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76신]“걷기만 해도 힐링” 순천만국제정원
‘정원庭園의 도시’ 여행에 동참한 선생님께.
우리 부부와 처형 부부의 일일여행에 함께한 어제는 매우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잠깐 같이 있었다는 처형과의 인연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구요?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붙어 살다시피 한다면서요? 좋은 일이거니와 아름다운 일입니다.
70대 이후의 노후에 이런 ‘삶의 동반’이 어디 쉽고 흔한 일이던가요?
작년 이맘 4월말쯤엔 우리 고향집을 방문, 고사리와 쑥을 캐려고 뒷산을 함께 뒤지기도 한 인연이 있지요.
음식솜씨는 또 얼마나 좋아요? 손 크고 넉넉한 마음에 김장김치를 우리 부부까지 맛보게 하다니요.
어제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우리의 눈을 한없이 즐겁게 해준 ‘순천만 국제정원’을 3시간여 함께 걸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은 것 또한 잊지 못할 일입니다. 비 개인 34만여평의 정원, 마음이 온통 부자가 된 듯했습니다.
국제정원 명성다운 깔끔한 단장도 인상적이더군요. 코로나로 부대시설 등이 잠정폐쇄된 게 유감이었으나,
덕분에 차근차근 산책하는 게 더 좋았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는 날씨까지 제대로 받쳐주었으니까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제라늄을 처음으로 실컷 보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제라늄, 꽃이름도 참 예쁘지요.
이름도 모를 수십 종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세계 각나라의 정원를 아내의 손을 잡고 거니는 기쁨은 정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 빨간, 하얀 장미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보라색 장미, 상상이나 가나요?
어찌 이리 꽃들의 세계는 오묘奧妙하기만 할까요?
16개국 어린이 14만여명이 그렸다는 그림들을 딱지모양 아기자기하게 전시한 ‘꿈의 다리’175m는 그 자체가 설치미술의 극치같더군요. 동심童心이 그려내는 천진무구天眞無垢처럼 세계가 평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얀마의 군부학살은 1980년 광주항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과 PLO의 해묵은 갈등의 끝은 어디일까요?
우리나라는 대체 언제쯤 통일統一이 되어 ‘조선은 하나다’라고 외치게 될까요?
‘천상의 세계’를 노닐면서도 그런 생각을 순간순간 하며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신록의 꽃의 계절, 계절의 여왕 5월이 오기만하면 이곳을 와 꽃구경을 실컷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쌓인 온갖 스트레스를 일거에 씻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정화淨化, catarsis가 별것인가요?
웬만한 악인惡人이 아니고서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들은 꽃을 싫어할까요? 그것이 궁금합니다.
‘한국정원’은 부용정, 부용지, 어수문 등 창덕궁의 후원後苑을 그래도 옮겨놓았더군요.
선조들의 지혜와 여유로운 삶을 엿볼 수 있는 ‘군자의 정원’ ‘선비의 정원’에서 막 익은 앵도를 따먹는 행운도 맛보았지요.
‘호수정원’ 중심에 우뚝 솟은 ‘봉화언덕’에 올라 전체를 조망하는 맛도 쏠쏠했습니다.
관람차도 다니지 않고, 인파도 그리 붐비지 않은, ‘막 비 개인(하느님도 힐링을 하는가보다며 웃었지요)’ 정원을
아름다운 사람들과 슬렁슬렁 걸어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는 재미를 어제처럼 맛보기는 처음인 듯합니다.
비록 5인이상은 커피도 함께 마실 수 없다며 퇴짜를 맞고, 어느 맛집에서 3명, 2명 따로 앉아 점심을 먹기도 했지만요.
여수 순천의 명물이라는 짱퉁이탕과 꼬막정식(생꼬막, 양념꼬막, 꼬막전, 꼬막찌개, 꼬막꼬치, 꼬막장아찌)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요?
그제는 무주구천동 송어회집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합류, 재밌는 시간을 보냈으니,
요즘 같으면 살맛이 나는 것같습니다.
새벽 2시 요란한 천둥과 함께 이 봄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내내 굵은 빗줄기가 지금까지 내립니다.
이 비가 그치면 밭작물들이 기지개를 활짝 펴겠지요. 목마른 고구마순도, 작두콩도, 들깨도, 땅콩도 쑥쑥 자리를 잡아 제 본연의 모습을 갖추겠지요.
귀향하여 가장 신기한 것은 물과 흙의 작용입니다.
도대체 물에, 흙에 무엇이 숨어 있기에 딱 한 알의 씨앗이 서너 달만 되면 몇 수백 배의 새끼들을 양산量産하는 걸까요?
작년에 땅콩을 캐고, 들깨와 참깨를 털면서 솔직히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한 알이 500, 1000개로 변신하는 그 재주가 기적奇蹟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겠습니까?
선생님은 연륜年輪도 있으니 아시는지요?
하기야 95세 ‘프로 농사꾼’인 우리 아버지도 그 실체實體는 잘 아시지만, 그 수수께끼만큼은 모르신다 하더이다. 하하.
대자연大自然과 생물生物의 신비라는 말로밖에 어찌 설명이 되겠습니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AI가 판치고 인간복제도 어렵지 않은 세상이 왔지만,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만들 수 없는 게 자연인 것을요.
이 새벽, 선생님께 처음 쓰는 편지가 길어집니다.
고웁게 나이 들어가시는 처형 부부와 함께 늘 재밌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빌면서 줄입니다.
5월 16일
임실에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