가까워지고 눈꽃은 점점 화려하다
21. 워낙 추워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종종 걸음하였다
22. 설국, 또는 ‘겨울왕국’이다
23. 설국, 또는 ‘겨울왕국’이다
14. 알바는 산행을 더욱 맛나게 하는 양념이다.
▶ △871.3m봉(영진지도에는 △844.0m), 고적교
눈길. 우리가 새길 낸다. 길게 내렸다가 안부 지나고 살짝 올라 영춘기맥(영월지맥과 춘천지
맥이라고도 한다)의 1,137.3m봉이다. 이 구간에 1,000m가 넘는 고봉들이(가득봉, 가마봉,
소뿔산 등) 줄줄이 있어 영춘기맥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남진한다. 바윗길 직등하고 잡목
헤치다 산죽 숲 뚫는다. 깊은 안부는 도로 공사 중이다. 절개지가 준봉을 오르는 설벽이다.
1,064m봉 오르고 그저 선두 쫓아 줄달음하는데 뒤에서 빼~액 하는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이번에는 나도 걸렸다. ┫자 능선 분기봉인 1,064m봉을 지나친 것이다. 뒤도는 발걸음은 항
시 힘들다. 일행 모여 점호하고 1,064m봉에서 동진하여 내린다. 가파르다. 모수 듬성듬성 남
겨두고 벌목한 왼쪽 사면이 안개 속 황량하다. 그런데 그쪽으로 지능선이 제법 통통하여 선
두가 잘못 갔으니, 모닥불 님과 해피 님은 알바 대삼관(大三冠)을 달성했다. 특히 해피 님은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가장 긴 거리를 산행하였다.
능선은 잠시 잠잠하다 954m봉을 넘고 급히 뚝뚝 떨어진다. 바닥 친 안부는 도로 공사 중이
다. 오후 들어 눈발은 멎었지만 안개는 여전하다. 908.7m봉 오르기가 퍽 되다. 어렴풋한 공
제선은 자꾸 뒤로 물러난다. 지난여름 초원이 설원으로 변했다. 설원 누비다가 덤불숲 눈꽃
털어 더덕줄기인지 확인하는 일이 시들해졌다.
908.7m봉.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오른쪽은 지난여름 송홧가루 날리던 날 우리가 방아교에서
넘어온 능선이다. 오늘은 왼쪽 능선을 간다. 봉봉을 넘고 넘는다. 전도 목측이 어려워 독도가
한 재미 한다. 가마봉 반환점을 돈 하산이지만 오전과는 전혀 딴판으로 봉우리가 무수히 들
쭉날쭉 솟은 능선이다. 도로 공사 중인 안부에 내려서고 휴식한다.
고갯마루 절개지는 수직으로 너무 높아 감히 덤비지 못하고 왼쪽 산모롱이 얕은 골짜기로 가
서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여기도 가팔라 대자 갈지자 그린다. 814.7m봉 오르고 등로 주변의
우람한 적송 숲이 보기 좋다. 그 기상에 힘이 난다. 이어 잣나무 숲 지나고 된 한 피치 오르면
△871.3m봉(영진지도에는 △844.0m)이다.
가마봉 아래에서 그 성찬이던 점심이 다 소진되어 허기지던 차에 해피 님이 칠면조 크기인
훈제 닭을 내놓는다. 아울러 누군가가 캔맥주를 터뜨린다. 여태 맛보지 못한 미주가효다. 오
병이어 아니지만 열세사람이 먹고도 남는다. △871.3m봉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보시라. 가마
봉에서와는 다르게 모두 얼굴이 흐뭇하고 환하다.
당초에는 △871.3m봉에서 북진하여 산행 들머리인 봉남1교로 내리려고 했는데 일당(8시간
산행)이 빠지지 않을 것 같아 더 길게 가기로 한다. 동진하여 엄달골을 향한다. 봉봉 오르고
내리고 굴곡이 심하다. 758.1m봉, 727.5m봉에서 녹아난다.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마침내 그토록 당차던 능선의 기세가 꺾이고 잣나무 숲길 내려 삼
거리다.
동홍천 양양 간 고속도로 공사 중인 고가다리 아래 지나고 군부대 담장 돌아 상남 고적교 앞
이다. 2015년 산행 결산답게 내내 즐겁고 화려한 산행이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정경이 펼쳐
질지 벌써 궁금하다.
25. 가마봉 아래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26. 나뭇가지 건들면 눈꽃보라 인다
27. 산죽 숲 우리가 지나간 길
28. 안부 임도(도로 공사 중) 절개지 설벽 오르는 중, ‘히말라야’ 한 장면 같다.
29. 벌목지대에 남긴 모수(母樹)
30. 벌목지대에 남긴 모수(母樹)
31. 임도 건너고 908.7m봉 오르는 중
32. 적송 숲 오르막, 모닥불 님, 발걸음이 항상 경쾌하다
33. 적송 숲 오르막, 메아리 대장님과 상고대 님(뒤)
34. 잣나무 숲
35. 하산지점인 엄달골
36. 하산 중인 △871.3m봉(영진지도에는 △844.0m봉)에서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지팀 덕분에 아주아주 행복한 하루였고, 1년이였습니다. 2016년엔 좀 더 자주 뵈올 수 있길 간절히 소원해 보는 산행기였습니다. 큰형님, 항상 건강하소서!!^^ 더불어 오지팀 고맙습니다...
오지 화이팅!
다시가고싶어요
꽃피는 봄날에 다시 한번 가죠^^
생각지도 못했던 산상화원에 눈이거운 산행이었습니다. 올 한해도 형님의 명품산행기 겨 보았습니다...내년에도 계속해서 부탁해요()
다시 보니 대단합니다.
사진도 작품이고..즐거운 산행,함께여서 더욱 빛난 하루였지요!
오지산행은 죄다 예술산행입니다 ~~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서 좋습니다.
한컷의 장면과 한줄의 단상이 한사람의 생을 다르게 합니다. 저는 그런 마주침을 꽝하고 머리에 꽂히는 영감이라고 표현합니다. 올 한해 거저주신 영감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사의 산행일정 땡겨다 씁니다. 역시 예술적인 산행기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