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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하 20장 3-4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승리를 맛보라2-두려움이 일어날 때
저는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는 아이들을 보면 걱정이 죕니다. 위험요소가 이 세상에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겁이 없다고 해서 해를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겁이 없는 것 때문에 더 큰 사고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겁이 없습니까? 사람들은 담력이 조금 센 사람은 있지만 모든 사람이 두려움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두려움이 없을 수는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우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척하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약간의 허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약간의 과장스러운 행동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게 할 만한 강한 것이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사람이 두려움을 느낄만큼 약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 모두가 두려워 떨었습니다. 골리앗이 너무나 크고 강해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서서 대적할 엄두도 못내고 모두가 패배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두려움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좋은 결과를 갖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갖기도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칭찬은 안하고 매일 같이 야단만 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엄마를 무서워합니다. 엄마 역시 매일 같이 야단만 치거나 매를 때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그들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부모의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아이들의 반응입니다.
개에게 물려본 사람들은 개를 무서워합니다. 건강을 잃어본 사람은 병이 걸리까봐 무서워합니다. 교통사고를 나본 사람은 차를 무서워할 수도 있습니다. 취업을 하려고 여러차례 면접을 보았지만 떨어진 젊은 사람들은 면접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또 서류를 내면서 면접을 봅니다. 그들은 면접관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생계를 위해서 계속해서 직장이 될 때까지 이 회사 회사의 면접을 보아야 합니다. 돈이 떨어져서 큰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은 돈이 수중에 없으면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기 수중에 돈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애를 쓰게 됩니다.
사람마다 다른 환경이 있고 직업이 있으며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두려움을 느낍니다. 얼마전에 코로나가 전 세계를 흽쓸었을 때 전 세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백신을 맞았습니다. 그것도 한 번 맞은 것이 아니라 3차와 4차까지 맞았습니다. 그들이 맞으라고 하는 백신이 검증이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그것을 강제로 맞게끔 의무화시켰습니다.
이것은 나라마다 심해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갈때는 백신을 맞은 증서를 제시해야 다른 나라를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여행을 하든 사업차 가든 학업을 위해 가든 간에 사람들은 반드시 백신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백신에 대한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려 죽은 사람들 만큼이나 백신의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역대하 20장 3-4절을 보면 유다를 다스리고 있던 왕인 여호사밧이 주변의 세 나라가 연합하여 자신과 자신의 나라인 유다를 공격하자 두려워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3-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여호사밧은 왕입니다. 왕은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왕에게도 두려워할 일이 생깁니다. 이 세상은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아무리 큰 나라의 대통령도 두려움은 있습니다. 아무리 큰 대기업의 총수도 두려워할 일은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사자나 악어도 두려워하는 천적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은 두려움을 주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호사밧은 삼개국의 연합군들이 쳐들어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두려움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할 일은 계속 생깁니다.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도 두려워할 일이 생긴다면 일반 백성들이야 얼마나 더 많은 두려움의 요소들이 있겠습니까?
이런 많은 두려움을 주는 어려움 앞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일찌감치 포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두려움을 이길 묘책을 연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타협과 협상안을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빕니다.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 방법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여호사밧은 두려워하여 하나님께로 낯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두려움이 여호사밧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두려워하는 적들을 물리쳐 주실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여러분들은 두려운 일들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날 때 전전긍긍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십니까?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십시오. 인생의 진정한 해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인생의 진정한 해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낯을 향하여 간구한 여호사밧은 온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금식하라고 공포합니다. 두려운 적들을 물리키기 위해서 자신만이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으로 하여금 금식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이것은 훗날 요나 선지자가 앗수르에 가서 니느웨성이 40일이면 망한다고 외쳤을 때 니느웨 성의 왕궁에 있었던 앗수르 왕의 명령과 동일합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향하여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면서 이제까지 섬겼던 자신들의 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의 경우와는 두려움의 대상이 조금은 다르지만 그들이 커다란 두려움 앞에 있었던 것은 동일합니다.
