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나눔의 터 우리마당-20140818
8천만겨레 ‘우리’되어, 3천리반도 ‘마당’으로 만드는 시민단체입니다
http://blog.naver.com/wrmd ‘손’ 나오면 누르십시오!
우리마당30주년 기념위원회 함께했었던 ‘우리’ 공개합니다!
30년 동안, 만남과 나눔 가졌던 사람 중에서 마당지기는 매주 발행 소식 통해
첫째주 좋은사람, 둘째주 나쁜사람, 셋째주 서운한사람, 넷째주 고마운사람들-
김동춘-‘우리마당피습사건’의 많은 관심에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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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이번 주 시민관련 행사 #
=8.19(화) 14:00 국회의원회관(여의도)-참여연대
-토론회 군 인권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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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일) 13:30 향린교회(을지로2,3가사거리)-평화소모임
-포럼 전쟁연습, 작전계획 백과사전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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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협정시민토론회’는 27일(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 ‘전 국회 외통위원장, 김원웅 님’을 모시고
=- ‘국치로 빚어진 분단, 평화협정 최고이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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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가 풀어야할 기회입니다.
아시안게임으로, 국제사회 지켜볼 때
미국과 군사훈련 곧바로 중단합시다!
이는 전시작전권반환 명분도 됩니다!
남북 관계에 대해 현 정부 출범할때 입장 무었이었을까요?
아니 평화신뢰 운운하면서 과연 무엇을 보여주려했습니까?
국방부에서 미국과 연합훈련, 거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연례적 방어훈련이기 때문에, 중단할 이유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이 평화통일 되었는데도 군사훈련 해야할까요?
이같은 모순이 중첩되는 상황에서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남북의 김장된 관계 풀기 위해 올해 연합훈련 변경을 검토
즉 전시작전권 반환하겠다는 미국에게 명분 주어야 합니다.
4년마다 열리는 아시안게임, 마침 남측 인천에서 개최되어
이같은 행사의 개최 때문에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군사훈련
중지한다고 하면, 남북과 미국 모두에게 큰 명분을 줍니다.
그런데 여전히 시민들의 반대 여론에 마지못해서 행동하는
모습 보여주려는 양상 거듭 확인됨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측과 함께하는
공동응원단을 모아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극복하려 합니다.
北에서 총 323명의 선수단 명단을 신청서로 제출했습니다.
선수150명과 감독,임원173명(14개종목)의 참가예정입니다.
남북이 다시 화해와 단합의 기운을 얻으려하는 노력입니다.
우리 민족의 마음 모으면서 통일의 그날을 준비해야합니다.
인천아시안게임 남북공동응원단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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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당30년’ 역사 되돌아보는 기념 년력-[79]
1980년대 민족문화찾기는 민주화운동 뿌리였고 열매이었습니다.
1919년‘태화관’, 우리는 언제부터 어떻게 되새기게 되었을까요?
다음까페 ‘신촌우리마당’ 네이버블로그 ‘우리마당’ 찾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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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8.17. 새벽 괴한들이 피습했다!
사건 때문에 국회 등원을 거부했던 정치권이
집권하였을 때, 공소시효 15년이 지났다면서
보안사출신 범인4명 자수했다고 보도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사건진상 규명되지않는 이유?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이 존재하고 있었을까?
최근 보안사 출신들로 구성된 ‘어버이연합’에서는
진상규명 분신 실패한 김기종을 시청, 광화문에서
집단폭행하고, 이를 취재한 언론사는 보도 못한다.
우리마당30주년 되돌아보는 기념 년력은 군사정권에서 실천한
자랑찬 활동들 많지만 아픔의 여러 상처들도 숱하게 존재한다.
수많은 집회와 시위들이 이곳에서 준비 집행되며, 이제 이름만
들어도 모두 잘 알고 있는 민족민주단체들의 창립 장소였었다.
70년대 민주화세력과 80년대 대학청년들이 문화운동을 통해서
사회 모순을 심도깊게 느끼며 숱한 시국사건의 현장이 되었다.
가장 안타깝고 어이없는 기억이 1988년의 ‘우리마당피습’이다.
1988년 8월 17일 경향신문 ‘문화운동 사무실 피습’
1988년 8월 17일 동아일보 ‘재야단체에 새벽 괴한 침입 행패’
1988년 8월 17일 중앙일보 ‘괴한 침입 여자회원 폭행’
1988년 8월 18일 조선일보 ‘문화운동단체에 한 밤 4인조 침입’
1988년 8월 18일 한겨레신문 ‘문화운동단체에 새벽 괴한 난입’
1988년 8월 18일 한국일보 ‘재야 문화운동단체에 괴한 침입’
주요 신문의 1988년 8월 17,18일 사회면,정치면에 대서특필된
‘우리마당피습’에 대한 기사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을 뿐이었다.
보다 근본적 이유는, 군사정권의 끊임 없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민주화운동 진영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
진상규명을 위해, 당시 야당 평민당은 국회 국정조사 논하였고
김대중총재는 국회 등원을 거부하겠다는 기사까지 보도되었다.
치안당국은 발뺌하며 현상금 5백만원과 일계급 특진 내걸었다.
당시 평민당이 조사 발표한 '우리마당피습사건'의 발표 개요는
“‘우리마당 피습사건’은 중앙일보 ‘오부장 테러사건’을 저지른 정보사
령부 우이동지대장 박철수 소령의 휘하에 있는 박희실 대위팀이 저질
렀으며, 현장지휘는 김학두 중사가, 강간은 손영춘 중사가, 남자를 각
목으로 친것은 정모 하사가, 김천연 하사도 현장에 있었고, 나철식 하
사는 건물 입구를 지켰다고 한다. 또 범행 지시는 정보사 파견부대장
이규홍 준장이 직접 했는데 이 준장은 '강도, 강간으로 위장하기 위하
여 여자가 있으면 손대도 좋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해 겨울 노태우는 대통령령을 발동, 보안사를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는 성공 아니면 반성을 치루기까지 했던 역사이다.
