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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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시데리오(Desiderius)
축일 5월 23일
프랑스 오툉(Autun)에서 태어나 비엔에서 교육을 받고
그곳의 주교가 된 성 데시데리우스(또는 데시데리오)는
캔터베리(Canterbury)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5월 27일)가 로마(Rome)에서 영국으로
갈 때 대교황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9월 3일)가
그를 만나도록 추천했던 주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유스타(Justa)라는 부인의 지나친 흠모로
인하여 중대한 제소가 제기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성 데시데리우스는 몇 년 동안 자신의 교구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후에 다시 돌아오자
이번에는 티에리 국왕이 이의를 제기하여 결국 그곳을
떠나다가 왕의 수행원들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주교직을 수행하려고 노력하였고
또 그에 대한 누명은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순교자로서 큰 공경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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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시데리오(Desiderius)
축일 5월 23일
성 데시데리우스(또는 데시데리오)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va) 출생으로 프랑스 랑그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스승 예수님처럼 자신의 양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흉포한 야만족의 침략 때
성 데시데리우스와 그의 성직자들은 그들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 도시 밖으로 나가 침략자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결국 그들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일부 저자들은 이 일이 크로쿠스(Chrocus)의 침략 때
발생했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몇 년 뒤 반달족이
그 지방을 노략질할 때 발생했다고 보기도 한다.
성 데시데리우스는 디디에르(Didier)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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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레베카(Rebecca)
축일 5월 23일
우리는 가톨릭 교회 안에 로마 예식 이외에
다른 전례 예식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성녀 레베카는 동방전례의 가톨릭 교회인
마론(Maron) 전례에서 보편 교회에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구약성서 아가에 나오는 신부처럼
레베카도 신랑의 부르심을 들었다.
“나의 신부여, 레바논에서 이리로 오너라.
레바논에서 이리로 오너라, 어서 오너라.
아마나 산 꼭대기에서, 스닐 산 꼭대기,
헤르몬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너라. 사자굴에서,
표범 우글거리는 산에서 내려오너라”(4,8).
“옷에서 풍기는 향내는 정녕 레바논의 향기로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울타리 두른 동산이요,
봉해 둔 샘이로다”(4,11-12).
“그대는 동산의 샘 생수가 솟는 우물,
레바논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어라”(4,15).
성녀 레베카는 1832년 6월 29에 레바논의
헴라야(Hemlaya)에서 태어났다.
피에리나(Pierina)로도 불리는 그녀는 아버지
무라드 사베르 샤박 알 라예
(Mourad Saber Shabaq al Rayes)와
어머니 라프카 게마옐(Rafqa Gemayel)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19세기 레바논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고,
특히 6살에 어머니가 죽은 후 레베카의 삶은
더욱 어려웠다. 4년 동안 가정부로 시리아에서
일하고 몇 년 후인 1853년 빅파야(Bikfaya)에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회의 구원의 모두
수녀원에 지원자로 입회하였다.
1855년 성 마론 축일에 수련기를 시작하며
아니사(Anissa, 아녜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5년 후 그녀는 데일 엘 카마르(Deir-el-Qamar)에서
그리스도인의 대학살을 목격했다.
그리고 1871년 그녀가 속해 있던 수녀원이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회를 만들기 위해
예수 성심회와 하나로 합치게 되었다. 그 때 모든
수녀들에게 새로운 회에 들어가거나 현존하는
수녀회에 남아있거나 또는 수도 서원을
관면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성녀 레베카는 일생을 통해 음성과 꿈과 환시를 통해
예외적인 계시를 받는 은사를 받았다.
1871년 아녜스(Agnes) 수녀는 자신의 미래와
성소에 대해 기도하기 위해 바트룬(Batroun)에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성당에 갔다.
그날 밤 꿈에서 은수자 성 안토니우스(Antonius)는
마론 전례의 발라디야회(Baladiya Order)에
들어가라고 일러주었다. 1871년 39세의 나이로
성녀 레베카는 엘 카른(El-Qarn)에 있는 금욕주의
발라디야회의 성 시몬 봉쇄 수녀원에 입회하여
자신이 꾼 꿈에 응답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헴라야의 부트로시야(Boutrosiya)로 알려졌다.
그녀는 1873년 8월 25일 종신서원을 하고,
수녀원장인 에프렘 게아게아 알 브쉐라위
(Ephrem Geagea al-Bsherrawi)에게 베일과
라프카(Rafqa, 레베카)라는 이름을 받았다.
