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것은 중독성 외로움
이원형
장미가 담을 넘는 일을 탓한다면
담을 타는 고양이에게 분개할 것인가
꽃이랑 놀고 싶었다
마침 마음 한 켠이 비었길래 양귀비를 심어 나를 위로해 주었으나
염치없이 미인을 탐한다는 소문이 담을 넘은 모양이다.
내 은밀한 취미를 관상용과 마약용으로 분류하여 꼬치꼬치 캐묻는 법은
꽃보다 한 수 위라서
양귀비 앞에 꽃을 붙이면 합법
양귀비에서 꽃을 떼면 불법이란다
남들은 나보고 시인시인 하는데
경찰은 날더라 시인하란다
양귀비는 왜 끌어들였죠?
끌어들이긴...... 흘러들었지
냉큼
엄지손가락 도장밥 먹여
내 그곳보다 희디 흰 진술서 낱장마다
양귀비 꽃잎 하나씩 그려넣어주고 왔다
꽃에게 마음 준 일 이리 붉다
내 그것은 중독성 외로움
선천성 그리움*보다 중독성이 강하다고 각별히 유념하라며 안 그럴 것 같은 경찰이 문 밖까지 배웅해주었다.
*함민복 시인의 선천성 그리움.
고통이란 삶이 장애를 만난 것을 뜻하지만, 그러나 고통은 살아 있음의 구체적인 증거라고 할 수가 있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삶이 있고, 삶이 있기 때문에 기쁨도 있다. 고통은 ‘아버지의 산’이자 ‘어머니의 강’이며, 모든 생명체들의 기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슬픔의 기원도 고통이고, 기쁨의 기원도 고통이다. 외로움의 기원도 고통이고, 즐거움의 기원도 고통이다.
고통의 특효약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도 있다. 첫 번째는 희망이고, 두 번째는 수면이다. 세 번째는 죽음이고, 네 번째는 마약이다. 희망은 어떤 고통도 물리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가 주고, 잠을 자면 일시적인 고통이 해소되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죽음은 육체의 소멸과 함께 고통이 끝난 것을 말하고, 마약은 그 환각상태를 통해서 일시적인 도피처를 제공해준다.
자기 자신의 존재의 근거가 자유라면 이 자유만큼 고귀하고 희소한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자기 자신의 주체성과 자유를 확보하며 살아가고 싶어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자유를 공동체에 의해서 빼앗기고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의 출신성분과 국적을 갖는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따라서 공동체가 제공해주는 수많은 혜택을 얻는 대신에, 그것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수많은 혜택들은 채권자의 몫이 되고, 수많은 의무와 책임은 채무자의 몫이 된다. 도덕과 법률과 풍습의 미덕은 책임과 의무를 강제하고, 또한, 그것은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주체성과 자유를 구속한다.
이원형 시인은 양귀비를 ‘꽃중의 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집안에 몇 포기의 양귀비를 심었던 것이다. ‘꽃중의 꽃’인 양귀비는 마약의 원료가 되고, 이 마약의 중독성 때문에 모든 나라는 양귀비의 재배와 마약의 생산과 유통을 철두철미하게 관리를 하고 감시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나 마약이 제공하는 환각성과 그 중독성 때문에 마약의 수효는 늘어만 가고, 이것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게 된다. 시인은 마약중독자가 아니고, 마약을 투여할 일도 없고, 마약을 제조하여 돈을 벌 생각도 없지만, 그러나 경찰당국은 그를 소환하여 진술서에 도장을 받고, 다시는 양귀비를 심지 말라고 훈방조치를 했던 것이다. “양귀비 앞에 꽃을 붙이면 합법/ 양귀비에서 꽃을 떼면 불법이란다/ 남들은 나보고 시인시인 하는데/ 경찰은 날더라 시인하란다”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양귀비랑 놀고 싶었고, 그래서 양귀비를 심었지만, 그러나 사회적 규약의 총체로서의 법률은 나의 주체성과 자유를 철저하게 짓밟고 유린했던 것이다.
아름다움에는 국경도 없고, 차별도 없다. 아름다움에는 도덕도 없고, 종교도 없다. 아름다움은 만인들을 불러 모으고 더러움은 만인들을 떠나가게 한다.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금기시 하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만인들이 아주 간단하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다.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차이는 그 희소가치에 따라서 결정되고, 이 희소가치에따라서 중독성의 매력을 발산하게 된다. 양귀비꽃이 더 아름다운가, 장미꽃이 더 아름다운가? 양귀비꽃이 더 아름다운가, 모란꽃이 더 아름다운가? 양귀비꽃이 더 아름다운가, 벚꽃이 더 아름다운가? 이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차이는 상호간의 취향의 차이일 뿐이지만, 그러나 양귀비꽃의 아름다움은 중독성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모든 진통제의 원료인 마약, 고통의 치료제, 또는 고통의 완화제로서 최고급의 환각과 쾌락을 가져다 주는 마약, 모든 이 세상의 인과관계를 망각하게 하고 그 환각 속에서 비명횡사를 택하게 하는 마약----. 양귀비가 ‘꽃중의 꽃’이 된 것은 이처럼 가장 값비싸고 치명적인 마약의 원료였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시는 자유이고, 그 어떤 구속도 없는 아름다운 삶을 원한다. 마약이든 약이든, 꽃양귀비이든 양귀비이든, 도덕이든 부도덕이든, 법이든 불법이든, 그것은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의 문제이고, 이원형 시인의 [내 그것은 중독성 외로움]은 그 모든 도덕과 법률과 풍습의 미덕을 떠나 있다. 양귀비와 사귀고 양귀비와 살기 위해서는 양귀비를 심고, 양귀비의 마음과 양귀비의 속살과 그 꽃이 되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시는, 양귀비는, 아름다움은,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삶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을 떠나면 죽는다. 이 세상의 삶은 고통이고, 고통 속의 삶이지만, 그러나 시와 양귀비와 아름다움이라는 마약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이원형 시인의 [내 그것은 중독성 외로움]은 양귀비꽃에 대한 찬양이며, 그 꽃의 아름다움이 중독성의 매력을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너 홀로 진정한 시인이 되어보라! 그러면 너는 중독성의 외로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시는 양귀비꽃이 되고, 양귀비꽃은 중독성의 마약을 분수처럼 뿜어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