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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성모 동산의 허브들
언제부턴가 허브(herb)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사전에 허브는 ‘예로부터 약이나 향료로 써 온 식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를테면 푸성귀가 일반적으로 ‘가꾼 채소나 저절로 난 나물’처럼 사람이 먹는 풀을 통틀어서 일컫는 명칭이라면, 허브는 약의 성분이라든지 맵거나 향기로운 맛 등 독특한 효능과 풍미를 지닌 풀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도 그렇지만 의학이나 약학, 식품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허브가 치료제나 향신료로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허브들은 마땅한 우리 이름이 없어 서양 이름 그대로 통용되는 편인데, 예전에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되는 이름으로 불렸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허브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건 음반이 나왔고, 거기에 수록된 노래들 중에 ‘스카보로 페어’(Scarborough Fair)라는 노래가 있었다. 남성 2인조 가수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러서 널리 알려진 이 노래는 본래 영국에서 구전 민요처럼 전해 오던 노래였다. 이 노래에서 음반의 타이틀이기도 한 네 가지 허브의 이름이 후렴구로 반복해서 불리는데, 파슬리(Parsley), 세이지(Sage), 로즈마리(Rosemary), 타임(Thyme)이 그것들이다.
중세 때부터 영국의 중요한 교역장이던 스카보로에서는 매년 8월 중순부터 45일 동안 장이 섰다. 장이 서면 유럽 전역에서 상인들이며 광대, 마술사, 음악인, 심지어 소매치기, 도박사, 거지들까지 몰려들었다. 당연히 물건도 사고 갖가지 구경도 할 겸 이곳을 찾는 갑남을녀들도 몰려들었다. 그렇듯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이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남녀 사이에 정분나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개중에는 그 사랑이 아쉽게 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하다가 헤어진 연인들의 이야기로 만든 노래 하나가 ‘스카보로 페어’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스카보로 페어’
실연한 남자가 친구 또는 지인에게 스카보로 시장에 가는 길이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노랫말을 살펴보면, 헤어진 두 연인이 말도 안 되고 뜬금없기까지 한 사항들을 서로 요구한다. 가령 남자는 헤어진 연인에게 솔기도 바늘땀도 없는 셔츠를 만들라는, 그리고 그 셔츠를 물이 없는 우물에서 세탁하라는, 그러면 그 여인은 그의 진정한 연인이 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한다. 이에 여자는 남자 연인에게 양의 뿔로 밭을 갈라는, 가죽 낫으로 작물을 수확하라는, 그러면 그 남자는 자신의 진정한 연인이 될 것이고, 자기는 솔기며 바늘땀이 없는 셔츠를 만들어 주겠노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람들은 이 노랫말을 대개는 두 가지로 풀이한다. 하나는 이루어 낼 수 없는 부탁을 하고는 그에 따른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사랑의 정도를 가늠해 보고자 하는 것이란다. 또 하나는 실현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는 뜻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미련을 두지 말고 아예 포기하거나 잊어 주기를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란다. 마침 베트남 전쟁이 치열했고 미국에서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 노래는 전장에서 죽어가는 청년이 고향의 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바뀌어 갔다는 맥락에서 볼 때는 나중의 해석에 다소 무게가 쏠린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에 굳이 허브가 등장하는 배경을 살펴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어쨌든 노랫말에 허브들이 나온다는 것은 이것들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낯설지 않은 식물이었으며, 그렇다면 허브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음직도 하다.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타임이라는 말의 어감이나 리듬감이 노래에 감칠맛을 더해 준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이 허브들이 상징하는 바는 아래에서 보듯이 각기 의미심장하다.
파슬리는 소화를 촉진하며, 쓰리고 아린 감정을 다독이고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중세에는 의사들이 정신적 치료를 위해서 파슬리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파슬리는 헤어진 연인 사이의 서먹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해소하고 싶어 하는 염원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세이지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내구성 또는 끈기를 상징한다. 또 켈트인들은 세이지가 힘과 지혜, 불사(不死)를 상징하고 또한 독소를 제거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상처를(심지어는 뱀에 물린 상처도) 소독하거나 치료하는 데 세이지를 이용했다. 그런 점에서 세이지는 상심한 연인에게 힘과 지혜를 주고 싶어 하는 배려를 나타낸다고 하겠다.