금욕 수녀회의 회원으로서 성녀 레베카는 1885년
주님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기를 청했다.
그날 밤부터 그녀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멀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음식 찌꺼기만을 먹는 등의 고행을
계속하였다. 공동체의 기도를 함께 하고 양털실을
짜고 양말을 뜨개질하는 일 등을 하였다.
1907년 성녀 레베카 수녀는 지속적인 고통 속에서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모든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에 합치시킴으로써
불평 없이 기쁨으로 참아내었다.
1914년 10월 23일 성녀 레베카가 사망한 후
4일이 지났을 때 그녀의 장상인 두미트(Doumit)
수녀는 레베카의 중재기도를 통해 이루어진 여러
기적 중의 첫 번째 기적을 경험하였다.
성녀 레베카는 1985년 11월 1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2001년 6월 10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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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오니토(Leonitus)
축일 5월 23일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인인 성 레오니투스
(또는 레오니토)는 키예프(Kiev)의 동굴 수도원에서
수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주교가 되었다.
또한 그는 당신의 교구 내에서 가장 열심한
선교사로 활약하였고, 박해의 손길이 끊임없이
뻗쳤어도 그 어느 선임자보다도 성공적으로
주교좌를 관리하였다. 그는 기적의 힘으로
코스토프에서 이방종교를 뿌리 뽑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박해자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하여
중병에 걸려 선종하였으므로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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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퀸티아누스(Quinctianus),
성 루키우스 또는 루치오(Luc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축일 5월 23일
성 퀸티아누스(Quinctianus), 성 루키우스(또는 루치오),
성 율리아누스(Julianus)와 몇 명의 여인을
포함해서 총 19명의 신자들이 반달의 아리우스파
(Arianism) 왕 후네릭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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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르쿠리알리스(Mercurialis)
축일 5월 23일
성 메르쿠리알리스는 이탈리아 중부 포를리의
초대 주교였다. 그는 이교신앙과 아리우스주의
(Arianism)의 열성적인 반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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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카엘(Michael)
축일 5월 23일
성 미카엘은 그의 스승인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주교
성 타라시우스(Tharasius, 2월 25일)에 의해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Phrygia) 지방
신나다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성 타라시우스는
성 미카엘을 선택해서 그의 시노드 서한을
로마에 있는 교황 성 레오 3세(Leo III)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성 미카엘은
성상파괴주의자들에 대해 두려움을 모르는
반대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레오 황제에 의해 갈라티아(Galatia)로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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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
축일 5월 23일
바르톨로메오는 '귀한 아들'이란 뜻이다.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기혼자로서 가족들과 함께 모범적인 신자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으나, 아내의 동의를 얻고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곧 모든 형제들 중에서 신심이
가장 돈독한 수도자로 떠올랐고, 또 자신은 결코
희망하지 않았던 사제품까지 받았던 것이다.
그는 자주 성모님과 천사의 환시를 보았고 기적도
수없이 많았는데, 특히 음식을 많게 한 기적이
유명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로 처신함으로써 길거리의
아이들로부터 놀림까지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연만한 나이에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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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델모(aldhelm)
축일 : 5월 23일
웨스트 삭손의 왕 이느의 친척인 그는
영국 웨섹스에서 출생하여,
말메스버리에서 공부하였으며, 켄터버리에서
베네딕또회 수도자가 되고, 거기서
성 아드리아노의 문하에서 학문을 계속하였다.
