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2) 全國의 風景돌아보기, 慶南 統營 蛇梁島 智異(望)山 (下)
(37) 가야할 길에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38) 삼거리에 있는 야자나무
삼거리; [↑가마봉 0.76km/옥녀봉 1.62km, ↓지리산 2.28km, ←대항 0.67km]
(39) 智異山稜線에서 보이는 大港浦口와 해수욕장, 안개가 끼어 희미하다.
(40) 가마봉으로 올라가는 急傾斜階段길
(41) 가마봉 정상(△303m)의 돌탑, 돌이 片麻巖조각이다.
(42) 가마봉에서 본 향봉(탄금바위)
急傾斜巖稜 정상에는 출렁다리塔이 보인다.
(43) 가마봉에서 내려가는 사다리에 가까운 경사의 鐵階段.
(44) 鞍部갈림길에서 뒤돌아본 가마봉의 急傾斜계단길.
이렇게 경사가 급한 계단은 2009년 中國 華山에 갔을 때 보았으나 國內에서는 처음
보는데 앞에서 다른 팀의 女子登山客이 벌벌 떨며 내려가 停滯된다. 만약 위에 있는
등산객이 넘어지면 그 아래 사람들 모두가 떨어지는 대형사고가 예상되는 곳이다.
(*滯: 막힐 체)
(45) 출렁다리 1 -폭 2m, 길이 39m.
향봉과 연지봉을 연결하는 출렁다리는 등산로를 연결하고 危險區間整備 등에 총 20억원을 투입해
2013년에 완공했다. 전에는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며 縱走할 수 있었다고 한다. (*縱: 세로 종)
(46) 출렁다리 2 -폭 2m, 길이 22m.
(47) 흙 없는 岩盤에서 뿌리를 들어내면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
(48) 급경사를 로프를 잡고 내려온다.
(49) 急傾斜階段 내려오기
(50) 뒤돌아본 출렁다리가 있는 연지봉과 그 뒤에 보이는 가마봉(△303m)
(51) [100대 名山/옥녀봉/△281m] 사량도 玉女峰 頂上標石
*옥녀봉의 傳說
玉女는 외딴집에서 아버지(또는 繼父)와 단둘이 살았으며 婚期가 되었으나 총각이 없어 시집을 가지 못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딸을 범하려 하자 아버지를 피해 옥녀봉 꼭대기에 올라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大禮를 치르지 못하고 죽은 玉女를 위해 사량도에서는 혼례식 때 대례를 치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 說話는 貞節, 孝行, 勸善懲惡이나 近親相姦 등 禁忌와 같은 우리民衆의 倫理意識을 교훈적으로 전하며,
‘옥녀봉’이라는 山頂을 증거물로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全域에 분포되어 있다. (*懲: 징계할 징)
(52) 내려가는 階段길, 암벽이 天障을 이루고 있어 ‘키 큰 사람은 머리 조심!’
(53) 또 만난 급경사 鐵階段길
(54) 大港마을 갈림길, 오른쪽으로 가면 蛇梁面事務所에 이른다.
(55) 대항마을 앞바다
(56) 섬一周道路옆에 있는 石장승. 天下大將軍-天下女將軍
(57) 동백꽃
(58) ‘쌍둥이’소나무
(59) 여객선터미널에서 사량호를 타고 蛇梁島를 떠나며….
(60) 공사중인 蛇梁大橋 主塔
(61) 푸른 바다와 養殖場과 작은 섬
(62) 사량호 고물[船尾]의 太極旗와 흰 물살
(63) 統營-固城 碧芳山(△650m)
統營市 光道面과 固城郡 巨流面에 걸쳐 있는 碧芳山은 통영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碧鉢山이라고도 하며
釋迦의 十大弟子 중이 한 사람인 迦葉尊者가 碧鉢(바리때)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碧: 푸를 벽 *鉢: 바리때 발 *迦: 부처이름 가 *葉: 땅 이름 섭)
(64) 道山面 五倫里 가오치旅客船터미널 도착, 버스로 換乘, 蛇梁島를 떠난다.
(65) 統營大橋, 忠武橋를 건너면서 버스 안에서 본 모습
*統營大橋 -길이 591m, 폭 20m -중앙 아치(arch)徑間 140m
統營市 當洞~彌勒島 美修洞을 연결하는 統營運河에 架設한 교량으로 1998년에 완공했다.