로즈마리는 사랑과 신의와 추억을 상징한다. 그래서 중세에는 로즈마리를 신부(新婦)의 부케를 만들거나 결혼식장(교회)의 바닥에 뿌리는 데 사용했고, 오늘날에도 영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신부(新婦)의 머리에 로즈마리의 작은 가지를 꽂는다. 강한 향이 오래 지속되는 로즈마리가 신랑신부 사이에 길이 간직될 기억의 징표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로즈마리는 헤어진 연인에게 사랑과 호감으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가능하다면 본인도 신의로써 그 연인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심정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성모님과 관련된 이름으로 불리던 허브
타임은 질병을 치유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성분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소독제로 사용되어 왔고 또한 사랑과 용기를 의미했다. 그래서 중세 때 기사(騎士)의 여인은 타임의 잎을 기사의 갑옷에 수놓고 기사는 방패에 새겼다고 한다. 그리고 타임은 슬프거나 우울할 때 또는 긴장했을 때 기분을 전환하거나 자신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하기에 타임은 비록 헤어져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사람을 용기 내어 기다리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사랑이 깨어져 상심한 두 사람이 네 종류의 허브를 통하여 서로 포용하는 이해심을,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를, 한 남자만을 그리고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신의를, 어떤 어려움이라도 헤쳐 나가려는 용기를 가진 연인이 되기를, 다시금 진정한 연인이 되기를 부탁하고 격려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사랑하던 연인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기를, 또는 돌아오기를 다짐하고 바라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헤어진 연인들의 쓰리고 아픈 심정을 나타내 준 허브들이 예전에는 성모님과 관련되는 이름으로 이렇게 불렸다. 파슬리는 ‘성모님의 작은 덩굴풀’(Our Lady’s Little Vine), 세이지는 ‘성모님의 숄’(Mary’s Shawl), 로즈마리는 ‘성모님의 작은 꽃다발’(Mary’s Nosegay), 타임은 ‘성모님의 겸손함’(The Virgin’s Humility)이라고 말이다. 만약에 헤어진 연인들이 서로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면서 허브들을 이런 이름으로 불러 댔다면, 그 심정은 얼마나 더 애틋하고 간절했을까.
[전례의 숲] 공동 집전 미사
여러 사제들이 같은 시간 같은 제대에서 함께 거행하는 미사를 공동 집전 미사라고 합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는 쉽게 볼 수 없던 미사 형태였습니다. 공의회 전례 개혁의 첫 열매로 1965년 공식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공동 집전 미사에서 “여러 사제들이 똑같은 사제직의 힘으로 대 사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한 뜻과 한 목소리와 한 성사 행위를 하며 모두 함께 한 제사를 이루고 봉헌하며 함께 그 제사에 참여합니다.” 사제가 여럿이라고 미사가 여럿은 아닙니다. 미사는 하나입니다. 축성할 재료도 같고 축성도 하나입니다. 단독 집전 미사에서 봉헌자가 하나지만 공동 집전 미사에서는 여럿일 뿐입니다. 사제들은 각자 자기 미사를 집전한 것이 아니라 한 미사에 제사 봉헌자로서 참여합니다. 그래서 사제는 각자 맡은 지향에 따라 미사 예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 공동 집전 미사가 중요할까요? 무엇보다 여러 사제들이 하나로 결합하여 사제직을 수행하며 사제직의 단일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미사에서 사제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사제들은 그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그분을 대신하여 미사를 거행할 뿐입니다.
또한 여러 사제가 공동으로 집전하는 미사는 제사의 유일성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모든 미사에는 하나의 제사가 있을 뿐입니다. 미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성령의 힘으로 교회 안에서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리고 공동 집전 미사에서 주례(특히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사제단과 교우들이 이루는 일치를 잘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미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행위이고 교계 질서를 갖춘 하느님 백성의 행위입니다”(총지침 16).
여러 사제가 공동으로 집전하는 미사는 제사의 유일성 뚜렷하게 드러내
공동 집전 미사는 동방과 서방 교회에서 초 세기부터 있었습니다. 자세한 모습은 안개 속에 있습니다.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미사를 공동체 행위로 보며 공동 집전에 관하여 증언합니다. “하나의 제사에 힘써 참여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은 하나이며, 우리를 그분의 피 안에 일치시키는 잔은 하나이며, 제대도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교도 하나로서 사제단과 부제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3세기 초 문헌 “사도전승”은 사제들이 예물 위에 손을 펼치는 동작을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봉사자들이 예물을 주교에게 갖다 바치면, 그는 모든 사제들과 함께 예물에 손에 얹고 감사의 기도를 바칠 것이다.” 이 시기에는 고정된 감사기도문이 없었기 때문에 기도문 낭송은 주례 홀로 했을 것입니다.
중세 서방에서는 개인 미사 관습이 발전하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주교 축성과 사제 서품 미사 외에는 공동 집전 관습은 사라졌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의 공동체 가치를 확인하며 이 관습을 복구하였습니다.