그런 후 그는 그곳 학교의 교장으로서
말메스버리로 되돌아 왔고, 683년경에
원장이 되었다. 그는 이느왕의 고문이었으며,
학문과 영성 뿐만 아니라 웨섹스의
가장 현대적인 교육자로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로마의 전례와 더불어
셀트 전례를 정착시키는데 힘을 쏟다가,
705년에 셰르보른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둘팅 방문길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라틴어로
시를 썼고, 동정론을 저술하였으며,
영어와 라틴어로 된 발라드와 노래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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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피타키우스(Epitacius)
성 바실레오(Basileus)
축일 5월 23일
성 에피타키우스(Epitacius)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 투이(Tuy)의 초대 주교였고,
성 바실레우스(또는 바실레오)는 포르투갈 브라가의
초대 주교였다. 둘 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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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티키오(Eutychius)
성 플로렌티우스(Florentius)
축일 5월 23일
성 에우티키우스(또는 에우티키오)와
성 플로렌티우스(Florentius)는 이탈리아
누르시아(Nursia) 부근 발카스토리아(Valcastoria)의
수도원을 잇따라서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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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페비오(Euphebius)
축일 5월 23일
성 에우페비우스(또는 에우페비오)에 대해 알려진
모든 것은 그가 이탈리아 나폴리의 주교였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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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우프로시나(Euphrosyne)
축일 5월 23일
성녀 에우프로시나(Euphrosyna)는 벨로루시(Belarus)의
폴로츠크의 백작 스브야토슬라프(Svyatoslav)의 딸로
어려서부터 고향 마을의 어느 은둔소에서 살았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운 뒤에 그녀는 책의 사본 만드는
일에 전념하였고, 이를 팔아서 자선활동의 기금으로
사용하였다. 1170년경에 그녀는 긴 순례여행을 하였다.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그녀는 그곳의
총대주교 미카엘 3세로부터 성모 마리아의 ‘성상’을
받았는데, 후일 이것은 ‘코르선의 성모’라고 불리는
유명한 성상이 되었다. 또한 그녀는 성지에서
아모리 왕으로부터 십자군으로 받아들여졌고,
예루살렘에서 여생을 마쳤는데 그녀의 유해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Kiev)에 안장되어 큰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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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데 로시(John Baptist de Rossi)
축일 5월 23일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볼타지오(Voltaggio) 태생인
성 요한 세례자 데 로시(Joannes Baptista de Rossi)는
그 지방에서 존경받던 집안의 후손으로 10세 때에
어느 귀족 집안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았다.
후원자 집에서 3년을 지낸 어느 날 그 집에 카푸친회의
두 수도자가 왔다. 그들은 그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그를 초청하였다. 그래서 그는 13세 때에 로마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1721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학생 때부터 병원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40년 동안이나 인근의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보살폈다.
그러나 그의 음식은 보잘 것 없었고 의복도 남루하였다.
또 그는 고해신부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고백자들이
줄을 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66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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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윌리엄(William)
축일 5월 23일
퍼스(Perth)의 성자로도 알려진 성 윌리엄은
스코틀랜드에서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였다.
그는 다윗이라는 아이를 양자로 삼고 함께 여행을
하던 중 이 아이가 로체스터에서 그를 살해하였다.
그 후 이 아이는 반미치광이가 되어 거리를
헤매다가 어느 부인에게 발견되었다.
그녀는 윌리엄의 시신을 장사지냈고, 그 아이는
후일 자신의 죄를 뉘우쳐 로체스터 주민들에게
봉사하였다고 한다. 성 윌리엄은 1256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하여
시성되었고, 지금도 로체스터 대성당에는
그의 경당이 있다. 빌리암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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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보(Ivo)
축일 5월 23일
프랑스의 보베(Beauvais) 태생인 성 이보는
베크(Bec)에서 랜프랭크(Lanfranc)의 문하생으로
공부하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엄률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성서와 신학 그리고 교회법을
가르치던 중에 원장이 되었다가 1191년에는
샤르트르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또한 그는 국왕 필립 1세의 고문관이 되었으나
왕이 왕비인 베르타(Bertha)와 이혼하려는 계획을
알고는 강력히 반대하며 사임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그는 투옥되었다.
그러나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의 중재로
그가 석방되었는데, 그때 마침 국왕의 첫 부인인
베르타가 사망했기 때문에 국왕과 화해할 수 있었다.
그는 당대의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또 교회의 성직매매를 공식적으로 항의했던
용기 있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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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퀴베르토(Quibert)
축일 5월 23일
라타링거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퀴베르투스(Quibertus, 또는 퀴베르토)는 유명한 군사
지도자가 되었다가, 수도생활을 위하여 군대를 떠나
브라방의 젬블루에서 은수자가 되었으며,
936년에는 헤르뤼엥에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또한 그는 헝가리와 슬라브인들에 대한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11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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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라르도(Gerard)
축일 : 5월 23일
제라르도는 '세게 창 던짐'이란 뜻이다.
재속 프란치스칸의 기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데,
이 성인의 전기가 다소 그 기원을
밝혀 준다고 한다. 제라르도는
성 프란치슦로부터 3회 입회를 허가받았다.
그는 원래 군인이었다가 투스카니의
빌라마냐 고향 교외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엄격한 생활과
관상생활에 주력하였다. 그는 거의
20여 년 동안 이런 생활을 하였는데,
수많은 기적과 예언으로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