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의 풍경』
― 수필가 주현중 ―
“이사 가던 날 뒷집아이 돌이는~~” “이사 가던 날”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임수정’ 氏의 노랫말처럼 누구에게나 추억 한 자락이 문득 떠오를 법한 이사철!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현재나 지난날이나 봄가을이 이사하기는 더 없는 시기인 것 같다. 겨울엔 춥고 한여름엔 덥기 때문에 선선한 봄가을을 이사하는 계절로 뿌리내리고 있는 듯하다. 물론 21세기의 대한민국의 4계절은 지난 19세기와는 다르게 계절의 질서를 뒤집어 놓고는 있지만...,
家家戶戶 이사하는 사연이야 자녀교육문제부터 시작하여 어른의 직장문제, 주거환경문제, 민생고문제 등등이 있지만 이사하는 주 동기는 주거환경문제를 들어 볼 수 있다. 보다 좀 넉넉하고 아늑한 주거환경에서 삶을 영위하려는 것일 게다. 지난 과거에는 시골농촌 환경이란 것이 너무 낙후되어 문화혜택을 받을 수가 없음으로 인해 자녀교육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물론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보면 민생고문제를 대표적으로 꼽아 볼 수가 있다.
‘나’ 역시 홀로 독립된 삶을 영위한 이래 내 사전에 처음으로 장식될 첫 이사를 2005년 4월 말경에 하게 되었다. 이사한 곳이 전에 살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이삿짐이라고 챙겨보니 혼자 사는 살림살이가 무엇이 그리도 많은지 장롱에다 이부자리, 텔레비전, 컴퓨터, 냉장고 세탁기, 정수기, 선풍기, 책걸상과 각종 도서들, 벽걸이난로에다 주방그릇 셋트, 피복 등등 그 밖의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두 들어내니 작은 트럭으로 한 트럭하고도 남아 나머지는 한두 개씩 다리품을 팔아가며 날랐다.
이사 가는 곳이 150미터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모든 집기를 들어 나를 수 없어 앞면이 조금 있는 사람에게 용달을 부탁했더니 겨우 150미터 옮겨주고서 용달비 20,000 원을 달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어릴 적 이사할 때 용달비를 생각하니 턱 없이 비싸다는 생각이다. 1980년 동짓달 무렵 강원도 평창군에서 경상북도 예천군으로 이사를 하는 거리었는데도 그 당시 용달비는 80,000 원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25만 원 정도는 주어야겠지만, 그래도 150미터에 2만원이 비싸다는 생각은 아직 지워지지 않는다. 독립생활을 한 이후 이사라는 것을 이렇게 하게 되었다.
이사하는 각 가정마다 다소의 차이는 이겠지만 가정사에 있어 가장 큰 일은 주거를 옮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다른 대소사는 금전적문제만 해결되면 되겠지만 주거지를 옮기는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재어 보아야 될 일이다. 물론 경제력으로 주택을 짓는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주택을 사든 전세를 얻든 월세를 얻든 통풍은 잘 되는지, 남향인지 북향인지 아니면 동서향인지의 주거지의 방위(方位)를 본다고 하면, 이제 한창 자라고 있는 일이십대들은 뭘 그런 걸 다 따지냐고 하겠지만, 방위란 것은 건강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필히 보아야 되는 것이다. 아파트라면 방위를 본다는 게 난해하지만 일반주택일 경우에는 반드시 보고 이사를 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남향집을 좋아해서 집이 크든 작든 한 달을 산다고 할지라도 남향집이라야 한다. 놀러간 친구지이 남향이면 이분이 아주 상쾌하고 좋다. 거기다 방 또한 크면 한 마디로 날아가고 싶을 정도이다. 대문이 어느 쪽으로 나 있느냐를 보는 것이 방위이다. 청와대가 남향인 것처럼!
이사하는 풍경이야 시대별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현시대엔 거의 사라지는 풍경이지만 봄철에 모내기를 한다거나 가을에 추수(秋收) 한다거나 하면 그 날은 그 마을의 잔칫날이나 진배없었다. 코 흘리게 시절 학교 갔다 돌아오면 점심은 모내기하는 집이나 추수(秋收)하는 집에서 해결하였듯이 한두 집을 제외하고는 평상시에 쌀밥을 구경한다는 것은 명절날이 전부였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랬고 생일날에도 쌀밥 구경 한번 못해 보았다. 그러한 환경에서 살았기에 모내기를 하거나 추수(秋收)를 하거나 이사를 가거나 오는 집으로 온 동네 아이들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우르르 몰려가서 한 끼의 맛난 별식을 하는 돌이켜 생각하면 눈물겹기도 한 그리운 추억이 있다.
현시대가 과거보다 못 먹는 것은 아닌데도, 왜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지! 아마 현시대는 풋풋한 정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시대에도 집들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풋풋한 정이란 것을 느낄 수 없음이 조금은 서글프다. 그 당시엔 이사 오는 집의 초대를 받고 갈 때는 성냥에다 양초 아니면 국수나 라면을 가지고 가기도 하였다. 쉽게 가져가는 게 성냥(‘다황’이라 부르기도 함)이었다.