미사 경본은 주교와 사제 서품, 대수도원장 축복, 성유 축성 미사는 의무적으로 공동 집전이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 예식의 본성 때문에 주교와 사제단과 교우들이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 공의회와 주교 모임과 교회 회의 때 드리는 미사, 수도원 미사와 성당이나 경당의 중심 미사, 사제 모임 때 드리는 미사는 공동 집전을 권장합니다. 한편, 공동 집전 미사가 있을 때 그곳에서 같은 시간에 단독 집전 미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와 부활 성야 미사는 개인 미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총지침 199).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손님 신부들도 공동 집전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사제의 신분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총지침 200). 공동 집전자들은 주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공동체와 함께 미사를 거행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자리는 제단에 마련합니다. 부제가 없을 때는 공동 집전자들이 부제의 임무를 수행하고, 신자들이 봉사자(복사) 임무를 맡을 수 없으면 그 임무도 수행합니다(총지침 208).
공동 집전 사제들은 감사기도문의 축성 부분은 반드시 낭송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의 언어를 모르면 공동 집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구원의 성사 113). 그리고 미사가 이미 시작되었으면 공동 집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총지침 206). 물론 미사가 끝나기 전에 나갈 수도 없습니다.
공동 집전자들은 제대나 주례를 가려서는 안돼
그밖에 공동 집전 사제들이 새겨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동으로 낭송하는 부분, 특히 모두 낭송해야 하는 축성 부분은 공동 집전 사제들은 낮은 소리로 낭송해야 합니다(총지침 218). 주례 사제만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낭송해야 교우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낭송하는 감사기도문을 따라가며 이해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울러 공동 집전자들은 신자들이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제대나 주례를 가리거나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미사는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회중 전체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공동 집전자들은 주례처럼 제의를 입어야 합니다. 주례는 전례일에 따라 정해진 색깔의 제의를 입어야 하지만 “공동 집전 사제들은 필요에 따라 흰색 제의를 입을 수 있습니다.”(구원의 성사 124). 그리고 사제는 많은 데 제의가 부족할 때처럼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제의를 입지 않고 장백의 위에 영대를 멜 수 있습니다(총지침 209). 그러나 사제복이나 수도복 위에 영대만 메고 미사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구원의 성사 126). 다만 연로한 사제들의 경우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장백의를 입기 어렵다면 소속 장상을 통하여 사도좌에 관면을 요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동 집전 사제들은 주례 뒤에 신자들보다 먼저, 그 미사 동안 축성된 성체와 성혈로 양형 영성체를 해야 합니다(총지침 242-249). 제대에 나와 스스로 영성체 하지 않고 성체나 성작을 다른 사제나 부제에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봉사자는 “그리스도의 몸” 또는 “그리스도의 피”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구원의 성사 98).
공동 집전자들의 동작 가운데 오른손을 펼치는 동작이 있습니다. 곧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부분에서 주님의 말씀을 낭송할 때 주례는 허리를 굽혀 빵과 성작을 잡고 허리를 굽히고, 공동 집전자들은 오른손을 빵과 성작을 향하여 펼칩니다. 보통 엄지손가락을 바깥쪽으로 돌려 옆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축성의 의미를 살려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신학과 예식 관점에 따라 의견이 달랐던 것입니다.
“주교예절서”는 손바닥을 옆으로 돌리라고 말하여(79항 각주) 논쟁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각주는 공식 지침이 아니기에 꼭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의견에 따라 요즈음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사제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꼭 손을 펼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총지침은 사제가 “좋다고 여기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손을 펼치지 않고 주례처럼 허리를 조금 숙이며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17) ‘대영광송 : 하느님의 현존, 자비, 영광’
구원의 기쁨에 차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 모여와 그분의 자비로 용서받은 공동체인 교회는 그 기쁨을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것으로써 표현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대영광송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대영광송은 성령 안에 모인 교회가 하느님 아버지와 어린양께 찬양과 간청을 드리는 매우 오래된 고귀한 찬미가다.”(53항)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이 찬미가는 본디 아침 기도, 곧 새 날이 시작할 때 바치는 찬미 기도였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사이에 로마 교황이 집전하는 성탄 미사 안에 처음 도입되었고 차츰 주일과 순교자들의 축일과 주교들과 사제들이 집전하는 미사에까지 확산되었다. 오늘날 대영광송은 사순 시기 밖의 모든 주일, 대축일과 축일, 그리고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전례 거행 때에 노래하거나 낭송한다.(총지침, 53항 참조)
찬양
미사의 시작 예식의 주요 요소들인 인사, 참회 행위(자비송), 대영광송은 하느님의 현존, 자비, 영광이란 주제로 연결된 전례적 역동성을 드러낸다.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고 그분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영광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기초적인 진리를 잘 표현한다. 사실 성경에서 하느님의 현존이 더 크게 드러나는 순간은 당신 백성의 불충실성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이다. 탈출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경배하여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렸다. 하느님께서 다시 당신 백성과 계약을 갱신하는 과정은 자비로서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의 현현과 함께 일어난다. 죄인이 된 백성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끊임없이 애원하며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탈출 33,18)라고 간청하는 모세에게,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신 분으로서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신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약행과 잘못을 용서한다.”(탈출 34,5-7ㄱ)
