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말씀. 영유형기(影由形起) 그림자는 형상에 의해 생긴다.(향거사)
그림자는 형상에 의해 생기고,
메아리는 소리에 따라 일어난다.
형상을 취하면서 그림자를 버리려는 것은
형상이 그림자의 근본임을 모르기 때문이요,
소리를 내면서 메아리를 없애려 함은
소리가 메아리의 뿌리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향거사(向居士)는 북제(北齊) 시대의 사람이다.
항상 숲 속에 살며 나무 열매를 먹고
시냇물로 목을 추기며 수행에 몰두하였다.
당시 2조 혜가선사의 교화가 있음을 알고
위와 같은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번뇌를 제거하고 열반에 나아가려는 것은
형상을 버리고 그림자를 찾는 것과 같고,
중생을 떠나서 부처를 이루려 함은
소리를 내지 않고 메아리를 찾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미혹과 깨달음이 한 갈래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다르지 않다.
본래 이름이 없는데 이름을 지음으로 이름으로 인해 시비가 생기고,
본래 이치가 없건만 이치를 만들면 이치에 의해 논쟁이 일어난다.
헛되어 참되지 않거늘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허망하여 진실이 없거늘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으리오.
얻어도 얻은 바가 없고, 잃어도 잃은 바가 없음을 알고자 하나
참문할 겨를이 없어 삼가 글을 올리오니 바라옵건데 회답하여 주소서.”
향거사는 비록 스승이 없이 홀로 수행하였으나
정법의 여실지견을 제대로 깨달아 혜가선사에게 인가를 청하고 있다.
여기서 번뇌 즉 보리이며,
중생 즉 부처라는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법문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일체 제법이 공(空)하여 유무(有無)에 집착함이 없어
득과 실이 본래 없음을 설하고 있다.
간절하고 정중한 문법(問法)에 대해
혜가는 다음과 같은 답서로 인가를 해 주고 있다.
“보내 온 글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가 여실지견에 부합되고,
참되고 그윽한 이치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본래 마니주를 잘못 알아 자갈이라 하였으나 활연히 깨우치고 보니
진주임에 틀림없다.
무명과 지혜가 차별이 없으니 만법이 모두 그러한 줄 알아라.
두 가지 견해(二見: 양 변에 치우친 견해)를 가진 무리들을 불쌍히 여겨
이글을 쓰노니, 몸(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음을 알면
무여열반은 구해서 무엇 하겠는가.”
중생의 자성이 본래 불성임을 알지 못하여
마치 마니보주를 자갈이라 여긴 것과 같다.
그러나 활연히 깨닫고 보니 보배구슬이 그대로 진주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무명의 중생이 지혜의 부처임을 바로 깨달아야 무여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
무명이 지혜인 줄 알고, 범부가 그대로 부처인 줄 안다면
구태여 유여열반이니, 무여열반이니 시비할 것이 없다.
그대로 명백할 따름이다.
출처: 불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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