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굴꾼
그냥 넘길려고 했으나, 일본넘이 우리의 문화재(미술품)을 도둑질해 간 사실도 부끄럽지만 우리 미술사의 한 모습임으로 한 꼭지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일본넘들이 우리의 문화재를 도굴하고, 훕쳐가기로는 임진왜란, 아니 고려 시대의 왜구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조선말에서 왜정시기에 제일 탐을 낸 것은 고려청자엿다. 개성 주위의 묘소를 파헤쳐 훔쳐간 도자기를 전시하면서 설명서에 개성 주변의 왕묘에ㅓ 발글한 것이라고 버젓이 써놓았다. 도둑질이 부끄러운지도 모르는 종자들이다.이 넘들이 우리의 고분을 파헤친 것은 1870년 쯤부터라고 한다.
미술사학자로, 조선 고적 기초 조사에 참여했던 우메하라 쓰에지(이 자식도 도둑넘이다.)가 쓴 글을 보자.
“대체로 조선에서는 유적 파괴, 특히 고분 도굴꾼은 러일 전쟁 후에 고려청자가 부장되었던 개성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한일합방 후에는 경북 선산 부근을 주로 하는 낙동강 융역의 유적들이 도굴되었고, 1923-24년에는 낙랑 고분군이 대규모로 도굴되었다.”
우리나라의 호사가는 일본넘이 하는 짓을 본 받아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였다. 그들도 도굴에 일조를 한 것이 아닌지는 모르겠다.
오세창을 위시하여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술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간송미술관이라고 한다.
1905년에 조선 총독으로 온 이또 히로부미는 일본인 중의 최대의 도둑넘인 도굴군이다. 일본의 고위직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고려청자를 긁어모았다고 한다. 도굴한 것 중에 뻬어난 103점을 일본 황실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선물로 진상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1905년부터는 매년 조선 고적 유적 조사라면서, 도굴의 안내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나마 경주 고분이 살아남은 것은 적석총이라서 도굴하기 어려웠다는 것도 한 몫을 했다.
일본인만 도굴꾼인 것은 아니다. 서양인도 도굴꾼 대열에 참어햐었다고 한다.
첫댓글 일본도굴꾼-일본놈들이 문화재도굴과 훔쳐가기로는 임진왜란 ,아니 고려시대 왜구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그러나 조선말에서 왜정시기에 제일 탐낸 것은 고려 청자였다.우리고분을 파헤친것은 1870년쯤부터라고 한다.미술사학자로 조선고적기초조사학자였던 우에하라쓰에지는 "조선에서 유적파괴, 고분도굴꾼은 러일전쟁후 고려청자가 부장되었던 개성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한일 합방후에는 경북선산부근을 주로하는 낙동강 유역의 유적들이 도굴되었고 1923-24년에는 낙랑고분군이 대규모로 도굴되었다."우리나라 호사가들은 일본놈을 본받아 문화재를 수집했다.오세창을 위시하여 우리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위해 미술품을 수집했다고 한다.그
결과물이 간송미술관이다.1905년에 조선총독으로 온 이토오히로부미는 일본의 고위직에게 선물하기위해 고려청자를 긁어모았다고 한다.도굴한 것 중 빼어난 103점을 일본황실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선물로 진상하였다고 한다.1905년부터는 매년 유적조사라면서
도굴의 안내서 역할을 한셈이다.그나마 경주고분이 살아남은 것은 적석총이라서 도굴하기어려웠다는 것이 한몫을 했다.일본일뿐만아니라 서양인도 도굴꾼 대열에 참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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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