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박근혜의 지난 날 회고 ○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5-1번지,5-2번지 일대)에서 전시(戰時)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육영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는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 육영수여사 피격 사건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저격으로 살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영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여야 하였다. 1975년부터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최태민이 그의 새마음 사업에 참여한 것이 후일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의전상의 영부인 권한대행으로써 아버지 박정희의 공식 행사와
해외 순방 등을 수행하였고 육영수 피격 사건 이듬해에 만들어진
육영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가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가 살해당하자 며칠 뒤 청와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특별시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부친 암살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이던 남동생 박지만은 1981년 방공포병과를
택해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이후 지만은 군 복무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에 따른 후유증을 덜고자 마약에 손을 댔고, 이후 사창가, 마약 등
상습 투약으로 몇차례 유죄 선고를 받기 했으나 결혼 후 안정을 찾았다.
* 사회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