각 지역마다 풍습이 조금 다르기도 하다. 다른 지역은 잘 몰라도 강원도에서 태어나 살다가 경상북도로 이사를 하였는데 강원도 평창지방에서는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인사를 하는 게 팥죽을 끊여 한 그릇씩 대접하였고 경상북도에서는 비빔밥을 대접하였다. 오늘 날에도 그런 풍습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그랬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경상북도에서는 새로 이사 온 집에 초대를 받고 갈 때 전통 한복을 입고 동네 아낙들은 옥비녀 금비녀 은비녀를 뒷머리에 꼽고 방문을 하는 사례가 기억된다. 결혼식이나 환갑 잔칫집에 가는 것도 아닌데 한복을 왜 입었을까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물론 그 지방의 독특한 풍습이겠지만 백번을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언제고 경상북도 예천지방에 가면 한 번 물어 보아야겠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또 다른 점은 강원도에서는 새로 이사를 온 집에서 가진 맛난 음식을 만들어 이사 간 동네사람들에게 대접을 하였지만 경상북도에서는 새로 이사를 온 가정을 받아들이는 그 동네에서 대접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강원도와 경상북도는 반대라는 말이다. 또 한 가지 경상북도에서는 새로 이사 온 집의 땔감나무를 그 마을 남정네들이 한해 겨울 동안 땔 수 있는 분량의 땔감을 해다 주었다. 필자가 겪은 기억으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마을에는 현대식 주택이 드물었다. 겨우 지붕계량을 할 정도였고 다수의 주택들이 재래식으로 밥을 짓는 아궁이가 있었다. 2005년도 현재에도 더러는 나무를 때어 밥을 짓는 시골가정이 많으리라 짐작된다. 재래식 주택이 좀 불편은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사를 하면 음식을 대접하거나 받는다는 것은 앞에서 소개하였다. 또 하나 기억해 두고 싶은 것은 음식이다.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북쪽으로 거슬러 갈수록 미녀가 많고 음식 맛 또한 좋다고 말을 한다. 아니 말이 아니라 기정사실이다. 여기서 잠시 샛길로 빠져서 2005년 현재 북한을 다녀 온 「백두산문학」 ‘김윤호’ 회장의 말을 빌리면 금강산을 다녀왔는데 북한 군관들이 하는 말인 즉, “남북통일이 되면 북한 남성들은 손해를 본다.” 라고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남남북녀란 말이 있듯이 남쪽 남성들에게 북쪽 여성들을 모두 빼앗길 것 같다. 그러니 통일이 되면 북한 남성들은 손해다.” 라고 설명을 하였다고 한다. 우스갯말로 통일이 되면 남쪽 여성들이 손해 본다는 말이 된다. 북쪽 여성들에게 남쪽 남성들을 죄다 빼앗길 것이니 아니 그렇겠는가!
어찌 되었든 간에 북쪽으로 갈수록 음식 맛이 좋듯 강원도 음식은 나무랄 것이 없다. 그러나 경상북도의 음식이란 것이 필자 역시 예천에서 성장을 하였지만 정말 돈 주고는 못 먹을 맛이다. 여기서 돈을 주고는 못 먹는다는 말은 음식문화가 타 지방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어릴 적 강원도 평창에서 경상북도 예천으로 이사를 가고 보니 부치기라는 음식이 무슨 호떡마냥 장정 손바닥 두께만 했다. 부치기를 부칠 때 보통 채소가 들어가는데 있어 그 채소란 것이 배추를 절이지도 않고 날 배춧잎으로 부치기를 부치는 것이었다. 말이 부치기이지 배춧잎이 도로 밭으로 갈판이었다.
또 하나 된장국이란 음식은 강원도 된장과는 다르기도 하지만 무슨 된장국에 메주 덩어리가 그렇게 많은지 맛이라도 좋으면 먹어주겠지만 메주 덩어리가 이리저리 국그릇에서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좀 저속한 말로 잿간(화장실의 강원도 방언.)이 생각나서이다. 그리고 비빔밥에 콩잎 팥잎을 넣는 것은 경상북도 예천에 이사를 간 후 처음 안 일이다. 그 지방의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음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입 안에 넣고 씹으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모든 추억 속의 기억들이 20세기와 21세기의 이사하는 날의 풍경의 차이점이며 현시대에 들어와 아무리 교, 사, 철(敎, 史, 哲=교육, 역사, 철학)을 등한시 한다지만 지금 자라나는 후세대들이 먼 훗날 우리 조상들의 “이사하는 날의 풍경”이 이렇구나 하고 역사의 지식이 되었으면 한다. 분명 현재는 과거보다 먹을 거도 많고 모든 면에서 넉넉한데도 왜 그런지 과거로 회귀(回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댓글 각 지역마다의 독특하고 토속적인 풍습이 요즘 현대에서 더욱 그립군요. 아마 어릴 때의 추억도 같이 있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ㅎㅎㅎ... 전에 경북이 친정인 옆집 아짐 별미라고 김장철만 되면 허연 배추잎에 밀가루 뭍여서 만든 부침개를 들고 오곤 했는데 첨엔 뭔 맛인가 싶던게 자꾸 먹으니까 맛있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