중앙 아치구간 140m에는 投光燈 196개를 설치, 밤이면 온화하고 포근한 빛을 발산하며 水面에 럭비공모양의
무수한 投影像을 만들어 새로운 夜間觀光名所이자 낭만적인 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66) 統營市 彌勒島 道南洞에 있는 統營遊覽船터미널
(67) 야자나무[椰子樹] (*椰: 야자나무 야)
(68) 統營傳統工藝館 -統營市 道南洞
*전복·소라·조개껍데기로 만든 통영의 名物 螺鈿漆器와 갓·소반·부채·누비·연·대발(대를 엮어서 만든 발) 등
통영의 傳統工藝品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나전칠기의 起源과 발달·칠기의 종류·제작과정과 工具·
統制營12工房 등을 알려준다. ‘統制營 12工房’은 조선시대 三道水軍統制營이 1604년 統營에 자리 잡으며
軍需品需給을 위해 전국의 工人을 불러들여 만든 공방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朝鮮時代 軍營과 邑城에는
공방이 있어 군수품생산은 물로 朝廷에 올리는 進貢品과 중국에 가는 使臣의 獻上品까지 조달하는 조직적인
分業의 工房體制를 갖추고 있었으며, 統制營에는 12工房이 이를 담당했다.
(*螺: 소라 나 *鈿: 비녀 전 *漆: 옻 칠 *貢: 바칠 공 *獻: 드릴 헌)
(69) 해저터널 입구를 지난다.
*統營 海底터널 -등록문화재 제201호
統營과 彌勒島를 연결하는 海底터널로 1932년 건립한 海底構造物이다. 統營半島와 彌勒島사이는 ‘판데목’이라는
좁은 海峽으로, 이를 건너 미륵도로 가기 위해 메웠다가 다시 파내 運河를 만들고 그 밑에 東洋最初이며,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海底터널을 만들었다. 日帝强占期에 우리나라 侵奪의 基盤施設로 건립하면서, 터널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日本人 統營郡守의 自作글씨로 전해오는 “龍門達陽”(용문을 거쳐 山陽에 통하다’)이라는
글씨가 남아있어 일본의 侵奪歷史를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日本漁民의 移住가 본격화됨에 따라 두 지역간
거리단축을 위해 건립했으며,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해수면 아래 최대 10m 깊이의 규모로
철근콘크리트조 터널부를 이루었다. 人馬와 차량이 통행할 수 있고 觀光性이 높아 한때 통영지방의 名物로
유명했으나 낡은 工法으로 施工하고 老朽되어 바닷물이 스며들어 1967년 海上에 運河橋 忠武橋를 架設하고 차량의
터널통과가 금지되었다. (*彌: 미륵 비 *勒: 굴레 륵 *峽: 골짜기 협 *奪: 빼앗을 탈 *朽: 썩을 후 *架: 시렁 가)
(70) 忠武橋를 건너면서 본 統營市街地
(71) 統營 晉陽 姜公之墓
2016년 ‘統營入鄕家門’ 追跡中에 道泉洞 ‘山腹道路’ 위에 있는 晉陽姜公碑石을 발견했다. 碑石前面에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兼 景福宮衛將 晉陽姜公之墓’(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경복궁위장 진양 강공지묘)라고
새겨 있어 비석의 주인을 알 수 있다. 松月堂 姜暹의 후손인 姜重煥은 주민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면,
資産을 털어 수차례 구제했다. 비석에는 주인공의 行蹟과 묘가 있는 장소가 ‘統營 海雲臺’일대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跡: 발자취 적 *腹: 배 복 *嘉: 아름다울 가 *樞: 지도리 추 *暹: 나라이름 섬 *蹟: 자취 적)
(72) 統營 忠烈祠 -사적 제236호
통영 충렬사는 忠武公 李舜臣將軍의 위패를 모신 祠堂으로 統營市 明井洞에 있다. 宣祖 39년(1606) 王命으로
統制使 李雲龍이 건립하고, 顯宗 4년(1663) 임금으로부터 ‘忠烈祠’라는 현판을 받아 賜額祠堂이 되었으며,
歷代 水軍統制使들이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충렬사는 本殿, 正門, 中門, 外三門, 東·西齋·景忠齋·崇武堂·
江漢樓·유물전시관 등과 肅宗 7년(1681)에 세운 ‘統制使 忠武李公 忠烈碑’가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明나라
萬曆帝의 統營忠烈祠 八賜品一括(보물 440호)과 正祖의 命으로 발간한 <忠武公全書>와 正祖御製 祭文 등을
전시하고 있다. (*顯: 나타날 현 *賜: 줄 사 *額: 이마 액)
(73) 통영 I/C로 향한다.
35번 고속도로는 慶南 統營~大田 東區間의 통영대전고속도로와 忠北 淸州~京畿 河南間 中部高速道路로
이루어진 고속도로 제35호는 총 길이 332.5km이다.
-(5-14) 全國의 風景돌아보기, 慶南 陜川 伽倻山 海印寺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