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본적인 변화는 중심의 변화입니다.
잠시 부르짖어 귀신을 쫓았을지라도, 내 안에 죄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귀신들이 See you again.. 하면서 다시 오게 되어 있어요.
한 번 쫓겨난 게 열받아서 더 많은 놈들을 데리고 우르르 몰려오게 되지요.
그러므로 거짓을 미워하고, 인정받는 것을 싫어하고,
주님 외에는 아무 것도 원치 않는 마음 상태가 아주 체질이 되어야 하는데..
그 중심은 변하지 않고 잠시 영광만을 체험한다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중심,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해요.
"오직 주를 알기 위해서는 목숨도 아깝지 않다.."
이런 마음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서 삶의 중심 자세로 자리잡히지 않은 사람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 무엇인가....
이 부분이 우선적으로 분명하게 잡혀 있어야 합니다.
근원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에겐 지혜와 능력이 없으나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릴 때 주님이 오십니다.
그러나 사랑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있을 때는 주님이 오실 수 없어요.
여성은 애정에 대한 집착과 권리를 버려야 합니다.
남성은 내가 옳다, 맞다.. 이런 마음을 버려야 해요.
자신의 의견, 견해, 높아진 머리가 낮아져야 하고..
자신의 감정, 애정욕구, 주님 아닌 것으로 채워진 가슴이 비워져야 하고..
그리고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내가 옳다, 내 말이 맞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머리에 귀신이 침투할 수 있습니다.
내 감정이 우선이 되는 사람은 귀신이 심장에 침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이 사랑과 힘과 지혜의 근원이심을 고백하며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엎드릴 때
거짓이 사라지고 진리의 빛을 받게 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얼마나 곰살맞지 못했는지.. 정말 뻣뻣하고 무뚝뚝했어요.
저는 '사랑합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면 아예 자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맞아 죽을지언정 잘못했다.. 는 말이 죽어도 입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한테도 "사랑한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놀라곤 해요.
제가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할 수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나도 언젠가는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 생각만 했을 뿐이지
정말 이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었지요.
그러나 주님을 구하고 붙잡고 걸어갈 때..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고 내 힘이 되셔서 결국은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느꼈지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능력이구나..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말이예요.
낮은 자세만 가지고 있다면, 겸손하게 엎어져 있다면,
하나님이 임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은 변해가게 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나는 착하다.." 는 마음입니다.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의 의를 붙잡지 않기 떄문에 저주 가운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위인적인 설교를 많이 하잖아요.
사도 바울은 이러저러해서 엄청 대단했다.
베드로는 이러저러해서 무지하게 훌륭했다...
다윗은 진실했다.. 사모했다.. 뭐 이런 식으로요..
그러나 사도바울이나 베드로나 다윗이나 다 엉망이었어요.
다니엘, 아브라함, 모세.. 모두 인간적인 약점과 허물이 있었지요.
성경의 모델은 오직 하나..
예수..
오직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예수는 그 분 자체가 말씀이요 진리요 길이요 생명입니다..
많은 종교가 있지만,
종교는 단지 사상과 이론을 전할 뿐 생명을 전하지 못합니다.
종교의 창시자들이 전한 사상을 배우고 따르라고 할 뿐이지..
공자를 먹고 마시라, 마호멧 안에 거하라..
그런 얘기는 없잖아요..
그러나 기독교는 그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생명입니다.
예수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론적으로는 사랑해야 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기뻐해야 하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잘 되지 않죠..
알기는 정말 잘 아는데,
아는 데 안되요..
그러나, 예수를 먹고 마실 때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모델은 다윗도 야곱도 그 누구도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좋은 부분이 있지만 나쁜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사람을 모델로 삼으려 하면 결국은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한분..
예수님..
그 분만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길을 걸으시고 차를 마시고 움직이시고..
그 모든 것이 다 메시지요 생명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예수가 가득할 때..
그 분께만 마음을 둘 때..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예수 충만.." 이예요..
청년 때는 항상 잘 때도, 걸을 때도
"예수 충만.." 하면서 호흡을 마셨는데..
지금은 그것도 너무 길어서 그저 "충만.... 충만....." 하게 되었지요.. ㅎㅎ
우리는 그 누구도 아닌 주님만을 믿고 바라봐야 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지 않아요.. 제 자신을 보지 않아요.
오직 하나님만 믿고 바라볼 뿐이지요..
오직 주님만 바라본다는 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주님의 나라가 설 수 없어요.
질서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입니다.
나의 위치를 아는 것, 나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고 엎드려 예배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모든 빛들이 쏟아집니다.
우리가 중심으로 주님을 정말 좋아하면 오실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그 분의 계명을 지키게 되며,
그럴 때 비로소 주님은 그 분을 나타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우리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할 때..
"주님.. 당신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저같이 거름더미에 있던 사람을 어찌 사랑해 주시는지.. 이 은혜는 평생 갚아도 못갚을 거예요..."
이렇게 마음 중심으로 고백하면 주님의 영이 임하십니다.
"정말 주님이 좋아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고백을 하면.. 감동이 오잖아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정말 마음 중심으로 주님을 구하고 원하면 주님이 오실 수 밖에 없어요.
"왜 주님이 나한테는 안오시는 거야? 편애하시는 거야, 뭐야?"
하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음이 통하지 않고 사모하지 않으면 주님이 오실 수 없기 때문에..
자신 안에 주님의 임재를 방해하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옳겠지요.
사랑하면 연합되고. 기분 나빠하면 증오 에너지가 와요.
겉으로는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할 지라도
마음 속에서는 조화되지 않는 것이 있고
증오 에너지로 상대방을 찌르고 있다면 가까이 갈 수 없겠지요.
영이 민감하면 사랑의 분위기 느껴요.
여성들은 마음이 민감하니까 특히 사랑의 분위기를 느껴요.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 그 말에 퉁명스러운 느낌이 있는지 사랑의 마음이 담겼는지를 느끼지요
마음 에너지는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계가 아닌 영계에서는 사랑, 평화, 기쁨.. 이런 것이 실상이기 때문에
내 안에 사랑이 있으면 그 파동이 반사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지요.
영계는 이렇게 육체와 외형이 아닌 마음이 중심이기 때문에
외형적인 헌신이 아닌 진정한 마음 중심의 애정이 있을 때에만 주님이 깊이 임하실 수 있습니다.
순결한 마음을 갖고 어린아이 같이 낮아지는 것..
교만을 버리고 거짓을 버리고 인간적 애정과 인간적 지혜버리고 주를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천로역정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의 일곱 가지 귀신 버리고 한걸음씩 주님과 가까워질 때
더 많은 천국의 기쁨 평화 진리 지혜 영광 거룩함 사랑 희열.. 엄청난 보화들이 쏟아지는데
한걸음씩 가면서.. "아.. 무한한 세계구나. 정말 다른 세계구나.
하늘의 지혜는 말로 측량할 수 없구나.." 를 알게 되거든요.
올 한 해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한 해가 되고
우리 심령이 더욱 더 주님의 아름다운 전으로 지어져 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글: 정원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