앗수르 사람들이 금식하면서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내리려고 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왕의 명령을 듣고 함께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려고 각자가 살고 있던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나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많은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도우심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모인 것입니다. 위기때에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때는 자기 하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하나님 앞에 모이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제석교회 역시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각자의 집에서 떠나 교회에서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함께 모여 성령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했던 초대교회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 죄도 아닙니다. 두려움은 여러분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불신자들은 그 두려움의 때에 도울 사람을 찾거나 피하여 도망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두려움이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역시 두려움을 느낀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제를 드리라고 요구하셨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다가 잡아서 반석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창세기 15장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그런데 그렇게 제물을 잡아 벌려 놓으니까 솔개들이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어떤 솔개는 낮게 날고 어떤 솔개는 땅에 내려서 번제물 가까이 종종 걸음을 치면서 다가옵니다. 아브라함은 지팡이를 휘두르기도하고 돌을 집어 던지면서 계속해서 솔개들을 쫓았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 밤 짐승들이 고기 냄새를 맡고 몰려들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5장 12절입니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홀로 있는 아브라함에게 큰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불로 제물을 태우시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심으로 인해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고 소망의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두려움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역시 블레셋 땅에 들어가 죽임을 당할 까봐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왕이 밖을 내다보다가 이삭이 아내인 리브가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불러 묻습니다. “네가 왜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여서 내 벽성중 하나가 네 어내를 범할 뻔 하게 하였느냐?” 그러나 이삭이 대답합니다. 창세기 26장 9절을 보면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예쁜 아내를 두어서 그 백성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아내를 빼앗기게 될까봐 이삭은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나약함으로 인해 두려움에 빠져 있었던 이삭에게 용기를 주심으로 담대하게 하셨습니다.
야곱도 역시 두려움에 사로잡힌 때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32장 11절을 보면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야곱은 자기 형인 에서가 400명의 용사들을 데리고 자기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운 마음으로 가득찼습니다.
여러분들도 역시 앞으로 닥칠 어떤 일들 때문에 두려워 밤에 잠을 자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한 적이 없으십니까? 너무나 큰 두려움 때문에 잠도 못자고 엎치락 뒤치락 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할 일이 무엇입니까?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시간이 하나님과의 씨름 시간이었고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셔서 다리를 저는 불구로 만드셨습니다. 야곱이 기도한 것은 자기를 불구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에서의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 그 마음을 돌이켜 죽이지 않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다리를 저는 장애인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그런 야곱의 모습을 보고 불쌍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실지를 잘 아십니다. 때때로는 여러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십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제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다리만 절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도 주셨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두려움이 있다면 그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예수님도 잡하시던 날에 잠을 주무시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죽을 정도로 큰 근심에 억눌려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여러시간 동안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울며 통곡하시면서 기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을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그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옮기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게 하셨지만 예수님 마음에 하나님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신뢰함으로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로인하여 모든 심문하는 사람들의 심문과 비난과 조롱과 수치와 고통을 인간적으로 대항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모든 것을 견뎌내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육신의 승리가 아니라 영혼의 승리를 얻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에게 주신 능력으로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사람들과 못박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하며 놀리고 있는 사람들 등의 모든 사람들을 단 일분 만에 죽이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셨고 아들 역시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그 힘을 사용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온 세상에 있으며 또한 죄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셨습니다.
다윗 역시 두려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겨다니다가 블레렛 사람 아기스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기스는 블레셋 군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갔습니다. 그때 다윗이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따라가자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이 자신들을 배반하고 이스라엘을 도와 자기들을 해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자기들의 왕인 아기스에게 말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불러 시글락으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기의 군사들을 이끌고 블레셋 땅인 시글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집들은 거의 불타고, 남아 있던 가족들은 없어졌고, 재산도 역시 다 사라졌고 남은 것은 다 불에 태워진 것을 보았습니다. 분노한 다윗의 군사들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매우 다급하였지만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사무엘상 30장 6절을 보면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군사들을 이끌고 가족들을 잡아간 도적 떼들이 있는 곳으로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습격했습니다. 그로인하여 방심하고 있던 아말렉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을 입은 다윗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크고 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여호사밧은 쳐들어온 3개국의 합공에 두려움을 느꼈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온 유다 백성들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며 함께 모여 기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왕의 말을 들은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려고 모여와서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받으셨으며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또 교회에 기도를 요청하십시오. 또한 함께 모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하나님이 막아주시며 믿음으로 행한 일의 상급이 되심을 말씀하심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도 역시 큰 방패요 상급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역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용기를 주시는 것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창세기 26장 24절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그는 이 말씀을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그 나라의 한 가운데서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는 탁월합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과 하나님이 주실 복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시면서 지금 당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또렷한 소망이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20절을 통하여 약속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여러분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 예수님과 함께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함께 모여 기도하십시오. 금식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반드시 구원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 복이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