우리는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며 하느님 영광의 광채(히브 1,3 참조)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 하느님께서 이끄신 구원의 역사를 바라본다. 그래서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구원의 시작인 그리스도의 탄생의 순간에 울려 퍼졌던 천사들의 노래(루카 2,13-14 참조)로 대영광송을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우리의 지상 전례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 전례의 표상인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여 끝없이 노래하는 천사들과 결합하여 드리는 이 찬미가 안에 구원 역사의 계획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받으신 하느님께 마땅한 영광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며 하느님과 인간이 화해를 이루어 인간에게 평화를 심어주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평화는 구원 전체의 목적이면서 동시에 교회와 전례, 특히 미사가 지향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간청
대영광송의 구조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천사들의 노래로 이루어진 도입구, 성부께 드리는 찬미, 성자 그리스도께 드리는 찬미와 간청, 삼위일체 성격의 마침구로 이루어져 있다. 성부께 드리는 찬미에서 찬미가의 공동체적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다. “주님을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주님을 흠숭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 이어서 성자 그리스도께 드리는 간청은 무엇보다 요한 세례자가 선포한 ‘하느님의 어린양’을 상기시킨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두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세 번 드리는 간청은 앞서 행한 참회와 자비송의 반복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간청하는 참회적 요소들은 미사 안에서 여러 번 반복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응답
사실 성찬례 거행 전체는 용서와 화해를 나타내는 여러 몸짓과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참회 행위, 자비송, 사제나 부제가 복음 봉독 후에 속으로 말하며 드리는 기도(“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 주소서”), 주님의 기도, 평화의 인사,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감사 기도의 축성문에서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성찬례 거행은 그 자체로 용서와 화해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대영광송에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신 파스카 양이시며,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주님께 드리는 간청으로 우리는 자비송에서 드러냈던 주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을 다시 한 번 고백한다. 이처럼 대영광송은 자비를 구하는 기도(자비송)에 대한 기쁨의 응답이며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대영광송은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며 삼위일체 양식으로 끝맺는다.
[신학 산책2] (29) 어떠한 사람이 신부님이 되나요?
“여러분은 주교의 성실한 협력자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사제 직무를 끊임없이 수행하겠습니까?” 주교님의 이 물음에 흰색 장백의를 입은 부제들이 큰 소리로 대답한다. “예, 수행하겠습니다.” 잠시 뒤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겸손한 자세로 엎드리면, 하느님의 은총과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성인호칭 기도가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품성사(聖品聖事)를 통해 사제직에 오른 이들을 신부(神父), 또는 사제(司:맡을 사,祭:제사 제)라 부른다. ‘신부’는 천주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라틴어 pater(아버지)를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적인 아버지’의 의미로 쓰기 시작한 것이며, ‘사제’는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일을 대리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성무(聖務)를 수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사제는 주교와 신부를 포함한다. 신부를 탁덕(鐸德)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복음을 전파하고 도리를 강론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이들이 신부가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먼저 “세례받은 남자”(교회법, 제1024조)이어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12명의 남자들을 사도로 뽑으신 성경의 기록과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계속해서 남자들이 선택되어 온 점, 그리고 교회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여자들이 사제로서 활동한 적이 없는 등의 이유로 남자들에게만 성품성사를 주고 있다. 교회는 여성들에게 서품이 수여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여성의 역할과 역량을 낮추어 보거나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준다. “교회에서 역할은 다른 사람에 대한 우월 의식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여성이신 마리아께서는 주교들보다 더 존귀하신 분이십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104항).
또한 신부가 되려고 하는 이는 올바른 지향과 합당한 자유의사가 있어야 하며,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아울러 지적, 윤리적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한국 사제 양성 지침, 12항 참조). 신부는 크게 교구 신부와 수도회 신부로 구별할 수 있는데, 교구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소속 본당 주임신부와 소속 교구 교구장의 추천을, 그리고 수도회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소속 수도회 장상의 추천을 받아서 가톨릭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여 규정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현재 한국에는 신부를 양성할 수 있는 7개의 가톨릭대학교가 있는데, 이곳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며 기도와 영성 생활을 익히고, 약 7년간의 철학, 성서학, 신학 등의 교육을 마친 후 신부가 될 자격을 얻게 된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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