그런데 이처럼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 기록이 깊숙이 묻혀있다.
하지만 범인은 우리마당의 실천이 꾸준했었으니까 자수했었다.
당시 우리마당은 문화공간 없이도 활동, 存在했기 때문이었다.
2004년 4명의 HID요원 출신들이 시사저널에서 기자회견했다.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었기에 당시를 반성, 사과한다면서-.
자신들은, 이진삼 보안사령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들 통해 진상규명 기대했으나, 오리무중 아니 무관심이었다.
결국에 사건내용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숨겨져 있을 뿐이다.
심지어 김기종 분신, 사회각계의 탄원에도 묵묵부답인 이유는?
특히 범인이 공개적 자백했기 때문에 사건 규명보다 못지않은
진실을 공개시킬 수 없는 어떤 사정들이 이면에 숨어 있을까?
우리마당 입장에서 보면 마냥 기억나는 진실은 단순할 뿐이다.
당시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 ‘1988 올림픽’ 단독으로 개최되는
안타까움으로 모두가 지쳤을 때 우리마당은 문화운동단체로서
이한열 장례식(1987) 등의 자신감으로, 행사를 준비 선언했다.
따라서 행사는 ‘통일문화큰잔치’로 정하고 시민들의 적극 결합
다각도로 준비하며, ‘청소년통일문화교실’ 개최 진행 중이었다.
즉 올림픽 동안에 경기장을 찾지도 집안에서 TV보기도 못하는
처지에서 분단의 눈물만 무작정 흘리지말자고했던 기획이었다.
그러나 사건수사한다면서 끊임없이 사무실 드나드는 경찰들과
취재를 위해 꾸준히 찾아오는 기자님들 때문에, 준비하고 있던
‘통일문화큰잔치’ 행사에 많은 차질들이 발생하였을 뿐이었다.
사건으로 말미암은, 우리마당 행사 준비에의 방해 책동이었다.
물론 ‘우리마당 피습’은 도리어 우리사회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즉 피습 재발에 대한 공포로, 회원들은 또다른 활동 모색한다.
이는 우리 시민사회운동 단체들 역사에,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1989년을 중심으로 몇 단체와의 관계를 예로써 언급해보겠다.
문예운동 더욱 가열차게 하려던 일꾼들은 ‘민예총’ 탄생시켰고
민주항쟁으로 성장된 시민 의식 모으면서 ‘경실련’ 출범시켰고
부당구속의 인권을 논했던 변호사들은 ‘민변’을 조직하였었다.
특히 피습사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기획보다 축소되었지만
'통일문화큰잔치' 오히려 예정대로 개최(?) 되었다고 평가한다.
오늘 보고의 역사로도 우리나라 통일문화운동史가 확인되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그 엄청난 피해를 보상해야되고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진상규명해야 되는데 오리무중이다.
괴한 피습의 시국사건 현장이 확인되어지는 무서움 때문일까?
당시 회원들, 사회각계 지도자들인데 아직 ‘우리마당피습사건’
부담으로 발걸음이 뜸해졌고, 사무실 이웃 주민들의 눈길들은-
사건 발생 때 특종보도하였던 기자님들 왜 입 다물고 있을까?
사건 관심갔던 그때 국회의원님들까지 왜 머뭇거려야만 할까?
수사했던 검찰과 경찰, 또 군대는 왜 결과를 발표하지 않을까?
또 괴한 피습받을 만한 시민사회단체가 당시에 존재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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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맞는 ‘우리마당’ 사회공익활동 국회 입법 설립 필요합니다.
군사정권 때 마련하였던 열린공간에서, 대학청년들과 시민들 만남이
민주화와 통일운동으로 피어난 문화운동, 사설단체 아님 입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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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
독도에 대한, 사회문화적 ‘2010년 역사인문서’로
시중 책방에서 12000원으로 일반 시민에게 보급!
‘독도38번지’로 본적을 옮긴 우리마당회원들 모임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활동과 실천 소개했습니다.
특히 2010.7.7. ‘프레스센터 事件’의 진실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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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5단락으로 ‘2010년 사건’ 자료 中心 편집
제1단락에서는 ‘독도와 우리 민족’이라는 제목으로
제2단락에서는 ‘독도사랑은 우리 모두가-’이라는 제목으로
제3단락에서는 ‘실천하는 독도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제4단락에서는 ‘독도로 화해협력의 통일을-’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단락은 ‘독도 2010년 사건’ 제목으로 특집 구성했습니다.
일본대사관‘홈페이지’ 개편요청 외통부에 진정하고 받은 답변서,
외교시설100m이내 집회금지한 ‘집시법’ 헌법소원청구와 판결문,
또 2010년 7월 7일 프레스센터의 일본대사와 충돌 사건을
검찰공소장과 법원(1,2심)판결문 내용, 그대로 게재했습니다.
(김기백,김삼열,박세정,이규호,한송본,황대영의 탄원서 수록)
또 황상현변호사 항소이유서, 김기종 최후진술서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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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맞이 사업-여러분 성금 계속 받습니다!
----------일단 민화협 1만 2천원 ‘북한 비료보내기운동’에 1구좌를
----------확보하면서 ‘너나밤나무’ 묘목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너나밤나무’로 북녘 백두대간과 동포들 식량난 해결-
3천리 백두대간의 너와 나, 8천만동포가 하나되기위해
‘우리’ 상징하는 ‘너나밤나무’로, 평화통일을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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